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기, 잠깐 서 봐. 어디서 만난 적 없나 우리? "
" 사람 잘못 보셨는데요, 그럼 이만. "
아 x됐네.
모자를 쓴 고개를 푹 숙이며 냅다 뛰기 시작한 순영의 뒤를 쫒는 검은 양복 입은 남자들.
이런 일이 익숙한지 어느새 따돌리곤 어느 골목길에 주저 앉아 하늘을 쳐다봤다.
" 언제까지... 언제까지 뛰어야 합니까 저는, 저도 평범하게 살면 안 되는 겁니까? 제 주제에 너무 큰 걸 바라는 겁니까...? "
푹 젖어버린 순영의 낮은 목소리가 골목길을 나지막히 채웠다, 그리고 순영은 바랐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길 들었기를.
" 야 00아, 오늘 전학생 온다며? "
" 아아, 맞아 오늘이야 오늘. 남자라던데? "
" 아 야! 그걸 왜 이제 말해줘? "
부랴부랴 거울을 들여다 보며 화장을 고치기 시작한 친구의 모습을 한 번 있는 힘껏 한심하게 쳐다보다 드르륵 거리며 열리는 앞 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 자 자, 조용. 지금부터 전학생 소개 할테니까 잘 듣고 적응 잘 시켜 주길 부탁한다. "
담임 선생님 옆에 전학생으로 추정되는 아이는 꽤나 날카로운 인상의 소유자였다.
특유의 카리스마 때문인건지 시끄럽던 아이들 또한 숨죽여 그 아이의 말을 기다렸다.
" 권순영, 많이 볼 일 없을텐데 그냥 듣고 흘리지. "
그럼 그렇지, 날카로운 인상답게 소개 또한 날이 서있었다. 누가 지 이름 기억 해준다나?
그런데 선생님 왜 제 뒷자리가 빈거죠? 설마 쟤를 여기 앉히실...
" 그래 순영이는 저기 00이 뒤에 빈 자리에 앉고 이만 조례 끝. 오늘도 열심히 공부해라. "
속으로 차마 못한 욕을 곱씹고 있을 때 쯤 그 아이는 내 옆을 스쳐 지나가 내 뒷자리에 앉았다.
그 아이에게선 의외로 좋은 향이 났다, 그런데 옅은 피 비린내가 나는 건 착각일까.
학교가 끝나고 순영은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왔다, 엊그제 칼에 찔린 상처가 다시 벌어져 출혈이 심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이런 모습을 들키면 안된다, 그러다 뒤에서 칼 맞는기 쉽상이다.
그 날 그 골목길을 찾은 순영은 황급히 상처 부위를 봉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마저 쉽지 않은지 순영의 손에서 떨어진 붕대는 하염없이 굴러갔다.
"... 권순영? "
집을 가는 길에 내 앞으로 흰 붕대가 굴러왔다, 핏자국이 마르지 않은 것을 보아 상처가 난 지 얼마 안 된 듯 했다.
붕대가 굴러온 곳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니 피를 흘리며 괴로운 듯 신음하는 권순영이 보였다.
아까 학교에서 그렇게 밉게만 보이던 녀석이 왜 안타까웠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살리고 봐야하니까.
녀석은 의외로 얌전했다, 아니 고통에 지쳐 잠시 눈을 감았다.
" ...야, 다 됐어... "
살짝 흔들어 깨우니 그제서야 눈을 뜨는 권순영.
바람빠진 웃음소리를 푸스스 내더니 내게 낮게 말한다.
" 고마운 건 고마운데... 말하면 니 목숨 보장 못 해줘. "
" 안 말해, 안 말할테니까 니 상처나 관리 잘해. "
내심 그 아이가 신경 쓰였지만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왜 였을까, 그 여자아이는 왜 내게 이유를 묻지 않았을까.
멀쩡한 사람이 칼에 맞고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왜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결국 답은 하나였다.
그 여자아이는 무언가 특별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 희망이란 것을 꿈꿔보려 한다.
뒷자리가 아직 비어있어서 그런지 아님 어제 그냥 두고 와서 그런지 괜시리 신경이 쓰였다.
그런 내 걱정을 막기라도 하는 듯이 권순영은 삐뚤어진 넥타이를 매고 조금은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내 뒤로 와 앉았다.
어깨를 톡 톡 치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면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 아이가 보였다.
" 안녕, 000. "
" 뭐야... 어떻게 내 이름... "
" 어떻게 알았냐고? 글쎄. "
어깨를 으쓱해보이던 권순영은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나쁜 애는 아닌 것 같다.
