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이별계약!
현장학습날 아침이라고 해서 내 아침풍경이 달라질리는 없었다. 평소와 같이 팅팅 부은 얼굴을 안고 일어났다.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 양치를 하며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했다.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친 후 갑자기 힘이 빠지는 느낌에 대충 양치를 끝냈다. 무슨 옷을 고를까 고민을 할 필요는 없었다. 어옷교! 어차피 옷은 교복.. 그럼 내가 신경을 쓸 수 있는건 기껏해야 화장이었다. 어디서 얻어터진듯한 얼굴을 거울에 비춰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일단 스킨을 촵촵 얼굴에 때려 발랐다. 붓기야 빠져라 빠져! 그리고 바라본 거울 속 내 얼굴의 변화는 그저 벌개졌다. 아 미친. 왜 붓기는 안 빠지고 홍익인간이 된건가. 불안한 마음을 안고 계속해서 로션 크림을 쌓아 발랐다. 변함 없이 못생긴 얼굴에 역시 기초로는 부족해!라며 쿠션을 꺼내 두드리기 시작했다. 왜 쿠션을 두드리니 옅은 눈썹이 더욱 부각 되고 핏기를 잃은 입술은 한층 하얘보이니. 평소보다 공들여 눈썹을 그리고 입술을 바르니 그나마 사람의 몰골이 되었다. 오늘은 졸업사진을 찍는 날이니 나름대로 눈화장을 옅게 하고 시간을 확인하니 망할.. 늦었다. 전정국과의 약속시간은 15분이 남았다. 지하철역까지 뛰어가면 승산이있다. 후다닥 발을 움직여 지하철역 앞에 도착하니 전정국은 없었다. 뭐야. 난 이렇게 미친년처럼 뛰어왔더니 전정국 지는 늦네?
Rrrrr-
" 여보세요? "
- 거기 서서 뭐 해. 빨리 올라 와. -
" 뭔 소리야. 너 어딘데? "
- 전철 시간표 보니까 출발 할 때 다 됐어. 빨리 뛰어 김여주. -
" 아 미친. "
전정국의 전화를 받고 숨을 돌릴새도 없이 다시 우사인볼트 빙의해서 에스컬레이터에 서있는 사람들을 비집고 전철을 타는 곳으로 뛰어갔다. 멀리서 손을 흔드는 전정국을 보고 전철을 아직 안 놓쳤다는 안도감에 너털웃음을 흘리며 전정국 앞에 섰다. 그런데 금방 온다던 전철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의아한 마음에 잔뜩 물음표를 띄우며 전정국을 바라봤다.
" 뭐 달라고? "
" 아니, 전철 왜 이렇게 안 와? "
" 한 7분 뒤에 올거야. "
전정국의 태연한 말에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전광판에 떠 있는 시간표를 보니 정말 7분 뒤에 도착예정이라고 적혀있었다. 내가 여기까지 뛰어온지 5분정도 지났으니 전정국이 내게 전화 걸었을땐 전철이 도착하기까지 10분도 더 남았을 때였다. 아아. 당했다. 또 장난질에 놀아났다. 꼼꼼한 성격을 가진 전정국이기에 전정국이 전철 도착까지 5분이 남았다면 5분이 남았다고 곧이곧대로 믿었고 3분이 남았다면 3분이 남았다고 믿었다. 전정국은 10번중 1번의 장난을 위해 9번의정확한 정보를 준다. 9번의 전정국의 꼼꼼함덕분에 그의 장난의 늪에 빠지고 나면 그는 손 쉽게 장난을 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이 그 1번의 장난질의 날이었다. 전정국의 장난에 당했단걸 눈치 채고 난 뒤 분을 참지 못해 이리저리 방방 뛰며 발을 굴렸다. 애꿎은 땅을 쿵쿵 차고 머리를 헤집어도 분이 가시질 않는다. 그렇게 당하고도 또 당하는 붕어같은 년..
" 진짜 멍청해. "
자신이 모든 걸 가지고 놀 수 있다는 표정의 전정국은, 아니 날 줬다 폈다 할 수 있다는 자만함이 온 얼굴에 퍼진 전정국은 턱을 들곤 날 대려다봤다. 턱을 쳐버릴까보다.
