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ㅡ Written by.세모론
“트리클로버~ 트리, 트리클로버~~”
오랜만에 찾는 트리클로버였다. 그새 바뀐, 보라색과 검은색이 적절히 섞인 홈페이지의 세련된 디자인에 감탄 한 번 해주고, 이상한 음에 붙여 급 제작한 트리클로버 로고송(?)을 직찍방에 들어갈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불렀다. 어째 잠이 달아나고 정신이 더 맑아지는 기분이다.
저번에 있었던 팬미팅 후기가 궁금해서 한번만 접속해보고 그만 자자, 싶었는데 이거 참, 사진을 보고도 한참동안이나 잠 못 이루고 멀뚱멀뚱 깨있을 것만 같다. 연예인들의 고질병, 불면증이 나에게도 찾아 온건가? 아직까지 불면증은 없어 불면증을 호소하는 동료 가수들을 마음껏 비웃고 그랬는데. 꼭 제대로 잘 시간이 주어지면 잠이 오지 않는 청개구리 같은 내 몸뚱이였다. 에이, 불면증은 아니겠지. 설마. 아무튼 잠이 안 오면 밤새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 뒤적거리며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는데 오늘도 그럴려나. 아, 이제 뭐 할 게임도 없는데.
“팬미팅을 한 지……1일, 2일……아, 삼일 밖에 안 됐어?”
그 3일동안에, 폭풍마냥 몰아치던 스케줄에 치여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기계처럼 카메라 앞에 서서 지어낸 이야기들을 재밌게 말하고 노래 부르고, 그렇게 지냈다. 스케줄의 양이 어마어마해서 적어도 5일은 지난 줄 알았는데 일일이 세어보니 고작 삼일밖에 지나지 않았다니. 내 뇌에선 벌써 팬미팅의 기억을 먼 옛날처럼 흐릿하게 지우고 있었는데 말이다. 시간 드럽게도 안 가네, 거참. 빨리 주말이 왔으면 좋겠는데. 주말이 오려면 이틀이나 더 남았다. 으악, 끔찍해!
“뭔 놈의 사진들이 이렇게 많아.”
잊지 못할 팬미팅, 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클릭하고 쑥쑥 내리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사진마다 다 내가 멋지게 나와 그냥 사자성어 다다익선을 떠올리며 콧노래를 불렀다.
“어?”
손끝이 뜨거워질 정도로 미친듯이 내리다가 문득 낯익은 뒷모습과 머리통이 찍힌 사진을 발견했다. 어? 이거 김성규 아니야? 맞다, 김성규였다. 김성규가 왜 이 사진에 찍혔지? 뒷모습과 옆모습. 심지어는 정면까지, 김성규에 집중되어 있는 사진이 꽤나 많이 게시되어 있었다. 왜 김성규의 사진이 여기에 찍혀 있을까, 싶어 요리조리 머리를 굴리며 그 이유를 알아내려다가 이내 김성규가 트리클로버의 유명한 ‘성경’임을 알아본 사람들 때문에 팬미팅에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던 것을 나는 뒤늦게 생각해냈다. 그걸 잊고 있었다니, 나 바보인가?
그래, 알아본 사람들이 김성규 사진을 안 찍었을리 없지. 게다가 이 트리클로버의 아주 유명인사인데. 바로 안티로. 이제 김성규가 안티 짓을 때려치운다고 했지만 아직도 안티, 라는 단어만 나오면 이가 으득으득 갈린다. 빌어먹을 안티였던 김성규. 흥. 아, 기분 나빠졌어. 내일 만나면 완전 갈궈야지. 다른 가수들이 안티도 팬이잖아요, 환영합니다. 할 때 나는 안티 싫어요, 라고 아주 당당하게 말할거다. 그럼 김성규가 좀 찔리겠지?
이건 뭐야? 밑으로 내리니 더위에 지쳤는지 미간을 좁히고 있는 성규의 리얼한 표정이 아주 잘 찍혀져 있어 나는 피식, 하고 웃었다. 물어보니 성규는 내 팬들의 성화에 못이겨 트리클로버에 사진을 올린 적이 있었다고 했다. 올린 지 10분 만에 사진을 내렸다고 했지만 그 사이에 사진이 멀리 멀리 퍼진 것 같다고 김성규는 저답지 않게 나를 붙잡고 조금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징징대듯이 말했었다. 십 분이면 퍼지고도 남지, 라고 혀를 찾다가 성규에게 맞을 뻔 한건 비밀. 아무튼 얘는 쓸데없이 인기가 많아서 팬미팅을 발칵 뒤집고 내 속도 발칵 뒤집었었지 그 때.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다. 이러다 김성규 때문에 꼼짝없이 고생하는거 아닌가 몰라.
