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우 님이 김세봉 님과 함께 있습니다
3월 17일
♥
김세봉 님과 자유로운 연애 중
+++++
그래, 아마 올해 3월이었을거다.
전원우가 신입생 환영회를 한다며 술을 잔뜩 먹고 페북에 저 짓을 한게.
그때의 나는 한번도 남친을 사귄적 없는 모솔이었고 (물론 지금도)
그때의 전원우는 오는 여자들을 다 뻥뻥 차며 메시라는 별명을 얻었을 때였다
근데, 전원우가 저 짓을 해놨다
사실 이걸 내 눈으로 본건 아니다.
페북 어플을 삭제하고 실질적으로 계정만 있는 상태에서
저 일이 나니 난 당연히 모를 수 밖에 없었다.
저 일도 친구들의 인증샷과
'야, 너 진짜 전원우랑 사귐?'
'야, 우리 세봉이 드디어 남친 사귄거야?'
라는 소리들과 함께 날아온 톡에서 확인했었다
나는 그 처참한 상황을 두눈으로 목격하고
당장 노트북을 켜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아주 타임라인이 따끈따끈했다
나는 침착하게, 댓글로 사실이 아니라 말했고
그날로 페북을 완전히 탈퇴해 버렸다
뭐, 그 한번 정도는 주사니까 애교로 가볍게 넘어갈 수 있을거라
가볍게 치부했었다.
근데, 그럴리가
전원우는 잘생겼다며 인기도 많았고 실질적인 과탑인데다가
교수님들의 총애도 한몸에 받고 있는 내년 학생회장 유력후보였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전원우가.
모임 잘 안나가는 3학년 찌질이랑 사귄다는게 사람들한테 지나가는 바람같은 일일리가 없다
망할,
그날 이후로 나는 캠퍼스 안을 돌아다닐 때마다
"쟤가 걔야? 전원우랑 사귄다는?"
"전원우가 훨씬 아깝다-"
"전원우 개새끼. 내가 좋아한다고 했는데.."
라는 말을 들어야했다
아니, 전원우 욕은 전원우한테 가서 하세요.
사실 전원우랑 나는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니다
그냥 강의 하나를 같이 듣는 동기일 뿐이다.
자꾸 엮이니까 관심이 가는건 맞지만, 뭐 호감정도지 애정은 아니다.
나는 영어영문학과, 전원우는 실용음악과인데
도대체 왜 전원우가 영어의 어원과 이해 라는 수업을 듣는지는 모르겠다 (맨 처음엔 나때문인가 했는데, 그냥 도끼병인것 같다)
심지어 같은 수업을 들었어도 접점이라곤 수업 첫날에 볼펜 한번 빌려줬던 거, 조별과제 한번 같이 한거 정도?
그리고 전원우는 내 스타일도 아니라고.
쫙 찢어진 날카로운 전원우 보단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실음과 1학년 승관이가 훨씬 내 스타일이다.
물론, 승관이를 이성적으로 좋아한다기보단 덕질의 느낌이지만.
게다가 페북 친구는 작년 신입생 환영회때 술 먹은 내 친구가 전원우한테 건거고.
물론, 해명하긴 했다 (그래서 페북을 잘 안했던 거였다)
전원우랑 같은 과목을 듣는다는 거 빼곤 딱히 접점도 없는데
왜 이렇게 자꾸 엮이는지. 망할 전원우
왜 자꾸 신경쓰이게 하냐고 너.
++++
그 일이 있은지 9개월 정도가 지났다
일은 점점 사람들사이에서 묻혀져갔고 전원우도 더 이상 나를 의식하는거 같지 않았다.
근데, 일이 또 터졌다
전원우가 망년회에서 술을 또 드시고 날 좋아한다고 동네방네 얘기하고 다닌거다.
아, 나 욕 좀할게 씨벌탱
아, 이건 승관이한테 들었다
개새끼 소새끼 말새끼
술먹고 생각나는 여자애가 나 밖에 없었던 건지, 취중진담인지는 모르겠으나
취중진담이어서 날 정말 좋아한다고해도 정이 뚝 떨어져 버렸다
아니, 좋아하면 나한테 직접 얘기하던가 왜 남의 입으로 전해듣게 하는건데?
박력넘치게 고백하라고! 이 찌질아!
++++++
"야아..............김세봉....양아.........."
음 그래, 지금 무슨 상황이냐고?
술먹은 전원우가 나한테 앵기는 상황이지.
젠장 망할 오마이 지저스
저한테 왜 이런 시련을
동아리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누가 내 이름을 애타게 부르면서
캠퍼스에 쓰러져 있길래
툭툭쳐봤더니, 글쎄 전원우였다
술 좀 그만 먹으라고 미친놈아
아, 근데 잠시만
나는 얘 집을 모른다.
아. 망했다
아, 그래서 지금은 집이다.
누구 집이냐고? 우리집이지...
아니, 전원우를 그렇다고 거기다 팽개치고 올 수는 없으니까.
그렇잖아. 솔직히 요즘 날씨 추운데. 이건 절대 내가 얘한테 관심있어서 그런게 아니다
그냥 그저 뭐랄까. 그래, 동기에 대한 측은함? 정도다
전원우는 소파에서 재워야겠지?
내일 일어나면 아주 개쪽일거다.
쓰레기 같은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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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아아아!!"
전원우의 괴성에 잠에서 깼다.
그래, 너 이 새끼 오늘 나랑 흑역사 좀 생성하자
대충 머리를 묶고 눈곱 때고 거실로 나갔다
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전원우가 후다닥 소파에서 내려와 내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세봉아......아....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아..
맨날 술 먹고 너한테 실수나 하고....진짜 미안해.."
"그니까 술 좀 작작 마셔"
"근데, 내가 너 싫어해서 그러는거 아니야"
"알아"
"알았어? 그래. 뭐, 취중진담이라는 말도 있잖아."
"그래서 나 좋아한다고?"
"어"
뭐야 이 새끼
꽤나 담담하게 말해서 놀랐다
"그래서."
"지금까지 너한테 실수한거 다 미안해. 근데 그거 너 좋아해서 그런거야."
"거기까지만 해. 얼른 화장실 가서 세수하고 얼른 니네 집 가.
이건 비밀로 해줄게"
"정말 그게 끝이야?"
"또 뭐"
"내가 너 좋아해"
"근데"
"근데라니..?"
갑자기 전원우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으...응?"
"이제 사람들한테 어장이라는 소리 듣기 싫어"
".............."
"그러니까 우리 사귀자 세봉아"
그리곤 다시 빙구처럼 웃는다
"생각 좀 해보고"
입꼬리가 주체할 수 없이 올라간다
원우야, 아마 생각 금방 끝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