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남친과 현남친 사이 05 한빈 시점 핸드폰을 쥔 채 공중에 들려있는 팔이 슬슬 아파왔다. 화면엔 김삐잉의 번호가 찍혀있었다. 벌써 삼십분 째였다. 김삐잉에게 전화를 걸까 말까 고민하는 바보같은 행동이. 냉정하고 결단력 있다는 소리를 꽤 자주 듣는 편인데, 우습게도 김삐잉만 관련되었다 하면 그게 뭐든 늘 판단력이 흐려진다. 멍하니 김삐잉의 번호만 바라보다, 마지막 기회라며 선택한 것은 코카콜라였다. 코카콜라 맛있다. 맛있으면 또 먹지. 또 먹으면 배탈 나. 척척박사님 알아맞춰 보세요. 딩동댕동댕! 마지막 음절이 선택한 것은 전화를 거는 쪽이었다. 뭐 그 반대였다고 해도 억지스러운 핑계를 대며 결국에는 전화를 걸었을 것이지만 말이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전화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라는 청아한 기계음이 흐른다. 말이 끝나자 곧바로 신호음이 울린다. 뚜르르, 뚜르르. 일분이 지나고 이분이 다 되어 갈 때까지도 김삐잉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번 더 걸었다. 역시나 받지 않았다. 현재 시각 오후 세 시. 김삐잉이라면 충분히 일어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일부러 안 받는건가, 싶어서 한번 더 걸어봤다. 역시나 받지 않는다. 쓸데없이 오기가 생겨 받을 때까지 할거라며 마음 속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두 번, 세 번, 대체 언제 받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열 번째 거는 전화는 고객님이 통화를 할 수 없어, 라는 기계음 대신 자다 깬 김삐잉의 여보세요, 소리가 들려왔다. 자는데 내가 깨운건가 싶어서 괜히 미안해졌다. 그 와중에 잠에 취한듯한 김삐잉의 목소리가 너무 귀여워서 하마터면 귀엽다, 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큼,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뭐라 말을 꺼내야 할 지 생각했다. 잘 잤어? 아님 어제는 미안? 이것도 아님 어제 누구랑 술마셨어? 아니야 다 이상해. 한참을 머뭇거리다 내 뱉은 말은 '가로수길 카페베네로 와. 만나서 할 얘기가 있어.' 였다. 혹시라도 김삐잉이 내 요청에 거절할까 싶어 대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얼마 안 가 혹시 당황했으면 어쩌지, 하며 후회했지만. 삐잉 시점 커튼을 쳐 놓고 티비도 켜지 않은 채 핸드폰만 쥐고 가만히 거실 바닥에 누워있었다. 구준회와의 카톡도 슬슬 지겨워 지려는데, 진동이 길게 여러번 울렸다. 누구한테 온 전화지? 싶어 화면을 보니 '김한빈' 의 이름과 함께 김한빈의 번호가 적혀있었다. 순간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얘가 대체 왜 나한테 전화를? 너무 놀라 전화를 받을 생각조차 하지 못 했다. 그러자 금방 꺼져버리는 전화. 잘 못 걸었나? 싶어 홀드키를 눌러 화면을 끄자마자 다시 울리는 진동에 다시 화면을 확인했다. 역시나 김한빈이었다. 어제의 카톡 탓에 가뜩이나 혼란스러운데, 전화까지 받는 건 좀 아니다 싶어 계속해서 무시했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네 번이 되었다. 열 통도 넘게 온 전화에 이젠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전화하는건가 싶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걸어라. 바램 아닌 바램이 들리기라도 한 건지 정말 한 번 더 전화가 걸려왔다. 오 초를 센 뒤 전화를 받았다. 여버세여? 여태 안 받아 놓고 멀쩡한 목소리로 받으면 일부러 안 받은 게 티날까봐 되지도 않는 자다 일어난 척을 했다. 김한빈은 듣고 있는건지 아닌지 아무 말이 없다. 더 확실한 연기를 하기 위해 이불을 부시럭 댔다. 자 이제 말을 해 봐! 대체 무슨 급한 일이길래 열 통이 넘게 전화를 했는지! 궁금해 미치겠는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묵묵부답인 김한빈에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할 때 즈음 김한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로수길 카페베네로 와. 만나서 할 얘기가 있어.' 이게 무슨 소리야? 라고 말하려 하자 마자 그대로 뚝 끊겨 버린 전화. 핸드폰을 부여잡고 김한빈? 야! 버럭 소리를 질러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얜 왜 이리 막무가내야. 한숨을 푹 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는 마주하지 않을 얼굴인 줄 알았는데. 그러나 마음 한 켠에선 어쩐지 조금 기대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준회 시점 김한빈이라는 사람의 에스크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메추리님에게 질문합니다. 별명이 메추린가, 근데 난 질문 안 할건데? 미개한 에스크새끼. 그나저나 질문의 개수가 무려 사백개 가까이 되었다. 인기 많나보네. 어쩐지 댓글도 다 여자뿐이더라. 이러니까 여친이랑 깨지지. 미친놈처럼 혼자 중얼대며 스크롤을 아래로 내렸다. 내리자마자 보이는 꽤 긴 질문. '오빠 삐잉언니랑 왜 헤어졌어요? 언니도 많이 힘들어 했던 것 같은데...둘이 다시 잘 해보라고 하고 싶긴한데 그 언니 이미 남친 생겼더라구요 한 달 정도 됐다고 들었는데 잘은 모르겠고 그냥 힘내세여..힘쇼!' 천천히 읽던 내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는것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삐잉언니? 내가 아는 삐잉이는 나의 그녀밖에 없는데. 설마 내가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한 달 정도 된 삐잉언니의 그 남친이 설마 나는 아니겠지? 아닐거야 아닐거야 하며 마음을 추스렸지만 아닐리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아까 봤던 자유로운 연애중이 올라 온 날짜도 그녀가 구남친에게 문자로 '헤어지자' 단 네 글자로 이별을 통보한 날짜와 같았다. 그럼 정말로, 정말로 김한빈이라는 사람이 나의 그녀와 무려 오 년간 사귄 남자인가? 에이 설마, 하고 사실을 부정하려 했지만 이미 빼도박도 못 할 증거가 있었다. 혼란스러운 머리와 마음을 잠시 식히기위해 핸드폰을 내려놨다. 그리고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러니까, 김한빈이라는 남자가 나의 그녀, 즉 김삐잉의 구남친? 거기까지 정리가 되자, 나는 완전히 멘붕에 빠져버렸다. 막상 그 구남친이 누군지 알게되자 혼란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머리를 마구 헝크렸다. 아 짜증나. 뿌요 님 일이세개 님 감사합니다~♥ 댓글 달아주시고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드러여 댓글 달고 구독료 받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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