어색한 기류를 깨고 입을 연건 찬열이었다. "이제 한달만 있으면 예정일인건가?" "네... 열달이 너무 긴것 같아요." 아이를 가진 그 이후의 시간은 백현에게 악몽같은 시간의 연속이었다. 기뻐할 시간도 없이 오해가 생겼고 오해를 풀 시간도 없이 찬열이 사고로 기억을 잃었다. 왠지 이 아이가 생긴 이후로 부터 안 좋은 일이 연달아 있었던 터라 백현은 아이가 태어나면 뭔가 다른 일이 있을 것 같았다. 얼른 태어났으면 하는 엄마의 이기심이었다. "근데 집에 아기 용품이 없던데, 이제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임신 초기에 찬열씨가 사놓은 거 있을거에요. 제가 집 나올 때 그것까진 못챙겨서 아마 오피스텔 작은방에 있을건데..." "아...그렇군." 서로의 대화 속에서 가끔 과거의 일이 거론될 때면 찬열이든 백현이든 당황스러움과 혼란스러움에 잠기곤 했다. "그러면 따로 준비해야 할건 없는건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베넷저고리랑 내복이랑 신발하고 모빌은 샀었구요. 또..." "일단 당장 필요한건 있어도 많이 부족한 것 같은데. 변백현씨 바쁜일 없으면 매장 들렸다 가지." "아...네." 백현은 최근들어 아기와 자신을 향한 찬열의 태도가 많이 변한 것 같다고 느꼈다. 한달 전만 해도 적대감을 내보였었다면 지금은 뭔가 다가오려고 하는 찬열의 태도에 백현은 많이 혼란스러웠다. -어서오세요.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찬열의 차가 백화점으로 들어섰고 둘은 매장으로 들어섰다. 백현의 생활비로는 감당도 못할 금액의 브랜드여선지 조금 움츠러 들었다. "곧 예정일인데 당장 필요한 거만 챙겨주세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의 찬열을 대신해서 백현이 대답했다. -이건 프랑스에서 수입된 내복인데 요즘 아기엄마들이 많이 찾는 브랜드에요. 또 이건 친환경 젖병이라서 세척하기 편한 제품이고... 필요한거만 챙겨달라는 백현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점원은 쉴세없이 자사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입을 놀렸다. 당황한 백현과 찬열은 어버버하며 듣고만 있었고 계산대 위의 물건은 쌓여만 갔다. -근데 혹시 유축기는 구입하셨어요? 저희 회사에서 신제품으로 나온 유축기가 있는데 마사지 기능이 더해져서 인기가 좋아요. 그리고 휴대가 간편... "아... 잠시만요. 근데 유축기가 뭐에요?" 멍하니 듣고만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붙잡은 백현의 귀로 생소한 단어가 들렸다. 또한 찬열은 듣는 내내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이었다. -아, 모르시는 구나. 남자 산모들은 여성하고 체형이 달라서 아이가 젖을 잘 못빨아요. 그래서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가 크거든요. 그럴수록 산모도 힘들어 지구요. 그래서 유축기로 젖을 먹이는게 더 편해요. 그리고 아이가 젖을 다 못 먹으면 엄마가 가슴이 뭉쳐서 아플수도 있어요. 그럴때 아버님이 가슴마사지를 해주시거나 젖을 빼주셔야 해요. 서스럼 없이 민망할 수도 있는 단어를 마구 내뱉는 점원의 설명으로 백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가격이 꽤 비싼 제품이어서 구매의사를 물어보러 찬열을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찬열은 귀까지 빨개져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구매 감사드려요. 예쁜아기 낳으세요. 예상한 것 보다 훨씬 많은 제품을 구매하고 매장을 나설 때 갑자기 백현은 작게 신음을 흘리면 자리에 멈춰섰다. "아..." 양 손 가득 짐을 들고 앞서 나가던 찬열이 어느 순간 뒤따라오던 발걸음 소리가 없어졌다고 느껴서 뒤돌아 봤을때 백현은 매장에서 얼마 벗어 나지 못한 복도에서 배를 감싸며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왜 그래? 배 아파? 병원 갈래?" "아니에요. 아기가 움직여서 좀 쑤셔서 그래요." "그냥 좀 쑤신게 아닌것 같은데. 