“헐? 뭐야?”
사진을 쭉쭉 내리다가 댓글창을 보는 데 입이 턱하니 벌어졌다. 뭐지 이 루머 덩어리들은? 나와 김성규의 일화라는 명분하에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댓글창에 적혀져 있는 데 그 중에는 정말 소름 돋게도, 우리 둘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말도 안 되는 루머였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다 있나 싶어 웃음이 나올 지경인 그런 이야기들. ……뭐? 연예인한테 빌 붙어서 좀 떠보려 하는 일반인이라고? 허, 김성규가 어딜봐서!
나는 차오르는 화를 꾹꾹 눌러 내리고 혹시나 싶어 이리저리 돌아다녀봤는데 잡답방이며 직캠방이며 다 우리얘기중이었다. 한마디로 김성규랑 나 때문에 트리클로버가 발칵 뒤집혔단 소리다.
젠장. 이러면 안 된다. 이 말도 안 되는 루머들이 커지고 커져서 만약 기사라도 나면, 김성규의 얼굴과 사생활들은 삽시간에 네티즌에 의해 털리고 나도 지금까지 바닥에서부터 쌓아왔던 이미지와 명성들을 한 순간에 날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루머로 망한 연예인들을 여럿 보아서 나는 이 일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았다. 그러고 보니 김성규의 사진이 찍힌 것도 일이 이미 커진거였는데, 사진 잘나왔다고 좋아하고나 있었다니. 이 멍청한 남우현. 망할. 이렇게 이 사태를 방치해둬선 안된다. 이 일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나는 얼른 김성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성규와 내가 같이 해결해야 했다.
“성규야, 김성규!”
「우응…….」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지만 옹알거리는게 마냥 귀엽다고, 그 다급한 상황에서도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말세다, 말세. 아휴, 나는 머리를 짚고 재빨리 그런 생각을 털어내며 성규를 깨우기 위해 다급히 소리쳤다.
“김성규! 일어나봐!”
「싫어어 ― .」
“얼른! 지금 난리 났다고!!”
「씨이……너 누구야아.」
“나? 니 서방이지 누구겠어.”
「전화 잘못 거셨네요, 네…….」
“아나, 이런 상황에도 나는 진짜……. 나 남우현이야.”
「아씨이……너 뭐야!」
“지금 너 자고 있을 때가 아니라니까? 트리클로버 접속해봐, 지금 우리 때문에 난리났어. 너 지금 되게 위험한 상황이거든?”
「깨우지마!」
“야, 야야, 김성규! 너 일어나라고 쫌!!”
「끊어!」
하고 박력 넘치는 김성규는 그대로 진짜 전화를 끊어버리고 말았다. 와 ― . 나는 멍하니 하얀 배경화면을 보다가 멘탈이 붕괴될 뻔한걸 간신히 추스렸다. 아오, 니가 지금 그렇게 편히 꿈나라에서 뛰어놀 시간이 아니라고, 이 김성규야!! 니 신상이 털려 전국에 뿌려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발딱 일어나서 소리를 질러도 모자랄 판에, 지금 뭐? 끊어? 아후 답답해 죽겠다 진짜! 대책을 같이 세워야지, 뭐하는 거야 지금!!
“아 미치겠네, 진짜.”
시간이 지날수록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소문을 가만히 내버려둘 수는 없었지만 지금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 아니, 적어도 김성규가 협조를 해줘야 같이 뭘 하든 말든 하지, 다시한번 전화해 봤더니 이젠 받지도 않는다. 아아, 이 꼴통. 나는 머리를 싸매고 이불에다가 머리를 박았다.
피해는 내 쪽보다 성규 쪽으로 더 많이 갈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김성규는 지금 팔자 좋게 잠이나 퍼 자고 있다. 퍼, 자고 있다고! 으악! 다시 한 번 댓글들을 확인한 나는 아랫입술을 윗니로 질겅질겅 씹어대다가 결국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 후드집업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상황이 급한 터라 차키와 휴대폰을 두 손에 꽉 쥐고 쪼리를 찍찍 끌며.
어쩔 수 없이 김성규의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았다.
*
“야, 김성규! 문 열어!”
