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뇽토리/여신] 그 날
그 날의 이승현은 지독히도 빛났다. 아, 저 녀석이 저렇게 잘생겼던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백색의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따듯한 온기를 머금은 미소를 지은 신부의 손을 꼭 쥔 녀석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신부보다 더 빛나네, 짜식. 영배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나 보란듯이 빛나네. 씁슬한 감정이 파도쳤다. 식 내내 녀석의 표정은 살짝 긴장한 것 같기도 했고, 들뜬 사람 처럼 보이기도 했다. 행복함이 가득한 그 미소를 이제는 마음 놓고 바라 보았다. 모두가 다 너와 네 신부를 보고 있으니, 나도 그래도 되는 거겠지. 숨어서 마음 졸이며 볼 필요가 없어서 좋네. 내가 끔찍히도 싫어하는 합리화를 하며, 나는 녀석의 얼굴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서약을 하고, 마지막으로 신부에게 키스를 하려 얼굴을 숙이는 모습까지도 억척스럽게, 꾸역꾸역 부러 눈에 힘을 주고 바라보았다.
* * *
지용아 빨리 와서 사진 찍어! 회사 사람중 한명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물론 그 수많은 눈동자 안에는, 이승현의 것도 포함 되어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거부하다가, 신부의 재촉에 못 이기는 척 자리를 잡고 포즈를 취했다. 녀석의 바로 윗자리였다. 잔뜩 힘을 준 머리를 한참 바라보며, 지어지지 않는 미소를 위해 입꼬리에 힘을 주었다. 셔터가 두어번 눌리고 촬영이 끝나자 사람들은 녀석에게 장난 섞인 덕담과, 조언을 해주며 축하해주었다. 너도 한 마디 하라며 눈치 없는 동료 한명이 거들며 나를 재촉했고, 쏠리는 시선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잔뜩 힘을 준 어깨를 쳤다. 행복해라! 행복해라 이승현! 이혼한다, 헤어진다 어쩐다 제수씨 눈에 눈물나게 하면 나한테 혼난다. 내 몫까지 넌 영원히 행복해. 알겠냐? 내 말에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터트리며 축하를 거들었다. 그 화기애애한 장면 속에서, 이승현과 나는 얼굴을 굳히고 서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오고가는 대화 하나 없이, 그냥 조용히 서로의 눈만 맞추고 있었다. 세상과 단절이 된 기분이였다. 내 눈을 바라보는 이승현의 눈이, 마치 내 심장까지 파고 드는 기분이였다. 내 마음까지, 내 심리까지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에 내가 먼저 눈을 피하자 녀석은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행복할거에요. 보란듯이. 형 보란듯이, 미친듯이 행복할거에요. 마치 그 눈이 그렇게 말 했던 것 같다. 지독히도 잔인한 새끼. 넌 끝까지 잔인해. 다시 신부를 바라보며 환히 웃는 녀석을 조금 더 바라보다가, 한걸음 물러나 자리를 피했다. 내가 없는 그림은, 지독히도 완벽한 종류였다. 그래 아무리 봐도, 헤어진 애인이 낄 자리는 아니네. 속 사정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의 환한 웃음을 바라보다 미련 없는 발걸음으로 뒤를 돌았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잘 모르게, 녀석은 급하게도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어 버렸다. 맞춰입은 정장 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신랑 이승현 - 이라고 써 있는 팻말을 바라보자 헛웃음이 나왔다.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아 볼을 툭툭 치며, 식장 안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보았다. 여기서 나가면 이승현이랑은 정말 끝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였다. 우스운 생각이였다. 끝난 건 이미 한참 전에 끝나고, 정리 된 상황이였지만 내 마음은 그랬다. 애꿎은 화환을 매만지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젠 정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녀석이 있는 식장을 한번 바라보는데 잔뜩 힘을 주어 갖춰입은 이승현이 내쪽을 향해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형!”
“뭐야. 신부 두고 어딜 와, 오기는.”
“사람들 사진 찍고 있어요.”
“그래 새끼야. 신랑이 빠지면 어떡하냐고.”
“…어디가요.”
“집.”
“밥은 왜 안먹고 가요…. 뒷풀이도 안하고….”
“시끄러운거 싫어. 신랑 신부도 없는 뒷풀이는 해서 뭐하고.”
“…오늘 멋있어요. 최고로.”
“고맙다. 너도 멋있어. 최고로. 내가 봤던 것 중에서, 최고로.”
“고마워요…. 근데 축의금은 왜 그렇게 많이 넣었어요. 놀랐잖아.”
“내가 제일 많이 넣어준다고 했잖아. 약속, 기억 안 나?”
이승현과 한참 좋았을 때의 약속이였다. 우리 서로 결혼하면, 축의금 제일 많이 넣어주자. 어마어마한 축의금 보면서, 또 그걸 쓰면서 영원히 생각하게. 내 말에 그때의 이승현은 잔인하다며 내 등을 쳤던 것 같다. 확실히 추억이였다. 내 생의 감히 최고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지독히도 아름다운 추억.
“쓰면서 평생 내 생각 하라고.”
“…….”
“얼굴 펴라. 나 결혼할땐 더 많이 넣어. 알겠냐? 내가 부자 누님들이 많아서, 일등하려면 꽤나 넣어야 할껄?”
“…….”
“나도 너 영원히 생각하고 싶으니깐, 존나 많이 넣으라고.”
간다. 아무 말도 못하고 내 얼굴만 빤히 바라보는 이승현의 어깨를 치며 급하게 예식장에서 나왔다. 뒤를 돌아 얼굴을 바라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질 않았다. 아니, 뒤를 돌아 그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면 참지 못하고 녀석에게 구걸할까봐, 결혼 하지 말아달라고 빌어버릴까봐. 그게 무서워 돌아볼 수 없었다. 나는 안전함을 좋아하고, 모험을 두려워하는 겉만 번지르르한 겁쟁이였으니깐. 굳이 어려운 길을 돌아서 갈 필요가 없었다. 이걸로 됐다. 이걸로 이승현은 행복하니 된거야. 차를 타고 시동을 걸자 마자 온 몸에 힘이 쫙 풀려 운전을 제대로 할 자신이 없어져버렸다. 결국 매니저에게 전화를 하고 좌석을 뒤로 젖혔다. 행복하라고, 새끼야. 방향제 옆에 놓여진 액자 안의 이승현을 보며 그렇게 녀석의 결혼을 축하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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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