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 승관아, 제주도에선 진짜 수박에 된장 찍어먹냐? "
야간 자율 학습시간 정적이 흐르는 교실에서 얌전히 공부 하는 줄로 알았던 이석민이 오랜 생각 끝에 부승관에게 나름 진지한 질문을 했다.
정말 감탄 밖에 안 나온다, 이것이 고3이 할 짓이 맞을까?
예상 외로 부승관은 조용했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 야... 부승관 뭐해, 부승관! "
" ㅇ,어? 어 야 이거 봐. 내 눈이 잘못 된 거 아니지? "
" 줘 봐, 어... 아닌데? 야 부승관 좋겠다. 우리 이번 체험학습 제주도래~ "
하느님, 저한테 제발 거짓말 하라고 말씀 좀 해주시지 그랬어요.
이석민의 발언은 까먹은건지 어느새 교실 뒷 편으로 나가 신발을 들고 춤을 추는 둘이 보였다.
대체 신발은 왜 드는 것...?
이 놈의 학교는 고3에게 체험학습을 무슨 생각으로 보내는 것인지, 왜 야자를 새벽 1시 까지 시키는 것인지 정말 석민이같아!
이석민이 여기 같이 가자 할 때부터 알아왔어야 했는데... (절레절레)
유독 깜깜한 공간을 무서워 하는 나를 위해 부승관은 중,고등학교 내내 나의 등하교를 함께했다.
처음부터 얘가 순순히 같이 해준 건 아니고...
" 야 승관아... 나 오늘만 같이 가주면 안 되냐, 내가 진짜 오늘은 뭔가 삘이 왔어. 이석민같은 애가 쫒아올 것 같은 그런... "
" 아 야! 내가 뭘!!!!"
부승관은 귀찮은 표정을 하고 집을 간다며 먼저 학교를 빠져 나갔다.
결국 이석민이 근처 골목길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간 후 어두운 길을 홀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상하리만큼 오늘따라 느낌이 안 좋았다. 그리고 지금 느꼈다, 며칠 전부터 들리던 소름 끼치게 속도가 비슷한 발걸음 소리를.
너무 무서워 우리 집이 아닌 근처 승관이네 집으로 뛰며 계속 전화를 했다.
" 아 왜 연결이 안 돼... 아 진짜 제발. "
그제서야 깨달았다, 부승관은 이석민과 놀다 폰을 고장냈다는 것을.
뒤에 오던 그는 내가 연결이 안 되는 것을 눈치채고 웃으며 천천히 천천히 나를 쫒아왔다.
급한대로 이석민에게 전화를 연결했다.
그런데 이석민이 아닌 애타게 찾던 부승관이 내 전활 받았다.
그제서야 눈에 들어 온 부재중 목록엔 이석민으로 가득 차있었다.
" 어디야, 왜 전활 안 받아 멍충아! "
" ㄴ,나... 나 너네 집 가고있어... 아 승관아 어떡해 나 너무 무서워. "
" 지금 갈게, 나 갈거야 000. 내 말 들리지? 나 가니까 진정해 00아. 그리고 혹시나... 만약 내가 늦으면 우리 아파트 경비 아저씨한테 바로 가. 알겠지? "
" 알았어... 끊지마 나 너무 무서워, 끊지마 승관아. "
곤란해하는 부승관 목소리가 끊기고 이석민이 대신 대답을 했다.
" 승관이 지금 니 목소리 듣고나서 보는 내가 더 안쓰러울 정도로 불안해 해. 아깐 진짜 미/친//놈인 줄 알았어. "
"... "
"나보다 우리 집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더라, 나 보고 제일 먼저 한 말이 뭔 줄 아냐? 너 데려다 주고 왔냐고 묻더라.
그래서 그 골목길 까지 데려다 줬다니까 나한테 처음으로 화냈어. 거기 니가 제일 무서워 하는 길이라고 엊그제 사건 있었던 곳이라고. "
이석민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들을 수 밖에 없었다,그리고 나는 땀 흘리는 거 제일 싫어하고 달리는 거 귀찮아하는 부승관이
땀에 젖은 채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마주했다.
화난 그 아이의 눈과 눈물로 가득 찬 내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눈물이 떨어지려 할 때 쯤, 내 앞으로 그 아이의 체취와 옅은 땀 냄새가 훅 끼쳐왔다.
승관은 우는 00을 보기 싫어 껴안은 후 뒤에 멈춘 그 남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00에게 말했다.
" 내가 길 조심히 다니라고 했지. 요새 미/친//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후... 미안해, 내가 미안해 너 두고 가서 미안해 00아. "
여기까지가 내 기억의 끝이다, 나는 그 후로 거의 잠드는 수준으로 기절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날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승관이가 좋아진 것이.
우리 승관이는 요새 바쁘다, 체험학습이 2박 3일인데 이틀날에 있을 장기자랑을 준비한다나 뭐라나.
승관이는 꽤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인기쟁이 우리 학교 가수였다. 그래서 의외로 여학생들 팬클럽이 있다.
장기자랑 때 아주 난리 나겠네.
어느새 체험학습 일이 되었다.
첫 날은 다들 피곤해서 이렇게 저렇게 대충 넘겼고 이번 체험학습의 꽃인 장기자랑이 시작됐다.
다들 고3 스트레스를 날리는지 정말 장기자랑의 분위기는 화끈하다 못해 불이 붙을 지경이었다.
곧이어 부승관의 무대 시작을 알리는 멘트가 나오고 여기저기서 열띤 함성이 나왔다.
커튼이 걷히고 꽤 신경 써 입은 듯한 승관이가 모습을 보였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꾸민 승관이가 내가 좋아하는 노래로 공연을 시작했다.
노래의 하이라이트가 다가오는데 갑자기 노래가 뚝 끊겼다.
여기 저기서 야유가 들려왔지만 당사자인 부승관은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그리고 부승관의 한마디는 순식간에 우릴 조용히 만들었다.
" 00아. "
조금은 쑥쓰러운 듯 늘 불러왔던 내 이름을 불렀다.
" 니가 괜찮든 안 괜찮든 무대로 좀 올라와주라. "
어느새 내 양 팔을 붙잡은 권순영과 이석민이 날 끌고 무대에 올랐다.
당황스럽고 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 날을 기다렸기에 그저 승관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 00아, 내가 남자로서 많이 매력이 없다. 매일 너한테 장난스러운 모습만 보여준 거 나 엄청 후회하는데
넌 그런 모습보고 사람 판단 할 애 아니라는 거 아니까. "
확신에 찬 눈빛으로 나를 보며 웃는 승관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승관이는 분위기가 살짝 바뀐 발라드에 자신의 목소리로 한 줄 한 줄 읽어가듯 노래를 했다.
그리고 반주가 서서히 작아지며 내 손을 꼭 잡은 승관이가 마지막 구절을 부르는 것을 끝으로 강당은 함성 소리로 가득 찼다.
"사람들이 다들 그러는데 너랑 나랑 둘이 제일 잘 어울린대 그 어떤 남자보다 내가 더 잘할게 my love "
"너를 사랑해"
가사: 케이윌- 오늘부터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