벌써 세 번째 누르는 초인종이었다. 녀석은 정말 깊이 잠들었는지 몇 번을 두드려 큰 소리를 내고 초인종을 눌러보아도 일어나질 않았다. 까칠한걸 봐서, 예민해 잠도 깊이 안 잘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보다. 나의 명백한 미스였다. 그래서 나는 이 생고생을 하고 있지. 분노가 밀려왔다.
“아, 쫌! 일어나, 이제!”
또 다시 문을 미친 듯이 두드리기 시작했다. 젠장, 누가 이기나 보자. 절대 안 깨고는 못살게 괴롭혀 주지. 으아아악! 제발 일어나라고오! 오기가 활활 불타올랐다. 주민신고가 들어와도 이상할리 없었지만 만약 들어온다면 김성규한테 다 떠넘기고 말테다. 아니, 그건 당연한 거다. 벌써 다섯 번 째인 전화를 녀석에게 걸었다. 아직 아홉시 밖에 안됐는데 아주 잘도 잔다. 빌어먹을 성규.
“김성규! 문 열어!!”
드디어 현관문 뒤로 사람기척이 났다. 나는 순간 고맙다고 하느님께 무릎 꿇고 기도라도 할 뻔했다. 거칠게 문을 두드리던 행동을 멈추고 빨갛게 부어오르려던 손을 주물렀다.
야, 김성규 빨리 열어! 나는 신경질 적으로 철문 너머에 있을 김성규에게 소리쳤다. 너 내가 아무리 귀여워한다고 해도, 이건 좀 심했어! 지금 나를 가지고 노는 거야, 뭐야?! 에이씨. 나 혼자 손 아프고 똥줄 타고 다급하고. 짜증나 죽겠다. 사람가지고 노는 종목에 세계신기록 감인 김성규. 언젠가 나한테 벌 받을 줄 알아, 너.
그러는 사이, 드디어 손잡이가 돌아가고 그렇게 고대하던 문이 열렸다.
“누구……?”
“야, 너 ― .”
누구? 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완전 산발이 된 머리카락과 정말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모를 작은 눈. 퉁퉁 부운 얼굴. 추한 추리닝 차림새. 정말 거짓말 안 섞고 그 모습을 본 순간, 말문이 턱 막히고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허를…….”
그래, 본능적으로는 내 앞에 있는 생물체가 김성규라는걸 알아챘지만 시각과 뇌로는 그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매일 패션센스 죽이고 허점이라곤 없을 것 같았던 김성규가 이런 몰골로 내 앞에 있다니. 정말 내 앞에 있는게 내가 아는 김성규? 와장창, 김성규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소리가 귓가에서 크게 들려왔다. 말도 안돼.
“…….”
“…….”
우리 둘 다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무거운 정적이 우리 둘의 입을 콱 틀어막았다. 솔직히 말해서, 충격 먹은 나는 숨 쉬는 것도 잊어버렸다. 그리고 정말 슬프게도 김성규 입 옆에 있는 조그만 침자국을 발견했을 때, 깊은 한숨을 내쉴 뻔 했다. 초특급 멘붕상태로 인해 두통이 밀려왔다.
도대체 뭐지, 이 상황은? 최면에 걸린게 아닐까? 아님 여긴 악몽 속? 내 앞에 있는 김성규를 처음으로 부정하고 싶었다. 넌 김성규가 아니야! 라고. 진짜 김성규가 아니지 않을까? 내가 실수로 김성규 닮은꼴의 집에 들어온 거야!
할 말 잃은 두 사람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마주쳤다.
“헐…….”
뒤늦게 김성규에게서 나온 말이었다. 드디어 김성규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고 어떤 몰골인지 알아차렸나 보다. 나는 일단, 위로의 말을 건네야 될 것 같아서 무거운 입술을 열려고 했는데 그러기도 전해 김성규는 바람소리와 함께 내 시야에서 급히 사라졌다.
“하하하…….”
어색하고 기계음같은 웃음소리가 실없이 흘러나왔다. 남우현,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아. 그래, 이런 충격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하. 이제 웬만한 충격에는 끄떡없는 강심장이 되었어! 축하해! 현관문을 더 열어젖히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나는 김성규의 저런 모습까지 사랑할 수 있다! 근데 조금 많이……마음의 준비와 시간이 걸릴 뿐.
“오!”
