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한 비행기가 그려져 있는 커텐을 걷었다. 컴퓨터 옆 아메리카노의 향기가 좋아 저도 모르게 코를 킁킁 거렸다. 잠깐 낮잠을 자 뻗친 머리를 정리하고는 베이지 색의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4시 24분, 약속 시간은 앞으로 36분 후.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종인이 눈을 떴다. 침대 구석에서 경수와 눈을 맞추었다. 이내 입술을 부루퉁 내 밀며, 힘 없는 손등으로 매마른 눈가를 느릿하게 부볐다. 한창 경수가 푸르딩딩한 남방의 단추 마지막 부분을 막 채웠을 때였다.
ambitious 1
- Lemans
“견수우, 어디 가아.”
금방 경수의 시야에 까만 머리통이 들어 온다. 경수는 당황 않고 큰 두 눈동자를 도르륵, 도르륵 굴릴 뿐이었다. 종인은 여전히 졸린 눈으로 경수의 가슴팍에 붉게 달아오른 볼을 부볐다. 낮잠을 자서 그런지, 조금은 젖은 부드러운 잿빛 머리털이 경수의 눈 앞에 흩날렸다. 얼굴은 제법 애 티가 나는 종인임에도 불구하고 몸집은 경수보다 서너배는 컸기에, 버겁게 경수의 몸 위로 올라 탄 종인의 꼴이 조금은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끙끙 거리며 종인은 경수에게 애정을 갈구했다. 오늘따라 왜 그래, 응? 밥 먹으러 갈까? 점심도 안 먹었잖아. 도톰한 입술이 우물쭈물 움직였다. 한 없이 다정한 음성에 종인은 바르작 거리며 경수의 얇다란 허리를 끌어 안았다. 자칫 뒤로 나뒹굴 번한 경수가 식은땀을 흘리며 종인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아파, 종인아. 종인, 안 돼요.”
애써 채운 남방의 자그만 단추를 다시금 재 빠르게 푸르는 녀석의 손등을 경수가 제지했다. 큼지막한 손등을 찰싹 쳐 내자 금세 종인의 표정이 거뭇하게 변했다. 아, 조금 너무했나? 약간 벌개진 종인의 손등을 경수가 살살 문질렀다. 그러자, 칭얼거리는 종인의 목소리가 힘껏 커졌다. 견수, 가지 마. 나두 데리구 가. 니니도 데리고 가! 종인은 악을 쓰며 발을 동동 굴렀다. 경수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 한 종인의 뒷 목을 어루어 만지며 달랬다. 잠깐만 만나고 올 거니까, 사고 안 치고 가만히 있어야 돼. 알았지? 우리 종인이가 좋아하는 뽀로로 DVD도 많이 틀어 놓고 갈 게요. 뽀로로라는 소리에 종인이의 눈이 번뜩 뜨였다. 고개를 휙 쳐 올려 경수의 휜 눈꼬리를 조용히 바라보다, 이내 두툼한 아랫입술에 제 입술을 가볍게 부볐다.
“그깟 뽀로로 보다, 조닌이는 견수가 훠얼씬 좋아. 그러니까 가지 마아. 가지 말래두, 응?”
어이고, 우리 종인이. 그깟이라는 말도 쓸 줄 알아요? 지금 현재 상황에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을 만치, 경수는 바보같이 헤헤 거리며 침으로 번들번들 한 종인의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볍게 쓸었다. 정말이야, 아주 조금만 만나고 오겠다니까? 기다리고 있어. 나름 엄하다고 생각한 표정으로 허리를 뭉개고 있는 종인에게 덤벼 보았지만 쓸모 없는 짓. 이 번에는 목소리까지 내리 깔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아아, 종인아. 형 5시까지 친구 만나기로 했는데……. 제법 따뜻한 손으로 종인의 뒷 목을 주물럭 거리자, 끙끙 거리는 종인의 앓는 소리가 귓가에 쑤셔 박혔다. 갈 수록 어리광만 늘어가고, 화 내자니 너무 예쁘고…. 경수는 여전히 부루퉁한 종인을 바라보며 근심 아닌 근심을 내려 놓았다.
“흐읍, 후우……. 많이 기다렸어요? 동생 좀 달래느라 좀 많이 늦었어요.”
