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싫습니다. "
" 그러지 말고, 더 생각좀 해봐 "
" 이미 여러번 대답하지 않았습니까, 제 답은 변함이 없사옵니다. "
이틀전, 뜬금없는 청혼을 받았다. 아니, 이걸 청혼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함께 살자고 한 것이니 청혼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본디 기생들이 가장 팔자를 열 수 있는 길은 세력있는 양반가문에 첩으로 들어가 정실부인만큼은 아니더라도 대접받으며 사는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기생들이 나같은 상황이라면 아마 망설일 필요도 없이 바로 수락을 할것이다. 오히려 양반에게 감사하다며 고개를 조아리겠지. 나는 싫다. 양반의 첩이되어 정실부인과 양반가족에게 멸시를 당하며 잘 사는 집에 붙어있는 것도 싫었고, 또 마음없는 사람과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이 변했건 어찌 됐건, 나에게는 정인이 있었다.
" 내가 청순이 너를 정실부인으로 만들어 줄게. 다시 생각해봐. 응? "
" 그래도 싫습니다. "
그리고 나으리께는 죄송하지만, 이틀전 그때, 나에게 함께 살자고 할 때 그때 역시 다른사람을 생각했었다. 4년전 청혼을 해오던 그 열다섯의 소년이 나으리의 모습과 겹쳐보였다. 그리고는 무심결에 속으로 되뇌였다. 아, 내게 이런 말을 해오는 내 앞의 남자가 그였으면, 하고.
" 청순아. "
" ...예. "
" 혹여나 해서 말하는건데, 지금 내가 하는건 농이 아니야. "
" ... "
" 진지하게 청순이 니가 내 옆에 있어줬으면 해. 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옆에만 있어줘. "
" ... "
" 기간이 얼마나 걸리던 상관 없으니, 다시 생각해줘. "
평소의 그 능구렁이 같던 모습은 어디 간건지, 진지하게 말해오는 나으리가 참 낯설었다. 낮고 잔잔한 목소리에 나으리의 진심이 전해져와 마음한구석이 아팠다. 과연 내 눈앞의 나으리가 처음 만났을때의 그 망나니같던 나으리와 같은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모습에 새삼 나으리도 참 많이 변했구나, 싶었다. 혼자 하는 사랑이 얼마나 아픈일인지, 그리고 끝내고 싶어도 그것이 자기생각대로 되는것이 아니라는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미안하고, 그래서 마음이 아팠다.
" 아, 참. 내일 있는 궁중연회에는 가지 않을거지? "
" ...예. "
" 그럴 줄 알았다. 나는 청순이 너의 그런 태도가 참 맘에든단 말이야. "
궁중연회라, 드디어 내일이다. 이런 큰행사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양반들이 많이 모이기도 하고, 특히나 궁중연회는 보는눈이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에 너무나 싫어해서 거절해왔는데, 이번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내 신분은 기생이었고, 언제까지고 콧대높은 양반들의 제안을 거절해 올 수는 없는 법. 하지만 차마 나으리께 사실을 고할 수가 없었다. 나으리를 만나게 된 이후로부터 쭉 내 손님은 나으리밖에는 없었고, 그 정도로 내가 다른 이들과 만나는 것을 싫어했다. 근데 그렇게 보는 눈이 많은 곳에 간다고 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으리께서도 연회에 오시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지만 그 걱정도 잠시. 김진사 나으리는 말그대로 '진사'였다. 아직 대과도 치르지 않았으니, 궁에 오실 일은 없으시겠지.
제발 내일이 무사히 흘러갔으면.
