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노트북의 취미는 저를 농락하는 것입니다.
어제도 2시간정도 공들여셔 썼던 조각글을 노트북이 혼자 멈춤으로써 날려버렸습니다.
임시저장도 안 되있더라고요.
제가 아무리 화가 나도 노트북을 부술 수는 없다는 걸 노트북은 아는 게 분명합니다.
안그러면 내게 이럴 수 없어.
내가 돈이 생기면
너부터 처단할 것이다.
Livin Out Loud-I Can't Stop
아직 바람에는 찬 기운이 어려있어도 날씨가 많이 풀리는
봄이 왔으면 좋겠다.
눈이 녹아들어가고, 조금 얼어있던 땅들이 녹기 시작하면서 푸릇한 원래의 색상을 되찾아 가는 그런 계절.
그리고 윤기가 제일 곤란해하는 계절.
주인아, 괜찮아?
아니.
코를 훌쩍인 윤기가 근처에 둔 휴지로 코를 풀면 남준이는 물티슈를 찾아와 윤기에게 건네줬으면.
봄만 되면 결막염 알레르기 때문에 내내 코가 간질거려 재채기를 하고,
코에서는 콧물이 계속 흘러나와 풀고 풀다가 헐어버리고,
눈은 간지러워서 연신 부비다가 붉게 충혈이 되어버렸으면.
남준이는 그런 윤기의 모습에 안절부절하면서 옆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봤으면 좋겠다.
윤기는 안약을 찾아 눈에 넣으려다가 그 순간 눈을 꾹 감아 실패해버리고,
또 해보려다가 한 번 더 눈을 감아버려 실패해버리고,
또 하다가 아예 조준을 잘못해서 눈가에 떨어뜨려서
결국 짜증을 내며 소파에 쓰러졌으면.
윤기가 혼자 안약을 넣으려 끙끙 댄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남준이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으면 좋겠다.
주인아.
응.
눈 떠.
아... 나도 최대한 노력하고 있어, 준아.
남준이까지 가세해서 윤기의 눈에 안약을 넣어주려고 하는데 안약이 떨어지는 순간
눈을 꾹 감으면서 저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가 바르르 떠는 윤기가 보고 싶다.
몇 번이고 안약을 흘려보내다가 남준이의 큰 손에 턱이 잡혀버린 윤기가 보고 싶다.
준아, 잠깐. 아. 잠깐만.
이거 넣어야 주인이 괜찮아지는 거잖아. 눈 떠.
내 정신건강에는 해롭다, 그게...
... 안 좋은거야 이거?
진지하게 이게 안 좋은거냐고 묻는 남준이에 차마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던 윤기가
겨우 눈을 살풋 떴으면.
그러자 바로 흔치않게 인상을 찡그린 채 저를 내려보는 무표정한 남준이의 얼굴에 살짝 놀랐으면 좋겠다.
두 손을 들어 제 턱을 그러쥐고 있는 남준이의 손목과 팔을 조심히 잡을 즈음
남준이가 윤기의 눈가에 안약을 대고 몇 방울을 한 번에 흘려보냈으면.
갑자기 들어온 안약에 윤기가 늦게나마 눈을 꾹 감아버리면 그 눈꼬리를 타고 안약이 흘러내려
볼을 타고 내려가버렸으면 좋겠다.
아, 따가워.
미간을 잔뜩 구긴 윤기가 천천히 다시 눈을 뜨면 얼른 반대쪽 눈가에도 안약을 넣어버리는 남준이가 보고 싶다.
그리고 다시 또 뒤늦게 눈을 감은 윤기의 눈가에는 안약이 흘러내리고.
그렇게 한참동안 고군분투했던 안약넣기가 끝났으면 좋겠다.
윤기가 따가우면서도 한껏 시원해진 눈가에 그제야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그대로 늘어지면
제 손안에 잡힌 윤기의 얼굴을 빤히 보던 남준이가 윤기가 저를 칭찬할 때 그러듯
볼에 짧게 입을 맞추었으면.
그리고 손을 들어 눈가에 흘러내린 안약들을 닦아줬으면 좋겠다.
아... 이래서 봄이 싫어.
나는 봄이 좋은데.
따듯해져서?
아니.
귀여운 주인의 모습을 잔뜩 볼 수 있어서.
