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남친과 현남친 사이 삐잉 시점 쓰린 속에 가슴을 부여잡으며 겨우 눈을 떴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쓰러지듯이 잠든 건지 옷도 벗지 않은 채 거실에 누워있었다. 나의 병신같은 모습에 새삼 감탄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지금이 몇시 쯤 되었나, 하고 시계를 보니 오후 1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완전 퍼질러 잤네. 구준회는 집에 잘 들어갔으려나? 생각해보니까 어제 집에 들어가서 연락하기로 했는데, 김진환 만나느라 연락도 못 했다. 왜 연락이 안 되나, 걱정했을 구준회를 생각하며 카톡에 들어갔다. 예상과 다르지 않게 역시 구준회에게선 두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상당한 양의 메세지가 와 있었다. 어제 밤에 보낸 집에 도착했냐는 걱정 가득한 말부터 오늘 아침에 보낸 일어났으면 당장 답장하라는 말까지. '어제 친구 좀 만나느라 연락을 못 했네. 지금 일어났어(방긋)' 답장을 보낸 뒤 혹시 다른 이에게서 온 카톡은 없나, 하고 채팅 목록을 살펴보는데, 김한빈? 평소와 다르게 자니? 가 아닌 전혀 다른 말이 쓰여져있는 김한빈과의 채팅방을 멍하니 들여다봤다. 김한빈의 마지막 말로 그냥 그렇게 잠에 들었나보다. '아짓ㄱ도 졸아하늗데' 이게 뭐람? 나는 오타 투성이인 김한빈의 말을 해석하느라 멍청하게도 십 분 가량을 소요했다. 아마 내가 제대로 알아먹은게 맞다면, '아직도 좋아하는데' 그러니까 아마 나를 아직도 좋아한다는 것 같다. 아예 예상하지 못 한건 아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마음이 조금 혼란스러워 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위로 올려 어젯밤 나누었던 대화를 하나하나 읽어봤다. 역시나 김한빈의 선톡으로 시작 된 의미가 없다고 하기에도, 있다고 하기에도 부족한 대화. 아마 김한빈도 어제 저녁엔 꽤나 취해 있었는지 만취 상태였던 나 못지 않게 오타 남발이다. 술도 못 마시는 애가 웬 힘든척을 하겠다고 술을 마셨대. 구준회의 카톡 탓에 울리는 진동에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김한빈을 생각하고 있는 나를 알 수 있었다. 한빈 시점 잘 만큼 잤는지 절로 올라가는 눈꺼풀에 하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게 몸이 으슬으슬 하길래 눈을 번쩍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여긴 놀이터? 내가 왜 놀이터에 누워서 잔 거지? 혹시 누가 내 장기만 빼내가고 날 버린걸까. 그럴 리는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옷을 들어올려 배때지를 확인했다. 다행히 칼자국은 없었다. 내가 왜 이 곳에 거지마냥 누워있었나, 하고 생각하다보니 어제 있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음, 어제 김지원이랑 술 한잔 했지.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놀이터에 앉아있다가, 카톡을 켜서 누구에게 카톡을 했더라? 그건 아마, 김삐잉? 머릿 속을 스쳐지나가는 김삐잉의 이름에 설마설마하며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밤새 얼마나 화면을 켜두었는지 배터리가 십퍼센트도 채 되지 않았다. 심호흡과 함께 카톡을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김삐잉과의 채팅방. 오타 투성이인 김삐잉과 나의 대화. 차근차근 읽어보니 역시나 말도 안 되는 헛소리 뿐이다. 아짓ㄱ도 졸아하늗데. 나 왜 사는거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술이 웬수라며 원치 않게 내 몸속으로 흘러 들어간 알코올만 원망했다. 예나 지금이나 술만 들어갔다 하면 당장 생각나는 사람에게 연락하는, 정말이지 쓸모없는 주사였다. 김삐잉이 날 더 싫어하면 어쩌지. 