--
" 준비가 다 되었으니 어서 나오시지요. "
" 곧 갈게요. "
입술에 조심히 연지를 펴 바르고 거울을 한번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쪽으로 향했다. 문을 잡고 짧은 한숨을 내쉬고, 문을 열어 가마가 있을 곳으로 향했다. 나에게는 가마를 타는 것 조차 참 고역이었다. 멀쩡한 두다리로 걸어가면 될것을, 무얼 그리 격식을 차린다고 가마를 타게 하는지. 딱봐도 무거워 보이는 가마에 나까지 태우고 간다면 저 가마꾼들이 얼마나 힘이 들까. 물론 저들도 품삯을 받겠지만, 그래도 미안했다. 김진사 나으리를 만나기 전 많은 양반들을 봐왔었는데, 대부분의 양반들은 말이나 가마에 오르기 전 가마꾼 한명에게 엎드리라 한 후 발판삼아 그들의 등을 밟고 올라서고는 하는 것을 많이 봐왔었다. 그래서 더욱 가마를 타는 것이 껄끄러워 연신 사과의 말을 보내며 가마에 올랐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와 드디어 가마꾼들이 가마를 땅에 내려놓았고, 나는 고마움의 표시로 품삯에서 더 쥐어주었다. 그렇게 많은 양반들, 기생들이 한테 모여 긴 행렬을 이루었고, 모두가 궁으로 향했다. 나를 빼고 기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에게도 그 대화가 들려왔다. 난 오늘 꼭 세자저하의 눈에 들거야, 들뜬 목소리로 자신있게 말하는 기생과, 야 세자저하라니 참 꿈도크다. 난 내금위장이라도 꼬셨으면 좋겠다. 옆 기생의 팔을 치며 하소연하듯 말하는 기생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저들은 궁에 들어가는게 기쁜가보구나, 난 그 권력있는 자들이 바글바글 모여 자기 이익을 챙기기위해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그런 곳이 싫던데.
드디어 긴 행렬을 기다린 끝에 궁에 들어섰다. 궁에 처음 들어서서 느낀것은, 위압감이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주상전하와 종친들, 그리고 권력가들이 모여 국정을 논하는 이곳의 위압감과 하루동안 꼬박 돌아다녀도 못둘러볼 것 같이 넓은 궁궐의 풍채가 나를 눌러왔다. 그래서 안그래도 돌아가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커져 지금당장 뒤를 돌아 백합원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그렇게 궁에 들어서 기생들의 행렬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기생들의 대화소리가 더 커졌다.
야야, 저기 오신다. 이 나라 최고가문 아들. 우와, 진짜 잘생겼다. 오늘 한번 꼬셔볼까? 야, 못해 못해. 저 남자, 청순이만 찾잖아. 저번에 그렇게 내가 꼬시려고 애썼는데 완전 해바라기야. 자기가 언제부터 여자들을 마다했다고. 어, 야 여기로 오는데?
" ...! 나으리! "
" 따라와. "
" 이 손 놓아주십시오! 보는 눈이 많습니다! "
" 너는...! 왜!! "
" ... 나으리 "
" ...후, 잔말말고 따라와 "
다짜고짜 손목을 잡아오는 그 우악스러운 힘에 누군지 뒤를 돌아보니 그토록 마주치지 않기 바랬던 김진사 나으리였다. 한번 지그시 감았다 뜨인 나으리의 눈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보는눈이 아주 많은데도 불구하고 내 손목을 잡은 손을 놓지 않고, 행렬에서 이탈해 점점 사람이 없는 곳으로 나를 끌고 갔다. 잡힌 손목이 너무나 아파서 놓아달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지금 나으리가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알기 때문에 그저 잠자코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곳으로 향했고, 나으리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돌고는 자신의 손이 잡고있는 내 손목을 바라보았다. 붉게 얼룩진 손목을 보더니 조심스럽게 손을 놓아주고는, 미안, 하고 조용히 말해왔다.
