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열 빙의글]
달아요
written by.허니찬
[자기야]
[ㅠㅠ나 좀 늦을 것 같은데ㅜㅜ]
[벌써 나왔어?]
[T^T찬열아 자기야]
카톡을 보내놓고 미친듯이 버스정류장으로 뛰었다. 아직 카톡을 보지 못했는지 핸드폰은 울릴 생각조차 하질 않고 있었고, 덩달이 이 놈의 버스마저 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살을 에는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손에 입김을 호오, 하고 불어댔다. 그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고 액정에는 '자기야♡'란 이름과 함께 카톡 미리보기 팝업창이 떴다.
[나도 차 좀 밀린다]
[다치지 말고 조심해서 와]
[사랑해ㅋㅋ]
나도 사랑해. 기분 좋은 떨림에 조금씩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사귄지 5년, 찬열이를 만난 건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였다. 공대, 예대가 모여서 환영회를 같이 열기로 한 덕분이었다. 자리를 섞어서 앉게 됐을 때 우연치않게 나는 찬열이의 옆 자리에 앉게 되었고 옆에서 조용히 날 챙겨주는 너와 친해졌었다. 술이 유독 약했던 날 대신해서 술을 마셔주느라 너는 그 다음 날 숙취로 무던히도 고생했었다. 신입생 환영회 직후, 과 동기들보다 찬열이와 밥을 먹고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이 유독 많아졌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정식 교제는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강 직후부터였지만.
*
[ㅠㅠ목도리 하고 왔지?]
[힝.. 버스가 안 와T-T]
[뭐야ㅡㅡㅋㅋ]
[버스 못됐네]
[왜 안 와서 너 기다리게 하냐]
카톡을 받음과 동시에 20분을 넘게 오지 않던 버스에 올라탔다. 이미 손은 얼대로 얼어서 빨개졌고 코끝이 찡한 추위에 눈물이 다 날 정도였다. 도착했다는 카톡 알람이 울렸다. 물론, 천천히 조심해서 오라는 말도 잊지 않고. 하여튼, 이래서 내가 널 좋아한다니까 박찬열. 창가 자리에 앉아 또다시 쿡쿡거리며 웃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조용히 창 밖을 내다봤다.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전화로 고백한다던 너. 수줍게 OO아, 좋아해. 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늘 자상하게 날 챙겨주는 모습에 사귀기 전부터 우리는 캠퍼스 내 커플로 일찍 소문이 퍼져있던 상태였다. 건축가인 아버지를 따라 건축학을 전공하던 너는 틈만 나면 나중에 이런 예쁜 집에서 살자. 하는 말을 버릇처럼 하곤 했었다. 항상 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네가 나는 참 좋았다.
*
"으, 아. 추워."
"찬열아!"
"왔어?"
"많이 기다렸지. 미안해."
입까지 꽁꽁 얼어 울상이 된 채로 카페로 들어섰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찬열이가 단번에 눈에 들어와 걸음을 재촉했다. 차가 너무 안 와서. 미안해, 미안. 말을 하고 웃으며 바로 옆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목도리를 풀어 차근차근 접어두는 나를 보는 찬열이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었는지 미간을 좁히는 그. 항상 화가 나거나 기분이 나쁘면 표정에서부터 바로 드러나는 너이기에 잔뜩 긴장했다. 혹시 늦게 와서 기분 상했나?
"찬열아."
"왜."
"자기야."
"왜."
"화났어?"
정말 늦게 왔다고 화가 난 건가.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늦긴 했지만 이런 일로 화낼 사람은 아닌데. 괜히 주눅이 들었다. 뭐 마실래.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앞에 놓인 레몬티만 홀짝거리고 마시고 있을 때 아래 쪽을 쳐다보며 인상을 잔뜩 찌푸리는 찬열이.
"자기야, 미안해. 응?"
"뭐가."
"왜 화났어…. 응?"
손에 들고있던 핸드폰을 내려놓은 찬열이가 한숨을 쉰다. 고개를 흔들더니 억지로 안 좋은 표정을 감추려 애쓴다. 아메리카노를 조금 들이키곤 또다시 아래쪽을 쳐다보는 그의 시선은.
"치마."
"…응?"
"OOO, 너 치마."
찬열이의 말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
"그러니까 누가 그런 거 입고 다니랬어?"
"아니, 나는…."
"여자가 몸 차면 된다고 했어, 안 된다고 했어."
겁을 주려는 듯 나를 다그치려는 찬열이 때문에 또다시 기분 좋은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가 화난 이유는 약속 시간에 늦어서가 아니라 예쁘게 보이려 입었던 스커트에 있었던 거였다. 유독 내가 짧은 옷을 입는 날이면 싫다는 듯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 그가 귀여웠다. 수정이가 예쁘다고 해서 샀던 건데. 이게 안 예쁜가?
"이거 네가 예쁘다고 그랬잖아."
"그건 그거고."
이씨, 그게 뭐야. 뾰루퉁한 얼굴로 흘겨보자 뭐, 뭐. 덩달아 인상을 구기는 찬열이.
"딴 남자들이 쳐다보잖아."
"으응?"
"너무 예뻐서, 딴 남자들이 쳐다보잖아."
아, 이 박불출. 내가 너 때문에 못 살아.
*
"치마 입지마, 다음부터."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입었단 말이야. 아. 왜에."
"안 입어도 예뻐."
내 입술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췄다 떼는 그.
"달다."
"…."
"OO아."
조심스럽게 내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에 창가로 돌렸던 시선을 다시 네게 고정한다.
"우리."
"결혼 할까."
기분 좋은 두근거림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찬열아, would you merry me?
* 부족하지만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덤으로 앞으로 예쁘게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