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라니까, 아까 김탄소 표정 못 봤냐?”
“어ㅋㅋㅋㅋㅋㅋ, 나 봄ㅋㅋㅋㅋㅋㅋ"
왜, 내 이름이 저기서…. 난 그냥 웃음거리구나…. 시무룩해져서 더 듣고 있다가는 상처만 받을 것 같아서 일어서서 나가려는데 아미가 다시 나를 끌어 앉혔다. 그러자 아미가 아까 내가 했던 모션을 취하며 음흉하게 웃었다. 시발, 나 그만 듣고 싶어….
나 너 좋아해 너 나 좋아해? 下
"탄소야!!”
헐, 시발. 아미의 손을 부여잡고 숨을 죽여 그들의 말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내게 하나의 시련이 다가왔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달려오는 기차 옆에서 소리를 지르면 기차 소리가 묻힐 지도 모른다는 그 여자아이가 진짜 존나 심각하게 큰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쿵쾅거리며 걸어왔다. ‘여기서 뭐해?’ 라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당연히 나의 정국님의 목소리는 멈춘 지 오래였고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기겁하며 일어섰고, 아미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엿듣고 있던 것을 들킨 것 같다. 좆 됐다….
“밥 먹으러 가는 길이었어.”
“아앙, 그래? 나도 같이 가도 돼?”
“야, 일어나. 어, 미안. 뭐라고?”
“오늘 밥 맛있다고 친구가 먼저 뛰쳐나가서 나밖에 없어. 같이 먹어도 돼?”
쿵쾅거리는 가슴을 왼손으로 부여잡고 큰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아직까지도 일어서지 못하고 있는 아미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몇 번 잡아당겼다. 아, 아니 이게 뭐람. 난 네 이름도 몰라…. 게다가 너는 나의 엿듣기를 방해하기까지 했어! 들키기까지 했다고…, 망했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싫어.’ 라는 말을 꾹 삼키고 입꼬리를 억지로 말아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리는 말이 없는 나지만 저 아이는 목소리가 큰 것이 안 된다고 하면 소리를 질러 내 고막을 찢어 버릴 것만 같았다.
“고마워, 가자!!”
“어…,탄소?”
엄청난 친화력으로 나와 아미의 사이에 껴서 팔짱을 낀 그 아이는 멀뚱히 서 있는 아미와 나를 끌고 모퉁이를 돌았다. 잘, 잘생겼어. 저 눈에 빠져들 것만 같…. 시발? 전정국의 얼굴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빤히 바라보는데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만 같아 고개를 숙였다. 달아오른 귀가 보일 새라 귀 뒤로 꽂고 있던 옆머리를 풀어헤쳐 귀를 가렸다. 모두 들었을거야, 그리고 눈치를 챘겠지…. 내 스토커 짓을…, 오늘이 처음이었는데. 억울함과 부끄러움과 같은 오만가지 감정이 뒤섞여 내 주위를 뱅뱅 돌며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모른 척 조용히 지나가려 그들 사이를 스쳐지나가자 뒤에서 전정국의 목소리가 들렸다. '탄소.’ 하고-, 어? 탄소? 나? 가던 걸음을 멈추고 급하게 전정국을 향해서 뒤돌아섰다. 그 친구의 엄청난 팔 힘으로 행하여지던 팔짱과 초인적인 스피드로 돌아본 나의 힘에 의해서 몸이 살짝 휘청였다. 돌아보는 동안에도 눈을 마주치고 있던 전정국이 ‘어!’ 하고 작게 소리를 내었다. 나랑 가깝게 있었던 민윤기와 박지민이 잡아주기라도 하려 했던 듯 움찔거렸다. 물론, 내가 중심을 잡음으로써 모두 필요 없는 일이 되었다. 아까 전부터 계속 눈이 마주치는 전정국에 의해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가만히 있어도 힘들 것을 자꾸만 눈이 마주쳐 모닥불 같던 내 마음에 기름을 쏟아붓는 것만 같았다. 으아, 내 심장, 내 마음, 내 가슴인데 왜!! 휘청거리는 동안에도 전정국의 눈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눈을 크게 뜨고 있었는데 이마에 주름이 생긴 걸 본 게 아닐까? 안 돼, 안 돼….