처음 보는 김성규의 집이여서 신기함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아까 받은 쇼크는 잠시 묻어두기로 했다. 김성규가 사는 집이라니. 스캔해 징징 윙윙. 뭐하나 놓칠 새라 두 눈을 크게 뜨고 거실을 살폈다. 남자의 집 치곤 깔끔한데다가 전체적으로 편안한 분위기였다. 거실은 그냥 베이지색 벽지에 갈색 소파, 원탁, TV. 뭐 이런 것들이 있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언제나 재밌는건 방에 있지. 거실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김성규의 방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쏙 들어갔다. 아까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린 것으로 보아 김성규는 황급히 씻고 있는 모양이다. 맘 놓고 방 뒤져야지. 헹.
“올.”
책장엔 책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책상 위에는 컴퓨터와 MP3가 나뒹굴고 있다. 그리고 침대. 조금 좁은 방안에는 이 물건들이 딸랑 다였다. 아, 뭐야. 시시하게 시리. 책장을 뒤져보았지만 기대했던 김성규의 졸업앨범 같은건 보이지 않아 관두고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건진게 없다니. 절망스러웠다.
그러다가 서랍 안까지 뒤져볼까 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닌거 같아서 관뒀다. 침대시트에 얼굴을 묻으니 김성규 특유의 내음이 콧속으로 들어온다. 사람마다 특유의 냄새가 있다는게 사실이구나. 한참을 킁킁 대다가 내 모습이 좀 이상한 변태 같아서 헛기침을 하며 관뒀다. 그러다가 또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있는 MP3를 뒤져보고 내 노래가 있나없나 확인해봤다. 없네? 이런 나쁜 김성규.
그렇게 혼자 조용히 김성규를 까고 있는데 갑자기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 왜 하필 지금 부르고 난리야! 욕하는거 들킨줄 알고 엄청 놀랐네, 에이씨. 자기한테 와보라고 김성규가 소리친다. 이제야 샤워 다했나 보지? 완전 오래 걸리네. 때 벗겼나?
“왜!”
나는 툴툴거리며 김성규가 부른데로, 욕실 앞에 섰다. 그리고 성규와 눈이 마주친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저기, 미안한데 가서 옷하고 속옷 좀 가져다주라.”
“…….”
“…? 남우현?”
열린 좁은 문틈으로 보이는 김성규의 젖은 머리카락, 하얀 피부위로 떨어지는 물방울들, 새빨간 입술. 물에 젖은 어깨와 가슴팍. 모든 소리들이 저절로 차단되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몇번이나 두 눈을 깜빡여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 재차 확인했다. 대박……. 존나 섹시하다.
“뭐야, 남우현?”
“…….”
“야, 멍 때려?”
빨간 입술이 오물오물 움직인다. 와, 진심 코피 터질 것 같다. 물에 한껏 젖은 김성규의 모습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미쳤다. 어떻게 이렇게 섹시하지? 지금 내 머리 속은 김성규를 주제로 한 음흉한 생각들이 꽃을 피우고 난리가 났다.
“야!!!”
“헉!”
갑작스럽게 내 귓가로 파고드는 날카로운 고함소리에 놀라 화들짝 튀어 오르고 정신을 차려보니 김성규가 나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정말 이성의 끈을 놓을 뻔해서 앞 뒤 안 가리고 김성규에게 뛰어갈 뻔 했다. 간신히 꿈틀되는 욕구를 애써 잠재우며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진짜 뭔 일 날지도 모른다. 남자는 짐승이다. 이 야심한 밤에. 아, 미치겠다. 진짜. 김성규가 오늘 여러 번 미치게 한다.
“왜, 왜, 뭐.”
“……너 이상하다? 왜 눈깔아?”
“……이, 있어 그런 게!!”
“알다가도 모를 놈이야, 진짜.”
“하, 존나 섹시해……미치겠다 진짜.”
“뭐?”
“어?!!”
“너 오늘 진짜 왜이래?”
“내가 뭘!”
“아, 왜 소리 질러! 옷이나 가지고 오라고!”
“옷?”
“그래. 내 방 옷장 서랍 두 번째에 속옷 있고 편해 보이는 옷 아무거나 찾아와.”
“지금이 제일 예쁜데…….”
“미쳤냐?”
“어? 드, 들었냐?”
“너 아까 나보고 섹시하다고 했지?!!”
“어? 아, 아닌데?!!”
“이 변태새끼!!”
