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다짐했으나 그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내 욕심을 버리는 것도 어렵고, 마음을 먹으니까 자꾸 김종인을 피하게 돼서. 왜냐면, 부끄러우니까. 누가 보면, 좋아한다고는 두 번씩이나 해놓고 사귀자고 하는 게 뭐 그리 어렵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다. 간지러워 죽겠는데 어떡해? 김종인한테는 사귀자고 말 하는 게 뭐 그리 어렵냐고 혼자 그 애를 타박하고, 원망하고 별 생각을 다했지만 이젠 이해해. 어려워, 어렵고말고. 이건 모의고사 푸는 것 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야. 아무튼, 이것과는 별개로 결국 김종인과 같이 집에 오지 않았다. 눈치를 못 챈 게 조금 미워서 도망쳤다. 나는 독서실에 공부를 하러 오고, 김종인은 집에 갔겠지 뭐. 아니 진짜 눈치가 그 정도로 없을 수가 있나? 답답하다 답답해.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는데 진동음이 울렸다.
[왜 먼저 갔어.]
김종인의 문자다.
와, 그냥 딱 한마디일 뿐인데 왜 이렇게 떨려? 말로 한 것도 아니고 고작 문자일 뿐인데 귓가에 그 아이의 목소리가 맴돈다. 기분 좋다. 근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일단 내가 인기 많은 김종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려면 우린 무슨 사이가 되어야 한다고. 무슨 사이냐면, 바로 사귀는 사이! 아, 근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지? 어떻게 해야 고백 잘 했다고 소문 낼 수 있느냐 이 말이야. 내가 이렇게 산다. 어? 내가 이렇게 살아요. 김종인한테 죽고 못 살아요. 이번엔 내가 진다고 했으니 먼저 숙이고 들어가야지 뭐 어쩌겠어. 아, 그래도 좀 섭섭하긴 하다.
[공부하러 왔음. 너도 공부해.]
눈치 없는 종인아. 나도 너랑 계속 문자하면서 놀고 싶거든? 하지만 그럴 때가 아니란다. 문자고 뭐고, 일단 생각부터 좀 정리하자. 그리고 나중에 내가 가서 말해줄게. 조금만 기다려.
너와 나만의 시간
2부
3.
“화해했어?”
김종인이 집에 놀러오라고 문자를 보내서 하는 수 없이 들렀다.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오라고~ 오라고 애원해서 한 번 들러 준거…였으면 좋겠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가장한 고백 계획 세우기를 하고 있는데 그 애가 지나가듯이 집에 놀러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걸 보자마자 신나서 짐 싸고 달려 온 건 나고. 진짜, 바보. 초인종을 누르자 누나가 문을 열어줬다. 그리고 문 앞에 서 있는 날 보자마자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그래서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수, 니가 먼저 사과했어?”
싸운 건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내가 먼저 손을 내민 거나 다름이 없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된 건 다 내덕분이지! 아닌가, 김종인이 잡아 줘서 그런 건가, 아씨 몰라. 대충 하면 되지 대충.
“네,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그나저나, 김종인이랑 손잡으면 어떤 기분일까? 완전 궁금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누나가 내 팔을 잡아 집 안으로 끌어당겼다. 안으로 들어가니 김종인이 부엌에서 컵을 들고 나온다. 눈이 마주쳤다. 인사도 없이 그냥 웃는다. 아… 어떻게 저렇게 생겨? 진짜, 잘생겼다. 넋이 나갈 것 같다.
“너 입에서 침 떨어질라.”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누나가 웃으며 입을 닫아준다.
“아가들, 이제 좀 싸우지 말고 잘 지내. 알았어?”
“싸운 적 없어.”
컵을 든 채 내 쪽으로 걸어오던 김종인이 멍하니 서 있는 나를 소파에 앉힌다. 그러면서 내 옆에 앉더니 들고 있던 컵을 나한테 내밀며 물 마실래? 묻기에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자리에 앉지 않고 그걸 가만히 보고 있던 누나가 이상한 눈으로 나와 김종인을 번갈아 본다.
