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계절의 끝에서
여름이 훌쩍 다가왔다. 아침 저녁으론 봄의 잔재가 남아 쌀쌀했고 낮은 푹푹찌는 더위가 찾아왔다. 학교 화단에 잔디들은다시 푸른 빛을 되찾았다.
아직까진 기분 나쁜 더움이 아니었다. 매일 등교하는 학교였다.
무리지어 삼삼오오 떠들며 등교하는 학생, 강의 시간에 늦었는지 빠르게 뛰는 학생 가지각색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마에 땀이 맺힐 때쯤 건물 안으로 들어올수있었다. 조금 낡은 듯 해 보이는 유리문에 붙어있는 당기시오 라는 말은
눈에 들어 오지도 않는듯 유리문을 밀어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에 있는 여러개의 강의실을 지나쳐 지나치게 많은 계단 앞에 섰다.
왜 우리 강의실은 일층이 아닌거야. 한 발씩 터덜터덜 계단을 올랐다. 4층이하의 건물이라고 엘리베이터 따위는 설치되어 있지 않은 건물이었다.
우리 강의실은 불행중 다행으로 3층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인 표시는 내가 겨우 2층에 도착했단걸 알려줬다.
내 눈 앞엔 나와 같이 계단 오르기에 지친듯한 뒷통수가 눈에 띄었다. 그 뒷통수의 머리카락은 이리저리찰랑거리며 부딫혔다. 낯익은 뒷통순데..
" 야!박지민! "
내 말과 거의 동시에 획- 돌아본 사람은 역시나 박지민이었다. 역시 저 머리카락하며 뒷통수는 박지민이야.
박지민의 표정엔 지친기색이 보이며 역력했다. 헥헥 거리며 날 쳐다보는 박지민의 옆으로 가기 위해 후다닥 뛰어 박지민과 위치를 맞췄다.
" 웬일이래?왜 이렇게 빨리 왔어? "
" 그냥 눈이 빨리 떠져서 "
" 왜? 어디 아파? "
눈이 빨리 떠졌다는 나의 말에 박지민은 토끼눈을 뜨며 내 양팔을 잡고 날 이리저리 살폈다.
오른쪽 뒷통수를 보고 왼쪽 뒷통수를 보는 일을 반복하는 박지민을 떼어내고 계속해서 계단을 올랐다.
박지민은 서두르는 걸음으로 다시 나와 위치를 맞췄다.
" 주말에 시간 돼? "
" 으응- 되는데. "
" 부산 갈래?"
" 부산? 회 먹으러 가게? "
박지민의 질문에 전정국은 왜 부산을 가자했을지에 대해 나도 골똘히 생각을 했다.
계단을 오르며 턱턱 막혀오는 숨은 짧은 생각따윈 멈추게 만들었다.
" 에이- 설마 회 먹으러 거기까지 가겠어? "
" 둘이 가자고? 데이트신청인가? "
" 아니. 정국선배도 가는데? "
박지민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발을 굴리며 계단에 멈춰서 야!라고 장난스레 소리를 쳤다. 나는 얜 또 왜이러냐는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박지민을 끌고 올라왔다.
" 내가 거기 낄만큼 눈치 없어 보이냐? "
" 뭔 소리야. 가기 싫냐? "
" 데이트는 다음에 하는 걸로 하자! "
이 말을 마지막으로 박지민은 문이 열려있는 강의실로 쏙 들어갔다. 박지민이 강의실 바닥을 쿵쿵거리며 제 자리를 찾아갔다.
넌 왜 맨날 여기만 앉아. 괜히 투덜거리며 박지민 옆에 앉았다. 옆자리에 눈에 익은 가방이 보였다.
선배도 벌써 왔네. 어디간거지?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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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 "
박지민의 투정을 부리기 시작하겠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전정국은 문을 열고 들어오다 왜? 라는 표정으로 문을 채 닫지 못 하고 그자리에 섰다.
박지민은 또 다시 발을 쿵쿵 굴리며 강의실 뒤에 위치한 문으로 가 전정국을 데리고 나갔다.
뒤로 향했던 시선을 거둬 다시 앞으로 돌렸다. 시선만 앞을 향했을 뿐 내 관심은 전정국과 박지민이었다.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박지민과전정국이 나간 문을 향해 걸어가 문고리를 돌렸다.
" 김탄소가 저한테 그런 말을 했다니까요?! "
문이 반쯤 열렸을 때 들려오는 박지민의 목소리였다. 난 문을 더이상 열지 않고 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박지민은 역시나 전정국에게 투덜거리며 내 험담을 늘어놓았다. 전정국은 박지민의 말을 듣고 풉-하고 웃음을 지었다.
내가 잘 말할게. 라는 말을 끝으로 둘은 강의실 문으로 다가오는듯했다.
나는 도둑질을 하다 들킬 위기에 놓인 사람처럼 뭘 어떻게 해야될지 머리를 굴렸지만 내가 무슨 행동을 하기까지의 시간보다 둘이 강의실 문을 열러 오는 시간이 더 빨랐다.
