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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꽃 - 7
: 一 觸 卽 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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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계집이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숨이 끊어진 계집을 군사들과 신하들은 죽은 시체를 처리했고, 그 모습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나를 포함한 그 곳에 살아남은 계집들은 모두 다 속으로 경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일이 있음 직후, 왕은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고 계집들만 이 곳에 남았다. 이 곳은 우리가 기거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모두들 침묵에 빠진 방안, 게 중 제일 어려보이는 아이가 결국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더니 이내 엉엉 울음을 터트린다. 흐느끼는 소리가 제법 처량하게 방안에 울리자 다른 계집들도 한 둘 눈치를 보기 시작하더니 서러움의 눈물을 터트린다. 하지만, 꿋꿋하게 눈물을 보이지 않는 건 나와 저때 그 기생이었다. 여전히 붉은 입술을 한 채 사나운 눈빛으로 우는 사람들을 타박해대기 시작하는 기생. 왜 울어 울기는 왜 우냔 말이야! 그 기생의 말은 떨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하나 기생의 타박에 반기를 드는 자들은 없었다. 나는 멍한 시선을 허공에 옮겨, 내 목을 천천히 손을 들어 만졌다. 칼날, 그 매서운 칼날이 조금이라도 들어왔으면 난 아마 이 곳에 눈을 뜨고 있지 않았겠지라는 생각이 들자 또 다시 두려움이 나를 파고드는 듯 했다. 너는 왜 내게 살려달라고 하지 않는 것이지? 왕의 날카로운 말이 얇은 목소리를 타고 흘렀다. 실로 나는 죽음의 문턱을 경험했다. … 그 말이 아니었다면.
'너는 왜 살려달라고 하지 않는 것이지?'
'…그,그건….'
'말해보거라.어서.'
'그건 전하가 저를 죽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죽이지 않을 것이라 …. 제 침실로 향한 민석은 쉽사리 잠에 들지 않았다. 그는 손을 들어 제 손을 바라보았다. 칼을 잡았던 그 손으로 아직까지도 벌벌 떨리는 듯 했다. 야속한 수전증이었다. 민석은 바람에 여실히 흔들리고 있는 위태로운 등불을 바라보았다. 죽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계집의 말이 진득하게도 떠올랐다. 어째서 일까. 사람은, 자고로 사람은 죽음의 앞에 서면 두려움으로 이성을 잃기 마련이다. 그 계집도 그랬다. 허나, 그 아이는 뭐지? 묘하게도 그 말을 들은 후 부터 민석은 그 칼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는 그 시험을 끝내고 돌아가는 발걸음을 옮겼다. 죽이지 않을 것, 그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건 두려움이 아닌 제 말에 대한 확신. 비록 한순간이었으나, 민석은 그 아이에게서 다른 계집들과는 다른 것을 느꼈다. 그때, 새벽이 바람이 위태롭던 등불을 휙 꺼버린다. 어둠이 찾아왔다. …다른 것. 그 아이는 뭐지? 뭘까. 아무것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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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는 사람이 여기 또 한명 있었으니, 그건 바로 대낮부터 술상을 차리며 흥청망청 술을 마시던 김형도였다. 그는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한 듯 이리저리 잠을 뒤척였다. 근심걱정 가득한 얼굴의 위로는 수심같은 주름이 잔뜩 주름져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공을 바라보며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흐으음. 난을 일으키겠다라, 과연 실로 대단한 선비가 틀림없구나. 어찌하여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인지 김형도는 제법 많이 길러진 수염을 매만지며 생각에 젖어들었다. 직접 반역자가 되겠다며 자신에게 말하는 준면의 모습은 짐짓 결연했다. 그래서 김형도는 그런 그에게 왜 라는 물음도 차마 남길 수 없었다. 준면은 제 완고한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실로 그 운명이 있기는 한 것입니까, 스승님.'
"……."
어리석구나 어리석어. 또 다시 찬열의 말이 떠오르다니 말이야. 나도 이제 제법 많이 늙었나 보네. 찬열의 말이 또 다시 떠오르자 그는 애써 그 생각을 지우며 제 자신을 탓했다. 운명. 운명은 없다, 숱한 경험과 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느낀 것이지만 운명은 없었다. 그날도, 지금도. 허나 김형도는 무언가가 마음에 걸리는 듯 여전히 굳은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마당으로 향해 문득 고개를 올려 새벽의 달빛을 바라보았다. …내 제자야. 내 어리석음으로 인해, 네 정인을 잃은 것이냐.
