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씨."
"네."
"연기로 말고,"
"……."
"진짜 징어씨 남자친구 하면 안되나."
순간 사고회로가 멈춰진듯 너징은 멍청하게 서 있었어. 그런 와중에도 너징의 머릿속으로 수만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어.
저 남자가 무슨 얘기를 하는건지, 싶기도 하고 이걸 어떻게 답해야 하나. 싶기도 했어. 간단히 생각하면 서로 호감이 있는 관계니까, 고백을 받아들여도
나쁠 것 같지 않기는 한데 아직 너징은 구남친과 사귀었던 기억 때문에 또 한번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두렵고 불안해.
다시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또 변하지는 않을까. 구남친이 변한건 너징의 탓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어찌 됐건 너징은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해.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어. 너징은 생각이 많아지자 무의식적으로 아랫입술을 물어.
그리고 너징은 숨을 한번 고르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저기이,
"아시다시피, 제가 남자친구랑 헤어진지 얼마 안됐기도 하고.."
"……."
"아직 누군가를 만날 자신이 없어요."
"……."
"백현씨라서가 아니라, 그냥. 아직은 조금 두렵고 불안해요."
미안해요, 하는 말로 끝을 맺은 너징의 말이었어. 백현이 느릿하게 이어지는 너징의 말을 따라 살짝씩 고개를 끄덕였어.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너징이 말을 끝맺고 가만히 백현을 바라봤어. 혹시나 이걸로 상처 받을 사람은 아니겠지. 하는 마음에 말이야.
너징의 생각이 맞았는지 백현은 아무렇지 않게 입가에 미소를 걸치고 다시금 목소리에 장난기를 가득 담은 채로 입을 열었어. 그럼, 징어씨.
"우리 가게에라도 자주 놀러와요."
"…네에."
"나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또 상처줬을까ㅡ 그런 생각 하지 말구요."
"……."
"얼굴보기 미안하다고 우리 가게 안 올 생각 같은 것도 하지 말구요."
"…다, 당연하죠."
"그럼 됐네."
대답을 요구하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백현에 말을 더듬어가며 다, 당연하죠. 하고 답하니 그럼 됐네. 하고 맑게 웃는 백현이었어.
그 웃음이 방금 차인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맑아서, 너징도 마주 보고 웃었지.
너징은 또 한번 기분이 이상해졌어. 묘한 기분. 이상하게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어, 변백현이라는 남자한테는.
그래서였나. 또 한번 만나고 싶다, 는 생각까지 드는 너징이야.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생각만큼 괜찮은 사람일 것 같은 느낌?
너징이 살풋 웃고 이만 가봐야겠다며 백현에게 인사를 했어. 백현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손인사를 건넸지.
그렇게 백현과 헤어진 뒤 너징은 2주 정도를 과제에 치여 살았어. 중간 중간 백현의 카페 생각이 안 났다고 하면 거짓말이었지.
하루에도 몇 번씩 과제를 카페에 가서할까, 하고 생각하다가도 괜히 얼굴을 보게 되면 과제 같은 건 안중에도 없어질 것 같아 그러지 못하는 너징이야.
그리고 백현의 얼굴을 다시 마주할 용기가 없기도 했고. 백현에게는 그럴 일 없을거라고 단호하게 말해놓고선, 너징이 한숨을 내쉬었어.
너징이 한참을 과제를 붙들고 앉아있다, 결심을 하고 과제를 챙겨 소파에서 일어났어. 어차피 지금 집에서 해봤자 머리도 안굴러가고
전혀 나오는 것도 없을거야, 하는 자기 위로를 하면서. 그리고 너징은 귀찮음에 잊고 살았다고 봐도 무의미한 화장품들을 꺼내 바른 듯 안 바른 듯
소심하게 발랐어. 깔끔하게 옷도 갈아입고, 이리저리 뒤섞인 과제물과 전공책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가방에 집어넣었어.
그러다 문득 든 생각.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내가 왜 꾸미고 있는거지? 너징은 자기도 모르게 데이트 전의 여자들처럼 들떠있던 너징을 발견하고
가방을 멘 채로 굳었어. 뭐지, 이게. 난 왜 이렇게 열심히 꾸몄지. 너징이 가만히 서 있기를 잠시.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보자.
하며 씩씩하게 집을 나섰어. 평소 자주 다니던 길이었지만 최근에는 잘 가지 못한 그 길. 카페로 향하는 길을 기분 좋게 걷는 너징이야.
양쪽으로 귀에 가지런히 꽂은 이어폰에서는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바람은 선선히 불고. 햇빛은 따사롭고.
자꾸만 기분이 붕붕 뜨는듯한 너징이었어. 얼마나 걸었을까. 너징의 눈앞에 드디어 카페 건물이 보였어. 저기를 들어가, 말아.
그 주변을 서성이기 5분. 너징이 후우, 하고 깔끔하게 리모델링 된 카페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가.
카페 안에는 낮이라 그런지, 꽤나 한산했어. 백현은 계산대 옆 테이블에 앉아 카페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간간히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맞추는듯 보였어. 어떻게 불러야 하지. 너징이 또 한번 생각에 잠겼어. 그리고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백현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향했어. 똑똑. 너징이 백현이 앉아있는 테이블을 두어번 노크하듯 두드렸어. 어?