둘은 문 앞에서 문고리를 잡은 상태로 그대로 석고상이라도 된 듯 멍청히 서 있는 날 바라보고 섰다.
" 하하.. 교수님.. 아니 커피나 마셔야겠다. 같이 마실 사람? "
.
.
.
.
.
누가봐도 뭔가하다 들킨 사람같은 말투로 이젠 먹지도 않는 커피를 먹으러 가겠다고 했다.
내 가짜 행선지를 보고하는것도 모자라 막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박지민과전정국일걸 알았다는걸 광고라도 하듯이 자연스레 동행할것인가를 물었다.
전정국은 그런 날 보며 이상하다는듯 웃으며 눈썹을 찡긋거렸다. 아- 망했다 들킨건가
박지민은 그런 날 지나쳐 둘이 커피 마시고 오세요 라며 우리 둘의 등을 떠밀고 이내 강의실 문을 닫았다.
강의실 문 닫는 소리와 함께 찾아 온 정적에 괜한 민망함을 느끼고 있었다.
전정국은 내 어깨에 손을 두르고 교수님이든 커피든 갈까? 라며 입에 미소를 띄었다.
아마 누군가 이 모습을 봤다면 날 도망가지 못 하게 전정국이 잡고 있다고 해도 믿을정도로 어색한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갔다.
그 상태로 자판기 앞까지 왔다. 자판기 앞에 서자 먹지도 않는 커피라도 뽑을까라는 생각에 주머니에서 동전을 찾기 위해 손을 주머니에 넣었지만 애석하게도
동전은 커녕 먼지 한 톨 들어있지 않은것 같은 주머니였다.
" 돈도 안 가지고 커피 뽑아 먹겠다고 나온거야? "
" 아뇨. 분명히 아까까진 동전이 있었던 듯 싶은데.. "
" 이제 커피 안 마시잖아. "
" 율무차라도 마시려고.. "
말 끝마다 꼬리를 늘이며 누가 봐도 이상한 말을 입에서 뱉어내고 나서야 모든게 망했다 란걸 깨달았다.
전정국은 내가 문 앞에 서있던걸 모두 아는 듯 했다. 그 앞에서 난 어색한 거짓말로 전정국과 여기까지 와 버린 것이었다.
" 지민이랑은 다음에 같이 놀고 "
어린애 타이르는 듯 허리를 굽여 나와 눈높이를 맞춘 전정국은
" 이번엔 나랑 데이트 "
박지민이 계단에서 뱉은 말과 같이 데이트라는 말을 꺼냈다. 순간적으로 뛰는 심장에 나와 눈을 맞추던 전정국의 눈을 피했다.
분명 박지민이 데이트란 말을 꺼냈을땐 아무 생각도 들지않고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던 단어였다.
전정국의 입에서 나온 데이트란 단어는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하고 내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전정국은 눈을 피하고 고개를 떨군 날 두 손으로 볼을 잡고 고개를 다시 들게 만들었다. 내 눈 봐.
전정국의 목소리에 다시 눈을 들어 눈을 맞췄지만 이내 다시 눈을 깔았다.
전정국은 내 볼을 놓을 생각이 없는지 계속 해서 잡고 있었고 난 다시 전정국과 눈을 맞췄다.
" 내 눈 피하지마. "
" 아니 너무 가까워ㅅ... "
" 부산가서 재밌게 놀고 오자. "
전정국은 볼을 잡고 있던 손을 옮겨 내 머리를 쓰다듬었고 왔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시 어깨동무를 해 걸어갔다.
아직 진정되지 않는 가슴에 숨을 깊게 쉬기도 했고 마인드컨트롤을 하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일단 전정국과 하고 있는 이 어깨동무를 풀어야 내가 살 수 있을것 같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 사람이 죽을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달했을 때 강의실에 도착했고 난 숨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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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시간 내내 옆에 앉은 전정국이 신경쓰였다.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쓸어 내리기도 해보고 텀블러에 든 물을 마시기도 해 봐도 통 진정되지 않았다.
강의시간 내내 손에 잡혀있던 펜은 아무런 글씨도 쓰지 못한 채 다시 필통으로 돌아가야 했다.
" 밥 먹으러 가자. "
" 탄소야? "
" 네?! "
" 뭘 그렇게 놀래. 밥 먹으러 가자니까 "
수업이 끝나고도 정신 못 차리고 앉아있는 나와 달리 선배의 책상은 이미 사용전의 모습처럼 깨끗이 정리 되어 있었다.
가방을 한쪽에 매고 내 옆에 선 선배는 어서 가자며 날 재촉했다. 계속 해서 눈만 굴리며 뭘부터 챙겨야 할지 허둥거리는 날 보던 선배는 필통과 전공책을 챙겨 내 가방에 넣곤 날 일으켜 가방을 매어 주었다. 순식간에 강의실을 나갈 준비가 끝난 나는 그 길로 바로 강의실을 나갔다. 선배는 한발짝 뒤에서 날 따라왔다.