살고자하는 욕심때문에 내가 너의 정인을 잃게 만들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너의 노여움을 풀 수 있겠느냐.
"……."
나 역시 그 반역자의 편에 들어, 너의 정인을 지키는 것이 옳은 방법인 것이냐.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해는 여전히 차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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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민석종대경수찬열준면] 봄날의 꽃 - 7 : 一 觸 卽 發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22523/65e7b8f8116e2d5dd20181a478b364f2.gif)
![[EXO/민석종대경수찬열준면] 봄날의 꽃 - 7 : 一 觸 卽 發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22523/778260e189ca1c95f7266157593d8f9c.jpg)
"……."
"……."
왕은 하루를 멀다하고 계집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와 아무말 없이 앉아 있곤 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이것도 왕이 제안한 시험의 일종인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는 왕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있을 시간은 더더욱 촉박해졌다. 하지만 우리들은 알고 있었다. 이 상황은 어쩌면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는 것을. 왕의 의자위 자리를 잡고 앉은 왕은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 鬼라도 보는 것일까? 하는 마음에 나는 왕을 바라보려 고개를 들었으나, 이내 왕과 눈이 마주쳐 버리자 티나게 시선을 외면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이윽고 누군가의 걸음과 익숙한 향기가 내앞에 풍겨온다. 왕이었다. 왕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는 채, 그렇게 나를 바라보았다. …왕의 침묵이 이렇게 무거운 정적을 가져올 줄이야. 그런 그때, 방의 문이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무거운 칼을 허리춤에 찬 채, 소수의 군사들의 인사를 받은 한 사내가 왕의 옆으로 들어와 꾸벅 인사를 해댄다. 전하. 이곳에 너무 오래있으시면 아니됩…. 곧, 꽤나 익숙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와 나는 고개를 돌렸다.
"……."
"……."
![[EXO/민석종대경수찬열준면] 봄날의 꽃 - 7 : 一 觸 卽 發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22523/dfa49b318b7cd5747c51e96f7c45cd10.jpg)
'저 여인을 가지겠소.'
사내 치고는 계집같은 풍성한 속눈썹과 꽤나 다부진 얼굴 그 모든 것들이 그날 저잣거리에서의 일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었다. 사내를 마주하자, 사내 역시 말을 하다 말고 멈춰서 나를 바라보았고, 이내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뜬 채 사내의 두 눈은 눈시울이 가득 붉게 물들여진다. 짧은 만남이었으나, 어찌나 반가운지. 하지만 나는 혹여나 이 모습을 왕이 볼까 싶어 서둘러 고개를 돌려 사내를 외면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그리고 그때 왕의 뒤에서 왕을 보필하고 있던 궁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전하…!
"……!"
또 다시 향기가 풍겨왔다. 이번에는 더욱 가까이.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렸을땐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왕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왕이 내게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나를 가까이 하고 있었다. 바라보는 눈빛 하나 여전히 텅 비었는데도, 나는 깜짝 놀라 말문이 턱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상태로 뒷걸음질 치려 했으나 그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어 다리에 쥐가 나버려 나는 그 상태 그대로 다시 주저앉아 버렸다. 전하 지금 이게 …. 궁녀가 말리려 다가왔으나, 왕은 꼿꼿이 그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손을 뻗어 내 손을 제 손으로 덮었다. 이내 내 손을 들어 보이며, 이리저리 손을 움직였다. 경직 된 얼굴로 사내를 바라보자 사내 역시 당황스러운 듯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혹시 그림을 그릴 줄 아는 것이냐."
"…그,그걸 어떻게…."
그림을 그릴 줄 아는 것이냐며 내게 묻는 왕은 확신에 차있었다.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왕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번졌다. 재밌는 계집이로구나. 나는 본능 적으로 내 두손을 등 뒤로 숨기며 두려운 표정으로 왕을 바라보았고 왕의 미소는 곧 사라졌다.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림을 그려라. 지금 내 앞에서. 왕의 뜻밖에 말에 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림, 말씀이십니까. 그림이라면 화원을 찾아가는 것이…. 그러던 와중 사내가 조금은 당황한 목소리로 왕에게 말했다. 하지만 왕의 뜻은 완고했다.
"가무에 재능이 있던 계집은 장소를 막론하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또, 서예에 재능이 있던 한 기생 역시 ."
"……."
"이건 내 명령이다. 그림에 필요한 것은 내 모두 줄테니…."
"싫습니다."
"……."
"하지 않을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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