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발 저거 플디제국 아들새끼 맞지!!!!!!!!!! 야 원우야 맞지?????"
"…어, 형 맞는 거 같은ㄷ…"
"저 씨발 나 차로 친 새끼!!!!!!!!!"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것 같은 최승철에 전원우가 그의 어깨를 꽉 잡았다. '이렇게 빨리 만나나?' 인상을 찡그리던 김민규보다도 더 당황스러운 건 나였다.
"최승철… 저기 혹시 가운데 제일 껄렁거리는 놈 말하는거야?"
"어. 박준호라고. 너 아냐?"
"쟤 아까 내 번호따간 놈인데…"
"뭐??????"
최승철이 소리를 지르며 튕겨져 나갔고 전원우가 얼떨떨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래서 번호 줬어?? 줬냐고!! 어깨를 잡고 흔드는 김민규에 핸드폰 없다고 말한것과 받은 번호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말까지 줄줄히 읊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가까스로 진정하고 벤치에 앉은 최승철이 호흡을 가다듬고 턱을 매만졌다. 오호… 저 새끼는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구만?
"얘들아. 나 저새끼 엿좀 맥이는 거 도와주라"
여전히 이글이글 분노에 찬 눈으로 박준호라는 사람을 노려보던 최승철이 입꼬리만 씨익 올린 채 말했다. 그 모습에 식겁한 전원우가 최승철의 팔을 붙잡고 흔들어댔다.
"형 죽일거야??"
"아냐 임마!!! 나 그럼 짤없이 지옥행이야. 그냥 엿이나 좀 맥여보자고"
"내가 도와줄까? 쟤 내 번호따갔잖아. 남자 하나 끼고 저 새끼 주위 어슬렁거리면 기분 엿같게 하는 거 아님?"
"니가 남자가 어딨어?"
비웃듯 실소를 터트리던 김민규가 별안간 기분나쁜 표정을 짓더니 뒤로 돌았다.
"형들. 잠시만 몸 좀 숨겨주면 안될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전원우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최승철에게 뭐라뭐라 귓속말을 하자 최승철도 고개를 끄덕였다.
세봉아. 지금 우리 다른 사람들에게 안보이는 상태니까 섣불리 대답하거나 하지마.
고개를 끄덕인 나는 김민규를 제일 먼저 올려다보았고 그는 굉장히 심기가 불편해보이는 상태였다. 마치 아까의 최승철과도 같이.
"세봉이가 우리가 귀신모드 풀어도 안보일만한 남자를 데리고 와야 돼"
"그럼 ##그럼 김세봉이가 어디서 그런 남자 하나를 주워와서 뭐 박준호를 엿을 맥이고 잠시 남자를 화장실 같은데 보내는 거지. 그럼 박준호랑 김세봉이랑 둘이 남잖아? 귀신모드 해제한 내가 다가가서 살아있는 척을 한다?"
"그렇지. 그럼 저새낀 식겁할 거 아니야. 그러면 세봉이가 승철이 오빠 알아여? 이런식으로 하면 저새낀 꺅! 최승철 죽었는뎁?! 이러면서 지리겠지. 그럼 화장실 간 남자가 돌아오는거야!! 남자가 누구랑 얘기해요? 하면 세봉이가 시치미떼는거지. 누구? 나 별 말 안했는데?"
"오오!! 그럼 박준호가 ㅊ…최승철이랑 얘기 했잖아!! 하면 최승철이 누군데요? 여기 있잖아!!!!! 아무도 없는데요?? 혹시 귀신보세요??? 이러면서 미친놈 만들고 튀어버려. 그럼 내가 존나 갈구고 협박하고 갈게"
귀신모드 풀어도 안 보일만한 남자를 찾으라고? 대체 보이는 기준이 뭔데? 입을 막은채로 내가 조용히 그들에게 물었다.
