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은 마치 '인간 동물원' 같다. 종대는 그렇게 생각했다.
차림새도 행동도 버릇도 다른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바 안.
공통점이라면 술로 사치를 부리며 향락을 가장한 퇴폐를 즐긴다는 것? 아직까지 난교파티라도 벌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종대는 한숨을 쉬다 실수로 닦고 있던 유리 잔을 놓칠 뻔 했다. 옆의 동료에게 잔소리를 듣고 넌지시 사과를 건네는데 불쑥 주문이 들어왔다.
"준 벅."
여성들이 자주 찾는 음료를 시키는 굵직한 목소리는 남자. 아무렴 어떠랴, 취향 차이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바인데.
"예, 알겠습니다. 손님."
발음이 네이티브 스피커다 했더니 우리나라 사람 같지는 않았다. 동양인처럼 보이지 않는 외모에 그렇다고 완벽한 서양인도 아니었다.
너무 빤히 쳐다본 탓일까, 남자는 종대의 시선을 눈치채곤 눈을 마주쳐 왔다. 자신을 바라보며 슬몃 웃어주는 남자의 매너에 종대는 창피함에 얼굴을 붉히고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준 벅 나왔습니다, 손님.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6월의 벌레라는 이름을 가진 칵테일. 이름답게 향긋한 향이 나는 이 음료로 입가심이라도 할 생각인지 단내가 풍기는 준 벅을 마시는 남자였다.
"저기."
"네, 손님."
말고 그 옆.
"CHEN?"
남자는 종대의 명찰을 보았는지 가게에서 쓰는 그의 이름을 불렀고 종대는 듣기 좋은 목소리로 답하였다.
"혼자 온 손님의 말 상대가 되어주는 것도 바텐더의 일 아닌가?"
팁은 따로 챙겨주도록 하지. 한 시간만 나와 이야기 나누어 줘.
"이야기 상대가 필요하시다면 저쪽으로 가보는 것도 좋을 법 하신데."
"저기는 너무 난잡해서 말야.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상대도 보이지 않고."
남자는 어느새 준 벅을 해치웠는지 뎁스 봄을 주문했다.
"네, 뎁스 봄 하나."
"첸은 나랑 말이나 섞지?"
몸도 섞으면 더 좋고.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뱉고선 즐거운듯 웃는 남자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종대는 눈짓으로 동료에게 뎁스 봄 제조를 맡기고 다른 유리잔을 닦기 시작했다.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난 농담이 아닌데?"
짓궂은 장난꾸러기처럼 구는 남자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종대는 피곤함을 느꼈다.
"죄송하지만 전 예쁜 여자가 좋아서요. 원나잇 파트너를 원하시면 제가 대신 알아봐드릴 수도 있는데요."
"너무 단호한 거 아냐?"
"손님,"
"Kris,"
크리스라고 불러.
남자는 자신을 크리스라고 소개했다.
"크리스, 우리나라 사람 아니죠."
"우리나라? 첸과 나의 나라? 사랑의 도피라도 떠나자는 건가?"
"그게 아니라요, Where are you from 이냐고요."
"바텐더가 남의 사생활도 캐묻는 직업이었나?"
종대는 그의 말에 입을 다물었고 농담이었다는 듯 기분 좋게 웃던 남자는 뎁스 봄을 받아들고 입 안에 시원하게 털어넣었다.
이 남자는 웃음이 헤픈 사람인 것 같다.
묵묵히 컵만 닦고 있는 종대를 지긋이 바라보는 남자의 옆으로 누군가가 앉았다.
종대와 크리스가 '저쪽'이라 칭하던 곳에서 바에서 친해진 사람들과 놀던 백현이었다.
한 손에 진 라임을 들고 다리를 꼬고 앉은 백현은 종대와 눈이 마주치자 예의 크리스처럼 웃어주었고 종대도 머쓱하게 따라 웃고 자신의 아래에 있는 컵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름이 어떻게 돼요?"
"Kris."
"크리스, 전 백현이에요."
살가운 어투의 백현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주고 받던 크리스는 그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첸, 계산 해 줘."
"네, 손님."
"말고 크리스."
"알았어요, 크리스. 벌써 가시게요?"
그건 아니고 저기로 가서 한 잔 더 하다가 가려고. 백현은 그의 팔을 붙잡고 빨리 가자며 애교를 부리고 그는 귀엽게 보였는지 머리를 쓰다듬고 백현의 지인들이 있는 자리로 향했다.
오늘만 몇 번의 한숨을 쉬는 건지. 또 다시 한숨을 내쉬며 컵을 치우는데 종이가 있는 것이 보였다.
쓰레기인가 갸웃거리다 주워 들었는데 명함이었다.
정갈한 글씨체로 적힌 '연락해' 와 크리스의 번호가 적힌 명함이 보이자 탄식을 절로 내뱉을 수 밖에 없는 종대였다.
| 차월 |
어... 되게 오랜만에 온 거라 애끼미(=암호닉) 은 일부러 기재 안 해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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