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언제까지 저 꼴을 보고 있어야 하는 걸까... 이 물음도 어느새 반년을 그려나가는 걸 보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아니, 없을 것이다.
올해 초 때까지만 해도 내가 알던 권순영은 입에서 담배와 욕을 버리지 못 했고, 교실에서 보는 얼굴은 가히 드물었으며, 오토바이와 음주를 사랑하던 순도 100% 개양아치였다. 재수없게도 권순영의 부모님들은 한없이 외아들의 횡포를 눈감아주고 이해해주셨다. 그러니 저렇게 또라이짓만 해대지. 권순영의 우주는 오직 권순영위주로 돌아갔다. 그 새낄 볼 때마다 늘 든 느낌은 지구중심설이, 아니 순영중심설이 맞는 것도 같았다. 한없이 착한 부모는 권순영에게 금수저를 쥐어주었고 권순영은 그걸 가열차게 휘둘렀다. 하지만 그 누구도 권순영에게 질책 할 자가 없었다. 모두 권순영, 그 세 글자에 끔뻑죽었기 때문이었다.
권순영은 말 한마디로 대단했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내 증언으로는 내 14살 인생 처음으로 싸가지가 없다라는 걸 피부로 느꼈으니까. 실실대는 눈꼬리 밑으로 욕을 지껄이는 어린 권순영의 모습은, 어린 내가 봐도 사악했다.
사실, 나도 그닥 모범적이진 못한 애라 그런 권순영이랑 잘 어울려 다녔다. 춤을 좋아하던 녀석에게 음악을 틀어주면 권순영은 지금이 딱 삘이라며 1교시가 막 끝났음에도 정문으로 걸어나가 당당히 땡땡이를 치던 놈이었다. 그리고 권순영네 집 본가 지하실에서 밤새도록 노래, 춤을 추고 저녁쯤 다른 친구들이라든지 셔틀들이 사온 술로 지새웠었다. 그때가 재밌었지, 그래. 그립다는 거다 그때가.
"이름아, 넌 좀 하루만 예뻐봐라."
"..."
"맨날 예쁘지 좀 말고."
교실 구석에서 공부를 하는 성이름 맞은편에 앉아서 하늘로 솟아 꺼질 줄 몰랐던 노란 머리에서 급하게 까맣고 단정한 머리로 바꾼 권순영이 눈웃음을 살살치며 말한다. 성이름이는 대꾸도 안 한 채 책에 시선을 박는다. 어쩜 이렇게 도도할 수가... 도도새니? 양아치적에도 애용하던 개그를 성이름이에게 치니 그제야 성이름이 권순영을 흘겨본다. 그러면 권순영은 그러는 것마저 예쁘다고 난리를 친다.
손가락이 모두 오그라들어 미칠 것 같다. 저러는 걸 반년 째 봐와도 도통 적응이 되질 않는다.
개양아치 01
w.권권
"이름아! 다음 쉬는시간에 또 올게!"
적당한 통의 바지자락을 휘날리며, 또 성이름이에게 손뽀뽀를 휘날리는 권순영의 허리를 눌러 밖으로 보냈다. 더이상 그 광경을 보았다가는 눈이 녹아 내려버릴 것만 같아서가 이유였다.
"아파! 미ㅊ..."
권순영이 헉, 하며 입을 닫는다. 그리고 성이름 한 번 슥 훑어보고는 다시 내게 시선을 맞춘다.
"야 이지훈, 욕 나오게 하지 말랬지."
"아 씨발 미친새끼야, 말투 존나 극혐이야 니."
"여기서 욕 하지 마. 이름이 귀 닳아."
그리고 다시 성이름을 쓱, 본다. 눈꼬리가 하늘을 향해 치닫는다. 으휴 답없는 새끼...
"권순영, 승철이 형이 이번 모임엔 꼭 오래. 너 벌써 5번째 피하고 있잖아."
"싫어. 승철이 형 술 존나 맥이잖아. 존나 골골대다가 다음날 학교 못 와서 이름이 못 보면 니가 책임질래?"
