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어야!"
가만히 의자에 앉아
생각보다 늦어지는 그를 기다리며
괜히 그와의 메세지를 다시 한 번 훑고 있었을까.
등 뒤로 느껴지는 특유의 들뜬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하지만 아마 내 올라간 입꼬리는
예쁘지 않은 내 마음을 따라 흉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생각에 다시금 울적해지는 기분을 애써 끌어 올렸다.
"왔어?"
많이 피곤하지. 미안. 꼭 할 말이 있어서.
"됐어, 뭐가 미안해. 얼굴 보고 좋지."
돌아보며 웃어보이는 내게
쓰고 있던 마스크를 내리며 쫑쫑소리가 날 것 같은 걸음으로 다가와
코에 짧게 입을 맞추고 맞은 편에 앉는 그다.
"언제 입국했어?"
"어제 새벽에."
잠도 제대로 못잤어.
테이블 위로 상체를 엎드리며
두 팔을 앞으로 뻗어 축 늘어트린다.
그 와중에도 둥글게 말린 입꼬리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음엔 언제 나가?"
몰라, 한 두달은 있을 거 같아.
데뷔 자체를 중국 활동 팀으로 한 그 덕에
명성이 높아 질 수록 그는 한국보다는 중국에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처음 그가 그 데뷔 사실을 내게 전할 때,
어린 마음에 몰려오는 서러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이처럼 엉엉 우는 나를 보던 그가
붉어진 눈가로 나를 제 품에 안으며 주문 외우 듯 중얼 거렸다.
괜찮아, 내가 더 잘할게. 내가 더 사랑할게.
하고.
그 말을 증명하듯 그는
바쁠 때면 더 더욱 나에게 맹신적인 사랑을 주었다.
난 사실, 조금은 후회한다.
이때, 그를 놔주었어야 했다고.
"중국, 안 힘들어?"
"힘들지. 덥고, 음식도 입맛에 안 맞고, 무엇보다 말도 안통하고,"
아, 근데 신기한게 노래는 꼭 다 따라 불러주신다?
신기하지-.라고 말을 맺으며
엎드렸던 상체를 바로 세우는 그는
"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 노래, 우리 목소리로 같은 사람이 되는게"
어색하면서도 너무 좋아.
유독 눈을 빛내며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었다.
"나중에 너도 보러 와. 티켓 보내줄게."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도 내 움직임에 맞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작게 소리내어 웃고는 아, 하며 입을 연다.
"할 말이 뭐야?"
궁금하다. 나 물어보고 싶은거 꾹 참고 왔어.
그를 빤히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임신했어.
김종대
"..어? 징어야 뭐라고?"
그, 그니까 지금..너랑 내..
"응, 아이 가졌어."
종대, 네 아이.
한참을 말 없이 나를 응시하던 그가
입을 달싹이다 결국 혀로 입술을 축이는 것으로 끝을 낸다.
"병원 다녀왔어. 4주 째래."
지금은 막 착상 중인 단계라더라.
더 조심해야 된대.
하지만 어차피 다음주면
내 몸에서 빠져나갈 이 작은 세포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거기 까지 생각을 이어가다
슬쩍 시선을 돌려 바라본 너는
"..."
내 앞에서 처음으로 예쁘지 않은 입꼬리를 보이고 있었다.
아마 그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온 것이겠지.
"..저, 종대야."
그 부담을 덜어주고자 다음주에 잡힌
수술 예약을 언급하려는 때.
"언제부터 안전하대?"
병원가는 날은 언제고.
말을 끊고 들어오는 그다.
안전?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한 나는
가만히 고민을 하다 의도를 깨닫고 입을 열었다.
낙태 말하는 구나.
"..28주 이내면 괜찮대."
"..무슨 소릴 하는거야. 내 말은-."
"종대야."
사진을 받고 보다보면 꼭 다들 마음이 바뀌어서
다시 취소하러 온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준다며
내 손에 꼭 쥐어준 초음파 사진을 조심이 매만졌다.
"..그래도 우리 첫 아이니까."
절대 아무한테도 안보여 줄테니까.
가지고 있게만 해줘.
울음으로 인해 뚝뚝 끊어지는 말에
나조차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나와 그가 사진 안으로 들어온 듯
우리의 모든 주변은 흑백으로 가득 채워졌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
과부하가 된 것인지 쿵쿵 뛰는 심장이
마치 밖으로 튀어나와 귓가에서 뛰는듯 선명했다.
급하게 심호흡으로 가라앉혀지는 숨 사이로
나의 심장소리와 오버랩되는 작은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 종대야."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는 작은 존재를
나는 겉으로 나마 내 배를 감싸며 안아줄 수 밖에 없었다.
"수술까지는 안 와도 괜찮-."
"너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내 말은 내가 스케줄은 언제로 옮겨야하는지 물어보는 거야.
"..어?"
"버젓이 남편이 있는데"
왜 자꾸 혼자 가려고 해.
"안전하게 자리 잡을 때 까지는 내가 옆에 있어야 되잖아."
그럼 내가 스케줄 미뤄야지. 안그래?
그제서야 줄 곧 내려가 있던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힘들거야."
"..응"
" 계속 옆에 있어 준다는 약속 못해."
"..응,응"
그래도 내가 더 잘할게, 내가 더 사랑할게.
눈물로 뒤덮힌 얼굴을 마냥 끄덕이기만 하는 내 옆으로 다가온 그는
천천히 손을 올려 아직은 밋밋한 내 배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던 사진을
빤히 바라보다
이내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가, 사진 잘 받네.
나중에 아빠랑 같이 무대서자.
아빠가 좋은 노래 많이 들려줄게.
사랑해, 우리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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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상하게 종대는 쓰면서도 마음에 잘 안드네요ㅠㅠㅠ
독자님들 반응 어떨지 모르겠어요ㅠㅠ
재미있게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