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빙의글
급식실에서 마저도 변백현 무리는 시끄러웠다. 비슷한 시기에 급식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비슷한 위치에서 밥을 먹게 되어 저것들이 내는 소음을 고스란히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긴 하나 싶을 정도로 정확한 발음과 빠른 속도. 평소엔 조용한 박도비와 옆 반의 제 친구인 김준면마저 합세해 만들어내는 소음의 크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김준면. 다른 반 아이들을 전부 통틀어 유일하게 아는 이름. 전교 회장이자 전교 일등으로 교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고, 그만큼 여러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렸기에 의도치 않게 기억했던 그였다. 수동태다, 수동태. 전교 일등이면 급식실에서도 두꺼운 뿔테 안경을 끼곤 바른 자세로 한 손엔 교과서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론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공부나 할 줄 알았는데, 몸에 맞게 쫙 줄인 저 바지와 매끈거리는 피부에 저 모터가 달린 듯한 입담이 어딜 봐서 전교 일등에 전교 회장에 모든 학생들의 부러움을 사는 인재인 건가. 전교 일등답게 논리적이고 완성도 있는 언변을 구사하는데, 논리고 뭐고 시끄럽다. 아,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지나치게 시끄럽다니깐. 밥을 먹을 거면 밥이나 먹지 왜 시끄럽게 굴고 난리야. 니네는 밥을 입으로 먹..는 구나. 그건 그렇고 시끄럽다.
"어제 그 새X가…."
"와. 너도냐? 그게…."
남자 아이들답게 욕설도 틈틈히 섞여있고 게임 이야기도 들려오는 모습은 보편적인 남자아이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그들의 실상은 전교생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변백현, 박찬..도비, 김준면, 일명 그사세의 삼인방. 하나는 전교 회장에 전교 일등. 하나는 지역 내 버금가는 미모의 소유자. 하나는 다른 학교까지 유명한 중딩 페이스의 카사노바. 누군가를 사귀는 데엔 별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잘생긴 남자들에겐 관심이 많은 정수정 덕에 얻은 정보들이었다. 궁금하진 않았지만 이야기 할 꺼리가 없었을 때에 알려줬던 것들이다. 아무래도 둘이나 같은 반이다 보니 알아둬서 나쁠 건 없다 판단하여 군말 않고 들어줬었던. 당시에는 끼리끼리 친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이젠 생각이 좀 다르다. 끼리끼리 친한 건 맞는데, 좋은 쪽에서 나쁜 쪽으로. 산만한 것들이 끼리끼리 친하구나. 보기 좋은 한 폭의 그림이구나. 제발 그림은 그림만으로, 소리는 차단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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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저렇게까지 시끄러울 수가 있는지 이젠 신기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밥 먹는 내내 쉬지않고 말을 한다. 한 사람이 밥을 뜨면, 다른 두 사람이 입을 열고. 또 다른 사람이 우물거리면, 다른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고. 한 시도 조용한 틈이 없었다. 결국 급식을 다 먹을 때까지 옆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 급식실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정수정은 급식실을 나오는 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같은 반이니 반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을텐데 뭐가 아쉬운 건지. 하여간에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이다.
"안 시끄러웠어?"
"왜, 목소리 듣고 좋았는데!"
"아…. 어련하시겠어요. 반에나 가자."
"너 지금 비꼬는 거지!"
알면 내 앞에서 저것들 우상시하는 발언은 좀 삼가하지 그래. 그르릉 거리며 손목을 잡아끌었다. 가는 내내 모이는 시선들. 정수정이랑 다니면 항상 시선을 받게 된다. 얘가 워낙 예쁜 탓인 걸까. 웬만한 아이돌 뺨치는 외모를 가진 교내 여신과 평범하디 평범한 범생이가 같이 다니는 부조화 덕에 나는 항상 움츠러들긴 개애애애뿔. 나는 당당해! 솔직히 현대 사회에서 외모가 무슨 소용인가. 평범하기라도 하면 장땡이다. 외모가 누구 먹여살려주나. 연예인도 재능이 있어야 뜨지. 애초에 예술 쪽으론 관심도 없는 지라 공부나 해서 순탄한 삶을 사는 것이 목표이다. 정수정은…. 유명해지는 게 목표랬나.