"웬만한 사람들이 귀신보인다고 했지. 왜 그런줄 알아? 시발 매일매일이 존나 피곤하거든. 피곤함 없이 컨디션 좋거나 정신 말짱한 사람들은 안보여. 근데 그런 사람 드물지"
"멘탈이 썩어빠졌어도 컨디션 좋으면 안보여. 이런 건 감정의 문제이기도한데 정신 말짱한 멘탈 쓰레기 거짓말쟁이에게 '너 이거 거짓말 했잖아!' 식으로 찔러보면 소시오패스 아닌 이상 멘탈 흔들리게 되있어. 그러면 기가 약해지는거야"
벤치 위에 살짝 걸터 앉은 김민규가 어딘가를 노려보고서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지나다니다보면 우리가 살아있을 때 쓰레기라고 생각했던 놈들 있잖아. 그런 놈들이 내가 안보인다는 건 지금 정신이 말짱하단소리잖아. 멘탈도 건강하고"
"…응"
"그걸 아는 순간 속에서 천불이나. …씨발 난 죽기 전에 저딴 놈한테 속았나. 내 친구들은 저런 놈한테… 속고있나. 마치…"
김민규는 누군가를 향해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최승철은 여전히 박준호 무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동선을 파악하고 있었고 전원우도 심란한 듯 다리를 떨어대고 있었다.
덩달아 무거워진 분위기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들릴 듯 말듯 김민규가 나즈막히 작은 목소리로 '…저 새끼 처럼' 이라며 중얼거렸다.
"세봉아. 여기 있었네"
내가 앉아 있는 벤치 앞에 쪼그려 앉아 날 올려다보는 지수 선배가 싱긋 웃어보였다.
그 목소리에 최승철, 전원우, 김민규는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고 물론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승철이 형. 나 방금 귀신모드 풀었는데 이 자식 우리 못보는 것 같아"
들려오는 원우의 말에 옳다꾸나 하고 난 지수 선배의 팔목을 덥썩 잡았다.
"ㅅ, 선배…! 저 좀 도와주세요!!"
"…어?"
"그게 그러니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지수 선배는 턱을 매만지더니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뭐… '오늘 몇번 번호를 따였지만 홍지수가 제일 나은 것 같아. 아, 맞다 너 아까 내 번호땄었지? 미안해 너보단 이 사람이 좋아' 식의 뉘앙스를 풍기고 싶다?"
"…선배 설명 잘하시네요"
"그럼 난 좀 비꼬다가 잠시 화장실 갔다 나오면 되는거지?"
"네네! 고마워요!! 빨리 끝내고 올라가서 크림 생맥주 마셔요!!"
"그래 그래~ 가보자"
이야, 그럼 난 김세봉 어장 속의 최상급 물고기 역할이네? 어이없다는 듯 웃는 지수 선배에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도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게 다 최승철 때문이야…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 쉬는데 손에 전해져오는 온기에 잠시 정신이 멍해졌고, 깜짝 놀라 지수 선배를 올려다보면 내 손을 잡은 채로 예쁘게 웃고 있는 그가 보였다.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난 좋아"
얼른 가자며 내 손을 잡아끄는 지수 선배에 당황스러웠지만 제대로 해 준다니 든든하기까지 했다. 뭔가 뒷통수가 따가운 느낌이었지만 난 자유로운 나머지 오른손을 등 뒤로 해 내 뒤에 있을 귀신 3인방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남자 존나 마음에 안드네!!!!! 그래도 고맙다 세봉아!!!! 바로 따라갈게!!!"
시끄러운 최승철의 목소리에 피식 하고 웃음이 났다. 그래, 저 정도면 양호한 편이지. 원수를 눈 앞에 두고 달려나가지 않은게 어디야.
가장 먼저 문제는 저 무리에서 박준호를 어떻게 떼 내냐 였다.
"선배 일단 선배는 저기서 아이스크림 두개만 사다주세요. 제가 어떻게든 친구들한테서 떼낼게요. 그럼 와주시는거에요"
"치밀하네. 근데 나 손 놓기 싫은데"
"…가, 갔다가 다시 잡으면 되잖아요 하하…"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갑자기 애처럼 구는 지수 선배에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났다. 차라리 이지훈이나 권순영을 데려왔어야 했다… 정한 선배면 금상첨화고……
야 이 권순영아… 맞다니까… 이 선배 나 좋아하는 거 같다니까……
지수 선배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고 난 그 쪽으로 다가가 어슬렁거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발견한 박준호가 내게 다가왔다. 멀리서도 들려오는 친구들의 웃음소리는 데자뷰 현상을 일으켰다.