수건이 날아왔다. 나름 조용하게 혼자 중얼거린건데 김성규는 다 들었나 보다. 김성규가 귀가 이렇게나 좋을줄은 몰랐다. 수건을 맞고도 김성규의 아름다운 육체에 홀려 멍하니 김성규를 바라보다가 김성규가 정말 화났는지 씩씩대며, 나를 죽여 버린다고 조금 열린 문틈에서 모습을 숨겼을 때, 나는 그렇게 계속 넋 놓고 서 있다가 수건이고 칫솔이고 비누고 뭐고 다 맞을 것 같아서 얼른 쫓기듯이 김성규 방으로 튀었다.
“아씨.”
그거 하나가지고 수건 던지고 난리야.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섹시하래? 자기가 섹시해놓고 나한테 그래. 남자는 당연히 섹시한거에 약한거 몰라? 설마 김성규는 자기가 섹시하다는걸 모르는건가? 에이, 말도 안돼. 여우 김성규. 혼자 또 툴툴대며 거칠게 서랍 문을 열었다가, 나는 또 다시 좌절하고 말았다.
“하…….”
속옷이다. 아까 김성규의 젖은 모습을 봤을 때부터 점점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이상한 생각들이 나를 또 찾아와 괴롭힌다. 같은 남자 속옷이 뭐라고 나는 순간 이상한 생각을 하고 더워지는 거지? 정신 차려, 이 남우현아. 이런 음흉한 생각은 안돼.
“으아아악!!!”
꾸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속옷만 입은 김성규의 모습이 상상된다. 몹시 부드러울 것 같은 하얀 피부의 몸. 쭉 뻗은 매끈한 다리. 김성규를 처음 만났을 때, 심지어 만져도 봤다.
아아, 코끝이 시큰거리는게 기어코 코피가 터질 모양이다. 김성규의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 나는 한숨과 함께 두 눈을 딱 감고 아무 속옷이나 집고 얼른 추리닝으로 보이는 바지와 파란 면 티를 하나 집어 들고 김성규에게 갔다. 내가 여기에 무슨 인내심 기르려고 왔나. 흑흑.
“변태새끼.”
“아니거든?”
“내 놔, 얼른!”
“싫어.”
“뭐?”
인내심이고 참기 힘든 욕구고 뭐고 이런건 원래 바로 주는게 아니다. 참 잘한다, 남우현. 그 음란한 생각 속에서도 이런 공식을 잊어버리지 않았다니.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 속으로 칭찬했다. 있는자는, 당연히 없는자를 가지고 놀아야한다. 이건 항상 김성규의 손아귀에서 불행하게도 놀아나던 나에게 하늘이 준 기회란 말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김성규를 쳐다봤다. 후하, 후하. 정신 차려 남우현!
“그냥 주면 재미없지.”
“죽고 싶냐, 진짜?”
“주세요, 해봐.”
“뭐?”
성규의 얼굴이 삽시간에 구겨졌다. 그래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섹시한거는 섹시한거고 놀리면 재밌는건 재밌는거구나. 김성규는 눈빛으로 날 살인할 기세였다. 으하하하!! 웃겨서 계속 김성규에게 옷도 안주고 대놓고 웃었다. 아 나는 세상에서 김성규 놀리는게 제일 재미있다. 김성규의 미간이 더 좁혀졌고 진짜 화났는지 얼굴이 점점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너 죽인다, 진짜!!”
“음, 그럼 기다려봐. 뭐할지 생각하고 있어.”
“뭘 해!!”
“기다려, 좀.”
“감기 걸린다 나?!”
이대로 쉽게 주기는 좀 그렇고, 그렇다고 소원 들어주기로 하기엔 할 게 없으니까 지금 당장 협박할 수 있는 걸로 해야겠다. 음, 일단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헐, 맞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황급히 시간을 확인하니 아홉시 반이었다. 이미 소문이 퍼질 대로 퍼지고도 남았겠다. 아, 어떡하지? 김성규에게 얘기를 해야 하겠지만 그럼 괜히 심각한 분위기가 되고, 무엇보다도 나는 지금 김성규랑 놀고 싶다. 진지한 얘기하기 싫은데.
김성규가 나를 째려본다. 얼굴이 뚫어질 것 같다. 음……이미 퍼져가는 것들을 어떻게 손 볼 방법은 없으니 일단 놀고 볼까? 그러자. 어차피 뭐 루머니까 시간이 지나면 그치고 말겠지. 그럼, 이제 김성규한테 어디가자고 할까? 술집? 그러기엔 내 컨디션이 좀 힘들것 같고, 아, 노래방? 노래방! 노래방 가자고 해야지.
