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날이 덜 풀려서 그런지 운동장의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다. 손에 든 핫팩을 조금 더 꽉 쥐곤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마다의 무리를 이뤄서 시끄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모두 검은 정장을 입고 있다. 그 틈에서 나도 검은 정장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설렜다. 신입 경호원이야, 내가! 기분 좋은 미소가 입가에 걸리고, 바람에 질끈 올려 묶은 머리가 살랑였다. 떠드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아는 얼굴을 찾기 위해 분주히 눈을 움직였다.
" …김한빈은 어디 있지. "
설마 늦잠 자는 건가. 툭 하면 늦잠이야, 이 잠보! 이쯤 되니 나올 때 전화라도 한 번 해볼 걸,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유일하게 같은 지역에서부터 함께 이 곳까지 오게 된 한빈의 얼굴을 못 본 건가 싶어서 주위를 한 번 더 둘러보았지만 그 특이한 얼굴은 보이질 않았다.
왼쪽부터 한 명 한 명 얼굴을 확인하곤 천천히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릴 때 즈음, 나와 같은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하나가 내 옆에 섰다. 덕분에 눈 앞을 누가 벽으로 막은 것처럼 내 시야가 막혔다. 어… 하는 바보 같은 소리와 함께 누굴까 하는 궁금증에 천천히 그의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하얀 얼굴. 짙은 눈매. 그리고 귓가에 달린 검은 피어싱 하나. 아무런 표정 없이 앞만 응시하던 그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았고, 그를 관찰하던 나는 그와 눈이 딱 마주쳐 버렸다.
" …뭘 봐. "
짧은 그의 말에 순간 당황해서 아, 아니, 아니에요, 하는 바보 같은 소리를 뱉으며 고개를 앞으로 확 돌렸다. 그리고는 손에 쥔 핫팩을 조금 더 꽉 쥐었다. 그는 참 표정이 없었다. 어떤 표정인지 전혀 읽을 수가 없는 얼굴로 무심하게 뭘 봐, 하는 그가 무서워서 순간적으로 잔뜩 겁을 먹어버렸다. 왠지 그가 내 옆에 선 뒤로 주위 공기가 더 차가운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 ……. "
참 이상한 일이었다. 뭘 보냐며 내 시선을 돌리게 만들었던 그는 선배가 우리를 모두 집합시킬 때까지 내 옆모습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다시 눈을 맞출 용기가 나지 않아서 내 시선은 꼿꼿하게 앞만 향했다.
그렇게 나는 꽤 오랜 시간을 가만히 서서 그의 시선을 받고 있었고 그는 한참을 날 바라보며 관찰했다.
" 남녀 성별 상관 없이 옆에 선 사람과, 두 명이 한 조를 이뤄서 연습을 시작할 거다. 본격적인 연습은 내일부터 진행될 거고, 오늘 훈련은 신입들끼리 얼굴도 익히고 조원이랑 팀웍도 다지기 위해 간단히 게임 형식으로 진행한다. "
선배의 말에 들고 있던 핫팩을 손에서 떨어트렸다. 네? 하고 바보 같이 되묻는 건 그 많은 신입들 중에 나밖에 없었다. 선배의 시선과 운동장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내게 닿아오자 그제야 정신이 들어 고개를 몇 번이나 세차게 저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멍한 표정으로 겨우 아니라고 대답을 뱉곤 땅에 떨어트린 핫팩을 주워서 손으로 살살 털었다. 얼빠진 내 얼굴을 본 선배가 피식 웃곤 말을 이어갔다.
분명 저 뒷말도 중요할 테지만 지금 내겐 그런 말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옆에 선 사람이랑 같은 조…. 선배의 말을 곱씹으며 옆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아까 마주했던 그 무서운 얼굴의 옆모습이 보였다. 나 설마 저 사람이랑 같은 조야…?