입꼬리를 올려 웃으면서 하는 말에 윤기는 쿠션을 들어 남준이의 얼굴을 눌러 밀어버렸으면 좋겠다.
남준이가 그 쿠션을 잡아 내리는 사이 윤기는 남준이의 손에서 안약을 가져가 원래 있던 자리에 놓았으면.
그리고 뒤로 도는 사이 어느새 바짝 제 뒤에 붙어있던 남준이의 몸에 툭, 부딪쳤으면.
윤기가 고개를 올려 남준이를 올려보면 남준이는 윤기의 허리를 감싸 안아 품에 안아버렸으면 좋겠다.
무서웠어?
아니.
그럼, 지금 부끄러운거야?
...?
남준이의 말에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윤기가 살짝 고개를 움직였으면.
남준이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붉어진 윤기의 귀를 아프지 않게 깨물었으면 좋겠다.
윤기의 어깨가 흠칫 움츠러들었다가 남준이의 어깨와 가슴팍에 손을 대어 약하게 밀었으면 좋겠다.
붉어졌는데, 여기.
귓가에 바로 울리는 남준이의 목소리에 윤기는 귀가 물린터라 고개를 젓지도 못하고 그저 남준이의 어깨만 툭툭 두드렸으면 좋겠다.
그만하라는 윤기의 신호를 알아들은 남준이가 여전히 웃음기 있는 얼굴로 떨어지면
윤기야, 너는 남준이의 코를 가볍게 톡 두드렸으면 좋겠다.
그러다 그대로 남준이에게 손목이 잡히고 손바닥에 간지러운 감촉과 애정을 느끼게 해주는 입맞춤이 닿았으면 좋겠다.
귀여워, 주인아.
결국 윤기의 귀가
더
붉게 물들었으면 좋겠다.
날씨가 풀어지면 풀어질수록 차근차근 가장 이른 전성기를 맞이한 봄꽃들이 제 색을 뽐내며 풍경을 물들이기 시작했으면.
덩달아 그 색들을 구경하느라 남준이와 윤기의 산책 시간도 더 길어졌으면 좋겠다.
서로 손등이 스쳐지나갈 정도로 거리를 좁힌 채 발걸음을 맞춘 남준이와 윤기가 공원을 한바퀴 돌다가
문득 윤기가 남준이의 손을 잡아 걸음을 멈추게 했으면.
남준이가 고개를 돌려 윤기를 바라보면
씩 웃은 윤기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어디론가 향했으면 좋겠다.
공원 아래 쪽의 놀이터를 빙 둘러가는 길목으로 들어간 윤기가 어느 공터를 확인하고는
남준이의 손을 놓았으면 좋겠다.
꽃이 피어있을 줄 알았어. 이 시기면 슬슬 피니까.
와...
예쁘지, 준아.
응. 예뻐.
흐드러지게 핀 벚꽃나무가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 그 빛을 더욱 발하며 꽃잎을 흩날리는 풍경에 남준이는 감탄을 멈출 줄 몰랐으면 좋겠다.
그런 남준이를 본 윤기가 기분 좋게 웃으며 남준이를 데리고 나무 바로 아래까지 향했으면.
잔뜩 핀 꽃을 지탱하다 아래로 늘어진 가지를 본 남준이가 조심히 그 꽃을 톡 건들였으면.
그러다 찰칵거리는 소리가 나 고개를 돌리면 그런 남준이를 찍고 있는 윤기가 있었으면.
다음에 날씨가 더 따듯해지면 벚꽃놀이 하러 가자, 준아.
벚꽃놀이?
이런 나무가 잔뜩, 더 많이 핀 곳에 가서 벚꽃들을 보는거야.
주인이랑 가는거지?
응? 어, 당연하지.
응. 그 당연하다는 말이 너무 좋아. 꼭 가자, 주인아.
남준이의 말에 윤기는 잠시 남준이의 말을 다시 제 속에서 굴리다가 천천히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받아들였으면.
손을 뻗어 남준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으면 좋겠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흩날리는 꽃잎들이 둘의 소매깃부터 깊은 마음속까지 물들이는 것도 모르고
한참 그 자리에 서서 짧은 봄을 한없이 즐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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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자랑 |
예쁜 글씨와 귀여운 그림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하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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