" 말 걸지마. "
" 우리 붕어. 한 두번도 아니고 왜 그래. "
" 니 말대로 한 두번이 아니니까 이러지. "
" 나 졸려. 어제 너랑 놀러 갈 생각에 잠 설쳐서. "
" 미친놈아. 꺼져! "
전정국은 은근슬쩍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고개를 기댔다. 내 생각대로라면 ' 미친놈아 꺼져! ' 와 함께 밀어내면 저기 어디쯤 떨어져나가있을 전정국이었지만 전정국은 내가 아무리 밀어도 아무런 미동없이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남자친구의 힘이 쎄서 좋은 점은 든든하다는 점이 있고 다른 남자들과 팔씨름 같은 장난스러운 내기를 할 때도 뿌듯하게 지켜볼 수 있다는점이 있다. 그 반대로 안 좋은점은 힘 싸움에선 내가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점? 힘으로 안 되면 난 그저 인상을 찌푸리고 정면을 응시하는 행동밖에 할 수 없었다. 전정국 앞에 난 너무나 나약했다. 그 점이 너무 분하다. 내가 힘만 쎘어도 이 자식은 벌써 집어 던져졌다. 몇 분가량 전정국의 머리 받침대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전철이 들어옴과 동시에 앞으로 쏙 빠져나갔다. 전정국은 ' 넘어질뻔했잖아 ' 라고 말하며 머리를 털며 전철로 걸어들어왔다. 출근시간이 지나고 탄 전철이어서 그런지 앉을 자리는 넉넉했다. 주저않고 맨 끝자리에 앉았고 전정국은 자연스레 내 옆에 앉았다. 전정국이 언제 나한테 장난 쳤냐는듯이 다시 들떠버렸다. 전정국은 매고 있던 가방을 내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 야 가려. "
" 응 고맙다. "
무슨 나사 하나 빠진 애마냥 '응 고맙다 ' 라고 쓰고 ' 흐흫 응 고맙따아 ' 라고 읽는 문장을 내뱉고 전정국 어깨에 기대어 핸드폰을 했다. 페이스북도 들어가보고 인스타그램을 들어가봐도 금방 식은 흥미에 핸드폰 홀드키를 눌렀다. ' 아 재밌는게 없네. ' 라고 말을 하고 고개를 세웠다.
" 너 향수 뿌렸지. "
전정국의 말에 정곡을 찔렸다. 사놓고 신줏단지 모시듯 보관해온 향수를 뿌렸는데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전정국이었다. 남자들은 향수냄새 별로 안 좋아한다는데 전정국도 그런가 싶어 괜히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았다.
" 아니 그냥 딱 나오려는데 신발장에 웬 향수가 있는거야. 그래서 집어서 딱 한 번 뿌렸는데 냄새 많이 나..? "
" 내가 귀도 예민하고 코도 예민한데 "
" 다음부터 안 뿌릴게. 예민한 코 자극해서 미안하다. "
" 안고 있고싶다 김여주 "
" ... "
" 너 목에 코 박을 뻔 했으니까 딴데 갈 땐 향수 뿌리지 마. "
깜박이도 안 켜고 훅훅 들어오는 전정국덕분에 정신 못차리고 전철을 타고 어린이대공원에 도착했다. 전정국은 전철에서 내려 어린이대공원으로 걸어가는 내내 ' 냄새 좋다. '라며 옆에 딱 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약간 더울수있던 날씨에 전정국의 치댐으로 완벽하게 더웠다. 단지 전정국의 체온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지 아니면 내가 전정국과 붙어있다는것을 의식해서 더운것인지에 대한 결론은 부끄러우니 미뤄둬야겠다. 어린이대공원에 도착하자마자 반별로 모여 출석체크를 마친 후 분수대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기위해 기다렸다. 다른 반들이 사진 찍는것을 지켜보다보니 어느덧 우리 반의 차례가 되었다. 전정국과 뒷줄에 나란히 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전정국은 내 어깨에 어깨동무를 하고 나머지 손으로 브이를 만들어냈다. 나도 양손으로 브이를 만드니 그런 날 보고 전정국은 ' 역시 김여주 아재스타일. ' 이라는 말을 빼놓지않았다. 학창시절 사귀었던 사람과 이렇게 공식적으로 사진이 남는것을 흔히들 흑역사라고 부를수도 있겠지만, 훗날 우리의 관계가 어떻든 전정국과 함께 한 시간은 결코 흑역사라는 단어로 정의 될 것이 아니었다. 내 고등학교 시절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전정국과 사진을 남긴것에 후회를 느낀다면 내 고등학교 시절을 후회하는것과 같았기에.
