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모순적인것이다.
나를 잊은 그인걸 알았음에도 그를 사랑했고, 사랑해왔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처음에는 몇년새에 마음이 변한 그에게 화가났고, 그래서 나는 내가 그를 온전히 미워하는 줄 로만 알았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만에 알게 되었다. 나는 그를 온전히 미워할 수가 없었다. 사랑하기때문에. 하지만 동시에 사랑하기때문에 그를 미워했던 것이니, 이토록 모순적인 것이 또 있으랴. 그리고 사랑을 하는 사람도 모순적인것이었다. 다시는 그의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싶다고 생각했으면서, 실은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그가 내 마음과 같지 않아도, 그가 나를 보고싶어하지 않아 또 나를 보고 눈을 감아도, 다 괜찮으니 그의 얼굴을 다시금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나는 그 생각을, 그 그리움의 감정을 애써 외면하려 했다. 인정한다면 분명 괴로워지는 것은 나일테니까. 근데, 그가 내 앞에 나타난 그 순간부터는 인정을 할 수밖에는 없었다.나는 그를 너무나도 그리워 했다고, 그를 다시 만나기를 소망했다고.
그리고 그 소망이 실현됐을때의 감정이란. 그 감정에 몸을 온전히 맡기고 그의 눈을 바라보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내 앞의 너는 지금 무슨 감정을 느끼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보고싶지 않던 여자가 다시 눈앞에 나타나 탐탁치 않아할까, 아니면 아무런 생각이 없거나, 혹은 나를 '옛친구'정도로 생각하고 반가워 하고 있을까. 옛친구라니, 그 한마디가 참 쓰게 다가왔다. 만약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그래, 그것도 괜찮았다. 적어도 나를 다시 만난것을 후회하지는 않을테니까.
" ...ㅇㅇ야 "
갑작스레 들린 그의 목소리에, 머리의 모든 사고회로가 멈춰버렸다. 이건, 없었는데. 내 소망은 그저 그를 마주하는 것, 그것 뿐이었는데. 일단은 대답을 해야했다. 헌데 뭐라고 대답해야할까. 그가 정말 지체높은 양반집에 들어가있는 것이라면 그에게 존대를 해야하겠지, 하지만 그는 내게 몇년 전까지 항상 그래왔었던 것처럼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었는데. 그렇다면 나도 몇년 전 그때처럼 자연스럽게 대답해야 겠지. 하지만 걱정이 앞섰다. 내 목소리가 이상하면 어떡하지, 내 대답에 표정이 굳으면 어떡하지. 그렇게 몇번을 망설이다가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 ...응. "
그의 표정은 뭐랄까, 그래. 딱 내가 그를 보는 표정과 같을 것이다. 너는 왜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러면 나는 제멋대로 생각해버리게 되잖아. 혼란스러워 결국 그와 마주치던 두 눈을 피하고 고개를 떨구어 버렸다. 오늘 보면 언제볼지 모르는데, 그와 헤어지고 나서 분명히 왜 그때 조금 더 그를 눈에 담아두지 않았냐고 자책할거면서, 그럴 걸 알면서도 나는 고개를 다시 들지 못했다. 마음 깊은쪽에 애써 묻어두었던 무언가가, 내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점점 커져 내 마음 한구석을 차지했다. 그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그리워했을 거라는 생각. 그 생각이 마음 한구석 뿐만 아니라 내 머릿속까지 점령해왔다. 희망고문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기에, 눈을 꾹 감고 그 생각을 밀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이번에도 갑작스럽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오랜만이야, 정말. "
" ...응, 그러게. "
다행히도 이번에는 긴 생각을 않고 바로 자연스러운 대답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느끼는 이 혼란스러움을 최대한 감추고, 그리고 내가 그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도 최대한 감추고. 그러기 위해서 나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을 수 밖에는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희망고문과 싸우고 있었고, 내가 미천하고 초라한 기생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밀려오는 생각들을 밀어내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문득 떠오른 생각에 눈을 떴다.
그가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일까.
이곳은 궁이었다. 나는 기생으로서 온것인데, 그는 왜 이곳에 있는 걸까.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왕족들이나 신을 법한 검은색 신발이었다. 아주 조금 그 발을 따라 시선을 위로 올리자 밑단만 보았는데도 만든사람의 정성이 돋보이는 남색 복색이 보였다.
...뭘까. 내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 앞의 그는 감히 내가 넘볼 수 없는 사람이라고. 내가 이렇게 그를 마주하고 서 있는것 조차 죄인것이라고.
그래서 고개를 더 들 수가 없었다. 그 직감이 맞을까봐. 헌데 내가 가만히 보고있던 그의 두 발이 움직였고, 이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당황스러워 고개를 들어버렸고, 점점 멀어지는 그의 복색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게 되었다. 남색의 화려한 무늬가 수놓아진 복색, 궐에 들어온것이 처음인 나 조차 그 복색이 세자저하의 복색이라는 것을 단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 사흘!! "
"...뭐? "
" 사흘뒤에 갈게!! 꼭 보러갈테니 기다려!! "
사흘뒤라. 이제 까지 몇년을 기다려왔는데, 그깟 며칠을 기다리지 못하겠습니까. 기다리지 말라고 해도 기다릴 내가 그깟 사흘을 기다리지 못하겠습니까. 하지만, 이제는 완벽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기다려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요. 세자저하, 당신은 왜 세자저하 십니까. 세자저하, 당신은 어찌 이리도 큰 사람이십니까. 어찌 이리도 나를 작게 만드십니까, 당신 앞의 내가 더욱더 초라해지게 하십니까. 내가 없는 몇년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리도 어려운 분이 되셨습니까.
