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반복하는 쉼 호흡에
다행이도 터질 듯 뛰던 심장은 비교적 잔잔한 떨림으로 돌아왔다.
가느다랗게 떨리는 숨까지는 어찌하지 못해도
꽤나 만족스러운 변화였다.
"많이 긴장 되시나 봐요."
옆에서 나의 드레스 자락을 정리해 주시던 도우미 분의
웃음기 가득 담긴 말에
마냥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조금요."
잘하는 걸까,하는 그런 거요.
느릿하게 내뱉어지는 말을 따라
천천히 줄곧 앞만을 향해있던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벽에 자리한 전신 거울로
백현이의 고집을 이기지 못해 입게 된
살색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단아한 분위기의 드레스를 입고
약간은 어색하게 앉아 있는 내가 비춰졌다.
'어색함'
그 단어 만치 지금의 나를 잘 표현하는 단어는 없었다.
깜박이는 눈에 따라 담겨지는 나는
어째서인지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신부는 예뻐야 하는데."
신부는 행복해야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네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어머, 그런 거라면 걱정 마세요."
끝자락으로 갈 수록 흘려지는 내 말에
눈을 크게 뜨시더니 곧 입꼬리를 말아 올려 웃으시고는
금방 고개를 돌리느냐 흐트러진 머리를
다시 넘겨 주시며 말을 이어가셨다.
"아까 잠깐 나갔다 왔는데"
신랑님이 얼마나 난리가 났는데요.
"..네?"
"왜 못 보게 하는 지 모르겠다고 심통이 아주."
신랑은 원래 신부의 모습을 입장 전까지는 못 보는 법인데
그것을 가지고 투정을 부린다니, 말도 되지 않는 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의 급한 성격이 떠오르고
그새를 못 참고 신부 대기실 앞을 어슬렁거렸을 그가 눈앞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분명 버릇마냥 입술을 쭉 내밀고는
초조함에 신발의 끝으로 바닥을 툭툭 차며
특유의 둥근 눈꼬리를 내리고는 투덜거렸을 모습이.
"..."
어느 정도 그려지던 그림에 천천히 색이 입혀질 무렵,
"어, 마침 신랑님 오시네."
아주 귀여우신 신랑님이.
여닫이로 된 신부대기실의 문이 천천히 열리고
그 뒤로 익숙한 모습들이 보였다.
"형수님 우리 왔어요."
"와, 제수씨 장난 없네요."
"축하드려요, 결혼."
지난 1년 동안 꽤 많이 친해진 나의 또 다른 시댁 식구들과
"백한아, 엄마 저기 있네."
제 아빠를 따라 멋스럽게 턱시도를 차려입은
"아들!"
나와 그의 아들이었다.
준면오빠의 품에 안겨있는 백한이를 안아들고 웃자
불편한 옷에 찡얼거릴 만도 한데
오늘이 무슨 날인지라도 아는 건지
연신 싱긍벙글 웃으며
둥근 눈매를 곱게도 접어 내린다.
"넌 결혼 전에 성형을 한거냐."
무슨 얼굴이 이렇게 변해.
장난스레 웃으며 내 얼굴을 요리조리 보는 찬열이에
한 숨을 쉬며 밀어 냈다.
"드레스는 하얗게 유지해서 들어가고 싶어."
나름 로망이라서.
반 협박식으로 뱉은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건지
고개를 갸웃 하고는 다시금 입을 연다.
"무슨 소리야. 당연한 소리잖아, 그건."
"찬열아."
피, 묻히기 싫대.
역시, 경수가 찬열이 보다 똑똑하다.
그렇게 한참을 장난치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아 빨리 나와. 뭐 그렇게 오래 있어. 나도 못 보고 있는데!"
니네가 뭐라고 그렇게 오래 봐!
톡,톡-.하는 작은 노크 소리 후
소심하게 한 뼘정도 열린 대기실 문틈 사이로 흘려진
꽤나 심술이 가득 담긴 백현의 목소리에
저런 놈이 결혼 이라니-. 하며 고개를 젖고는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결혼 축하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으며-.