“노래불러줘!”
“뭐? 뭔 개소리야?”
“우리 노래방 가자.”
“아, 이 밤에 무슨.”
“원래 노래방은 밤에 가는 거거든? 잠도 다 깼으니까 가자.”
“어휴, 안 간다고 하면 옷 안 줄 거야?”
“당연하지.”
“그래, 가자, 가.”
모든 걸 포기한 듯 한 김성규한테 실실 웃으며 옷을 건넸다. 헤헤, 이제 김성규는 나를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더 좋아지려고 한다. 차갑게 옷을 가져가는 그 순간까지도 나를 완전 노려보는데…눈 아프겠다. 김성규랑 노래방을 가다니. 벌써부터 신나 몸이 들썩들썩 거렸다. 김성규는 노래를 잘 부를까? 이 노래, 저 노래 다 시켜봐야지. 뭐, 못 불러도 되겠지? 김성규면 뭐든 용서할 수 있는 대인배같은 마음씨를 가진 나니까! 나는 멋지게 발라드를 불러 김성규를 뻑 가게나 할란다. 아싸 완전 신난다. 콧노래가 절로난다.
아, 몸이라도 풀어야지. 나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이번 앨범 타이틀 곡 ‘내꺼하자’의 춤을 연습했다. 내꺼하자, 내가 널 사랑해. 이 정도면 반하겠지?
“남우현 진짜 짜증나!”
머리를 탈탈 털며 김성규가 짜증스럽게 발을 동동 구르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나는 얼른 아무것도 안 한 듯 자세를 바로잡으며 김성규에게 쫄래쫄래 다가가 김성규의 손목을 잡고 바로 현관으로 이끌었다. 그러자 질겁하며 손을 빼낸다. 왜이래?
“안 가?”
“야, 이 차림새로 어디를 가!”
“괜찮아, 이 오빠가 다 책임져 줄게.”
“남우현.”
“왜, 좀 멋있었나? 아, 부끄럽 ― 헉!!”
결국 김성규의 강한 펀치가 내 배에 내리꽂아졌다.
*
“아싸!!”
나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 일단 마이크를 집었다. 김성규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문을 닫고 소파에 앉았다. 기어코 김성규는 나의 고집에 못 이겨 그대로 옷을 입고 나왔다. 훗.
왜 앉아? 너 부르라고 데리고 온건데! 나는 기겁하며 김성규의 손목을 잡아당겨 일으켜 세웠다. 김성규가 짜증을 낸다. 아휴, 김성규 - 짜증 = 0 . 이 공식은 진리인가보다. 그래도 내가 착해서 이런 짜증 저런 짜증 다 받아주는 거지, 어디 나 같은 놈 또 있나 봐라. 근데 김성규는 그걸 모르고 매일매일 나한테 짜증이다.
“아 왜, 너 불러 너.”
“무슨 소리, 나 너 노래실력 보려고 노래방 오자고 한거야. 자, 여기 마이크.”
마이크를 착실히 김성규의 손에 쥐어주고 나는 한 시간이 넣어졌다는 모니터 화면을 확인했다. 자 불러! 하고 김성규한테 부르라고 하는데 김성규는 예약할 생각도 안하고 멍하니 나만 바라보았다. 아! 내가 정해줘야 부를거야? 나는 얼른 탁자위에 있는 노래방 책을 뒤졌다. 음, 일단 실력을 알아봐야 하니까.
“너 누구 노래 좋아해?”
“나?”
“응. 애창곡 있어?”
“음……. 넬?”
“넬하면 기억을 걷는 시간이지.”
나는 ‘ㄱ’부분을 뒤져 기억을 걷는 시간을 찾아내, 책에 나온 대로 번호를 누르고 시작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책을 집어던져버리고 김성규에게 모든 집중을 쏟았다. 김성규는 내 강렬한 눈빛에 많이 부끄러워하다가 이내 노래가 시작하니 마이크를 고쳐잡고 부를 준비를 했다. 시작하기 전에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너의 소리를 듣고 아직도 너의 손길을 느껴 오늘도 난 ㅡ .”