"너 진짜 딴따라 할 거야?"
"딴따라라니, 아이돌! 따라해봐, 아, 이, 돌!"
"아, 그래."
험난하고 더럽기로 소문난 곳인데 버틸 수는 있으려나. 아니, 얘라면 특유의 긍정포텐으로 밀어부칠 지도 모른다. 낙천적인 마인드만으로 잘 생활할 수 있으려나. 뭔 일 당할까봐 걱정도 되지만 자신이 되고 싶다는 꿈인데 굳이 말릴 생각은 없다. 상위권의 성적이 조금 아깝긴 하지만.
"나 유명해지면 내 첫 팬카페 회원은 너다! 방송에서 너 얘기 꼭 할 거야! 남자 아이돌이랑 소개팅도 시켜줄게!"
"…그런 거 필요 없…."
"없다고 하기만 해. 아, 첫 싸인도 너!"
"…난 돈이나 벌어서 너 먹여살려야지."
"당연히 내가 안 뜰 거라는 걸 배경으로 두고 하는 말 같다?"
"들켰네."
시큰둥하니 대답하자 너, 그런 게 어딨어! 내 얼굴에 내 재능에 안 뜰 리가 없잖아! 고래고래 악을 지른다. 얼굴이랑 재능만 보면 안 뜰 리가 없단 생각이 들기도 한데, 스타라는 게 그것 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니까. 니 성적에 아이돌? 그냥 공부 좀만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업 얻고 그 분야로 유명해지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겠냐고 일침을 두고 싶지만 이미 계획도 꾸준히 세워 오고 뚜렷한 목적이 있는 정수정에게 굳이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다. 밝고 명랑하고 적당히 나서는 성격이니 금방 뜰 수 있으리라 믿는다.
"팬카페 매니저는 내가 할 거고, 그니까 첫 팬도 나고 첫 싸인도 나야. 방송에서 너 가장 친한 친구가 나라고 꼭 말해야 되고. 어물쩍 묻혀서 나중에 만났더니 어색하게 인사하는 꼴 보이기 싫으면 열심히 해."
"나중에? 난 너랑 계속 연락할 건데?"
우쭈쭈, 그랬어요? 난 그럴 생각 없었는데? 장난끼 담은 톤으로 말하며 뒷통수를 쓰다듬자 발버둥 치는 게 귀여워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누가봐도 호감형인 스타일이다. 이러다가 남자 아이돌이랑 눈 맞아버리면 어떡하지. 아ㅡ. 연예계 늑대들이 우리 수정이를 이 언니 품에서 채가면 어떡하나. 안타깝다는 듯 탄식하며 읊조리자 수정이 고개를 훽 돌려 내게 말했다.
"그러니까 남자 아이돌 너한테 소개시켜준다고! 그럼 더블 데이트 하자!"
"아니 난 남자에 관심이 없다니깐…."
"그 생각이 그렇게 오래 갈 것 같아? 내가 너 그 생각 접는데 이 년 안 걸린다에 내 머리카락 한 올을 건다!"
"그걸 왜 걸어, 쓸데없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니 내 머리카락이 어때서! 근데 난 이 년 뒤에도 너랑 연락할 생각은 없는데? 아니 왜! 난 일방적으로라도 너랑 연락할 건데! 내 연락 씹지마! 어우, 징징거리지좀 마. 시끄러운 건 질색이고 정수정도 예외는 없다. 시끄러운 생물체랑은 잘 친해지지 않는 성격이지만 첫만남에 워낙 치근덕대던 정수정은 기어코 나랑 가장 친한 사이가 되기까지에 이르렀다. 가끔 내가 도대체 얘랑 왜 친해진 걸까, 한숨만 나기도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환해지는 형이라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친구 하나는 잘 둔 것 같다는 생각에 기분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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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처음 입학하고, 일반 인문계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우리 학년의 비주얼이 뛰어나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얼핏 훑어만 보아도 반 아이들 대부분이 전부 반짝거리는 외모를 가진 지라 평범한 외모의 내가 소외감이 들어 괜히 구석진 자리에 앉아 조용히 친구를 사귈 생각도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 때 처음 말을 걸어줬던 게 정수정이었다. 넌 이름이 뭐야? 박햇님. 소외감과 당당함은 별개다. 주눅과도 별개다. 소외감만 들었을 뿐 그에 굳이 내가 위축들 이유는 없었고, 나는 내가 봐도 재수없는 말투로 대답했었지만 태생적으로 밝은 정수정은 오히려 내가 매력적이라며 관심을 보였었다.