"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지금부터 조원 중 한 명은 클라이언트가 되고, 나머지 한 명은 전담 경호원이 된다. 너희들의 임무는 이 운동장을 벗어나 xx동에 있는 본사 건물까지 너희들의 클라이언트를 무사히 모시고 오는 것이다. 방해 세력은 많다. 치한이 되었든, 납치가 되었든, 아마 너희 선배들이 신이 나서 준비하고 있을 거다. 방해 세력과 클라이언트가 두 번 이상 접촉할 시엔 아웃이 된다. "
클라이언트…. 경호원…. 한빈이와 같은 조였다면 분명 재미있게 듣고 있었을 게임의 룰이지만 왠지 모르게 내 머리엔 근심이 가득했다. 씨이. 이럴 때 김한빈은 왜 지각을 해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한빈이가 있는 쪽을 향해 시선을 옮겼더니 저 멀리,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리 서있는 한빈이가 내 시선을 보곤 두 손을 모아 미안하다는 듯 빌어온다.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가 또 다시 내 옆의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는데, 내 시선을 느낀 건지 그도 나를 바라보았다. 또 뭘 보냐며 눈으로 물어오는 듯한 그 시선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혹시…. "
" ……. "
" 그럼… 저랑 그 쪽이랑 같은 조에요…? "
망설이다 묻는 내 목소리가 떨려서 나도 모르게 아랫 입술을 깨물자 그가 대답 없이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와 잠깐 눈을 맞춘 그의 시선이 이동한 곳은 내 입술이었다. 꾹 깨문 내 입술을 바라보던 그가 피, 하고 짧게 말했다. 피…? 무슨 말인가 싶어서 깨물었던 입술을 떼자 비릿한 피맛이 느껴진다. 아. 피 난다구…. 입술을 혀로 한 번 핥아내곤 그를 올려다보자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얇은 팔찌를 내 쪽으로 던졌다.
반사적으로 그 팔찌를 손으로 받았다. 이게 무슨…. 뭐에요? 하는 내 질문에 그가 짧게 답했다.
" 클라이언트 팔찌. "
" …근데 이걸 왜 절 줘요? "
" 네가 클라이언트 해. "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는 자연스럽게 제 다른 손에 쥐어져 있던 경호원임을 알리는 팔찌를 착용했다. 아무래도 게임을 하는 동안 서로의 역할을 나타내주는 팔찌인 듯 싶었다. 아까 멍하니 저 사람 바라보느라 못 들었나 봐…. 잠깐 생각에 빠진 채로 주섬주섬 팔찌를 착용하려다가, 그제야 문득 정신이 들어 팔찌를 끼던 손을 멈추곤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 자, 잠깐만요. 제가 클라이언트 해요? 왜요? "
" 다쳤잖아. "
" 다쳐요? "
" 입술. "
설마 꾹 깨문 거 때문에 피난 거 가지고 그러는 건가? 다친 사람이 클라이언트야? 왜? 말도 안 되는 그의 말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젓곤 그를 향해 클라이언트 팔찌를 내밀었다. 싫어요. 저 경호원 할 거에요. 꽤나 단호하게 말하는 내 목소리가 흥미로운지 그가 조금은 풀어진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 네가? "
" 네. "
" 내가 널 지키는게 더 맞아 보이는데. "
"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아줘요. "
내 말에 그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꼭 내 얼굴을 뚫을 것만 같은 그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피했다가는 경호원 자리를 뺏길 것만 같아서 꾹 참곤 그를 올려다보았다. 명색이 경호원인데 다른 사람의 경호만 받고 있는 건 싫었다. 나도 엄연한 신입 경호원이라구요. 그 힘들고 어렵다는 시험 모조리 다 뚫고 들어온!
잠깐을 눈을 맞추고 있던 그는 갑작스럽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처음으로 보인 그의 표정에 순간 뭔가에 홀린듯 그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우리를 재촉하는 선배의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클라이언트랑 경호원 아직 못 정한 조는 빨리 정하도록. 꼭 나와 그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찔렸다. 실랑이를 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그를 올려다보던 시선을 잠깐 내려 그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바라보았다. 930331, 구준회.
