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편지 01 |
경수가 자꾸 풀리는 운동화의 끈을 고쳐 맸다. 크나큰 짐짝을 등 뒤로 맨 경수의 등짝에는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땀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여기 어디였던 것 같은데. 라며 종이에 적혀 있던 주소를 쳐다보던 경수가 어느 낡은 한 파란색 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이었다. 스무 살이 된 경수가 그토록 찾던 그 집. 유명한 작가이자 경수가 그토록 동경하던 윤 교수의 집. 경수는 이곳에서 윤 교수의 첫 번째 제자 중 한명으로서 지내기로 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저 도경수라고 하는데요.”
초인종을 누르자 앳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을 가다듬고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렸다. 파란색 대문은 꽤 허름했지만, 그 앞은 꽤나 컸다. 윤 교수의 담담하면서도 소박한 성격이 그대로 나타나는 마당의 한 켠에 있는 텃밭에서 호수로 물을 주던 여자가 경수를 ‘윤 교수님은 지금 출장 중이세요. 아마 내일쯤에 부산에서 올라오실꺼에요.’ 라며 친절하게 말을 해왔다. ‘ 아, 네’ 라며 고개를 끄덕인 경수가 자신을 가정부라고 소개하는 여자의 지시에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여기가 경수군 방이에요. 교수님 방이랑 교수님서재는 1층에 있고요. 경수군 맞은편에 있는 문은 교수님께서 특별하게 꾸며 놓은 신 작업실이에요.”
가정부가 깔끔하게 정리를 해놓은 방 안 이였다. 그 방에 가방을 내려놓은 경수가 뻐근한 어깨를 한 번 돌렸다. 이 모든 상황이 꿈만 같았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큰 용기를 가지고 윤 교수님께 편지를 보낸 일이 지금 경수가 이곳에 발을 디디게 만든 크나큰 사건이었다. 분명 답장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보낸 시간이 2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교 진학을 앞두고 어찌해야하나 하는 고민을 하는 경수에게는 잊고 있던 편지가 하나 도착했다. 그 하얀색 편지봉투를 펴보니, 하나는 윤 교수가 재직 중인 대학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했다는 반가운 편지였고 또 다른 하나는 윤 교수의 제자가 되기를 바란다는 달콤한 편지였다.
“아, 그리고 편지에서도 보셨다시피 경수군 말고도 한 학생이 더 있어요. 잠시 외출한 모양이에요. 나중에 살갑게 인사라도 해봐요.”
윤 교수가 처음으로 받아들인 제자는 경수와 또 다른 학생이었다. 이미 편지에 적혀 있던 내용이였던터라 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오면서 피곤했을 텐데 얼른 씻고 내려오세요. 밥 먹어야죠.’ 라며 살갑게 웃어오는 식모였다. 알겠다는 경수의 말에 그럼 얼른 내려오세요. 라는 말을 한 가정부가 경수의 방문을 닫고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숨을 돌리겠다는 듯, 구김 하나 없는 자신의 침대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경수였다.
* * * * *
자신을 ‘박하나’라고 소개한 식모의 따뜻한 밥을 먹고는 경수는 다시 자신의 방으로 올라왔다. 경수가 자신의 방문을 들어오기 전에 또 다른 제자라던 그 사람의 방이 궁금했다. 하나의 말을 빌리자면 하얗고 완전 순하게 생겼다고 약간 강아지 같은 눈매를 하고 있다고 한다던데. 아직도 그는 외출인 모양인건지 2층은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데. 뭐 어때.”
한 번 궁금하면 끝을 보는 경수의 성격인지라, 결국 꾹 참고 있던 호기심이 경수를 경수의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적막한 2층 복도에서 경수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경수의 옆방인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경수는 자신의 옆방에 서서 마른기침을 두어번했다. 그리고는 나름 예의를 갖춘다는 듯한 경건한 얼굴로 방문을 두 번 두드렸다. 역시나,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는 방 안의 소리에 경수는 안도하며 조심스럽게 그의 방문을 열었다.
"우와"
자신의 옷들과 간단한 책 몇권만을 가져와 별로 정리할 것이 없었던 경수의 방과는 달리, 그 사람의 방은 국문학과 관련된 책으로 꽈악 차있었다. 또 법도 공부하는 듯 법전도 몇개가 보였고, 정치학 쪽과 관련된 책들도 책장 안에 여러개 꽂혀 있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듯 해보였다. 나름 같은 제자라고 들어왔는데, 이유 모를 위압감과 주눅감이 밀려오는 경수가 입을 삐죽였다. 안경도 쓰는 듯, 어떠한 글씨들이 적혀 있는 종이들 사이로 그의 뿔테 안경이 놓여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그의 의자에 앉아서 뿔테 안경을 써 본 경수가 앞에 놓인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머리를 한 번 만져보았다. 유치하게 알이 크면서도 테가 굵다. 요새는 테가 얇은게 유행이라고 말하던 세훈이가 생각이 났다. 짜식, 나 없다고 고향에서 질질 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혼자 피식 웃던 경수가 썼던 안경을 다시 그 책상 위로 내려놓으며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편지지를 보았다.