" 김여주 배 안 고파? "
" 밥 먹으러가자. 아까 내가 어린이대공원 맛집 검색했어. "
나의 말에 전정국의 낯빛은 눈에 띄게 실망한 기색을 띄었다. 전정국은 걷던 발을 멈추고 서서 날 바라봤고 난 ' 안 갈거야? ' 라며 전정국의 팔을 끌었다. 몇걸음 걷다 전정국의 발은 다시 멈췄고 난 몸을 돌려세워 전정국을 쳐다봤다.
" 왜 그래? "
" 김여주 그 큰 가방엔 도대체 뭐가 들어있어? "
전정국은 내 등에 매어있는 가방을 가르키며 입을 삐죽거렸다.
" 과자랑 음료수. "
" 초딩소풍 가냐? "
" 왜 또 시비야. "
" 아니 뭐 도시락이라던가 도시락 같은거라던가 하다못해 김밥 한 줄도 안 들어있어? "
" 과자있다니까? "
전정국은 세상 잃은듯한 허망한 표정으로 허탈한 한숨을 내뱉었다. 내 큰 가방에 과자와 음료수가 있는건 사실이다. 그리고 아침부터 날 놀려재낀 전정국을 위한 도시락도 들어있었다. 새삼 괘씸한놈. 지만 머리 쓰냐.
" 계속 거기 서서 밥 안 먹을거야? "
" 밥 안 먹으면 또 너 성질낼거 뻔한데 미쳤냐. "
마트에서 엄마에게 장난감 사달라고 조르다 엄마의 완강한 반응에 못이겨 포기하고 돌아선 아이같은 태도의 전정국이었다. 장난을 치는 사람의 입장이 되니 너무 꼬시다. 그리고 전정국의 반응이 귀엽기까지하다. 더 더 더 괴롭히고싶다. 근데 또 귀여우면서도 저 서운한 표정을 보고 있을 자신이 없다. 마트에서 차갑게 등을 돌려도 결국 아이에게 장난감을 아이에게 쥐어주는 엄마와 같이 나도 전정국의 손에 장난감을 쥐어줬다.
" 근데 맛집이 좀 먼데. 나 가는동안 과자 좀 먹게 꺼내 줘. "
전정국은 투덜거리면서도 바로 내 뒤에 와 가방을 열어 과자를 꺼내 내 손에 건내주었다. 근데 이 쯤에서 도시락을 보고 뭐야?! 김여주?! 라는 반응이 나와야 되는데 이 새끼 그냥 가방문을 닫는다? 아무래도 욕심부려서 챙긴 이 질소과자들이 문젠거 같다. 저 대빨 나온 입을 가지고 앞장서서 걷는 전정국을 다시 종종 걸음으로 따라잡았다.
" 전정국 나 목 말라서 그런데 음료수 좀 꺼내 줘. "
전정국은 다시 내 가방문을 열었다. 뭐 이정도면 보이겠지. 전정국은 내 가방을 뒤적뒤적거려 음료수를 찾아 내 다시 내 손에 건냈다. 근데 전정국은 또 다시 아무 말 없이 가방 문을 닫는다? 망했다. 도시락이 안 보이나보다. 그리고 다시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가는 전정국의 뒤에서 덩그라니 서 한 손엔 과자 한 손엔 음료수를 든 꼴로 바라보았다. 이러다가 진짜 맛집까지 갈 기세에 전정국을 불러 세웠다. 야 전정국!