" 저기요. 구준회 씨. "
" …뭐야.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
" 명찰 달고 있잖아요. "
" 아…. "
" 그 쪽도 경호원 하고 싶은 거죠? 시간도 없으니까 그냥 가위바위보로 정해요. 이긴 사람이 경호원. 진 사람은 클라이언트. "
내 말에 뭐라고 말하려던 그의 말을 선배의 큰 목소리가 덮었다. 다 정했나? 여기저기서 네, 하고 짧은 대답이 들려왔다. 주먹을 내민 채로 얼른요, 하고 그를 재촉하자 그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슬그머니 제 주먹을 내밀었다. 가위 바위 보! 내 목소리와 함께 그의 손과 내 손의 모양이 바뀌었다.
가위. 그리고 그의 주먹. 허탈한 표정으로 그의 주먹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그가 꽤나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씨이…. 결국 손에 쥐고 있던 클라이언트 팔찌는 내 몫이 되었구나. 시무룩한 표정으로 클라이언트 팔찌를 팔에 끼우는데 생각보다 혼자 채우기 힘든 모양새라 한 손으로 연결 부위를 잡고 자꾸만 헛손질을 했다. 도와달라고 말을 해볼까 싶어서 잠깐 고개를 들어 파트너를 바라보는데, 내 조원은, 아니 구준회는 나에겐 관심도 두지 않은 채로 앞만 바라보고 있다. 입술을 삐죽이며 결국 다시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저 사람은 혼자 잘 차던데….
" 팔. "
" …네? "
" 내밀어. "
갑작스럽게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자, 팔을 내밀어 보라던 그는 내가 팔을 내밀기도 전에 내 팔을 제쪽으로 당겼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내가 끙끙대며 채우고 있던 팔찌를 내 팔에 채웠다. 진작에 좀 채워주지…. 입술을 삐죽이며 고마워요, 했더니 그가 씩 웃으며 말해온다.
" 제 클라이언트인데 이 정도 쯤이야. "
무표정할 때와 씨익 웃는 건 사뭇 다른 느낌을 풍겨서 물끄러미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웃던 얼굴을 다시 굳힌 그가 뭘 봐, 하고 다시 물어왔다. 또 다시 시선을 피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 시선을 올곧게 받곤 머뭇거리던 입을 떼서 그를 불렀다. 저기요.
" 말 놓지 마요. "
" 뭐? "
" 저 이제 클라이언트잖아요. 당신 클라이언트. 말 놓지 말아요, 선배님들께 다 이를 거야. "
무례하게 군다고 다 이를 거에요. 내 말에 그가 살짝 인상을 쓰곤 날 내려다 보았다. 그 표정이 무서워서 또 몸을 살짝 움찔하며 머뭇거리다가 그의 시선을 피하자, 그가 잠깐의 침묵 끝에 피식 웃으며 답해 왔다. 그러죠, 뭐. 생각보다 날카롭지 않은 그의 목소리에 약간은 안도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그를 올려다 보았다.
" 그리고 너. "
" …너? "
" 930331, 구준회. "
" ……. "
갑작스럽게 내 입에서 나온 '너'라는 소리에 구준회의 표정이 다시 한 번 굳어졌다. 어, 지금 그의 눈빛이 말하는 걸 적어보자면 '쪼그만게 어디서 오빠 이름을 함부로 불러.' 였다. 그런 그를 향해 내 가슴팍에 달려있던 명찰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아침에 정신이 없는 탓에 뒤집어 달고 온 명찰을 바로 돌려 구준회의 눈앞으로 내밀었다.
" 보여? 91****. "
" ……. "
" 내가 너보다 누나야. 말 놓지 마."
* * *
게임은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애초에 게임을 시작했던 목적과는 다르게, 이 게임은 정말 잔인했다. 선배들은 그 동안 지내기 힘드셨던 건지 자꾸 여기저기서 우리를 잡아먹기 위해 몸을 날렸다. 흡사 추격전을 벌이는 것만 같았다. 클라이언트고 경호원이고 할 것 없이 두 명이 한 팀이 되어서 선배들에게서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하지만 어떻게 안 건지 선배들은 속속히 숨은 우리를 찾아냈다. 덕분에 총 두 번의 기회 중에서 이미 한 번의 기회는 날려버렸다. 한 번만 더 선배에게 닿았다간 아웃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 그런지 구준회의 표정이 더 날카로워졌다. 겨우 구해낸 차 안에 몸을 싣고 차를 잠그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 이게 뭐야…. "
" ……. "
" 힘들어 죽겠어…. "
달려온 탓에 가쁜 숨을 내쉬고 옆 운전석에 앉은 그를 바라보자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던 그의 앞머리가 땀에 잔뜩 젖어 엉망으로 이마에 붙어 있다. 대충 손으로 땀을 닦아내는 구준회를 힐끔, 바라보다 주머니에 있던 손수건을 그를 향해 내밀었다.