“왜, 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 어? 아니, 점심 맛있게 먹어.”
“그래!! 우리 맛있게 먹을게, 너네도 잘 먹고 초코머핀 안 먹는 사람은 나 줘라? 엉?”
주체할 수 없이 뛰는 심장박동 소리에 전정국을 제외한 무리들이 목젖이 다 보이도록 웃는 것이 흐리게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 구역 싸가지는 나야!! 하는 느낌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하려 했으나 마음과는 다르게 말을 더듬었다. 젠장, 숨을 헙. 하고 들이 마쉬었다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전정국이 할 얘기를 잊어버린 것인지 갑자기 당황하며 점심 맛있게 먹으라며 말끝을 흐렸다. 옆에 있던 김태형은 배를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앉았으며, 김남준은 어느새 벽에 한 손을 올린 뒤 힘껏 웃으며 벽을 긁어대고 있었다. 정호석과 김석진은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정국이가 나한테 점심을 맛있게 먹으라고 해줬어! 감격스러워 오늘은 기필코 무슨 일이 있어도 맛있게 먹으리라 다짐했다. 그런 전정국의 말에 그 친구가 팔짱을 풀며 또다시 큰 소리로 이야기했고 아미는 표정이 한껏 일그러지며 그녀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미야, 그 표정도 아닌 것 같아, 많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심장 박동에 심장이 다 아플 정도였는데 마치 아주 작은 무언가를 내 속에 가둬놓고 탈출할 수 있으면 어디 한 번 탈출해봐. 하는 것만 같았다.
“아, 고마워. 너도 맛있게 먹어.”
소리치며 환호하는 내 속과는 다르게 아무 일도 없던 듯 태연한 척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았는데 제발 아무도 본 사람이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조곤조곤한 말투로 대답하자 미친 듯이 웃고있는 그들이 짜기라도 한 듯 웃음을 멈추어 모두 나를 바라봤다. 시, 시발. 분명 내가 숨어있던 걸 눈치채고 이러는 걸거야…. 얘들아, 고마웠고, 다음 생에도 꼭 만나자…. 다음 생에는 난, 순탄한 삶을….
혼자서 수 천 가지의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오잉?’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 뻘쭘함을 눈치 챈 아미가 조용히 내 팔을 잡아끌며 어색하게 웃었다. 정말 공기의 흐름이 어색어색이었다.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하하하….’ 아미의 손을 꼭 붙잡고 계단을 내려오자 아미가 그 친구를 어딘가로 내팽겨치더니 지랄발광을 하는 걸 말리느라 많이 (엄청나게 심각하게 존나) 쪽팔렸다..
“아니! 왜! 너한테! 얘기했는데!”
“진정, 진정….”
“지가! 대답을! 해?!”
“흥분할 만한 내용 아니니까 캄 다운.”
“핑크기류였는데!!”
아미가 ‘으아아!’ 거리며 양손을 번갈아가며 가슴을 두들겼다. 정말 킹콩 같았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저 공격의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 나로 바뀔 것만 같아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밥을 먹는 도중에도 전정국의 ‘점심 맛있게 먹어.’ 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더불어 '탄소.’ 까지도. 아으, 존나, 내, 심장. 겉으로는 최대한 티내지 않으려고 밥을 먹는 척 했는데 사실 밥을 입으로 먹었는지, 코로 먹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색하게 올라간 전정국의 입꼬리가 생각나 밥을 먹다가 사례가 들려 아미에게로 밥을 뿜어냈다.
“하…, 시발….”
“죄, 죄송합니다.”