"왜 연락 안했어요?"
"그냥요. 근데… 저기 친구들이에요?"
"네! 부를까요? 같이 놀아요!!"
"아니요. 킥킥 거리는 소리가 거슬리네요… 기분나쁠정도로. 그냥 갈게요"
"아, 아니 잠시만요…!"
야! 너네 먼저 가 있어!! 전화할게!! 쩌렁쩌렁 외치는 박준호에 주둥이를 근처에 있는 돌로 틀어막고 싶었지만 그의 말에 친구들은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떴다. 뭐야, 꼴에 우두머리임? 짐승이 따로없네.
아이스크림을 사고 상황을 지켜보던 지수 선배에게 기지개를 펴는 척 오케이 사인을 보냈고 그가 다가왔다. 박준호는 나와 지수선배를 번갈아보더니 상황이 이해가 안가는 듯 당황한 눈치였다.
"자기야, 누구에요? 아는 사람?"
"네. 인사해요, 제 남자친구에요"
얼빠진 박준호의 모습은 캡쳐감이었다. 캬, 이런 연극에 있어서 지수 선배랑 손발이 척척 맞는구나!!! 선배랑 연극동아리나 들까봐!!!
"남… 남자친구 있었어요?"
"네. 없다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아, 아까 번호 준 사람이 이 사람이에요? 너무 섣부르셨네. 세봉이가 예뻐서 대쉬한 거일거 아니에요. 그쵸?"
"……"
"그럼 왜 남자친구가 있을거란 생각은 못했을까… 아님 그 정도로 자신이 있었나… 흠… 내가보기엔 그냥 말죽거ㄹ… ㅋ, 크흠…!!"
얼굴 색 하나 안 변하고 아무렇지 않게 비꼬는 지수 선배에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나올 뻔 했다. 박준호는 시뻘개진 얼굴로 금방이라도 욕을 짓걸이기 충분한 분위기를 내 뿜고 있었다.
그 순간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렸고 내 옆에는 지수 선배를 보며 웃고 있는 최승철이 보였다.
"오빠! 여기 아이스크림 묻었어요"
"아… 잠시만 기다려요! 씻고 올게. 둘이 얘기 나눠요~"
아니 사라지는 모습까지 뭐가 저리 웃겨. 방정맞게 웃어버릴 뻔 한 내가 목을 가다듬고 뻔뻔한 얼굴로 박준호를 바라보았다. 물론 예상대로 지수 선배가 가자마자 그는 나에게 욕짓거리를 시전했다.
"씨발 아주 나를 갖고 놀았어…? 야 이 미친년!!!!"
"내가 갖고 놀아요? 하루종일 번호따고 다닌 여자들한테 다 차여서 마지막에 날 본게 반가웠던게 아니고?"
"존나 씨발 걸레같은년…"
"넌 마지막에 하는 욕이 참 한결같다? 할 줄 아는 욕이 그거 밖에 없냐?"
갑작스레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박준호가 고개를 두리번거렸고 소리를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ㅊ, 최승철…??
"승철이 오빠 알아요? 뭐 죄 지었나… 꼴사납게 넘어질 것 까지야"
"캬… 세봉아. 넌 팔자가 왜 그리 꼬여서 이런 질낮은 놈을 상대하니. 내가 지금 참다 참다 고소를 안하는거에요. 사실 얘가 예전에 나를…"
"최승철…!?? 니가… 니가 왜 여기에…!!!"
"어허, 난 여기 있으면 안되나? 왜지? 아니… 내가 못있을거라고 생각하는거야? 왜~?"
"…아니 씨발… 그, 그러니까… 왜…"
최승철은 표정을 굳히며 한발자국씩 박준호에게 다가갔고 그는 새파래진 얼굴로 벌벌 떨고 있었다.
"니가 날 죽여서?"
난 미동없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저 멀리서 지수선배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최승철은 나뒹구는 박준호의 앞에 쪼그려 앉아 그를 마주하고 멱살을 잡았다.