"징어씨?"
가을 햇볕에 나른한지 음악에 맞춰 느릿하게 눈을 끔뻑이던 백현이 고개를 들어 너징을 마주봤어, 그리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해사한 웃음을 지었지.
오랜만이네요. 하고 백현이 웃었어. 여전히 온몸 가득 우유 향 섞인 커피향을 머금고. 그러던 백현이 너징의 주문을 받으려는지 자리에서 일어섰어.
그러는 동시에 백현에게 진득히 베여있던 커피향이 너징을 반겼어. 너징은 백현이 일어서 카운터로 향하는 와중에도 커피향에 취해 어어, 하고 서있었고.
카운터로 향한 백현이 너징에게 이쪽으로 오라는 듯 손짓을 했어. 그런 백현을 보며 너징이 아아. 하고 또 다시 멍청한 소리를 내며 걸음을 옮겼어.
주문은 뭘로 하시겠습니까. 장난스럽게 주문을 받는 백현에 너징이 바닐라 라떼요. 하고 웃었어. 백현은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면서도 말을 걸어왔어.
왜이렇게 늦게 왔어요, 백현이 투덜대는 투로 너징에게 말을 건넸어. 그러게, 얼마만이지. 너징이 미소를 띈 채로 입을 열었어.
"과제가 너무 많아서, 조금 바빴어요."
"그래요? 그럼 용서 해주죠 뭐."
"…나 잘못한거 없는데."
"보고싶었어요."
나 잘못한거 없는데. 하는 너징의 말을 들은건지, 못들은건지 백현은 제 말을 하기 바빴어.
그리곤 보고싶었어요. 하고 아무렇지 않게 특유의 잔잔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어. 아아, 보고싶었구나.
보고싶었구나, 보고싶었, 보고싶, 그랬, 그랬구나. 너징이 백현의 말을 잠시 곱씹듯 생각했어.
그게 무슨 어려운 말이라고 한참을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를 하려는 너징이었지.
그러다 문득, 이건 어떻게 답해야하지. 하고 또 느릿하게 생각에 잠기는 너징이야. 그렇게 너징이 생각에 잠길즈음
백현은 달달한 향을 풍기는 라떼를 트레이에 올리고, 한잔의 커피를 더 내리기 시작했어. 그러는 동안에도 너징은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은지
멍하게 커피를 내리는 백현의 손에 시선을 툭 던져놓은채였어. 그런 너징이 귀여운지 백현은 커피를 내리면서도 너징을 바라봤고.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아요. 하고 백현이 너징을 향해 웃었어. 나 무슨 생각 중이었지?
너징은 백현의 말에 정신을 차리면서도 다시 생각에 빠져버렸어.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자꾸만 머릿속이 멍해지는 기분이었어.
왜이러지, 또. 백현이 트레이를 들고 아까 앉아있던 테이블로 향했어. 너징은 무의식적으로 백현을 따라 테이블로 향했고.
테이블로 향한 너징과 백현은 가만히 마주보고 앉아 커피를 홀짝였어. 무슨 말을 해야하지.
너징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마주앉아 커피를 마시는 백현을 보며 입을 삐죽였어. 왜이렇게 자연스러워, 여자랑 단 둘이 앉아있는게 편한가?
너징은 너징 스스로도 이해 못할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하면서도 이게 뭐야,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
한참을 그렇게 앉아만 있는데 백현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어.
"나, 안보고싶었어요?"
'네, 아니. 아니? 아니요, 네, 아니 그게 아니라."
너징이 백현의 말에 눈에 띄게 당황해 말을 더듬었어. 보고싶었다고 해도 이상하고, 안보고싶었다고 해도 이상하잖아.
보고싶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안보고싶었다고 해도 거짓말인데. 너징은 급하게 이야기 주제를 바꾸려 잘 하지도 않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어.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그쵸? 커피가 참 맛있네요. 백현씨는 2주만에 봤는데도 어제 본 사람처럼 편해요.
아니, 보고 싶었던게 아니라, 아닌것도 아닌데에. 아 맞다, 저 과제 해야해요. 과제 들고 왔거든요. 아니, 안도와주셔도 되는데, 이거 잘 모르실텐데.
아니 백현씨 무시하는건 아닌데, 서로 하는 일이 다르니까아….
너징은 백현의 관심사를 돌리려 끝없이 말을 늘어놓았어. 너징이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어 픽픽 웃음을 터뜨리고, 백현도 그런 너징이 우스운지
픽픽 웃음을 흘렸어. 너징은 그런 백현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어. 저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는 동시에 너징은 한번 속 시원하게 말 하고 말자. 하는 생각을 하면서 조심스레 백현의 눈을 바라본채 입을 열었어.
"보고, 싶었어요. 아마도."
+
보고, 싶었어요. 아마도.
내가 여러분한테 하고 싶은 말.
보고싶었는데, 늦게 와서 할말이 없네요...
입 다물고 글이나 써야지..
이번편은 징어도 나도 모두 혼란...☆
맘편히 종대글이나 쓰거싶당...(울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