“근데, 너네 왜 이렇게 간지러워?”
“네?”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랬더니 누나가 음흉하게 웃는다.
“화해 한 번 했다고,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지나?”
여태껏 나를 지켜보던 김종인이 시선을 돌려 누나를 쳐다본다.
“뭐라는 거야.”
“물 마실래? 하는데 그게 왜 이렇게 간지럽지?”
“아, 진짜.”
와, 여자의 직감은 무서운 거라더니. 진짜 무서워. 나랑 김종인이 뭐 했다고 금세 알아차리는 거지? 김종인은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반면, 나는 놀라서 여전히 아무 말도 못하고 어버버, 거리는데 누나가 내 옆자리에 턱 앉으며 말한다.
“그래, 경수야 미안하다. 누나가 미안해. 이렇게 순수한 널 두고 내가 지금…, 난 썩었어!”
무슨 소리야 대체?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멀뚱멀뚱 누나를 바라보다가 슬쩍 김종인을 봤다. 누나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새롭다. 김종인은 집에만 오면 달라져. 학교에선 되게 수줍은 표정도 짓고, 말도 없고 그런데, 집에만 오면 또 차도남이야. 이 집에 무슨 기운이라도 흐르나? 이상해, 진짜.
“밥은 먹었어?”
“네, 먹었어요.”
“배 안고파? 누나가 맛있는 거 사줄까? 뭐 먹고 싶어? 경수는 뭐 좋아해?”
난 또 김종인이 물어 보는 줄 알았는데 누나였다. 내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하면서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질문 세례를 퍼 붓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
“괜찮아요.”
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그랬더니, 누나가 또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손을 뻗는데, 그 손이 내 머리에 닿기 직전에 다른 손에 막혔다. 그 다른 손은 조금 까만…
“시끄러.”
…김종인의 손.
헐. 뭐야? 지금 막은 거 맞지? 누나가 나 못 만지게 하려고 그런 거야 지금?
“방에 좀 들어가지?”
“고딩 주제에 어디서 대딩한테 들어가라 마라야. 넌 공부 좀 하지?”
“너나 잘해.”
놀란 눈으로 김종인을 돌아보는데, 내 시선을 못 본 척 무시하며 또 누나랑 티격태격이다. 완전, 완전 설렌다. 이런 거 너무 좋아…. 이러고 있으니, 꼭 그때 생각이 나는 거다. 전에 김종인네 집에서 티비를 보던 중, 오늘처럼 누나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그때도 시큰둥하게 그 손을 쳐냈었지, 아마.
김종인. 너 빨리 나랑 사귀자. 응? 아, 그나저나 어떻게 고백해야해? 좀 전에 독서실에서 공부는 안하고 고백할 생각만 했는데, 아무 생각도 안나는 거다. 아,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얘네 집에 놀러 올 때만 해도 깜빡 잊고 있었는데 고백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갑자기 막 부끄러워지는 거다. 김종인이 옆에 앉아있기만 하는 건데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시험기간 아닌데 공부를 왜 해? 내가 고딩이야?”
“진짜 뻔뻔하다.”
“부럽지? 그럼 너도 얼른 졸업해라?”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겠어.”
“이게 진짜, 너 나 무시 하냐?”
“그럼 존경할까?”
오늘도 남매는 싸운다. 나는 중간에 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다. 사실, 누나의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김종인 목소리만 들려. 내 귀가 알아서 걸러 듣고 있어. 누나, 미안해요.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걸 어떻게 해요.
“야, 경수야 너 얘랑 놀지마. 화해 왜 했어? 그냥 무시하고 지내지.”
“뭔 소리야.”
