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지색 (傾國之色)
: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 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
"전하, 더 이상 조선의 국모인 중전 자리를 비워두시면 아니 되옵니다."
"... 거스를 수 없는 것입니까."
날이 갈수록 신하들의 부정부패는 도를 지나쳐 거의 횡포 수준에 가까워졌다.
평소 왕이나 세자가 왕비 또는 세자빈의 필요성이 대두되면 전국의 처녀들에게 금혼령을 내려 혼인을 금지시켰지만,
왕비 후보로써 간택되는 과정을 밟는데도 막대한 제물이 들어가 꺼려졌던 사대부들은 왕비 후보로 처녀를 내놓지 않고 자신의 여식을 몰래 혼인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번이 기회이라는 듯 신하들은 하루빨리 왕에게 중전을 맞이할 것을 권한다.
윤기는 이것을 너무나도 명확히 꿰뚫고 있다. 왕실과 손을 잡고 외척 기득권 세력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더욱 크게 실현하려는 간신들의 마음들.
"아직 짐이 왕비를 맞을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하, 서두를수록 좋은 것입니다."
"내 때가 되면 말씀드리겠소."
참으로 못났구나. 저 욕망에 가득 찬 눈빛, 말투를 보라. 조선의 망조인 것인가.
어찌하여 내게는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신하는 찾아볼 수도 없고, 자신의 가문만을 생각하는 자들만 가득한 것인가.
항상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지만, 내게는 왕비를 맞을 여유 생각조차 없구나.
춘향전, 경국지색 (傾國之色) 05
그렇게 설렘 반, 피곤함 반으로 떨리는 가슴을 붙잡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언제나 그랬듯이 내 곁에는 향단이 밖에 없다.
이 길고 긴 꿈속에서 어제 있었던 일은 꿈속에서 꾼 또 다른 꿈이었나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향단이가 물어온다.
어제 정국 도련님과 좋은 시간을 보냈느냐고, 그저 미소만 짓고는 그런 거 아니라고 대답을 해보지만 음흉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향단이다.
진짜 그런 거 아닌데... 향단이 야설 좋아하니... 뭘 바라...
향단이와 전정국 이야기를 계속 해나가던 중 평소 잠이 없는 향단이에게 전정국이 언제 집에서 나갔는지가 궁금해져 물어보았다.
혹시, 도련님이 언제 나갔는지 보았느냐고. 향단이는 새벽에 웬 남자와 나와의 말소리가 들려 깨었고, 그 말소리가 들리고 한 30분 후에 전정국이 나간 것을 보았다고 했다.
이 말은 나 자는 거 보고 나갔다는 이야기인데... 뭐 하러 급급하게 서둘러 위험한 새벽에 나선 것인지.
이야기를 하던 중간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고, 향단이는 빠르게 부엌으로 달려가 아침상을 차려왔다.
아침인데도 전날에 먹은 것이 없어 위가 텅텅 빈듯한 느낌을 받아 더욱 열심히 음식을 먹는 데 열중하는데, 아까와는 다르게 차분한 목소리로 향단이가 말을 걸어온다.
"아가씨, 저희 이제 집에 어른도 없고 해서..."
"이대로라면 당장 먹을 쌀은 있지만, 나중이..."
"아가씨, 궁에서 궁녀를 모집한다고 해요."
밥을 먹으며 가만히 듣다가 향단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아 이야기를 멈추게 하고 이어나갔다.
집에 먹을 쌀도 앞으로 없을 것이고, 돈을 벌어다 올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집에 어른도 없으니 자신이 궁에 가 일을 해 돈을 벌어오려 했으나
나를 집에 혼자 둘 수 없고, 궁에 들어가면 언제 나올지도 불확실하니 절대 그러지 못 하겠다고 한다.
"향단아, 내가 들어갈게. 궁에."
향단이도 말을 듣자마자 표정을 굳히고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걸 아는 듯, 서럽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이라서 너무 미안하다고, 이런 몸종 만난 내가 불쌍하다며 나를 안고는 목 놓아 운다.
눈물을 멈출 줄 모르는 향단이의 등을 천천히 두들기며 네 잘못 하나 없다고, 나 같은 주인 만난 너한테 오히려 미안하다고 진심을 다해 말한다.
실제 춘향전이 이런 내용인지 어찌 하루하루 이렇게 눈물 마를 날이 없이 고달프고, 힘든 일만 있는 것일까.
**
향단이를 겨우 진정시키고 괜히 답답하기도 하고, 마음의 정리를 할까 싶어 밖으로 나왔다.