" 이걸로 닦아요. "
" …감사합니다. "
거절할 줄로만 알았던 그는 내 손수건을 받아 제 이마를 닦았다. 그 모습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그가 오른쪽 이마와는 다르게 왼쪽 이마를 닦으며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뭐지…? 그를 바라보며 관찰해보니 왼쪽 이마의 땀은 닦는둥 마는둥 하던 구준회가 내게 손수건을 다시 내밀었다.
" 다쳤어요? "
내 질문에 구준회가 아닙니다, 하는 짧은 답과 함께 손수건을 재차 내밀어 왔다. 그런 그의 손에서 손수건을 받아 주머니에 대충 넣곤 그를 향해 몸을 살짝 기울였다. 어디 봐요. 다친 거 아녜요? 가까이 다가오는 내 행동에 잠깐 몸을 움찔한 구준회가 나를 밀어냈다. 괜찮습니다.
괜찮긴 뭘 괜찮아요. 어디 봐요. 그의 왼쪽 이마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그의 팔을 잡곤 그를 살짝 당기려는데, 내 팔이 닿자마자 그가 살짝 굳는게 느껴진다. 뭐야. 왜 이렇게 긴장을 해…. 잡은 팔을 당겨 그의 이마를 덮고 있던 머리카락을 살짝 걷어내자 이마 한켠이 살짝 찢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 다쳤잖아요. 왜 말 안 했어요! "
" 말 한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
" 그래도 말은 했어야죠. 피 말라서 여기 다 붙은 거 봐요. 언제 다친 거야…. "
괜히 속상한 마음에 인상을 쓰곤 상처를 바라보자 그가 갑작스럽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뭘 그렇게 풀이 죽은 강아지처럼 보십니까. 그의 말에도 상처만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조금 전 두 번의 기회 중 한 번의 기회를 날릴 때 나를 안고 쓰러진 그가 어딘가에 부딫힌 모습이 스치듯 눈 앞에 떠올랐다. 아까 나 구하다가 다친 거구나. 나 때문이라는 생각에 더 시무룩한 얼굴로 그 상처쪽으로 손을 뻗어 손가락을 가져다대자, 그가 아픈지 인상을 팍 써온다.
" 아프죠. 어떡하지…. "
"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벨트 하세요. 본사까지 얼마 안 걸릴 겁니다. "
" 그래도…. "
끝을 흐리며 대답하던 내가 아, 잠깐만요, 하고 주머니를 뒤지자 그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분명 손수건이랑 함께 몇 개 넣어둔 것 같은데…. 어릴적부터 잘 넘어지던 탓에 습관처럼 챙겨 나오던 밴드를 찾아 한참을 주머니를 뒤지다가 겨우 하나 발견했다. 나 이거 있어요! 실실 웃으며 그를 향해 밴드를 내밀었더니 그가 참 나,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밴드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밴드의 포장을 벗겨 제 이마에 조심스럽게 가져갔다.
…밴드도 혼자 못 붙이나. 자꾸만 이상한 곳에 밴드를 붙이려는 그를 바라보다 답답한 마음에 결국 그의 손에서 밴드를 뺏어들었다. 이리 와 봐요. 그의 팔을 다시 한 번 당겨 내 쪽으로 몸을 틀도록 한 뒤에 그의 상처 위로 밴드를 붙였다.