" 왜 배고프다며. 빨리 가자 "
아니 멈춰봐. 몇걸음만에 저 멀리 가 버린 전정국의 앞에 서기 위해 다시 또 종종걸음으로 그의 뒤를 쫓았다. 진짜 삐진거 같은 전정국의 모습에 다급해졌다. 그의 앞에 서 양손에 쥐고있는 과자와 음료수를 바닥에 내려놓고 가방을 앞으로 매고 지퍼를 열었다. 근데 도시락이 왜 지퍼를 열자마자 보일까. 전정국은 왜 이걸 못본걸까.
" 김여주 다급한거 봐. 미치겠다 진짜. "
자지러져 넘어 갈 기세로 웃어재끼는 전정국을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봤다. 지금 도시락 뻔히 보고도 연극한거지..? 난 또 전정국이 짠 극본의 출연진이 되어 열심히 놀아난거고...아아아아아아!!!!!!!!
" 너 봤지? 이 귀엽게 생긴 도시락 봤지?! "
" 안 보일리가 있냐. 이 큰게 떡하니 가방 한 가운데 자리 잡고있는데. "
" 먹지마. 나 혼자 먹으려고 싸온거니까. 맛집을 가든 너 좋아하는 양꼬치를 먹든 알아서 해. "
" 아무리 너라도 이거 혼자는 무리야. "
또 전정국의 판에 제 발로 들어간 나였다. 인간이 덜 된건가 학습력이 부족한건가 아니면 둘 다인가. 전정국의 손에 이끌려 벤치로 갔고 전정국은 도시락을 열 때마다 ' 우와 '라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말 너가 다 한거냐는 전정국의 물음에 으쓱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 보면 그런 경우가 많이 있다. 외관은 멀쩡한 도시락인데 여주가 요리를 못해 맛이 더럽게 없다던가 그런 일. 애초에 그런일을 없게 하기위해 실험용 도시락을 먼저 만들어 내가 먹어보았는데 음식의 결과는 처참했다. 맹탕이거나 바닷물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대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엄마찬스를 썼다. 엄마에게 비엔나 소세지는 칼집을 어떻게 내야된다는 사소한것 하나하나까지 말 하며 엄마 옆에 붙어 요리를 지켜보고 그대로 받아들어 데코레이션을 했다. 전정국은 음식을 한 입 들어 입에 넣었고 결과는 당연히 ' 맛있다 ' 였다. 뭐 그 날의 비밀은 엄마와 나 외엔 아무도 모를 일이니 굳이 떠들어대진 않았다.
이별계약
야근을 끝마치고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사무실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잡고 목을 돌리니 기다렸다는듯이 뚜드득 소리가 났고 격한 소리에 병원 가야되나와 같은 실 없는 생각을 했다. 늦게까지 일을 마치기위해 성실게 일하는 일꾼을 뽑은 이 회사는 계를 탔고 미련하게 남의 일까지 떠맡는 나는 병을 얻게생겼다. 전정국마저 퇴근한 한적한 사무실에서 끝없는 일과 싸워 결국 승리를 얻었고 회사탈출에 성공했다. 막차가 끊길수 있는 아슬아슬한 시간에 발걸음을 빨리 걸었다. 그런데 옆에 따라오는 잘 빠진 차에 덜컥 무서워 더 빨리 발을 재촉했다. 갑자기 울리는 클락션 소리에 화들짝 놀라 소리를 빽 질렀다. 그리고 그 클락션소리를 낸 그 잘빠진 자동차를 노려보아도 완벽하게 썬팅 된 차안은 아무것도 보이지않았다. 그 검은창문이 부드럽게 스윽- 내려가더니 보이는 얼굴은 전정국이었다.
