뇽토리 회고록
w. 여신 / 로망스
눈엣가시. 그래, 처음엔 눈엣가시였다. 누구는 병신이라서 육년동안 연습만 한 줄 아나.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고작 열여섯의 사내아이는 날카롭던 내 신경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주제에 기고만장한 자신감도 싫었고, 쓴소리를 들을때마저 아무렇지도 않는 표정으로 인정하는 얼굴도 영 재수없었다. 무엇보다 제법 오래 보고, 내가 꽤나 이뻐하던 현승이의 탈락이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고 말았다. 막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틈만나면 뒷청소를 시키고, 힘든 허드렛일은 모두 녀석에게 맡겨졌다. 멤버들도 초반엔 이승현을 예뻐하는 편은 아니였기에, 도와주는쪽 보다는 방관하는쪽이 맞았다. 그 시절 이승현은 나 때문에, 방관하는 멤버들 때문에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녀석의 그 지독하도록 넘쳐 흐르는 자신감과, 자신에 대한 사랑이 지금 돌이켜보면 다행스럽다- 고 치부할 정도로 나의 태도는 심각했다. 곱게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였기에 나는 이승현이 조금만 잘못해도 크게 혼내곤 했다. 색안경을 쓰고 보니, 무슨 일이던 예뻐보일 수 없는 터. 하지만 그런 세지 못할 수 많은 갈굼과 비난속에서도 이승현은 꿋꿋하게 웃으며 더욱 성장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더 맘에 들지 않았다. 기고만장한 자신감 좀 꺽어보려던 태도였는데, 되려 이승현은 더 잘나고 더 자신만만해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셀 수 없는 꾸지람과, 욕을 듣고서도 생글생글 죄송합니다, 더 잘하겠습니다를 신나게도 외쳐대던 이승현이 뒤에서 서럽게 우는 모습과 마주하게 되었던 적이 있었다. 지방에 계신 아버지와의 통화를 하며, 모두들 너무 잘 해준다고 이승현 다운 허세를 부리며 눈물을 꾸역꾸역 참더니 전화가 끊기자마자 벽에 등을 마주대고는 숨죽여 끄억끄억 우는 모습이였다. 당시 여자친구와 약속으로 재촉했던 발걸음이,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인간미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새끼라고 생각했던게 오산이였다. 어린 나보다 이승현은 두살이나 여린 녀석이였고, 늘 혼자였다. 지방에서 큰 꿈을 품고 올라와 꾸역꾸역 그 꿈을 이루고 있는, 장애물과 시련이 너무나도 많은 열일곱이였다. 그날 괜찮다는 녀석의 손을 붙잡고 무작정 근처 고기집으로 향했다. 저를 못살게구는 무서운 형의 급작스런 친절때문인지, 녀석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내 눈치를 보기 급급했다. 툭툭 던지는 말에도 과민반응을 하며 웃는 얼굴에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그때부터 부러 녀석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내가 바뀌자 주위 사람들도 덩달아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모두들 나의 눈치를 보고 있던 것 같았다. 내가 지독스럽게도 녀석을 미워하니, 모두 별 수 없던 거겠지. 잘 웃고, 자신감 넘치고, 모든 열심히 하는 귀여운 막내가 미워보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녀석을 미워하고 괴롭혔던 일들이 무색하게도 이승현과 나는 급속도로 붙어다녔다. 장난을 걸때마다 표정이 변하면서 주늑드는 얼굴도 귀여웠고, 제법 상처 받을 법한 시비에도 웃음을 달고 태연스레 맞받아치는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분명 전과 다를 게 없는 이승현이였는데, 이상하게도 다 예뻐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바뀐 건 내쪽이였다.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는 얘긴데, 녀석에 대한 내 감정을 감추기 위해서 그렇게도 모질게 대한게 아니였을까.