"...에게?"
이름은 적혀 있지 않은 채 달랑 ‘ 에게’라고 적혀 있는 편지지였다. 그 편지지를 들며 뒷장을 보아도 앞 장을 보아도 아무런 글씨가 적혀 있지가 않다. 편지를 쓰다가 급하게 나간 걸까. 한 쪽에서는 뚜껑도 닫히지 않은 펜이 놓여 있었다. 그런 펜의 잉크라도 마를까 뚜껑을 닫은 경수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흠, 아직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왠지 딱딱할 것 같았다. 특히 경수가 관심이 없는 저 정치관련 기사들의 스크랩북을 보면 말이다. 1층에서 경수를 찾는 하나의 목소리에 경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의 방에서 나간 경수가 1층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 * * * *
"그럼 경수군 부탁 좀 할게요."
‘집에서 쭉 나가다보면 오른쪽에 세탁소가 있어요. 아마 윤 교수님 댁에서 왔다고 하면 알아들을꺼에요.’ 라는 말과 함께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 하나에게 괜찮다며 웃으며 경수가 신발을 신었다. 어제 엄마가 서울에 올라간다고 뽀송뽀송하게 세탁까지 해 준 운동화였다. 아까 길을 찾느냐고 조금 더러워진 운동화를 살짝 털어낸 경수가 현관을 나섰다. 들어올 때 보아왔던 거지만 마당이 꽤나 컸다. 하긴, 우리나라에서 윤 교수하면 알아주는 교수였다. 문단에서도 유명한 그였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경수의 마음을 일렁이게 만들었다. 경수가 글을 쓰게 된 계기 또한 윤 교수의 작품을 읽고 나서였을 정도로 윤 교수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아,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신발을 신던 경수에게 뭐라고 하나가 말을 해주었던 것 같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하나의 말 좀 잘 들을걸 그랬다. 굳게 닫혀있는 현관문을 아무리 봐도 어떻게 여는 건지를 모르겠다. 하나가 쥐어준 열쇠로 일차적인 문은 열었는데, 대체 어디를 열어야하는지 모르는 2차 문이 경수를 멘탈붕괴상태로 몰아넣었다. 아무리 보아도 여는 곳이 없는데, 한숨을 푹 내쉰 경수가 결국 하나에게 가서 다시 물어보고 와야겠다. 그렇게 포기하고 등을 돌리려던 경수의 앞에 죽어도 열리지 않을 것 같던 그 문이 열렸다. 어? 라며 두 눈이 동그랗게 커져서는 그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는 것을 지켜보던 경수가, 그 대문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을 빤히 바라보았다.
"……." "……."
마당 안으로 들어오려던 그 남자는 대문 가까이에서 놀란 표정의 경수와 허공에서 두 눈이 마주쳤다. 넌 뭐야? 라는 표정의 남자가 경수의 위아래를 훑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아, 라는 작은 탄성과 함께 경수를 다시 똑바로 쳐다본다. 남자의 훑음에 기분이 나빠진 경수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남자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없이 서로의 두 눈을 쳐다보던 두 사람은 결국 경수가 눈을 다른 곳으로 내리면서 끝이 났다. 아무리 봐도 기분이 나쁜 시선이었다.
"……."
대문 밖으로 나가려는 경수를 향해 살짝 몸을 비켜준 남자는 경수에게 눈을 뗄 줄을 몰랐다. 자꾸 집요하게 따라오는 그 시선은 경수의 신경을 예민하게 긁기에 충분했다. 애써 그 시선을 모른 척 하며 지나가는 경수가 그 남자의 옆을 지나가면서 슬쩍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깔끔한 검은색 바지에 단화를 신은 그 남자는 꽤나 댄디해보였다.
그러나 그러한 댄디함과 이질적으로 그의 와이셔츠는 피 같아 보이는 빨간색이 드문드문 묻어져 있었고, 무엇보다도 경수의 후각을 자극적으로 건드린 건........폭약 냄새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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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와 백현이의 첫 만남이에요! 프롤로그에서 보셨다시피 백현이는 문단에서 촉망받는 인재였죠. 그러니깐, 프롤로그는 현재의 이야기에요. 결말은 어찌될까요..ㅎㅎㅎ
늘 응원해주시는 여러분 감사해요!! 깨져버리는 쿠크도 독자님들의 응원덕에 다시 한번 붙여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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