"나 죽이고 밥이 목구멍으로 잘도 넘어가디?"
어느새 다 온 지수 선배가 내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자기 친구분은 왜 저러고 있어?"
"몰라요, 나도 무서워서 그냥 여기 앉아있어요"
"ㅈ, 지랄하지마…!!!! 너 갑자기 그게 무슨 태도야… 여, 여기 최승철이……!!"
"아까부터 나한테 갑자기 욕을 하더니 계속 '최승철' 타령이에요. 오빠, 그냥 가요 나 걸레라는 소리도 들었어"
"…그걸 들었으면 그냥은 못가지"
인상을 찡그리던 지수 선배가 자리에서 슥 하고 일어났다.
최승철을 통과해서 박준호의 앞에 선 지수 선배에 그의 멱살을 잡은 최승철이 손을 놓았고 박준호도 두려움에 찬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선배는 잠시 두리번 거리더니 이내 말릴새도 없이 그의 가슴팍을 걷어 차 바닥에 쓰러트린 후 그의 흉부를 지긋이 눌렀고 박준호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여기 잘 못 누르면 죽어요. 어때요, 죽을 것 같아요?"
컥컥 거리며 바둥거리는 박준호가 어쩔 줄을 몰라했지만 난 등을 지고 있는 지수선배의 표정은 볼 수 없었다.
그가 웃고있을지, 울고 있을지. 아니면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을지.
그 어떤 표정을 짓는다해도 내게 보이는 그의 뒷모습은 그 어떤 누구보다도 무섭고 싸늘했다.
"내 사람 건드릴때에는…"
"……"
"죽을 각오 하는거에요."
식겁한 건 나뿐만이 아니라 최승철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살아 생전 저런 지수선배는 본 적이 없는데!! 뭐시여, 순한 양이 이성의 끈을 놓치면 저렇게 되는겨?
이 이상 했다간 정말 큰일날 것 같아서 자리에서 일어나 선배를 말리려는데 다행스럽게도 선배가 박준호의 가슴팍에서 발을 뗐다.
ㅇ, 오빠… 어색한 목소리로 그를 부르자 그는 내게 고개를 돌려 살며시 웃어주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선배의 미소에 나도 모르게 안심을 하고 있었다.
"미안해 이런 꼴 보여서. 얼른 가요"
"네… 아, 맞다 박준호씨?"
그는 이미 제 정신이 아닌 상태인 듯 했다. 연신 울면서 쿨럭대기 일쑤였고 가슴을 붙잡은 채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난 물론 박준호에게 말하는 척 하며 최승철을 바라보았다.
"뭐, 혹시 아까 타령하던 최승철씨를 보면 먼저 간다고 좀 전해줘요~ 셋이서 대화 못해 미안하네. 난 도통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어서~"
어깨를 으쓱거리며 능글거리는 날 보더니 최승철이 어이가 없는지 실소를 터트렸다.
"야!! 김세봉!!"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최승철의 목소리에 잠시 뒤를 돌아보니
최승철이 손가락을 날 가리키고 있었다.
저게 뭐 하는가 싶어 의아한 표정으로 날 보는 지수 선배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최승철을 계속 바라보면,
"뭐야 저게… 하하"
왜그래 세봉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잘 못봤나봐요.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어 내게 보내는 최승철이 보인다.
자기도 웃긴지 빨리 가라고 훠이훠이 손짓하는 최승철에 난 씨익 웃으며 지수 선배를 이끌었다.
한참을 힘들어하던 박준호가 정신을 차렸고 힘겹게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이내 옆에 자리하고 있는 최승철을 보더니 다시 비명을 질렀다.
"난 안갔어."
"…주, 죽은 새끼가… 왜 여기 있는거야… 대체 왜……!!! 아니면… 그 때 안 죽은건가……?"
"죽었어 씨발새끼야. 니가 죽였다고"
"그럼 여기 왜 있어…!!!!!!!!"
시끄럽게 빽빽 대는 박준호가 시끄러운지 귀를 틀어막던 최승철이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 꽃았다. 닥쳐 임마 시끄러워.