귓가로 파고드는 음색은 맑고 청아했다. 보컬트레이닝 선생님이 들었다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 정도의 아름답고 편안한 목소리였다. 평소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고 부드럽긴 하지만 항상 나에겐 짜증만 내서 좋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지금 들어보니 확실히 김성규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나는 김성규가 목소리가 좋다는 것에서 이미 한번 놀랐지만,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웬만한 아이돌 가수보다도 노래를 더 잘 부른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정말로, 김성규는 노래를 잘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어서 사실 나는, 내 귓가로 파고드는 지금의 이 노랫소리가 아직도 김성규가 부른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헐. 이렇게 잘 불렀다니.
어느새 김성규와 눈이 마주쳤고 김성규는 쑥스러운 듯 재빨리 내 시선을 피했다. 반응보니 꽤나 노래 잘한다고 칭찬받은 적이 있나보다. 나쁘다, 나한테는 노래 잘 한다고 말 한 마디 안하더니.
“자꾸만 가슴이 미어져 ㅡ .”
정신없이 김성규의 노랫소리에 집중하다보니 벌써 노래가 끝바지에 다달았다. 벌써 끝이라니, 라고 저절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래서 내 팬들이 내 콘서트가 끝나면 울고불고 콘서트 장에서 빨리 안 나가려고 하는 거구나. 팬들의 마음을 이제 완전히 이해 할 수 있겠다. 앞으로는 아예 앵콜곡만 다섯곡 넘게 준비할까?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얼른 다른 노래를 예약해서 김성규의 여러 목소리를 들어야했다. 미친 듯이 책장을 넘기며 노래를 찾아 눈을 부릅 크게 떴다.
“이 노래 알지?”
“……야, 이 미친놈아.”
김성규의 어이없다는 시선을 나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받아치고 얼른 부르라고 박수를 쳤다. 노래는 아이비의 A―ha. 알다시피 무척이나 야하고 가사가 선정적인 노래였다. 아까보다 더 기대된다. 섹시한 김성규가 섹시한 노래를 부르다니. 상상만으로도 짜릿한게 벌써부터 손에서 땀이 났다. 무릎에다 손을 닦으며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잠재웠다. 원래 이 노래를 시킬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우연찮게도 아이비의 노래가 책장을 넘기는 도중 눈에 밟혔을 뿐이었다. 그래, 그 뿐이었다.
“내 품에 숨어 A―Ha 그녀는 모르게 이 밤을 숨겨 A―Ha 비밀은 짜릿해 내게만 더 A―Ha 빠지는 널 Ha 유혹하는 노래를 Na na na na na na.”
마지못해 부르는 얼굴이었지만 목소리만은 간드러진다. 와, 목소리마저 섹시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섹시하고 야한 목소리의 성규였다. 그리고 마침내 머릿속에서 결론이 났다. 김성규는 엄청나게 섹시했던거다. 귀여웠던게 아니라 섹시했던거였다. 아, 은혜로운 김성규. 내가 섹시한거 좋아하는건 어찌 알고. 노래방 분위기가 끈적끈적한 노래 때문에 후끈 달아올랐다. 김성규는 미친 듯이 민망해하며 몇 번이고 취소하려 했지만 내가 불굴의 의지로 제지시켰다. 아, 존나 섹시해. 가사부터 야해가지고. 하, 미치겠다. 아하, 가 점점 김성규의 신음소리로 들리는 것 같았다. 아……. 이러다 큰일 나겠다. 애써 나는 속으로 조용히 애국가 가사를 떠올리고 있었다.
“나 안 불러!!”
“안돼! 아직 두 곡 밖에 안 불렀잖아.”
“뭐 이딴 노래를 부르게 해!!”
“왜! 진짜 좋았거든?”
“…….”
“자자, 다음은 소녀시대 oh!”
“씨발, 야…….”
“춤도, 춤!”
김성규가 탁자 위에 있던 탬버린을 나한테 던지려고 하길래 나는 얼른 정자세를 취해 바르게 앉았다. 죄송합니다. 으흐흐. 성규야, 너는 모르지? 오빠 소리 듣고 싶어서 이 노래를 선택한 나의 검은 마음을.
“오빠 나 좀 봐 나를 좀 바라봐 ㅡ .”
으헤헤. 그래 이 오빠는 너만을 바라보고 있단다. 입가가 자꾸 헤벌레 벌려진다. 나를 보더니 김성규는 한숨과 함께 이마를 짚었다. 그 모습에 나는 쓰읍, 흘러내리려고 했던 침을 닦고 억지로 입가에 힘을 주고 다물었다. 추한 모습은 안된다. 아 나, 반할 것 같아. 사랑해요 김성규! 하고 외치니까 또 탬버린을 집어든다. 아씨. 왜.