" 이걸론 안 될 것 같지만 일단은 이…. "
밴드를 붙이느라 너무 가까이 갔나 보다.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서 보이는 구준회의 눈에 순간 몸이 굳은 듯 그 눈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깊은 눈동자였다. 잠깐을 아무런 말 없이 그의 눈을 바라보는데 이상하게도 심장이 조금 빨리 뛰는 것 같이 느껴졌다. …뭐야, 지금. 생소한 느낌에 놀라 얼른 구준회에게서 몸을 떨어트렸다. 그리고는 입술을 꾹 다물곤 손을 더듬어 안전벨트를 했다.
" …출발하겠습니다. "
나를 잠깐 바라보던 구준회 또한 정신을 차린 건지 제 안전벨트를 착용하며 중얼거렸다.
* * *
본사에 도착하면 그걸로 끝일 줄로만 알았던 이 말도 안 되는 추격전은 끝이 아니었다. 본사 7층에 도착해야 성공이라는 말과 함께, 본사에 도착하자 밖에서 마주친 것보다 더 많은 선배들이 기다린 듯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꼭 좀비에게 쫓기는 기분인 것만 같았다. 선배를 피해, 구준회의 손길에 이끌려 본사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이쪽으로 가려다가 선배를 발견하곤 계단을 오르고, 저쪽으로 가려다가 선배를 발견하곤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가고.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서 더이상 못 뛸것 같았다. 달리며 내 팔을 꽉 잡고 있는 구준회의 손등을 팔을 툭툭 치자 달리던 걸 멈추고 구준회가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 잠, 잠깐만…. "
" 하, 왜 멈추십니까. 이러다 잡힙니다. "
" 조금만 쉬어요. 네? 조금, 조금만, 흐으…. "
목이 따끔거리고 온몸이 아파왔다. 이러다 내일 연습이고 뭐고 죽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다행히도 당장 쫓아오는 선배는 없는 듯 고요한 복도를 바라보며 구준회와 나란히 숨을 골랐다. 아, 진짜, 너무, 힘든데…. 뭐라고 말을 할 힘도 없어서 가쁜 숨만 내쉬며 고개를 돌리는데, 반대 쪽에서 이쪽을 바라보던 선배 한 명과 눈이 딱 마주쳐 버렸다. 아뿔싸.
" 망했다. "
" 네? "
" 이리 와요. 빨리! "
눈이 마주치자 마자 이쪽을 향해 달려오려는 듯 양쪽 복도가 연결된 통로로 향하는 선배를 보며 구준회의 팔을 잽싸게 잡았다. 이리 와요. 얼른! 갑작스럽게 다급해진 내 모습에 뭡니까, 하고 물어오는 구준회의 손목을 잡곤 그를 이끌었다. 그리고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방 하나로 몸을 숨겼다. 방 안 구조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문이 열려진 캐비넷을 발견했다.
" 저 안으로 들어가요. "
" 갑자기 저기는 왜 들어가자고 하시는 겁니까. "
" 선배랑 눈 마주쳤어요. 빨리요! "
대답과 함께 그를 캐비넷 안으로 밀어넣곤 나도 조심스럽게 그 안으로 몸을 넣었다. 그리고 안에서 문을 당겨 캐비넷을 닫았다. 달칵, 소리와 함께 캐비넷이 닫히자 그제서야 몸을 숨겼다는 조금의 안도감이 밀려왔다. 선배 쫓아오는 거 같던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구준회를 향해 말을 꺼내는데, 선배가 아닌 또 다른 고비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캐비넷은 생각보다 작고 좁은 곳이었다. 키가 큰 구준회에겐 너무 작은 곳이라 구준회는 고개를 약간 비스듬히 숙이게 되었고 둘이 들어가기엔 좁은 공간이라 (둘 뿐만 아니라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긴 하다.) 구준회와 나는 정말 10cm 남짓한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보게 되었다. 정말 작은 움직임이 아니고서는 팔을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아까 밴드를 붙여줄 때처럼 가까워진 구준회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조금 넓어진 시야에 구준회의 눈, 땀이 가득 맺힌 코, 그리고 입까지 보이자 조금은 진정되었던 심장 박동이 다시금 빨라지는 느낌이 또 들었다. 왜 이러는 거야, 대체…. 혼란스러운 느낌에 구준회의 시선을 피하는데 그는 이상하게도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 여기 있으신가, 우리 후배들. "
잠깐의 정적을 뒤로하고 방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안의 불이 켜지고, 아직 캐비넷 안에 우리가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선배가 방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으…. 걸리면 어떡하지. 불안한 마음에 구준회와 눈을 맞추니 구준회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아주 작게 속삭였다. 괜찮아. 또 반말이라는 생각에 발끈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괜히 모르게 그 말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 히끅. "
너무 편안해졌나 보다. 눈치 없는 내 몸은 하필이면 타이밍 좋게 딸꾹질을 내보냈다. 움직이던 선배의 발소리가 멈췄다. 겨우 숨을 참으며 딸꾹질을 함께 참아내는데 선배는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한 건지 어딜 간거야, 하고 중얼거리며 방문 쪽으로 걸음을 되돌렸다.