하필이면 내 입에서 뿜어져 나간 밥알이 아미의 애지중지 초코머핀으로 튀었다. 급격히 썩어 들어가는 표정을 보자 지레 겁부터 먹고 지금 내가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이 곳이 학교인 것을 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으려 했다. 슬슬 눈치를 보며 내 초코머핀을 내밀었다. 내 초코머핀…. 사실 나도 내 눈 앞에 보이는 초코머핀의 노예가 되고 싶었지만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아미가 더 무서워 손을 벌벌 떠는 것을 멈추지 못 했다. 신경을 바짝 곤두세운 아미가 내 머핀을 채가서 이번에는 어떠한 방어도 막아내겠다는 듯 가려지지도 않는 숟가락으로 방어막을 쳐두었다. 아미가 머핀까지 모두 만족스럽게 먹어치울 때까지 상냥한 미소를 지은 채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맛, 맛있었니?”
“어, 존나 맛있었음. 맨날 나왔으면 좋겠다.”
교실에 돌아와서 자리를 찾아가려는데 전정국의 자리에 앉아서 날 바라보는 박지민과 전정국을 제외한 무리들이 보여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 했다. 하마터면 헐, 시발! 하고 크게 외칠 상황이었는데 생존 본능이었는지 가까스로 입을 막아낸 내가 놀란 얼굴로 최대한 그들을 무시하려고 애쓴 채로 자리에 털썩 앉았다. 뒤에서 존나 수상스럽게 눈빛을 주고받던 그들 중 갑자기 박지민이 갑자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엄마, 아빠,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었는데…. 죄송합니다….
“뭐, 뭐야?”
“미친, 박지민. 빨리 손 내려. 전정국 오겠다.”
“어쿠야, 김탄소-.”
박지민이 급하게 어깨에서 손을 떼며 만지지 않는 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양손을 얼굴 가까이로 들고 있었다. 말꼬리를 요동치듯이 길게 늘였다. 정, 정국아, 언제 오니…. 살려줘….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티 안 내고 엿들을테니 제발….
“우리 전정국이 잘 부탁해-.”
“어? 뭐?”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는 주먹에 힘을 풀었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두리번거리다 보인 아미 역시 놀란 표정이었다. 내가 뭘 들은 거야? 누구한테 누구를 부탁해?? 응?! 다시 한 번 눈을 크게 뜨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정말 진심으로 웃음기가 빠진 얼굴이었다. 이 장면, 익숙해. 마치 아까 본 것만 같…. 등에서 식은 땀이 흘러 축축했다. 제발 진지 하지마, 나 너희가 진지하면 무서우니까….
남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얼굴이었겠지만 혼자서 겁에 질려 있던 도중에 구세주가 등장했다. 교실로 전정국이 들어왔다. 왜, 이제오니! 어서 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나와 눈을 마주치곤 옆에 있던 친구들에 놀란 것인지 한 걸음에 달려와 ‘아, 내 자리야!’ 라며 친구들을 쫓아내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들 중 특히 박지민이 아미와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미소를 짓고는 위풍당당하게 걸어나가려다 앞에 있던 의자에 발이 걸려 고꾸라져 넘어졌다. 옆에 있던 민윤기가 해맑게 웃으며 넘어지려하는 박지민을 걷어찼고, 바닥으로 넘어진 박지민을 다섯 명이 둘러싸고 발로 무자비하게 밟았다. 어쩌면 저게 내 운명이었을 지도 몰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전정국을 바라보았다. 어느 틈에 그들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나를 협박하려다가 박지민의 말실수로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나 대신 맞으러 끌려갔을 지도 몰라!
“오늘 초코머핀 맛있었다던데, 맛있게 먹었어?”
“어? 초코머핀, 난 안 먹었어.”
“왜? 초코 싫어해? 아님 빵을 싫어해?”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고선 꼬치꼬치 캐묻는 정국에 눈알을 돌렸다. 얼굴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침 삼키는 소리마저도 들릴 것만 같아 입 속에 자꾸만 고이는 침을 조용히 나눠 삼켰다. 아니, 사실은…. 내가, 아미의 빵에 밥알을 뿜는 바람에…. 솔직히 말하려다가 굳게 입을 다물었다. 첫인상도, 그 다음도 말아 먹었으니 조용히 있어야지, 뭐. 어떻게 내가 정국님께 그렇게 얘기하겠어….