“나 안 불러! 목 아파 이씨. 나 혼자 몇 노래 부른거야!”
“내꺼하자만 불러주라. 응?”
“싫다고!”
“내꺼하자, 하나만 마지막으로!”
“아 왜!”
“왜 안 불러주는데!”
소파에 털썩 앉는 김성규를 다시 일으켜 나는 기어이 내꺼하자를 부르게 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김성규가 내꺼하자,를 외칠 때마다 나는 니꺼할게! 하고 외쳤고 김성규는 나에게 결국 등을 돌렸다. 마침내 삼십분 가까이 김성규를 노래 부르게 하는데에 성공했다. 나의 숨은 미션을 순진한 양같은 김성규는 못 알아차린거 같다. 아닌데, 순진한 양보다 좀 더 야한 동물 없나? 섹시한 성규양? 뭔 개그지, 이건.
정말 목이 아픈지 김성규는 목을 부여잡고 켁켁 거리다가 이내 마이크를 던졌다. 파업을 선언한 김성규를 한번 보고 나는 신이 나서 빈 공간으로 뛰어나갔다. 이제 이 오빠의 노래실력을 뽐낼 때가 왔구나! 김성규는 다리를 꼬고 마치 심사 위원같이 내가 부르는 꼴을 어디한 번 봐보자, 하는 모습으로 나에게 도도한 눈빛을 보냈다. 또 도발한다. 아휴, 미치겠네. 나는 애써 녀석의 눈빛을 무시하며 아까 무슨 노래를 부를지 책장 넘기면서 외워두었던 번호를 꾹꾹 눌렀다. 첫 곡은 너를 위한거야 김성규. 라고 외치니까 토하는 시늉을 한다. 귀엽기는. 이젠 또 귀엽네.
“넌 나를 원해 넌 내게 빠져, 넌 내게 미쳐 헤어나올 수 없어, I got you under my skin ㅡ .”
지금 김성규의 표정은 썩어 들어간다고 하는게 맞다. 넌 나를 원해, 할 때 콕 집어 김성규를 향해 손짓을 날려주고 윙크도 해줬다. 진심으로 김성규가 노래방을 나가고 싶어 하는게 느껴져서 나는 노래하는 중간 중간에 참지 못하고 웃고 말았다.
“좀 진지한 노래 부를 수 없냐? 뭐 그딴 노래를.”
“알겠어, 진지하게 반할 노래를 불러줄게.”
“아, 쫌.”
“이수훈의 고백!”
김성규의 표정이 또 썩어 들어갔다. 제목부터 맘에 안 들어 하는게 다보였다. 하지만 나는 무시하고 웃으며 노래 부를 준비를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분위기를 살려서 부르기 위해 후,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하게도, 떨렸다. 노래를 부르려고 하는 지금, 입 안이 바싹바싹 말라오는게 꼭, 진짜로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누가 보면 내가 김성규에게 고백하는 줄 알겠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김성규를 한 번 슬쩍 보니 여전히 그 미간의 주름은 펴지지 않고 있었다. 문득 공통점을 생각했다. 지금 김성규의 얼굴을 보고, 고백이라는 제목을 부르는 것의 공통점. 둘 다 숨 막히도록 가슴이 떨린다는 것.
“언제나 그댈 난 원하고 있죠, 혹시라도 우린 사랑 할 수 없나요, 힘들겠지만 난 그댈 위해 참아야만 하겠죠, 난 그대만을 사랑해요 ㅡ .”
내 노래만이 감도는 이 좁은 공간. 이상하게 울컥하는 가슴과 나를 보며 멍 때리는것 같은 김성규의 초점 잃어버린 눈빛. 참을 수가 없었고, 이상했다. 마치 심장이 귀 옆에서 뛰고 있는듯한 착각에 빠지게하는, 귓가에서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리는 쿵쾅 거리는 심장박동 소리. 온 몸이 불타듯 뜨거워졌다.
“난 그대만을 사랑해요.”
노래가 끝났지만, 우리는 서로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김성규를 향해 벅차게 웃어 보였다. 목구멍이 칼칼해서, 아무 말도 김성규에게 할 수 없던게 그 이유였다. 뒤이어 들려오는 나가자, 그 짧은 세 글자도. 어땠냐, 묻는 그 짧은 세 글자도. 나는 뜨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