그의 신분, 그리고 그 앞에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인지한것이 나를 비참하게 했고, 기다려도 달라질 것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사흘 후 만날 그를 기다리며 설렘과 동시에 좌절을 느낄 앞으로의 내 모습이 그려져 나를 더욱 비참하게 했다.
" ...예, 저하. "
그가 간 곳만을 한없이 바라보며 조용히 대답을 했다. 그리고는 차마 떨어지지를 않는 발을 억지로 한걸음 한걸음 떼어내며 그렇게 연회장으로 향했다.
그녀와 그가 떠난 뒤, 돌담벽에 숨어 그들을 지켜보던 태형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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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세자와 있던 그녀의 표정이 아른거렸다. 집으로 돌아와 바로 목욕을 했을 때에도, 향 좋은 호롱불을 켜두고 문헌을 읽고있을 때에도, 눈에 들어오지않아 이부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을 때에도, 그녀의 표정이 떠올랐다. 결국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헝클이며 일어나 앉아 옆에있던 애꿎은 장식품을 세게 던졌고, 그것이 큰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을 때에도 분이 풀리지를 않아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었다를 반복했고, 이내 눈을 감고 낮의 일을 회상했다.
![[방탄소년단/전정국] 연리지[連理枝] : 06 - 上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72423/94115ff536ca7082c572130cc4cd1b9f.jpg)
한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이었다. 어언 1년간 그녀를 봐왔지만 그녀의 표정은 항상 무표정 그 자체였다. 제가 아무리 그녀를 웃게 하기 위해 실없는 소리를 해도 표정하나 바뀌지 않았고, 작은 실소 하나 터뜨리지 않던 그녀였다. 근데, 재수없는 세자를 앞에 둔 그녀는 내가 알던 그녀와는 많이 달랐다.
벅찬 감정에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두눈으로 세자를 올려다 보는 그녀였다. 이 세상에는 세자밖에 없다는 듯, 그렇게. 그리고 그 눈빛속에 담겨진 익숙한 감정, 그 감정은 내가 그녀를 볼때 무의식중에 보이던,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같은 눈빛을 하고 있는 세자였다. 그리고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아, 세자가 그녀가 지었던 시의 주인공이었구나.
두 연인 사이에 내가 낄 수 없다는 그 상대적 박탈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나와는 다른 마음이어도 내 옆에 있기만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내 옆에 그녀를 붙잡아 두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결국 그녀를 내 옆에 두는것에 성공해 그토록 애절하게 다른사람을 그리워하는 그녀를 보면서도, 니가 내 옆에 있어주어서 나는 다 괜찮아, 하며 모든것을 감내할 수 있을까. 그녀는 애초에 내게 기회를 준 적이 없었다. 자신을 좋아하지 말라고 했고, 내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다. 애초에 감정을 키운 것도 나 혼자였고, 결국 그녀는 내게 올것이라고 멋대로 생각했던 것도 다 내가 혼자한 것이였기에, 누군가를 원망 할 수도 없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너에게 왜 나는 그 사람이 될 수 없는거냐며 따져야 할까, 아니면 아무것도 모른척하며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내 마음을 숨김없이 표현하며 니 옆에 붙어있어야 할까. 떠오르는 두가지 대안 중 어떤것을 골라도 그 선택은 내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선택이였다. 그래서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어도, 내가 그 사람이 될 수 없어도, 니가 내 옆에 있어주지 못해도 니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아니지.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너 정말 김태형 맞아? 탐나는 것은 손에 넣고 말아야 하는 김태형 맞냐고.
갑자기 저 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정신이 바짝 들었고, 눈을 떠 작은 선반 위에 가득한 노리개들을 눈에 담았다. 뭐? 옆에서 그녀의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만족한다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 집어치우지. 그 둘 사이에 니가 낄 수 없고, 니가 그가 될 수 없다면 그를 그녀에게서 떼어놓으면 되지. 다시는 볼 수 없게 만들면 되는거야. 그녀가 니 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된다며? 세상 누구보다 이기적인 사람이 언제 그렇게 남의 감정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된거냐, 그 둘이 어떻든 넌 세자만 떼어내면 되는거야. 그러면 그토록 원하는 그녀의 옆자리가 니꺼라고.
그래, 맞는 말이야. 그게 나였지. 세자만 없으면 끝나는 거잖아?
한동안 죽어있던 태형의 눈동자가 살아났고, 곧장 일어나 그의 아버지의 처소로 향했다. 어떻게든 반역을 성공시키겠다며, 자신이 할 일을 알려달라는 태형을 보며 영의정은 흔치 않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태형은 자신의 선택이 정국과 청순은 물론, 그 자신까지 힘들게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른척을 했다.
훗날 어떤 결말이 와도 마지막에 그녀만 내 곁에 있는다면, 후회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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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남은 분량이 많은데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나눴어요! 뒤에 분량은 오늘 다 못쓸 것 같아서 ㅠㅠ
그래서 오늘 좀 짧죠...? 미안해요ㅠㅠ 그래서 구독료도 반으로 내렸어요ㅠㅠ
오늘 핵심은 여주의 감정과 태태의 심경변화!! 뚜둥!! 그리고 내일 뒷부분 정성스레 써서 오겠습니다!!
아 그리고 우리 독자님들 저보다 더 이글을 잘 분석하시는것 같아서 볼때마다 놀라워요...
저도 캐치하지 못했던 부분을 뙇!! 와 대단합니다 사랑합니다 ㅋㅋ
암호닉이 세분 늘었어요ㅠㅠ 감사해요 이 맴찢이기만 한 글 읽어줘서ㅠㅠ
♥오매불망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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