변백현씨 지금 식은땀 흘리고 있어.병원가자" "괜찮아요. 조금만 쉬면 괜찮을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괜찮지 못한 백현의 상태인데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백현에 찬열은 할 수 없다며 백화점 직원에게 짐을 부탁하고 백현을 부축했다. 계속 아픈 듯 신음소리를 내며 앞으로 고꾸라지는 백현을 부축하기 위해 찬열은 허리에 손을 둘렀다. 차에 도착해서 백현을 조수석에 뉘이고 급히 집으로 출발했다. "정말 괜찮은거야? 아프면 말해." "...." 찬열이 백현을 향해 던진 말에 아무 대꾸가 없는 백현을 보니 금새 지쳐서 기절하듯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찬열은 식은땀에 젖어 이마에 붙어 있는 앞머리를 정리해 주며 백현을 쳐다보았다. 아이를 가진 모습이 너무나 작아 보였다. 그리고 힘들어 보였다. "일어나봐. 몸은 어때?" "아.. 벌써 도착한거에요? 괜찮아요. 잠시 아기가 운동하고 싶었나봐요." 백현의 집에 도착해서 찬열은 백현을 깨우지 않고 기다렸다. 그냥 그렇게 계속 얼굴을 쳐다보고 싶었다. 그러다 한시간 정도가 흐른 후 어느새 저녁시간이 다 되었다 싶어서 찬열은 백현을 깨웠다. 눈을 부비며 일어나 배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미소를 띈 표정으로 찬열의 질문에 대답하는 백현의 모습이 너무 예쁘다고 찬열은 생각했다. "이만 들어가요. 밥 먹어야죠." "음...그러지." 집에 들어와 찬열은 곧장 샤워를 하러 가고 찬열의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백현이 식탁을 다 차려놓고 쇼파에 앉아 혈액순환이 안되어서 잔뜩 부어있는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마침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들어선 찬열은 백현의 부은 다리를 보고 다가가 앉았다. "아. 샤워 다 하셨어요? 저녁 차려뒀어요. 가서 식사하세요." "당신은?" "전 따로 먹을게요. 얼른가서 식사해요." 말하는 도중에도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백현을 본 찬열은 백현의 손을 치우고 자신이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안그러셔도 되요. 괜찮아요." 놀라서 다리를 내빼는 백현을 저지하고 찬열의 억센 손이 계속 일을 했다. "뭐가 괜찮아. 잔뜩 부어있는데." "제가 만져도 괜찮아요. 국 식어요. 얼른요." "당신 배 불러서 제대로 손이 닿기나 해? 조용히 있어." 확실히 다른 손의 악력때문인지 당기던 종아리가 시원해지고 있었다. 아무 대화도 없이 몇분 째 다리만 주무르고 있을 때 먼저 입을 뗀건 찬열이었다. "항상 이렇게 다리가 붓나?" "아니요. 오늘은 많이 걸었더니 더 심하네요. 아기가 혈관을 눌러서 혈액순환이 안되서 그래요." "음...그렇군." "이제 됬어요. 가서 식사해요." 다리를 빼며 국을 데우기 위해 주방으로 향하는 백현을 따라 찬열도 식탁에 앉았다. 그러나 왠지 혼자 먹는 밥이 싫다고 느껴진 찬열은 백현을 데려와 앞에 앉혔고 그렇게 식사를 진행했다. "일이 바빠서 힘들죠?" "이제 좀 숨통이 트였어. 출장 이후로 다른 프로젝트 진행이 없으니까 따로 걱정할 건 없어." "그래도 회사랑 여기가 머니까... 일주일에 한 두번만 와도 되요. 저 혼자 잘 할 수있어요." "싫어. 저번처럼 밤에 당신이 아프면 어떡해." 찬열의 말이 아이의 투정처럼 느껴졌다.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편안했다. 모처럼 집에 따뜻한 온기가 감도는 듯 했다. 〈작가의 변> 안녕하세요. 엄청 많이 늦게 온 눈류낭랴입니다. 독자분들 죄송해욥. 변명을 하자면 요즘 감기가 장염이랑 같이 와서 근 이주 동안 고생을 했어요. 사실 많이 아프진 않았는데 변명거리가 이거밖에 없네요. 독자분들이 둘의 행쇼를 원하시길래 나름 행쇼한 이야기를 써봤어요. 앞으로 몇회 안남았는데 과연 어떻게 될까욥. 죄송한 의미에서 오늘 새벽이나 내일 올게요. 제 부족한 글울 읽어주시는 독자님드리 넘흐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