그렇게 한동안 우리는 끈질기게도 붙어다녔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고, 사람들이 빅뱅을 수식하는 단어도 바뀔 동안에 우리는 주위에서 오해를 살 정도의 관계까지 되어 버렸다. 서로 장난섞인 포옹을 하거나, 내쪽에서의 일방적인 뽀뽀를 할때마다 나도 괜한 생각이 들어 골치 아플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건 이승현쪽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우리는 각자 마음속에서 ‘이건 형, 동생 사이가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주제에, 멈추지 않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시절의 우리는 지금보다 더 위험했다. 오죽하면 멤버들까지도 내 손을 잡고 진지하게 물었을 정도로, 이승현과 나의 모습은 ‘친함’ 의 정도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연애아닌 연애가 제법 오래 지속되고, 내쪽에서는 아예 이승현을 애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승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궁금했지만, 구태여 따로 어설픈 질문을 하지도 않았고 오글거리는 고백하나 없이, 나는 이승현을 너무나도 쉽게 애인으로 치부하고 말았다. 그 일이 생긴건 성격과 가치관의 차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이승현을 원망할수도, 미워할수도 없는 종류였다. 어쩌면 별 다른 말 없이 녀석을 소중한 것으로 만들어버린 내 잘못일 수도 있었다.
여자친구…생겼어요. 평소와 같이 입술을 마주하려 할때, 이승현의 대사였다. 나는 미소를 머금고 있던 입꼬리가 어색하게 굳어감을 느꼈다. 그래서? 꼭 잡고 있던 이승현의 손을 놔주었다. 그래서 어쩌라는거야. 하지 말라고? 내 물음에 이승현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어쩌자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 한참을 녀석의 정수리만 바라보다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어 방을 먼저 나왔다. 내가 이 일이 있고나서 한참 후에야 깨닳은 것은, 이승현의 여자친구는 우리의 사이를 확인하고, 내 반응을 살피려 만들어진 종류였다는 것이다. 어리석게도 나는 그걸 꽤나 후에 알아차렸고, 그때는 이미 이승현과 틀어질만큼 틀어져버린 상태였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과 왈가왈부 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였다.
녀석은 나를 밀어낸 주제에, 한동안 상처받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멤버들까지도 이승현을 위로하고 있었으니, 내 쪽에서는 제법 속이 타다 못해 문드러졌다. 녀석이 그렇게도 아파했던 이유는 지금은 너무나도 잘 알지만, 그때의 나는 당최 이해를 할 수 없는 부분이였다. 우리의 사이가 더이상 틀어질래야 틀어질 수 없을 정도로 흘러가고 있을 때 쯔음, 나는 녀석을 피하다 싶이 생활했다. 그건 이승현도 마찬가지였고, 그때의 우리는 어색함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두달여간을 별 다른 말 없이 지내고 있는데, 이승현이 내 방으로 찾아와 말을 먼저 걸었다. 감정싸움에서 나는 약자가 되고 말았다. 이승현은 환한 얼굴을 하고선, 묻지도 않은 여자친구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아직 어색하고 쓰라린 나와는 달리, 새로운 생활을 찾은듯한 모습이였다. 마치 나와의 패턴을 100% 잊은 사람처럼 굴었다. 나한테 이걸 왜 말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차마 딴지를 걸 수 없을 정도로 녀석은 신나있었고 행복해있었다. 그 행복감이 나와 다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나오는 것인지, 여자친구의 이야기에 들뜬 것인지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는 부분이였지만, 어쨌건에 이승현은 지독스럽게도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아 하는 녀석의 얼굴에 덩달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의 연기를 해버렸다. 나의 긍정적인 반응이 이번에는 마음에 찼는지 이승현은 녀석 답게 줄곧 태연한 모습으로 나를 대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답게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다시 급속도로 각별해졌다. 더 이상의 어색한 관계를 서로 버티지 못한 이유가 컸다. 속에는 각자의 생각을 품고 있는 주제에, 겉으로는 친한 형동생의 가면을 쓰고 서로를 대했다. 이승현도 나를 오롯이 친한 형으로는 대할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한데도, 거리낌없이 장난을 걸고,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승현과 다시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는 것에 시간이 지날 수록 감사함을 느꼈다. 때문에 녀석의 여자친구 문제는 건들지 않았고, 녀석이 바라는 관계까지 되어 주었다. 내 속은 타들어갔지만, 더 이상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간신히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난 임자있는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것도…꽤나 많이. 그리고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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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네요 :-) 블로그하느라 인티를 까먹고..있었네요.. 다들 살아계시죠??
너무 길고 대화도 하나 없어서 안 읽으실 것 같네여.. ㅠㅠ
그래도 읽어주신 분 있다면 전 그걸로 만ㅋ족♡
다음에 또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