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계절의 끝에서 01: 겨울 끝에서의 너는
사실 내 이런 생각의 근본적인 원인은 엄마였다.
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 누가 그러던가. 정말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면 그 인연은 땅에 사는 사람의 의지로 맺고 끊을 수 있게 만들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엄마는 그렇게 매몰차게 떠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수년을 살게 내버려 두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학창시절 내내 생각해 왔다. 이 시절만 지나면 뭔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아무리 그 어느 것에도 기대를 걸지 않는다 결심해도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간사한 동물이다. 아니란 걸 안될 걸 알면서도 기대하고 실망하게 된다.
나에게 대학은 그런 존재였던 것 같다. 그저 막연하게 뭔가가 다를 것이라고생각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그냥 버티기 위한 수단쯤으로 대학을 이용했던 걸지도모르겠다.
막상 들어 와본 대학은 나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학창시절의 인간관계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 같이 다닌다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넌 틀렸다고 창피를 주듯 대학교의 관계는 더 이해타산적이었다.
역시 내 단정이 틀렸단 걸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난 또 단정 짓기 시작했다.
대학교를 와서 좋았던 점은 휴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물론 고등학교도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 나이의 우리는 복학한 언니,오빠를 아무렇지 않게 볼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다. 또 흔한 일이 아니기도 하고.
학창시절의 도피처는 대학교였고, 대학교의 도피처는 아르바이트였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면 좀 더 다른 걸 볼 수 있을까 했지만 역시나 틀렸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고 한낱 알바인 나에게 인격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학교를 다닐 땐 그래도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본모습은 감추고 사는 경우도 많이 보였다.
알바와 고객은 그런 이해관계를 따질만한 사이가 못된다는 것을 멍청하게도 또 겪어보고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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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사장님, "
" 어 그래그래 요즘 일 너무 잘 해줘서 고마워.바빠서 이 말 해준단걸 자꾸 까먹었네 "
" 아니에요 제 할 일 하는건데요 뭘 "
" 근데 왜? 할 말 있어서 온건가? "
" 저 이제 복학해야 될것 같아서요. "
" 그만둔다는 얘긴가? "
그 인상좋던 사장님 얼굴이 순간 변하는듯 했다. 최저시급도 안 받고 열심히 일 해주는 사람 찾기 힘들겠지.
" 네. 근데 당장은 아니고 이주정도는 더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
사장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제 자리로 돌아왔다. 역시 사람은 다 본인 이익을 챙기기 바쁘다. 물론 나도
내가 최저시급도 받지 않고 계속 일을 했던 이유는 일거리가 많지 않고 집도 가까웠기 때문이다.
최저시급을 받을 수 있지만 일이 많고 거리가 먼 곳보다 낫다는 판단이 섯었다.
사장님과 나는 서로 윈윈이였던 셈이다. 사장님은 다시 윈윈 할 수 있는 상대를 찾아야 할 것이다. 뭐 사람 사는게 다 그렇지
딸랑-
" 어서 오세요. 주문받겠습니다. "
" 고구마라떼 한 잔이요. "
휴학을 한 지 일년쯤 다 되어 갈 때, 하던 알바를 정리하고 학교로 돌아가려고 할 때 널 처음 보았다.
너의 첫인상은 좋았다. 굳이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한눈에 봐도 좋은 사람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종종 말 앞뒷머리를 잘라먹고 얘기하는 사람, 돈을 던지듯 주는 사람 아니, 그냥 날 사람 취급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넌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별거 아닌듯하지만 눈을 보고 얘기해 주는 너의 눈은 빛났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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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탄소 나 왔다 "
" 뭐야 설마 또 공짜 커피 달라고? "
" 아니~ 오늘은 돈 내고 마실건데? 빨리 손님 대접 해줘. 앉아서 뭐하는 거야? "
손님 대접 해 달라는 말에 내가 언제 손님 대접 안 해준적 있냐고 푸스스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 났다.
" 저기 가서 앉아있어. "
커피를 가지고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있는 박지민 앞에 앉았다.