아침에 올라올 때도 너무 길게만 느껴졌던 계단이 지금 이 순간엔 배로 길게 느껴졌다. 한 발 한 발 내 딛을 때마다 휘청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혹시 이러다 넘어지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에 조심히 내려왔다.
내려가는 와중에 손에 든 여러장의 종이를 내려다 보며 위로 올라가는 민윤기를 보았다. 민윤기는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고 우린 민윤기를 발견했다.
전정국은 어느새 내 옆에 와 날 벽쪽으로 밀었고 본인이 계단 중간에 섰다. 그런 전정국의 행동에 전정국을 쳐다 봤지만 전정국은 계속해서 계단만 내려갈 뿐이었다.
줄곧 종이만 내려다 보던 민윤기는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봤고 이내 실소를 터트렸다.
" 말도 더럽게 안 듣는다. "
민윤기는 다시 시선을 우리에게서 거둬 종이로 옮기며 올라가던 길을 올라갔다.
민윤기의 말은 나를 향한 말인지 전정국을 향한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우리 둘 모두에게 하는 말일수도.
" 신경 쓰지마. "
누구보다 민윤기의 말을 가장 신경쓰는 표정을 한 전정국은 나에게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해 왔다.
본인은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렇게 말과 표정이 따로 놀 수 있는지.
나는 그의 말에 그저 ' 신경 안 쓴다고 했잖아요.' 라는 말로 그를 안심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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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에 대한 이상한 심장떨림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주말이 됐다.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평소 주말답지 않게 알람을 맞추고 자기전에 알람을 듣지 못할까 괜한 걱정을 하기도 했다.
빠르게 옷을 고르고 갈아입었다. 너무.. 신경 안 쓴거 같나
다시 옷을 갈아 입고도 마음에 썩 들지 않아 다시 갈아입을까 하다 이내 시간을 확인하곤 생각을 접었다.
평소엔 하지 않던 향수까지 뿌리고 또 아 이건 너무 오바인가 싶어 향을 날리기 위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그런 날 비추는 전신거울을 발견하곤 나 뭐하는 건가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집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다시 확인했다. 썩 맘에 들지 않아 이리보고 저리 봤지만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파트 입구 문을 열고 나오자 바닥을 쓸고 있는 경비아저씨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수고 하세요 라는 말을 건냈고 경비아저씨는 학생 어디가나봐? 라는 물음을 던졌다.
부산 간다는 대답을 했고 경비아저씨는 나에게 잘 다녀 오라는 말을 건냈다. 집에서도 받지 못한 배웅을 경비아저씨에게 받았다.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받는 배웅에 마음 속 어딘 가에서 울컥한 마음이 몰아치려는걸 가까스로 잠재웠다.
그렇게 배웅을 받고 나니 지저귀는 새소리 마저도 날 배웅 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버스를 타고 빽빽한 건물들을 지나 도착한 서울역에서 전정국을 기다렸다. 주말 아침부터 캐리어를 끌고 이리 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이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문득 전정국이 모든걸 준비하겠다는 말에 난 정말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게 떠올랐다.
아침을 먹기엔 애매한 시간에 만나기로 우린 약속했고 난 공복이었다. 아마 선배도 공복이겠지 라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사 내에 있는 김밥집에 들어가 제육김밥 두 줄을 시켰다. 그냥 제육김밥이 눈에 띄었다. 전정국이 나에게 그토록 먹이려하는 제육볶음을 오늘은 내가 전정국에게 주려했다.
김밥만 먹기엔 아무래도 목이 맬테니 옆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물을 사 같은 봉지에 옮겨 담았다.
김밥사고 물을 사니 약속시간을 넘겨버렸다. 난 급하게 약속장소로 발을 옮겼다.
그 곳엔 뭔가 굉장히 불안해 보이는 전정국이 서있었다.
" 선배! "
뒤에서 놀래켜주기 위해 크게 소리를 내며 선배를 쳤다. 민망하게도 선배는 놀라지 않았고 여전히 불안해 보이는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 왜 이렇게 늦게 왔어.. "
내가 늦은 건 맞았기에 반박할 말이 없었지만 난 고작 5분가량 늦었는데 엄청난 지각을 한 것 처럼 말을 하는 선배였다.
" 아, 이거 사느라고 늦었어요. 김밥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요."
내 손목에 걸린 봉지를 흔들어 보이며 대답을 했다. 선배는 안도하듯 숨을 내쉬었고 그대로 날 끌어 안았다.
" 걱정했잖아. 안 오는줄 알고. "
갑작스러운 포옹에 멈춘 줄 알았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불안해 보이는 선배에게 내가 해 줄수 있는건 선배가 불안해 하는 이유를 없애주는것 밖에 없었다.
팔을 들어 전정국의 등을 쓸며 대답했다.
" 안 오긴 왜 안 와요. 이렇게 왔는데? "
선배는 파묻은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다시 봤고 내 머리를 쓰담았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기차를 타러갔다. 내 신경은 온통 맞잡은 손으로 가있었고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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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개재밌게봤다는 거 진짜 이틀 내내 너무 말하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