혼자 밖에 나와 길을 따라 걷는데, 적응되지 않는 환경 탓인지 옆에 아무도 없어 그런 것인지 문득 겁이 났다.
이 꿈을 꾸고 나서 처음 향단이와 그네를 타러 갔던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김태형과 저녁을 먹었던 그 국밥집도 있다.
국밥집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를 맡으니 괜히 김태형이 보고 싶다. 그날 엄청 살갑게 대해줬는데, 나 놀아주고, 갈 때 뽀뽀.. 도..?
여튼.. 그날 이후로 몇 번 우리 집에 찾아와 내 손을 잡아끌고 아무도 없는 들판에 데려가 오랜만에 왔다고 하며 내 다리를 베고 누워 잠도 자고 그랬는데
어찌 된 일인지 도통 보이지 않는다. 처음엔 오겠지 오겠지 하며 보고 싶은 마음 꾹꾹 숨기고 있었는데, 날 잊은 것인지 진짜 오지 않는다.
그래도 여기서 제일 편한 게 넌데, 너라면 내가 진짜 춘향이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널 믿는데.
어떻게 해서 내가 김태형에게 이런 감정이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계속해서 힘든 일만 닥쳐오는 이 상황에서 가장 편한,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날 위해 줄 사람, 그게 김태형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있어서 비밀 하나 없는 것 같은 너에게, 나는 아주 큰 비밀을 갖고 있다. 네가 좋아하는 내 모습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
전정국이 아무리 날 찾아와 나에게 반했다고, 백년가약을 맺자고, 부인이라는 호칭을 붙이며 불러도 그에게는 내 마음을 온전히 다 할 것 같진 않다.
김태형과 다른 특유의 양반만이 갖고 있는 분위기 때문인지,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어제 술 마시고 반말 할 때는 동생같고 귀엽고 그랬는데
어차피 현실에선 그 모습이 아니니까. 내가 누굴 좋아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지금 이 우울한 상황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태형이뿐이라고 생각했다.
"비키거라, 어느 안전이라고 앞길을 막는 것이냐."
"....."
국밥집에 멈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그만 길 한복판에 서서 의도치 않게 남의 갈 길을 막고 있었다.
이 사실도 모른 채 계속해서 서 있었으니, 내 앞에 말을 타고 계신 아저씨 같은 분이 많이 화나신 듯 굳은 표정으로 말에서 직접 내리기까지 한다.
그리고는 나의 어깨를 툭 치고는 어서 썩 꺼지라고 욕을 내뱉기 시작한다. 이런 시비를 처음 받는 것도 아니지만 내 옆에 아무도 없다는 불안감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물이 나려고 할 때쯤, 말에 타고 있는 남자가 나에게 욕을 하며 나무라는 아저씨에게 그만하라는 듯이 손짓을 한다.
"어느 집안의 여식이냐."
그리고는 나에게 어느 집안의 자식이냐고 물어온다. 우리 엄마 자식이라고 할 수도 없고, 춘향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에게 질문해 오는 남자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더니, 아까 내 어깨를 밀친 아저씨가 다짜고짜 내 뺨을 때려온다.
갑작스레 가해진 충격에 놀라 두 손으로 뺨을 잡고 나도 모르게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자 내가 대역죄인이라도 된 듯이
이 분이 어떤 분인지 알고 이리 행동하는 것이냐며 내 고막을 터트리겠다고 작정한 듯이 크게 소리쳐온다.
어떤 사람인데 남의 귀한 자식 뺨은 때리고 난리. 시발. 이 남자 몸종이라도 돼 보이는 아저씨 주제에, 정작 이 남자는 가만히 있는데..
평소 나 같았으면 아저씨고 뭐고 똑같이 해줬을 텐데 내 신분 주제에 기라면 기고, 구르라면 굴러야지 뭐.
"어허, 그만두지 못 할까."
"허나, 이 년이 너무 건방지게..."
"너야말로 썩 꺼져있거라."
..ㄹㅇ 개사이다 저 새끼 잘 됐다.
누구의 몸종이든 몸종들은 원래 이렇게 싸가지없나보다. 전정국 몸종도 싸가지가 바가지 더만, 아 물론 우리 향단이 빼고.
놀란 눈으로 남자의 얼굴을 보다가 속으로 깊은 감탄을 하였다. 존나 조각이다. 진짜 한국에서 배우 해도 될 듯한 참치 얼굴을 갖고있다.
이 남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남자와 눈이 마주쳐 민망스러워 고개를 푹 숙였더니 아까와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곧 이 나라에 금혼령이 내려질 것이다."
"....."
"내 너를 궁에서 보고 싶으니, 금혼령이 내려지면 궁에 사주단자를 필히 내거라."