내 이름이 들려서 정신을 차렸다. 보니까, 누나는 뒷목을 잡고 있고 김종인은 시큰둥한 얼굴로 물을 마신다. 이럴 거면 나한테 왜 오라고 한 거야? 내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일단, 고백은 오늘 밤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걸로 하고, 지금은 미루는 게 좋겠다. 누나가 목이 마르다며 김종인에게서 컵을 빼앗아 든다.
“아, 뭐야.”
“다 마셨는데?”
근데 빈 컵이야. 도움이 안 된다며 중얼거리던 누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컵을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소파에는 나랑 김종인만 앉아 있다. 몰랐는데 누나의 빈자리가 꽤 크다.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놀러오라고 한 건 너고, 좋다고 바로 쫓아온 건 난데. 이렇게 어색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어색해. 잠시일 뿐인데도 숨이 막힌다. 바짝 긴장해서 굳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무슨 말을 하지? 무슨 말을 해야 안 어색할까. 머리를 굴리는데 눈동자도 같이 굴러가는 것 같다. 그것 참 신기한 일이야. 혼자 생각하고 또 혼자 웃고 만다. 나 왜 이렇게 바보 같지?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손가락이 간지럽다. 뭐지? 고개를 돌려 소파를 짚고 있는 손가락을 쳐다봤다.
“…….”
김종인이 내 손가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 거기에 집중을 한 건지 쳐다보는 내 시선을 느끼지도 못하고 계속 만진다. 손과 손이 맞닿았어. 김종인과 손을 잡으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는데. 물론 손을 잡은 건 아니지만, 손가락 사이를 스쳐지나가는 그 애의 손가락의 촉감이 못 견디게 간지럽다.
“…왜?”
그 간지러운 광경을 넋을 빼고 쳐다보다가 고개를 드는 김종인 때문에 갑자기 눈이 마주쳤다. 나는 지금 죽겠는데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묻는다. 난 아무것도 몰라요. 그런 눈빛과 마주하자 갑자기 또 미치겠는 거다. 대답도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지, 집에 갈게.”
나도 모르게 말까지 더듬었다. 근데, 말 더듬는 거고 뭐고 정신없어 죽겠어. 이게 지금 내 정신인지 니 정신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김종인의 시선이 완전히 얼어서 나무처럼 서있는 나를 올려다본다. 그러더니, 아직도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자기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벌써 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얼른 도망가려는데 내 팔을 탁 잡고 묻는다.
“진짜 가?”
가지 말라는 듯한 눈빛이다. 근데 어떡해. 난 여기 못 있겠는데…. 시선을 피하면서 내 팔을 잡은 그 애의 손을 잡아 뺐다.
“응, 진짜 가. 누나, 저 가볼게요.”
김종인이 뭐라고 대답할 틈도 없이 누나에게 인사하고 얼른 도망쳤다. 재빠르게 현관까지 뛰어가 신발을 구겨 신고 문을 열고 나왔다. 닫힌 옆집 문 앞에서 잠시 숨을 몰아쉬다가 김종인이 쫓아 나올까봐 금세 우리 집으로 내뺐다.
이거 봐, 역시 너무 어려워. 그나저나 어떡하지? 손을 잡은 것도 아니고 손가락을 만진 것 뿐인데 놀라서 도망치는 꼴이라니.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수줍었어? 아까 학교에서 김종인 수줍다고 귀여워한 게 누군데! 이러면서 어떻게 고백을 한다고. 좋아한다고 무작정 덤벼들었던 게 신기하다. 정신 차려, 도경수!