얼떨떨한 듯 고개를 도리질하던 박준호의 멱살을 다시금 들어잡고서 최승철이 섬뜩한 얼굴을 들이밀었다.
"니 새낀 내가 꼭 죽인다. 그 때까지 죽지마라"
"……"
"김세봉 건드릴 생각도마라. 그럼 진짜 니 명 재촉하는 꼴일테니까"
그를 내 팽겨치고서 최승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을 못잇고 어버버 거리는 동안에 순식간에 승철은 사라졌고 그 곳엔 만신창이가 된 박준호만이 남아있었다.
"세봉아 많이 늦었네?"
"하하, 죄송해요 선배… 언제 오셨어요?"
"너 뛰쳐나갈 때 바로 들어왔어 임마…"
"웬일로 이지훈 멀쩡하냐. 권순영은 째려서 자는데"
테이블에 엎드려 있으면서도 맥주잔을 놓치 않는 권순영의 집념에 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별 일 없었어…?"
소주를 홀짝대던 이지훈이 정한선배와 얘기하는 지수선배를 흘끔 보더니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아… 최승철 이야기를 해야하나… 또 복잡해 질 것 같고 지수 선배도 말 할 기미가 안보이니 난 머리를 긁적이다 그에게 웃어보였다.
"응. 그냥 바람 쐬고 왔어"
"진짜지?"
"뭘 바래?"
"…아니, 아무것도"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예쁘게 웃으며 (물론 내 눈엔 정한 선배가 더 예쁘다) 술을 마시는 지수선배를 보자 아까의 일이 불현듯 스쳐지나갔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사람을 밟는 그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친구는 끼리끼리… 아냐, 정한 선배도 그럴리가 없어…
"아씨… 권순영을 데리고 갔어야 해"
"뭐? 뭐라 중얼거리냐"
"아~ 몰라몰라!!! 내가 요즘 유행하는 폭탄주 제조법을 알아왔는데 말이야!!!"
술 마실 땐 생각하며 마실 수 없다. 모두가 떠나버리고 닫힌 공간속 오직 우리만이 남은 듯이 그렇게 떠들어댔다.
내일이면 새록새록 떠오를 기억이 지금만큼은 잊고 싶은 지난 일이므로 난 그렇게 계속 뒷감당이 안될 정도로 마셔댔다.
능글맞게 웃으며 장난치던 최승철의 화난 표정을 더 이상 보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무서웠으며 한편으로는 그가 측은했다.
난 초여름에 그들을 처음만났고 그들에 대해 아는게 얼마 없다. 때문에 그들끼리 서로 공유한 과거에 끼어드는 것이 미안하고 또 주제넘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
가끔씩은 물밀려오는 섭섭함에 너희들끼리 다 아는 듯 얘기하지말고 내게도 말해달라고 떼를 쓰고 싶기도 하지만… 좋은 기억거리들이 아님에 아픈 과거를 끄집어 내게 하기 싫기도 했다.
"…망했다… 집에 어떻게 가지…"
"야야!! 그런 거 걱정하면서… 너 작작마셔라 김세봉??"
김민규의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그 새낀 죽어도… 아니, 두번 죽어도 나한텐 말 안해줄거야…
최승철의 과거도 오늘 얼떨결에 알게 된 거고 매일같이 일정한 시간에 어디를 나갔다 오는 전원우도 무슨 일이 분명 있는 거고… 자꾸 보면 미련만 남는다고 중얼거렸던 김민규도…
술김이라 그런지 별로 생각안하려고 했던 감정들이 하나둘씩 울컥 가슴속을 헤집어 놓았다.
"서운해… 진짜 서운해…"
"뭐가 그렇게 서운해"
몽롱한 정신속 나즈막히 울러펴지는 기분좋은 중저음이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아무리 여름이래도 밤공기는 차갑기 마련인데… 불어오는 바람에 얼굴은 조금 시릴 지언정 온 몸에 퍼지는 온기에 누군지 모를 따뜻한 등.
그 편안한 감각에 난 더욱 더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세봉아 추워? 다시한번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물론 정신은 말짱하지 않았고 몸도 마음도 술 때문에 엉망진창이었다.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챘을 땐 난 이미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아있었다.
