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열 빙의글]
달아요 part 2
written by.허니찬
"아, 어디 가는데. 응?"
"좀 기다려. 애도 아니고 자꾸 보채네. 우리 애기."
"씁. 또 애기래."
귀여운 걸 어떡하라고. 말끔하게 블랙 수트를 차려입고 운전대를 잡은 찬열이가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주한 그의 얼굴이 유독 헬쓱하게 보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게 된 그와 대학원에 진학한 나는 각자 일에 치여 서로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도 전엔 출출할 때 먹을 간식이며 바리바리 싸들고 데이트도 잘 다녔었는데 내 일에 바빠 정작 그와의 관계에 소원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데이트는 커녕 요샌 카톡이나 문자, 잠들기 전 나누는 전화 통화가 전부니까. 걱정스런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운전에만 집중하는 그.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 거야?"
"어…. 뭐, 그냥. 대충."
"대충? 아, 박찬열. 진짜 누굴 닮아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우리 아버지?"
얼마 전에 마무리 작업 끝났다는 주택 있잖아. 그것 때문에. 엉성한 변명을 늘어놓던 찬열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흘겼다. 그렇게 밥 잘 챙겨 먹으라고 해도. 꼭. 진짜 말도 어지간히 안 듣지. 창가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가 가방 안 파우치에서 비타민제를 두 알 꺼냈다.
"자기야. 아해 봐."
"아."
너 하나, 나 하나. 우리가 함께한 시간 8년, 입 안에서 녹아내리는 오렌지향이 네 마음처럼 달큰하게 느껴졌다.
*
"여기 어디야?"
"……."
"찬열아. 여기 왜 왔는데. 응?"
서울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집 앞. 깔끔한 화이트톤, 집으로 들어서는 정원엔 꽃이 한 가득 피어있었고 정원에 꼭 어울리는 모던 브라운 계열의 흔들그네. 작고 귀여운 우체통. 넋이 나간 채로 울타리 앞 쪽에서 집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차 트렁크에서 연신 무언갈 꺼내는 듯 하던 찬열이가 성큼성큼 내 곁으로 다가온다. 미쳐 그의 손에 들려있던 꽃다발을 보진 못하고 그의 손에 이끌려 정원으로 들어서고 말았다. 집 주인이라도 오면 어쩌나 싶어 황급히 나가려는데 내 손을 다시 붙잡는 찬열이의 악력에 한 번 놀라고, 찬열이의 말에 두 번 놀라 눈을 꿈뻑거렸다.
"여기 우리 집이야."
"으응?"
"나중에 이런 예쁜 집에서 살자고 했잖아."
"……."
"나 지금 너한테 청혼하는 거야."
"…찬열아."
나랑, 결혼해 줘.
*
"예찬아."
"엄마 핸드폰 만지는 거 아니라고 했지. 이리 줘."
"박예찬. 혼난다?"
새로 맡은 프로젝트로 인해 새벽 같이 출근하는 찬열을 배웅하고, 아침 일찍 일어난 예찬과 씨름 중이다. 이제 돌이 지나 16개월에 접어드는 예찬은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집 어질러놓기가 일과였다. 제 아빠 찬열이 출근할 때즈음 깨서 신나게 놀다가도 징징거리는 것 또한. 말귀는 전부 알아 듣지만 아직 말문이 트이지 못한 탓에 예찬의 모든 의사표현은 옹알이가 전부다. 한창 궁금할 것도 많고 이것 저것 만지고 싶은 것도 많을 때인 예찬은 틈만 나면 엄마의 핸드폰을 집어 꾹꾹 눌러보기가 취미인 셈이였다.
"아, 예찬아. 이리 주세요. 엄마 주세요."
"박예찬. 예찬아."
당최 누굴 닮아 이렇게 고집이 센지. 가방에서 핸드폰을 끄집어낸 예찬이 능숙하게 홀드를 해제하고 이것 저것 누르고 있었고, 재빠르게 그걸 발견한 OO는 예찬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내려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이거 엄마 거잖아. 예찬아. 응? 이리 주세요. 오늘 안에 아이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들 수 있을지 한숨을 푹푹 쉬던 찰나. 수화기 너머에선 찬열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거 입에 무는 거 아니라고 했지. 박예찬."
-여보세요?
"지지. 엄마 주세요, 얼른!"
-여보세요. 여보, 예찬아.
"아, 박예찬. 누가 지 아빠 아들 아니랄까 봐 진짜 말 안 들어. 정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린 OO의 잔소리에 찬열의 목소리는 묻히고 말았지만,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도면을 보는 찬열이 말없이 웃으면서 전화를 끊는다. 바탕화면에 자리한 예찬과 OO의 사진을 보던 찬열이 액정화면에 입을 맞췄다 떼었다.
[일찍 갈게. 사랑해.]
문자 한 통을 보내놓고 다시 설계도면으로 시선을 옮기는 찬열이다.
*
"예찬아. 아빠 왔다."
최근 들어 부쩍 힘들어하는 그녀를 알기에 야근도 마다하고 일찍 귀가한 찬열의 양 손에는 예찬의 장난감과 과일이 든 봉투에 들려있었다. 현관으로 들어서려는데 불이란 불이 죄다 꺼져있었다. 어디 갔지? 보조등을 켜고 식탁 위에 조심스럽게 봉투를 내려놓은 찬열이 안방 문을 빼꼼히 열자 혼자 옹알거리며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예찬과 아이의 곁에서 곤히 잠이 든 OO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빠빠."
'아빠'라는 소리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빠빠라고 하는 예찬이 벌떡 일어서 자신에게 다가오자 환하게 웃으며 아이를 안아주는 찬열. 소문날 정도로 애처가에 아들 바보 소리를 듣는 찬열이었다. 예찬이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침대를 썼지만 예찬이 태어나고나서 아이가 잘 때 위험하다 싶어 침대를 뒷 베란다로 옮겨둘 정도로.
"아빠 닮은 박예찬. 쉿."
"엄마 잔다. 예찬아. 그치."
자켓을 벗어두고 와이셔츠 차림으로 예찬을 거실로 데리고나온 찬열이 조심스럽게 문을 닫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인다.
잘 자요, 내 사랑.
* 늦어서 죄송해요ㅠ.ㅠ 허겁지겁 쓴다고 글이 진짜 너무 비루한데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이상 달아요의 번외는 없어요. 이 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원하셔서 쓰기는 했는데 저 자신은 사실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도 가정적인 남자 박찬열, 어울리지 않나요...♡ 무튼 재밌게 읽어주시고 좋아해주셔서 감사해요!
* ♡아이스크림님, 삐뽀삐뽀님, 코딱지님, 린현님♡ 감사합니다. 암호닉은 언제나 신청 받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