一
결국 김종인을 피해서 등교했다. 어제 밤새도록 고민을 해봤는데 답이 안 나와 답이. 내가 이렇게 어렵고 힘든 걸 김종인한테 바랐던 거구나. 미안해, 종인아.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마냥 기다릴 땐 쉬워보였는데 진짜 어려워.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그냥 타이밍만 맞으면 툭 던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좋아한다고 고백할 때도 상황을 생각하고 한 건 아니었으니까. 설마, 내가 사귀자고 하는데 싫다고 하겠어? 아냐, 그러진 않을 거야. 근데 대체 언제 말 할 거야 경수야? 응? 언제 말할 건데? 그래, 어제 도망친 것도 부끄럽고, 타이밍 맞춰 말을 꺼내는 것도 부끄럽고 해서 피했다. 김종인이랑 같이 학교 오는 건 좋은데, 과제가 생기니까 아직은 아니야, 아직 때가 아니야 하면서 피하게 된다고. 괜히 시선을 피하고, 말을 더듬고 그렇게 되네? 거 참 이상하단 말이야.
“…수상해.”
책상에 턱을 괴고 멍하니 있는데 박찬열이 갑자기 그런다. 그래서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박찬열이 펜을 돌리면서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무, 뭐가?”
이거 봐, 당황해서 또 말 더듬었어. 박찬열한테도 이러는데 김종인 앞에선 어떻게 하지.
“수상해, 진짜 수상해.”
“그러니까 대체 뭐가!”
“…….”
찬열이 여전히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대답은 안 한다. 뭐야, 그러니까 더 무섭다. 발가벗고 있는 기분이다. 왜 이렇게 날 훑어? 또 뭘 눈치 챈 거지? 징그럽게 눈치 빠른 놈. 조심해야겠어. 찬열이와 의미 없는 눈싸움을 하고 있는데, 교실 앞문이 드르륵 열리는 거다. 드르륵? 조금 세게 드르륵! 소리에 놀라서 고개를 앞으로 돌렸더니 조금 굳은 얼굴로 서 있는 김종인이 딱 보인다. 헐? 김종인?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찾는 걸 보니, 아직 날 못 봤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놀라서 얼른 엎드리며 두 팔에 고개를 파묻었다. 뭐야, 대충 보니까 좀 화난 눈빛인데?
“야, 너 뭐하는 거야.”
찬열이가 어이없다는 듯 내 팔을 치며 물어온다. 무시했다. 지금, 너랑 대답하고 놀 때가 아니야. 숨을 죽인 채 자는 것처럼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성큼성큼, 나에게로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김종인 이겠지?
“도경수.”
아니나 다를까, 김종인이 맞다. 내 팔을 살짝 잡아 흔들면서 내 이름을 부르는 데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자고 있는 거야.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단 말이야.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그렇게 자는 척 버티고 있는데 김종인이 한숨을 푹 내쉰다.
“걔 아침에 학교 오자마자 자던데?”
“…아, 그래?”
“걔한테 할 말이라도 있어? 할 말 있으면 전해줄게.”
“아니야. 괜찮아.”
웬일로, 박찬열이 나를 도와준다. 아, 다행이다. 그런데 대답하는 김종인의 목소리가 영 안 좋다. 내가 먼저 와서 삐졌나? 화났나? 아침에 배터리 충전한 걸 안 가지고 와서 핸드폰도 꺼져있는데. 박찬열에게 인사를 하고, 가기 전에 그 애가 마지막으로 내 어깨를 한번 세게 쥐었다가 놓는다. 좀 화난 것 같다.
아, 망했다.
***
전 오늘도 출석도장 찍네요.
어째, 쉬는 날이 없네요 그래... ㅎㅏ... 잉여는 잉여잉여하고 웁니다.
찌질이들의 연애입니다..ㅠㅠㅠ
맨날 집-도서관-학교네여... 왜냐면 찌지리들이니까요....
너네 언제 사귈거니! 사귀긴 할거야, 얘드라??????????????
아참, 혹시나 꼭 보고싶은 장면 있다던가 하시면 저를 좀 도와주세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막막합니다.
달달 카디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흑흑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오늘도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하뜨
순백흑백현 찌롱 까꿍 링세 아이엠벱 블슈 다이트 아가 마가렛됴 긍긍님 기억하고있어요!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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