" 여기는 뭐 커피 나오셨습니다. 손님 이런건 마음대로 생략하는건가? "
" 몇 번 말하냐? 커피한테 존칭삼가하라고 "
" 요즘은 이렇게 해야지 컴플레인 안 먹는다 너? "
박지민은 내가 대학에 와서 본 아니 인생을 통틀어 만난 사람 중 제일 티 없는 사람이었다.
딱 봐도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을 줄 안다고 사랑도 그런 것 같다.
사랑도 받아본 놈이 또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다는 걸 박지민을 보고 알게 되었다.
우리 둘은 그냥 그런 관계였다. 사랑을 주는 법도 받는 법도 모르는 내가 박지민에게 배우는 관계.
뭐 선생과 학생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물론 박지민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 근데 어떡하냐 너 이제? "
무슨 말을 하냐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박지민이었다.
" 너 이제 공짜커피 못 먹어. "
5초 가량 무슨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던 박지민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 드디어 복학하는거야? 커피는 돈 주고 사 마시면 되는거고. 복학 언제 하는데? 알바는 언제까지 해? 뭐 준비 할 건 다 했고? "
박지민은 내가 복학하기를 누구보다 바랬던 사람이다. 나보다도
나에게 복학을 재촉하고 싶어하는 박지민이 눈에 훤히 보였지만 난 외면했고 박지민 또한 그런 나를 알기에 아무말 하지 않았다.
그런 박지민에게 내 복학소식은 많은 질문을 만들기에 좋은 소재였다.
" 하나씩 물어봐라 좀. 음.. 일단 다음학기에 복학 할거고 알바는 이번주까지. 그리고 준비 할게 뭐 있냐. 그냥 가면 되지 "
" 알바 이번주까지? 나 이번주에 그럼 완전 죽치고 있어야 되는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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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라떼를 사갔던 손님은 내가 알바를 그만두기 이주전부터 지금 까지 꾸준이 1일1고구마라떼를 실천하고 있다.
오늘은 알바 마지막 날이었다. 마감전 어김없이 그 손님은 카페에 왔고 별다른 주문 없이 또 고구마라떼를 시켰다.
평소엔 언제나 한 잔만 시켰던 손님이 오늘은 두 잔을 시켰다. 아 고구마라떼가 너무 맛있어서 다른 사람 주려고 하는가보다라고 또 단정 지었다.
" 주문하신 고구마라떼 나왔습니다. "
평소엔 카드만 내밀던 손에 카페 적립카드가 같이 들려 있었다. 이주간 한 번도 내민 적 없던 적립카드를 받아 들었다. 적립카드 상단에 적혀있는 이름을 보았다.
이름이 두개 적혔다 한 개의 이름은 지운 흔적이 있었다.
' 전정국 '
새로 발급받은 적립카드는 아니었다. 스무칸 중 두칸을 남기고 꽉꽉 채워져 있는 카드였다.
" 왜 그동안 도장 안찍으셨어요? "
그동안 사먹은 고구마라떼만 해도 벌써 두판은 채웠을 적립카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 ... 그냥요 이걸 채워 넣을까 말까 생각 좀 하느라 "
도통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다 알겠다는듯이 카드에 도장 두개를 찍었다.
" 여기요. "
갑작스레 고구마라떼를 내미는 전정국의 손에 멀뚱히 그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
" 이거 드세요. 맛있을거에요. "
내일 부터는 알바를 그만둔다고 말 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 그냥 말았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전정국은 처음 만났을때의 종소리를 울리며 사라졌다.
내일이면 복학이다.
학비 핑계로 휴학을 하긴 했지만 사실 학교에 흥미가 떨어진 게 사실이었다.
예전과 같지 않은 인간관계 사람 대사람으로 만나는 느낌이 전혀 없던 이해타산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신물이 났다.
그런 학교의 도피처로 선택했던 아르바이트도 사실상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아르바이트도 다를 게 없었으니 미련없이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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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소야, 드디어 복학한거야? "
" 오~ 김탄소 드디어 컴백 "
" 뭐야 그 동안 연락도 없고~ "
의례적인 인사에 간단히 대답을 해 주고 유일한 내 대학친구 박지민을 찾았다.