" 너 요새 뭐하고 다니냐 순영아. "
" ... 보스, 무슨 문제라도... "
" 긴 말 안한다, 없애. "
" 보스 하지만 저를 구해준 사람입니다. "
" 우리 조직 정보를 빼돌리다 걸린 배신자 새끼일 뿐이야. 죽여. "
내게 늘 뒷모습만 보이는 보스라는 남자에게 나는 그렇게 늘 무너지고 말았다.
어릴 적 나를 구해준 사람, 내게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정보를 빼돌리다 걸렸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존재였다, 잡으려 하면 도망가고 죽이려 하면 도로 그를 죽여버리는.
건물을 빠져나와 올려다 본 하늘은 여전히 깜깜했다.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왜... 그러셨어요? '
그저 말없이 내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내게 서류를 건넸다.
" 순영아, 권순영. 누가 뭐래도 너는 내 자식이나 다름없다. "
" ... 실장님. "
" 너를 여기 더이상 둘 수 없었어. 그래서 너에 관한 정보는 모조리 지워버렸다. "
" 어째서... "
" 어째서라... 그게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으니까. 그 서류는 앞으로 네가 팀장으로 들어갈 회사에 대한 것이다.
거기서 다 잊고... 차근차근 올라가. "
결국 나 때문이었다, 나를 위해 그는 목숨을 담보로 무모한 일을 저질렀다 결과는 성공이지만.
" 내가 죽으면 바로 보고 하거라, 그리고 넌 곧장 여길 떠나. 다신 그들과 엮여선 안돼. 내 말 알겠니? "
" 아버지... 아버지라고 한 번...만 불러봐도 되겠습니까... "
내가 오기 전 미리 약을 먹은건지 그는 괴로워하면서도 내게 웃었다.
그리고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위대하고 멋진 그가 마지막까지 다정한 목소리를 남긴 채 이 더러운 세상을 떠났다.
" 난 이미 늘 언제나 네 아버지다. "
빌어먹을 세상은 날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와 같은 분을 떠나보내고 나는 내 희망을 만났다.
" 권순영... 너 무슨 일 있냐? 표정이 왜... "
놓치기 싫어 안아버렸다, 꼭.
내 희망아 이제 사라지지 마.
권순영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놀랐다거나 그가 혐오스럽다거나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더 보듬어주고 싶었다.
졸업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순영이는 학교가 아닌 회사를 택했다.
아버지같은 분의 목숨과 바꾼 떳떳하고 반듯한 회사.
그렇게 순영이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나에게 당당해지기 위해 이를 악물고 열심히 버텼다.
어느새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마저 졸업한 20대 중반이었다.
순영이이 회사를 알았지만 그래도 지켜주고 싶었다.
마침내 그가 목표를 이루고 내게 보여줄 때 그 가슴 벅참을.
조용하던 초인종이 시끄럽게 울렸다.
문을 열자 들어오는 예쁜 드레스들과 메이크업 박스, 구두들에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으면 제일 권력자로 보이는 여자가 꾸벅 인사를 하고 웃으며 소개를 시작한다.
" 안녕하세요 아가씨, 이사님 지시로 왔습니다. "
" 네...? 이사라면 누구... "
" 그건 잠시후 확인 시켜드리겠습니다 아가씨. "
따라 들어온 여자들이 분주하게 날 변신시켰다.
추리닝에 올림머리를 하고 있던 나를 정말 헉 소리나게 바꿔놓은 그녀들이 새삼 대단했다.
아직도 어리둥절한 나를 차에 태우곤 어딘가로 급하게 출발했다.
도착한 곳은 호화로운 어느 호텔이었다.
오늘의 행사란엔 놀랍게도 순영이의 회사이름이 적혀있었다.
고작 그 아이의 회사 이름을 봤을 뿐인데 너무 들떠버린 내가 영 익숙치 않았다.
안내를 받고 들어선 행사는 순영이가 다닌다던 회사의 창립 기념 파티였다.
무언가 느낌이 왔다, 여기에 날 초대한 이사라는 사람은 권순영이라는 그런 느낌.
그릅 조급하게 찾지 않았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만날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드디어 찾았다.
그 때와 다름없이 날카로운 인상을 가졌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예전보다 훨씬 훨씬 따뜻해진 그를.
그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면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 잘 찾아왔네, 보고 싶었다 여전히 예뻐 희망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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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권이사라니! 권순영이 이사님이라니! 하 정말 좋은 주제인데 제가 망친 건 아닌지ㅠㅠㅠㅠㅠ
암호닉, 주제 신청, 오타지적, 신알신 언제나 받고 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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