* 사주단자: 전국의 사대부들이 집안에 여식이 있음을 신고하는 일종의 제출서
"... 예"
알 수 없는 말들만 늘어놓고는 자신의 몸종과 말을 타고서 나를 지나 멀리 사라져버렸다.
금혼령이면 혼인을 금지하다 라는 거니까, 이 나라에 곧 혼인을 금지하는 법을 시행한다고 한 것 같다.
왜냐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한국사 시간에 선생님이 여담으로 해주신 내용이 생각났다.
세자빈이나 왕비를 간택할 때 잘 나가는 관리의 딸들에게 금혼령을 내리고, 일종의 신청서 같은 것을 궁궐에 제출한다고 들었다.
저 남자의 말에 따르면 일종의 신청서 같은 것이 바로 사주단자라는 것 같다. ..... 뭐... 나 보고 왕비 하라고?... 중전마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춘향이네 집은 잘 나가는 가문도 아닌 것 같고 그리고 어머니가 기생에다가, 결국 춘향이도 기생인 신분인데.
저 조각같이 잘생긴 사람이 보는 눈은 참 없는 듯하다. 기생한테 감히 중전의 자리를 논하다니 으..
**
남자가 가고 나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몇 분 후에 비가 쏟아졌다.
처음에는 금방 지나가는 소나기로 생각해 비를 맞지 않는 곳에 멍하니 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갈수록 세져가는 빗방울에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라 판단하고, 손에 깍지를 껴 이마를 가리고 집 쪽으로 미친듯이 달려갔다. 내 이마는 소중하거든.. 쿸..☆
굵은 빗방울 때문인지 봄비 임에도 불구하고 홀딱 젖어 춥다는 말을 남발하며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일단 입술이 부르르 떨릴 만큼 추워 방에 들어가 옷부터 벗고 씻으려고 하는데,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욕) (욕) (욕)..
어쩔 수 없으니 일단 급한 대로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다. 하다가 죽을 뻔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감기 각이다..
"씻었어?"
"응, .....응?"
씻었냐는 김태형 목소리에 당연하다는 듯이 응이라고 대답했다가 내가 뱉은 말에 놀랐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자신의 집처럼 편하게 앉아있는 김태형의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
"야... 너 뭐야."
"미안, 많이 늦었지."
며칠 보지 않았다고, 그동안 무슨 고생을 그리했다고 얼굴이 반 쪽 만 해져서 나타났다.
네가 내가 힘들었을 때 옆에 없었던 것도 밉고, 불현듯 나타나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모습까지도 다 밉다. 그냥.
내가 이렇게 널 원망스러워하는 걸 아는지, 내 손을 잡아끌고 와락 날 안아온다. 그리고 내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많이 힘들었지.'
힘들어할 이유가 워낙에 많은지라 어떤 것부터 너에게 털어놓고 위로받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의 만남이 꼭 너와의 마지막 일 것만 같아, 그것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만 같다.
"태형아, 나 궁에 가."
"...무슨 일로,"
"궁녀로. 너도 알잖아, 우리 집 이렇게 된 거. 그래서 가는 거야."
마치 정말로 사랑했던 여인이 자신에게 이별 통보라도 한 것처럼 태형이 표정이 어둡다. 너에게 있어서는 그런 거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도 너와 향단이를 두고 궁이라는 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춘향이를 위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 너를 떠나보내느니, 죽는 게 낫겠다."
"그런 말하지 마. 나도 충분히 안타깝고,"
"그러게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나와 혼인하자고. 이제 와서 이래 버리면 춘향아, 난 어떡해야 돼?"
"... 그럼, 뭐 달라지는 게 있어?"
이별을 앞에 두고 함께 있는 시간이 귀하고, 아까워 서로를 위하는 시간을 가져도 모자를 때 우리는 서로에게 가시를 세우고 서로의 심장을 파고드는 말을 하고 있다.
네가 아무리 가지 말라고 내 발을 붙잡고 늘어지는 한이 있어도, 난 가야 한다. 그게 이 꿈속에서의 내 운명일 테니까.
나에게 모진 말을 하다가도 가지 말라고 애원을 하면서 눈물을 보이던 네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이 무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는 날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뗀다. '나도 갈게, 너처럼 버리고.'
@울 애뿌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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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보고 싶었어요!
오늘 글은 참치오빠 하드 캐리..
그냥 내용 때문에 넣은 거예요
러브라인 이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마시구
음 딱히 드릴 말씀 없네여 오늘도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Ps. 독방 홍보글 올라오는 거 볼 때마다 심장 도키도키 해요. 내 독자님들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