죄 없는 잔디를 쥐어 뜯으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이미 헤어진 사이라곤 하지만, 나는 아직 김삐잉을 놓지 못 했다. 김삐잉이 내게 있는 정 없는 정 다 떨어졌다고 해도 나는 아직이라는 말이다. 이쯤 되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에스크에 쓰여있는 질문에 의하면 한달 정도 사귀었다는 김삐잉의 현남친이 누군지 궁금하기도 했다. 대체 얼마나 잘난 놈이길래 나와 헤어진 뒤 바로, 혹은 나와 사귀면서도 만남을 가졌을까. 내 머릿속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다. 어제의 민망하다 못 해 죽고싶을 정도의 행패와 김삐잉의 근황에 대한 궁금증이 마구 섞여들었다. 초딩들 학교 끝나는 시간이 다 되었는지, 조그만 아이들이 제 몸 만한 가방을 메고 하나 둘 무리를 지어 놀이터로 들어섰다. 나는 그 모습을 아무 생각도 없이 바라보기만 하다가, 이내 결심을 하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결과야 어찌되던, 일단 김삐잉을 만나서 얘기 하자는 조금은 때 늦은 결심 말이다. 준회 시점 눈을 뜨니 시간은 이제야 여덟시를 조금 넘긴 채였다. 어젯밤 집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 잘 들어갔냐는, 내가 마치 아주 다정한 남자의 표본인 것 마냥 달콤한 카톡을 보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선 몇 시간이 지나도 답장이 오지 않았고 결국 몇 통의 메세지를 더 남겨놓곤 시원치 않게 잠에 들었다. 어제 일찍 잤으면 이미 일어났겠지 싶어 그녀에게 일어났냐는 카톡을 보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답장은 빠르게 오지 않았고, 조금 화가 난 나는 그녀에게 일어나면 연락하라는 말을 남긴 채 카톡을 나갔다. 한참을 혼자 씩씩대다가, 혹시 내가 싫어져서 일부러 내 카톡을 안 보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페북에 글은 올리면서 내 카톡 일부러 안 보는 거 아니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반쯤 눈이 돌아가 그녀가 할 만한 SNS를 모두 뒤졌다.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그 어떤 것에도 오늘 날짜가 적힌 그녀의 글은 보이지 않았다. 단순한 나는 곧바로 의심을 풀었다. 그리곤 그녀가 페이스북에 올린 셀카를 하나하나 감상했다. 약 이십여개의 셀카를 아 존나 귀여워! 를 연발하며 보다보니 더 이상 볼 것도 없었다. 심심했던 나는 그녀의 카톡을 기다리는 동안 염탐의 끝을 보여주자며 그녀의 친구 목록에 들어갔다. 가장 위에 있는 사람은 '김한빈' 이라는 사람이었다. 딱 봐도 남자 이름이었다. 미간을 좁히곤 이름을 클릭했다. 가장 최근 글이 '자유로운 연애중' 이었다. 불쌍하다 생각하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자유로운 연애중을 올린 날짜가 왠지 익숙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드디어 무슨 날인지 생각이 났다. 그 날은 그녀와 내가 사귄지 이틀 째 되는 날이었다. 다른 말로는 그녀가 5년 간 만난 지금은 '구남친' 이 되어버린 그 남자에게 내가 보는 앞에서 이별을 고한 날. 우리는 행복했을 시간에 두 쌍 이상의 커플이 이별했구나, 싶었다. 김한빈 이라는 남자의 전여친과 관련 된 글이 하나라도 있을까 싶어 글을 하나하나 읽어보다가 눈에 들어 온 것. 두 달 전에 올라온 에스크. '해라' 라는 말과 함께 올려져 있었다. 이 새끼 좀 시크하네, 하며 뭔가에 홀린 듯 김한빈이라는 남자의 에스크에 들어갔다. 얼른 그녀의 카톡 답장이 오길 바라며. 뿌요 님 일이세개 님 항상 감사합니다!♡ 제가 글재주가 정말 없는데도 불구하고 재밌게 읽어주셨다는 분들, 또 글 잘 쓴다고 칭찬해주시는 분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달고 구독료 받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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