" 너무 화가나서 그랬어. 미안. "
" ...괜찮습니다. "
" 니가 이렇게 뱀같은 양반들이 많이 모인곳에 온다는 거 자체가 화나. 안그래도 널 보고싶어하는 양반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건 뭐 호랑이 소굴에 제발로 들어온 격이잖아. 이번에도 거절할 수는 없었어? 꼭 이런곳에 와야하는거야? "
" 나으리. 저는 기생이옵니다. 언제까지 기생이 건방지게 높으신분들의 말씀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 "
" 그래, 그럴 수 있다 쳐. 근데 왜 거짓말을 했어? "
" 그건 - "
" 니가 여기 온 것도 화나는데, 거짓말을 한게 더 화가나. "
" 그건!! "
화를 낼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내 얘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화를 내는 것에 울컥해졌다. 나으리는 자기가 화가 난게 중요했고, 내 입장따위는 들으려 하지를 않았다. 그동안 이런 연회를 거절해 올때마다 양반들이 어떤 말로 나를 무시했는지, 고작 기생년이 꼴에 도도한 척을 한다며 얼마나 조롱해댔는지, 나으리는 모르시면서.
" 미천한 기생년이 어떻게 항상 눈닫고 귀닫고 굳건하게 신의를 지키면서 , 그렇게 살 수 있겠습니까. 저도 이곳에 오는 거 내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도 주위의 시선이라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지체높으신 양반분들이 그렇게 무시를 해대고 저를 도마위에 올려놓고 조롱을 하는 데, 어찌 계속 제안을 거절 할 수 있겠습니까. 조금이라도 저를 향한 그 비난의 화살들을 막아보겠다고 내키지 않는 것 참아가며 왔는데, 나으리까지 왜 이러십니까. 그리고 나으리를 만난 순간부터-! "
그 무시와 조롱은 더욱더 심해졌는데.
" ...거짓말을 했던건, 제 잘못이옵니다. 조용히 혼자 다녀오려고 했는데,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럼 저는 늦을테니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
나으리께 이렇게까지 크게, 또 길게 얘기해 본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감정을 내보이면서 말한 적도 없었다. 그러니 아무말도 하지 못하며 그저 나를 뚫어져라 보고만 있는 나으리의 모습이 당연할 수 밖에 없었다. 감정이 더 격해질까, 그런 나으리를 두고 등을 돌려 내가 걸을 수 있는 최대한 빠르게 걸어갔고,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들었을 때 그제야 아까 나으리께 끌려 아주 멀리 갔었고, 지금 이곳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되는 일이 없구나.
이러다가 연회에 늦는다면, 아니, 안된다.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는데 정말, 아무도 없었다. 이 큰 궁궐에 나를 도와줄 사람 하나 없다는 건가, 말소리라도 들려온다면 좋으련만, 들리는 것은 바람소리 뿐이었다. 안그래도 아까 나를 본 사람들이 많았는데, 양반집 자제에게 손목을 붙잡혀 둘이 함께 사라져 감히 세자저하의 탄일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퍼진다면, 그렇게 된다면 나에 대한 어떤 이야기들이 들려 올지 상상하기 싫었다. 다시한번 둘러보았지만 이곳이 어디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절망적인 마음에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쉬는데,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소망과 함께 다급하게 고개를 들었다.
...순간 제 눈을 의심 할 수밖에는 없었다. 미워하면서도 그토록 보고싶어했던 그 얼굴이, 오랜만에 보았지만 익숙한 그 얼굴이 보였고, 눈을 뗄 수 없었으며 그저 정신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내게 가까워져 오고 있었고, 내 시선을 느낀건지 고개를 살짝 들었고, 이내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또한 걸음을 멈추고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았으며, 그렇게 나는 그를 마음껏 눈에 담았다. 그가 어떤 복색을 하고있는지를 알아차린건 나중일이었다.
ㅣ
ㅣ
안녕 독자님들 함초롬이에요 ! 오늘은 글이 잘 안써져서 이렇게 늦은 새벽에 올리게 됐어요 ㅠㅠ
2016년 새해도 밝았겠다, 새로운 마음으로 그동안 못해왔던 일도 도전해보고,
그동한 해왔던 일은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도 해보자고요!!
2015년에 많이 힘들었다면, 2016년엔 그 대가로 더 좋은일만 있을거에요 사랑스러운 독자님들!
아, 병신년에도 제 글 많이 사랑해주세요 ♥
♥오매불망 암호닉♥
[나비]
[망개떡]
[잔디]
[물방개]
[97꾸]
[슈언]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