다행이다. 안 들켰나 봐. 안도하는 마음에 참았던 숨을 내뱉는데 다시 한 번 딸꾹질이 새어 나왔고, 방 밖으로 나가려던 선배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선배가 잠깐 그 자리에 멈춰섰다. 다시 한 번 더 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를 잡을 모양이었다. 밖에서 우리 조가 아닌 다른 조가 달리고 움직이는 소리 덕분에 방 안에는 조금의 소음이 허용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구준회가 또 다시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참아.
못 참겠어…. 안 참아지는 걸 어떡해! 고개를 살짝 저으며 눈으로 구준회에게 메세지를 담아 쏘아보냈다. 손으로 입을 막아보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안 나올 딸국질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손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건 구준회도 마찬가지였다.
난처한 얼굴로 구준회를 바라보는데 구준회가 소리 없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 바깥에서 들린 소리인가…. "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선배가 다시금 문 밖을 향해 한 걸음을 떼는 그 때.
나는 다시 딸국질이 나오려는 듯한 느낌에 몸이 떨렸고, 나도 모르게 눈을 꼭 감고 숨을 참았다. 제발. 제발 나오지 말아라…. 조금만. 그리고 내 바람과는 다르게 딸국질이 나오려던 그 때, 내 얼굴을 향해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에 의해 내 딸국질이 삼켜졌다.
구준회의 입술과 내 입술. 두 개의 입술이 닿았다. 내 입술을 삼킬 듯 덮쳐오는 구준회의 숨결에 눈을 질끈 감았다.
♡
![[IKON/구준회] 아가씨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10323/976cd83f277585cd30f60637b1e8ac90.png)
안녕! uriel입니다!
이번 편은 준회 버전 아가씨에요
정말 아가씨와 경호원이 아닌 신입 경호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탓에 아마 반존대의 매력은 좀 덜한 것 같아요..♡
내용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마지막엔 주네가 급해서 입으로 막은 거에요! 어.. 현실 불가능 하지만 뭐 어때요, 이건 글인데!!!!!!!!!!!!!!!!!!!!!! 어때요 망상 푸는 건데.. (음흉)
그래도 저는 제가 좋아하는 가끔 웃는, 겁 없는, 무모하지만 도전 정신 강한, 제가 좋아하는 듬직한 준회를 열심히 써본 것에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독방에서 아가씨 시즌 2는 어떤 멤버였으면 좋겠냐고 물었는데 한빈이와 준회가 많더라구요!
함빈이는 새내기를 연재하고 있으니, 이번 편의 주인공은 준회가 되었어요 ^♡^
즐겁게 읽으셨나요? 다른 편들은 댓글을 안 남겨 주셔도 좋지만 이번 글은 제 이쁜이들의 댓글도 추천도 많이 받고 싶어요 ㅠ_ㅠ 칭얼칭얼.. 구걸구걸..
딱 한 편 오는 글인데 준회의 아가씨도 많이들 읽으셨으면 하는 바람!
늘 독방에 소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저 워더해 주시고 (ㅎㅎㅎㅎ...사랑해요 여러분), 댓글 남겨주시고, 추천해 주시고,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새내기와 주네 올렸으니 여기까지! 내일 만나요♡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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