"…어떻게 왔어 원우야…"
"술집에는 멀쩡한 사람이 없잖아. 승철이 형은 아까 일 때문에 생각할게 많은 듯 하고 민규는 기분이 안 좋아보이길래 내가 왔어"
"김민규는 왜 그러는데…"
"음… 모르겠는데? 민규한테 물어보면 되지?"
"넌 알잖아"
전원우는 아무 말이 없었다. 취중진담. 그래, 이런 걸 취중진담이라고 하지. 평소에는 부끄럽고 민망해서 참아왔던 말들 이제 하는거야.
솔직히 말하면 내가 이런 걸 물었을 때 '내가 그걸 왜 너한테 가르쳐 줘야하는데? 니가 뭔데?' 라고 말해올까 너무 겁이났다.
맞아, 난 니들한테 뭣도 아냐. 그냥 어쩌다가 집을 같이 쓰는 '산 사람' 일 뿐이지. 그게 내가 아니어도 됬었던. 그 때 우연히 지나가는 사람이 나였기에.
하지만 아니다. 그런 마음이 계속 됬다면 난 당장 니들보고 나가라고 했을거야. 다른 사람이나 알아보라고.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난.
"특별하게 생각해"
참아왔던 말을 내 뱉자 그와 동시에 울음이 터졌다.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낀 전원우가 우뚝 그 자리에 멈춰섰고 당황한 듯 내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를 들으니 더욱 더 서러움이 밀려왔다.
"같이 사는 난 병풍이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니들끼리는 다 공유하면서 나한테 대놓고 숨기는 건 또 뭐야…!"
"세봉아 그게… 미안해, 다 미안해 울지마 응?"
"유치하게 보일까봐 들려도 모르는 척 귀를 막았어! 오늘 최승철도… 김민규가 갑자기 모습을 감추자고 말했을 때 귓속말 하던 너도!! 나도 이해하고 오늘처럼 너흴 도와줄 수 있었던거잖아…"
"……"
"니들한텐 난 그냥 집빌려주는 호구지…? 개새끼들…"
정신없이 서러움을 토로하고 욕을 했던것까진 기억난다. 하지만 그 이후로 아마 필름이 끊겼던 것 같다.
눈을 떠 보니 익숙한 내 방 풍경이 드리웠고 난 아픈 머리를 부여잡은 채 침대에서 힘겹게 일어났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형 술쟁이 일어났어"
"오오, 술병났니 세봉아?"
"씨발 머리 울려 다닥ㅊ……!!"
"아 씨발 더러워!!!!!! 저 미친년!!!"
그래 그 속끓음은 울렁거림이었구나.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가 약 10분동안 변기에게 몹쓸짓을 한 나는 입을 헹구고 양치를 한 후 다 죽어가는 몰골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어이쿠 우리 세봉이가 술병이 제대로 났네? 그래 이제 속은 괜찮냐?"
"닥쳐라 최승철… 아, 죽을 것 같다"
"세봉아 얼른 와서 해장해"
"역시 세봉맘!! 원우가 짱이야!!"
"으 지입으로 세봉맘이래 쯧…"
도움 안되는 것은 닥쳐라. 해장국을 입에 떠밀어넣자 속이 뜨끈해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항상 원우는 밥 먹을 때 같이 있어주었는데 (누구든 밥을 혼자 먹게 두지 않는 것이 본인 철칙이랬다) 앞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물과 반찬을 얹어주는 그를 보며 불현듯 어제의 일이 스쳐지나갔다.
'특별하게 생각해'
'유치하게 보일까봐'
'집 빌려주는 호구지?'
순간적으로 숟가락을 떨어트릴뻔 했다. 식은 땀이 뻘뻘났다. 이럴 땐 기억안나는 척 하는거야 기억 안나는 척. 닥치고 기억안나는 척 하는거야.
"세봉아"
"어, 어??????"
깜짝 놀라 물을 던질 뻔 한 내가 가까스로 덜덜 거리는 손에 힘을 주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고 그런 내가 웃긴지 전원우가 피식 하고 웃었다.
"혹시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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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수목토토일'… 이재명 정부, 주 4.5일 시대 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