“아, 아니. 그냥 사정이 있었….”
“그래? 그럼 잠깐 나 따라와.”
동의 표시할 새도 없이 전정국이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영문도 모른 채로 설레는 마음을 품고 전정국이 이끄는대로 따라가자 도착한 곳은 매점이었다. 전정국이 잡은 손목이 화끈하게 달아올라 그곳에서도 맥박이 느껴졌다. 온 세상이 핑크색으로 도배된 기분이었다. 내가 잡힌 손목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전정국이 화들짝 놀라며 손을 거뒀다. 아, 안 떼도 되는데. 아니야, 계속 잡고 있었으면 분명 심쿵사로 죽었을거야. 확실해.
“초코빵 괜찮지?”
“응? 응.”
갑자기 뒤를 돌아 묻는 전정국에 놀라 말끝을 흐리자 전정국이 멈칫하더니 다시 앞을 보고선 ‘초코빵, 초코빵’ 이라며 빵을 계산했다. 갑자기 눈 앞으로 초코빵을 내밀며 입 모양으로 ‘먹어.’ 라고 이야기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빵을 받아들고선 쉼호흡을 했다. 이러다 정말 심장에 무리가 올 것만 같다.
다시 전정국이 앞장을 서서 돌아온 반은 어느새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빵을 책상 위에 내려두고 바라보기만 하자 전정국이 옆에서 검지 손가락으로 빵을 툭툭 쳤다. 손가락도 길고 예쁘네. 손가락에 시선을 뺏겨 그쪽으로 시선이 따라갈 뻔 했다.
“왜, 싫어? 다른 거 먹을래?”
“아니아니! 나 지금 먹어!”
이 빵은 집에 가져가서 가보로 간직하고 싶었는데…. 급하게 포장지를 까서 입에 물었다. 누가 사줘서 그런지 맛이 환상적이었다. 입 안에서 교양이 넘치는 예술 작품 전시회가 열리는 것만 같았다. 크게 빵을 한 압 베어물고 오물거리다가 바로 전정국에게 먹던 빵을 내밀었다. 당황하는 그의 표정이 보였다. 시발, 나 무슨 짓거리를 한겨. 감히 정국님에게 내가 먹던 걸…. 생각과 동시에 전정국이 웃으며 받아 베어물었다. 어어, 완전. 대박. 세상에. 말도 안 돼.
“탄소야.”
“응?”
“우리 이제 곧 고3이야.”
“응.”
존나 암울하다. 고3이면 반도 바뀌고 정국이도 못 보…. 아, 아냐. 난 공부를 해야지. 정신 차려!! 일상생활은 가능하자, 제발. 오늘 하루종일 눈을 마주치는 것만 같은 전정국이 보였다. 마주치기만 하면 붉어지는 것만 같아서 계속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네가 계속 나 공부 가르쳐주면 좋을 것 같은데.”
“응?”
“나 너랑 같은 학교 가고 싶어.”
시끄러운 소리 속에서도 또렷하게 전정국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뭐라고?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것만 같았다. 앞에서 나를 보며 생글생글 웃는 그의 얼굴의 입꼬리가 떨렸다. 아마도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그의 옅게 붉어진 귀가 눈에 보였다.
“그래, 꼭 같이 학교 가자.”
“손 잡고 같은 학교 들어가자, 우리.”
모닥불이 어느새 산불마냥 빠르게 번져 화르르 불 타올랐다. 쿵쾅대는 소리가 세상이 무너질 듯 크게 들렸다. 몰라, 나는. 나는. 으아아!! 말도 안 돼!! 전정국님이!! 나를 보며 웃는 정국과 마주보며 미소지었다. ‘일요일에 도서관 갈래? 나 공부 알려줘.’ 라며 정국이 활짝 웃었다.
제가 지금 졸려서 뭘 쓴건지도.. 자고 일어나서 수정해야 겠어요.
오늘도 한 분이라도 봐 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써본 글입니다..
이 글은 상편과 하편으로 나뉘었지만 이대로 끝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