"나는 정수정이야!"
제 이름을 소개하며 방긋 웃는 모습을 보며 얘는 인기가 참 많겠구나 생각했다. 청순하고 가녀린 무언가를 가진 게 누가봐도 공주님 스타일이라 성격도 조신하고 다정다감하리라 생각했던 내 착각은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웃기기 그지없다. 지금 내 옆에서 볼이 눌린 채 엎드려 자고 있는 저게 조신… 어….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데.
정수정은 조신과는 거리가 멀다. 내숭 영프로의 털털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교가 많은, 하지만 친해지면 털털함이 좀 과해지는. 친해지면 좀 과해지지만 나처럼 엄청나게 친해지면 엄청나게 과해진다. 얘가 나고 내가 얘인 것 같은 이 아무렇지 않음. 대부분, 아니 모든 학생들은 집에서와 학교에서가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집에서는 올백에 대충 주워입은 잠옷을 입고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있지만, 학교에서는 적어도 앞머리에 뽕을 넣고 교복 매무새를 정리하고, 절대 수업시간에 내 집 안방인 것마냥 있지 않는 것. 그런 아주 당연한 것들. 정수정은 나와 단 둘이서만 있을 때는 이 곳이 학교인지 집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막 산다. 아까울 정도로 막 쓰는 얼굴과 자연스러운 생리현상. 이게 버릇 들어서 나중에 방송에서도 이러면 어떡하냐. 니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어. 종종 자제하라는 발언도 해보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정수정은 대답했다. 괜찮아, 너 앞에서만 이래. 내 앞에서도 안 이럴 수는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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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말했듯 우리 학교에는 유난히 예쁘고 잘생긴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얼굴로 유명하다면 정말 제대로 된 미인이겠지. 그리고 그 미인은 우리 반에 셋이나 있었다. 일단 정수정. 주관적인 의견으론 반 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에 얼굴로 정수정을 이길 만한 애는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더더욱 얘 앞에서 못생겨질 수밖에 없었다. 떠들어대는 소문을 들어본 적은 없어 더 예쁘다고 일컬어지는 애가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둘러본 결과는 견고했다. 정수정의 외모를 이길 여자는 없다.
하지만 남자는 있었다. 박찬..도비. 잘생긴 것으로는 학교 뿐만 아니라 지역 내에서도 탑이라고 여겨지는 자타공인 남신일 뿐만 아니라 반 일등. 반 회장. 박도비는 이 쪽에 관심 없는 나조차도 다른 학교 애들한테 소문을 들었을 정도로 유명하고, 또 유명했다. 변백현이 여자로 가장 유명하다면 박도비는 얼굴로 가장 유명했다. 근처에 가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솔직히 내가 봐도 대단했다. 그래서 난 박도비 근처엔 가지 않는다. 저런 완벽한 것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지막 하나는 변백현. 얼굴로도 더럽게 유명했지만 여자로 훨씬 유명한 학교 대표 카사노바이자 내 짝. 모든 점이 마음에 들지 않긴 하지만 마지막 문구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도대체 왜 여자들이 껌벅 죽는 건지 이해도 되지 않고 이해 하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은 비호감 형.
셋의 공통점은, 모두 시끄럽다. 시끄럽고, 시끄럽고, 또 시끄럽다. 시끄러운 것과 외모가 관계가 있는 건 아닐까. 계수가 엄청나게 큰 정비례로. y축이 시끄러움. 외모가 하나 상승하면 시끄러움이 엄청나게 상승. 이 셋은 외모가 엄청나게 상승했으니 시끄러움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 하나는 가장 친한 친구고 하나는 짝이고 하나는 짝의 가장 친한 친구라니. 내 주위는 어쩜 이렇게 시끄러울 일밖에 없는가. 어서 다음 달이 되어 둘을 내치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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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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