아직 안온건가..?
" 김탄소! 왔어? 진짜 너 없는 학교가 얼마나 허전하던지.. 나 군대 갈 때 휴학 하라니까. 나 군대 갈 때 또 휴학해라 "
" 일년만에 복학한 친구한테 고작 하는 말이 다시 휴학하라고?"
" 장난이지. 일 년 만에 복학이라도 내가 맨날 너 일 하는데 가서 휴학했다 온 느낌도 안 들지 않냐?"
" 어. 솔직히 넌 좀 그만 볼 필요가 있는것 같다. "
" 이제 내가 휴학을 해야지. 넌 나 찾지마라. "
" 찾아 달라고 사정해도 안 찾을게 임마 "
" 맞다. 오늘 너만 복학하는거 아니던데? 복학동기 있어 너 "
실실 웃으며 말을 하는 박지민이었지만 복학동기는 무슨 입학동기도 안챙기는판에 복학동기?
" 오 그래? 별 관심없어 "
내 말에 박지민은 시무룩한척 하는 표정을 보였다.
" 넌 개강파티도 안 와서 얼굴도 모르잖아. 이따 오면 인사나 해 "
" 보고"
" 그 형 진짜 사람 좋단말이야. 너도 친하게 지내. 개강파티떄 봤는데 진짜 괜찮다? "
박지민은 무슨 틈만 보이면 나를 사람들과 인사시키고 친하게 지내라고 떠밀었다. 박지민의 노력이 가상하지만 아직 박지민이 설명한 만큼 괜찮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렇게 또 한참 박지민과 아웅다웅 하고 있을때 강의실의 뒷문이 열렸다.
" 형 왔어요? "
박지민은 강의실로 들어오는 그 사람 좋다던 형에게 인사를 하며 뒤로 갔다.
별 관심없는 나는 전공책을 뒤적거리며 앉아 있었다. 한 선배의 목소리가 귀에 꽂히기 전까진.
" 여- 전정국 드디어 복학이냐? "
전정국...?
뒤를 돌아보니 내 귀가 잘못 된 게 아니라는듯 웃고있는 전정국의 모습이 뚜렷이 박혔다.
전정국의 등장은 나를 적지않게 놀래켰다. 놀래기 충분한 상황이었다. 매일 고구마라떼를 사먹으러 오던 손님이 같은 학교 같은 과 학생이었단 사실도 충격적이고,
난 전정국을 카페에서 처음 봤다는 점이 의아해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엉켜붙어 풀어내겠다고 낑낑 거리고 있었다.
선배들과 인사를 하던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전정국도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 형형 얘는 제 친군데 이름은 김탄소고 얘도 이번에 복학했어요. "
" 우리가 같은 학교였네요. 심지어 같은 과? "
나만 전정국을 기억하는게 아니라는것을 증명해주듯 전정국은 아는 척을 해왔고
" 그러게요. 오랜만에 봬요. 아니 선배후배론 처음 보는거죠? 처음뵙겠습니다. 김탄소입니다. "
" 이름은 뭐 카페 유니폼 명찰로 많이 봤고, 이렇게 보니까 신기하네요. 무슨 인연인가 "
" 뭐 인연까지야. 학교 생활 무탈히 하시길 바래요. 아 그리고 말 놓으세요. "
" 아니 괜찮아요. 원래 말 잘 안놔서 "
박지민은 뭐냐고 물어왔지만 나 조차도 정리가 되지 않아서 확답을 해 줄수없었다.
역시 카페에서와 같이 전정국은 학교에서도 바른사람이었다. 그냥 그게 다였다.
그 떄 까진 전정국이 내 세상의 자전축이 되어 내 세상을 굴리게 될 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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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을 올렸습니다헤헿 근데 브금을 뭘로 할 지 고민했는데 글이 브금따라 느낌이 달라지더라구요.. 밝은 노래 넣으면 밝은 느낌이고ㅋㅋㅋㅋㅋ 다 제 부족이죠. 처음 생각대로 잔잔하면서 슬픈거 넣었는데 잔잔한가요... 독자님들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봄이 오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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