저 멀리에서 경수가 거센 숨을 내 쉬며 헐레벌떡 뛰어 왔다. 아니, 별로 안 늦었어. 그런데 우리 경수 동생도 있었어? 5시 반이 점짓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는 탓에 찬열이 눈살을 찌푸렸다. 마치 연인마냥 자연스레 경수의 자그만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근처의 커피숍으로 들어가는 찬열의 표정이 기분 좋아보였다. 안 본 사이에 어깨가 더 좁아진 거 같습니다, 경수 씨. 이러다가 없어지는 건 아닐까 모르겠네. 어, 움찔거리니까 더 좁아보여.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자꾸만 낄낄 거리며 경수의 심기를 콕콕 찌르는 찬열에, 경수는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이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다.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만 웃으라니까. 심통이 난 경수의 볼이 부풀어 올랐다. 친한 형제마냥 투닥투닥 거리는 둘은, 꽤나 오래 된 연인사이다.
ambitious 2
- Lemans
거의 5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보며 경수가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조심스레 종인의 어깨를 밀쳐냈다. 더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그이가 실망할 지도 모른다. 종인아, 종인이는 이제 다 컸지? 경수가 다시금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꼴까닥, 종인은 경수의 무겁게 꿀떡이는 목울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조니니 다 컸어. 다 컸으니까 견수 지켜 줄 거야. 여전히 보드라운 종인의 뒷 목에는 경수의 꽤나 큰 손바닥이 올려져 있었다.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따뜻하다 못 해, 땀이라도 날 것만 같았다. 경수가 매 마른 입술을 혓바닥으로 쓸었다. 오늘은, 형한테 있어서 정말 중요한 날이야. 종인아, 무슨 말인지 알아 들어? 그러니까, 경수가 아무리 형이랑 같이 있고 싶대도 어쩔수가 없어. 형도 당연히 우리 종인이 좋아하지, 무슨 소리인지 알아?
경수가 횡설수설 긴 말을 늘여 놓았다. 여전히 졸린 표정과 동시에 개구진 종인은 경수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 지 여전히 굳게 입을 다 물었다. 눈을 깊게 맞추더니, 약간 고개를 끄덕였다. 해맑았다, 경수의 표정이. 우리 종인이 최고야. 형 늦지 않도록 올게. 형 오면 우리 종인이가 제일 좋아하는 돈까스도 먹자. 알았지? 어째 종인의 표정이 의미심장했다. 애꿎은 남방 소매만 꼬물락 거리며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조금은 저리는 듯 하였으나, 이내 두 다리를 휘적이며 거실로 나가 종인이 제일 좋아하는 뽀로로 DVD 다섯 편을 꺼내 그 중 하나를 끼워 맞췄다. 기다렸다는 듯 펭귄이 뒤뚱뒤뚱 눈덩이를 굴리며 종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까 종인이 경수의 달아오른 귓가에 속삭였던 ‘그깟 뽀로로 보다, 조닌이는 견수가 훠얼씬 좋아.’라는 말이 무색해 질 정도로, 종인은 뽀로로에 한 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뭔가, 좋긴 좋은데 뭔가 꽁하다. 아까는 거짓말이었어, 종인아? 툴툴 거리며 경수가 종인의 옆에 사과를 깎아 놓았다. 함부로 주방 들낙거리면 안 돼, 저번처럼 또 접시 깨면 우리 종인이 다치잖아. 종인아, 듣고 있어? 끄덕끄덕, 건성하게 종인의 고개가 흔들렸다.
“형 정말로 가도 되지? 형 갔다 올게, 어디 가지 말구, 가만히 있어야 돼.”
“견수, 가지 마아. 조니니 두고 가지 마아.”
“아까 종인이 다 컸다고 종인이가 직접 말했잖아. 우리 종인이, 거짓말 하는거야? 형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랬지.”
거짓말 하느은, 사라암…… 종인의 말이 울적하게 젖어 들어갔다. 눈물을 글썽이며 제 남방 소매를 그러쥐는 종인을 떼어 놓느라 경수는 한 번 더 진땀을 빼고 말았다. 상기 되어 붉어진 종인의 볼에 입을 맞추며, 한 없이 다정한 웃음을 종인에게 흘렸다. 엉아가 맛있는 거 많이 사 올게, 종인아. 응? 뚝 하고. 울면 머리 아파요. 무릎을 조금씩 접으며 구겨진 컨버스를 고쳐 신고는, 조금씩, 가볍게 뒷걸음질을 쳤다. 경수가 자그만 손바닥을 한 번에 쫙 피며, 종인에게 살살 흔들어 보였다. 여전히 졸린 눈을 하고있던 그는, 아무 감정없이 마냥 경수를 바라 볼 뿐이었다.
“빨리 와, 조닌이는 싫어해. 약속 안 지키는 사람.”
칭얼대는 종인을 가슴에 묻어 둔 탓인지, 오늘따라 밖을 나서는 경수의 발걸음이 돌을 발목에 동여 맨 듯 무거웠다. 휴대폰을 꺼내 액정을 또렷히 바라 보았다. 5:17, 약속 시간이 몇 시였더라. 5시? 다리를 좀 더 재 빠르게 휘적이며 신호등을 아슬하게 건넜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은 듯 식은땀이 등줄기를 따라 줄줄 흘렀다. 약속 시간을 어기는 사람이 제일 비호감이라던, 그이의 말이 주마등 마냥 머릿 속을 훑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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