그 뒤로 여러 사람이 오갔다.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흐트려지던 긴장이
"신부님, 입장 준비하실게요."
다시금 나를 감싸 안았다.
따듯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
"..."
나의 작은 손 위로 답답하다는 이유로 장갑을 끼지 않은 아빠의 손이 올라왔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다정함 보다는 아쉬움이라는 감정이 더 크게 존재했다.
"오랜만이구나."
"..."
"너랑 이렇게 손 잡는 거."
그렇지?
가만히 내 손등을 문지드런 아빠가 입을 열었다.
"응, 그러네."
"..좋은 사람이랑"
"..응"
"행복하게, 잘 살아야 된다."
아빠는 그거면 돼.
"..네"
감사해요 아빠.
"신부 입장!"
식장 내에 울려퍼지는 준면오빠의 목소리에
어느 때인가 나의 어린 날.
아빠의 옆에 나란히 서서는
짧은 걸음으로 아빠의 걸음을 힘겹게 따라가며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웃던 나와,
그런 나를 보며 환하게도 웃던 아빠가 세겨진 기억을 더듬으며
그때보다 더욱 느려진 아빠의 걸음을 따라 걸었다.
몇 걸음 걷지도 않은 거 같은데 어느 새 시선끝에는
백현이의 구두와 아빠의 구두가 마주보고 있었다.
"잘 부탁하네."
"감사합니다."
아빠의 손에서 백현이의 손으로
아빠의 품에서 백현이의 품으로
내가 천천히 옮겨졌다.
꽉 잡아오는 백현이의 손에
천천히 고개를 들면
"..깜짝 놀랐어."
조금은 붉게 상기된 볼을 가지고
"내가 상상했던 거 보다 너무 예뻐서."
내가 봤던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를 담아내고 있는
그의 눈동자에 비춰진 나는
그제서야 제법 행복한 신부인듯 했다.
백현이의 고등학교 선생님의 주례가 끝나고
형식적인 절차가 마무리 되어가고 있으면
"여러분, 사실 오늘 신랑이 그렇게 안 보여도"
나름 저희, 엑소의 메인 보컬이라서요.
흘러나오는 준면오빠의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하며 백현이를 올려다 보면
긴장한듯 연신 입술을 훑은 모습이 보였다.
"축가는"
기대해도 괜찮겠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잔잔히 흘러나오는 반주 였다.
언제 준비 한거래-.
(BGM 이걸로 바꿔 주세요ㅠㅠ)
"눈부신 햇살이 오늘도"
"..."
"나를 감싸며"
"..."
"살아있음을 그대에게"
난 감사해요.
올곧게 나를 응시하며
마치 말을 하듯
가사를 읊조리는 백현이의 모습에
차오르는 감정때문에 밀려 혹여나 지워질까
한 글자, 한 글자를 가슴에 세기며 듣고 있으면
"백한아, 착하지. 아빠 노래 하시잖아."
하객들 사이에서 우렁차게 들리는 울음소리가 있었다.
순식간에 술렁여지는 분위기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반주와는 다르게 멈춰버린 백현이의 노래 대신
"변백한. 아빠한테 와."
조근 조근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찬열이에게서 백한이를 안아 받고는
"아빠랑 같이 엄마 노래 불러줄까?"
엄마가 좋아할 거 같은데.
하며 그 작은 입과 제 입 사이에 다시 마이크를 가져가서
"이제야 나 태어난 그 이유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내 앞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웃는 두 사람을 보자,
"알 것만 같아요."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그대를 만나 죽도록 사랑하는게"
누군가 주신 나의 행복이죠.
저 둘을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그때 내가 행복한 사람이 되겠구나.
어느 새 노래가 다 끝나고
조용해진 허공으로
울려퍼진 작은 고백이었다.
"사랑해."
행복하게 살자, 우리.
------------------------------------------------------------------------------------
ㅎㅎ..분량 조금 길 수도 ..있어여..아닌감..ㅎㅎ
잘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