"아 소름끼치는 새끼;;;;;"
팔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아 슥 문질렀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권순영은 연신 이름이, 이름이 타령이다. 아 진짜 어떡하지 이 새끼? 보면 볼 수록 답이 나질 않는 것 같다.
"아... 벌써 아픈 것 같아..."
"너 안 마신지 몇 개월은 됐는데 웬 지랄."
"이게 바로... 상사병인가...?"
"...으 시발."
가볍게 권순영의 등을 툭 밀어 당장 반으로 가라 타일러도 권순영은 창문으로 성이름을 향해 하트를 뿅뿅날리는 것을 멈추질 않는다. 결국 최후의 카드로 너 정체 말한다? 라고 뱉으니 권순영이 눈이 동그래져 절대 그것만은 안 된다며 울상이다. 그러기 싫으면 반으로 꺼지라 하니 그제야 발걸음을 돌린다. 저 병신... 뒷모습이 너무 처량해 차마 직접 입으론 올리지 못 했다.
*
"야 이지훈! 우리 바로 옆ㅂ..."
3월, 막 반이 배정되었을 때였다. 나에게 말을 건네다가 갑자기 권순영이 입을 다물지 못 한 채로 다른 곳을 응시했다. 그리곤 불안한 듯 손톱을 막 물어뜯었다. 뭔가 싶어서 뒤를 돌아보니 그저 평범한 아이들 무리였다.
![[세븐틴/권순영] 개양아치 01 (부제 : 또라이?)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10/03/4/3552fda0441395bb7858893d1dba8ce7.gif)
"야, 쟤 이름 뭐야?!!?!??!"
"? 누구."
"저 시발 니 옆분단 쟤!!!!!!!!!!!"
"몰라."
"모르면 알아 와!!!!!!!!!!!!!"
내 등을 떠미는 권순영 때문에 나는 그때 실수로 권순영의 그 아이의 팔을 툭 쳤었다. 그냥 건조하게 아, 미안 이라 뱉으려는데 갑자기 권순영이 튀어와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내가 시발 이름을 알아 오랬지, 애를 치고 오라 그랬냐????"
"시발 니가 날 처 밀었잖아!"
"오, 이지훈 닥쳐."
저 씹새끼가...
권순영은 날 쥐어흔들다 바로 놓아버리고는 바로 그 아이를 향해 눈을 돌렸다. 한껏 당황해 보이는 그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릴 번갈아가며 보고 있었다. 그런 그 아이를 바라보는 권순영의 눈빛은 실로 처음 보는 그것이 느껴졌다.
아무리 음주와 가무를 즐겼다고 해도 권순영이 이상하리만치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이 여자였다. 별 무언갈 하지도 않았는데 꺅꺅대는 걸 들으면 기분이 잡친다 그랬나, 암튼 여자아이들의 아양을 도통 받아주질 않았었다. 그렇다고 여자 연예인을 보는 것도 아니었고, 설마 게인가.. 싶었던 생각도 했었는데, 그건 아니었다라는 걸 그때 알았다.
"저... 그... 너... 그 뭐지...? 그..."
"이름 븅신아."
"알고 있었어, 닥쳐 이지훈. 그 그러니까, 꼬...꼬마 숙녀아가씨...? 이름이... 뭐니...?"
와 시발.
내가 저 말을 21세기를 살면서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듣고 어이와 정이 모두 털려 한심하단 눈으로 권순영을 쳐다보았는데, 더 센 오오라가 느껴져 고개를 돌렸을 땐, 그 아이가 세기말적인 표정으로 권순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만 봐도 읽을 수 있었다. 이 새낀 뭔가, 왜 내게 지랄인가, 라는 말이.
입을 열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는 바람에 정적이 길어졌다. 권순영도 내심 민망했는지 침을 잔뜩 삼키다가 갑자기 그 아이의 의자에 걸린 마이를 잡아 들었다. 그리고는 클립형 이름표를 툭 떼더니 저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권순영, 이 세글자가 떡 하니 박혀있는 이름표를 그 아이에게 내밀며 말한다.
"나랑 결혼하자."
진정 미친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