" 놀랐잖아 미친놈아. "
" 말 하는거 여전한거 봐. "
전정국에게 내 할 말만 하고 막차생각에 다시 홱 돌아 가던길을 갔다. 전정국은 뒤에서 계속 빵빵 거리며 내 걸음속도에 맞춰 차를 몰았다. 아까는 일로 괴롭히더니 괴롭히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 김여주 데려다줄게. 타 "
노곤한 몸과 막차를 꾸역꾸역 타고 집에가 녹초가 되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미친듯이 전정국의 안락한 차에 타고싶었지만 그렇게 자존심 없는 여자 아니라 이거에요. 우리의 이별계약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다른 여자와 잘 해본다는 전정국이 괘씸했고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못하는 내가 참 못났다. 뭐 고등학교 동창 힘들어보여서 적선하듯이 봉사할 마음이면 내 쪽에서도 사양이다.
" 그 옆자리엔 백민지나 태우고 나 간다. 시간이 급해서. "
말을 마치고 출근했을때와 버금가는 속도로 뛰어 전철역에 도착했다. 수년간 지각으로 단련된 달리기는 역시 이런 상황에 빛을 발했다. 막차에 몸을 맡겨 물 흐르듯 집에 도착했다. 흐물거리는 액체괴물이라도 된 냥 흐물거려 침대에 누워 옷가지를 벗어내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세수와 양치를 다 마치고 난 후에야 비로소 모든 일과가 끝난 느낌이었다.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다 핸드폰을 집었다. 안 하는 사람이 없다는 페이스북에 전정국 이름 세글자를 검색했다. 역시나 없다. 6년동안 전정국 이름 한 번 검색 해보지 않은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검색해도 전정국은 뜨지않았다. 핸드폰을 다시 내려놓으려던 찰나 떠오른 백민지를 검색해보니 역시나 뜬다. 별별 사진을 다 올려놓은 백민지의 타임라인은 재미있었다. 백민지가 뭘 먹었는지 어딜갔는지 굳이 직접 연락하지 않아도 다 알것같다. 그리고 백민지의 프로필사진. 젠장. 예쁘다. 계정 하나없는 전정국과 백민지의 타임라인은 참 상반된다. 갑자기 구려진 기분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잠을 청했다. 꿀같은 단잠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알람소리에 번쩍 눈을 떠버렸다. 오늘도 헐레벌떡 회사에 도착했고 회사에서 본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엔 한층 길어진 다크서클이 자리 잡아있었다.
" 김태형 나 피곤해 보이지. "
" 응 다크써클이 발등 찍겠어. "
김태형은 보니 어제 전정국과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아 맞다. 졸지에 내 짝사랑남이 되어버린 김태형에게 얘기해야되는데. 또 지랄지랄하면 목을 쳐서 기절 시켜야 되나.
" 나 할 말 있어. "
" 이거이거.. 또 뭔 사고친 삘인데. "
" 커피 사줄까? "
" 대형사고네. 대형사고야. "
김태형의 깐족거림에도 묵묵히 입을 다물고 회사 앞 카페로 왔다. 김태형이 좋아하는 달다구리하지만 비싼커피를 시켜주고 진동벨을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김태형은 날 의심의눈초리로 이리저리 훑었고 죄인은 말이 없었다. 음.. 김태형 입장에선 새로 온 팀장에게 내 짝사랑남으로 찍힌것에 대해 심히 기분이 나쁠 수가 있다. 그렇다면 그 팀장은 그런 사실에 아무런 관심이 없단것을 강조해야겠다는 생각정리를 마쳤을때쯤에 진동벨이 울렸다. 그래. 일단 단걸 먹이고 얘기를 해야겠다. 커피를 받기위해 카운터로 갔다. 근데 저 익숙한 둥근 뒷통수. 어제 하루를 마무리 할 때까지 봐 온 저 뒷통수를 오늘 하루의 시작부터 마주쳤네. 그리고 그 옆에 백민지와 함께. 그냥 못본척하고 지나가려 했지만 백민지의 낭랑한 목소리로 ' 여주씨? '가 울려퍼졌고 난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 어머, 팀장님이랑 동창이라더니 서로 인사도 안 하세요? "
" 동창이라고 다 친하진 않잖아요. "
백민지의 말에 대답하고 다시 돌아 가려는데 이번엔 전정국의 목소리다.
" 원래 이 회사는 이렇게 자유로운가? 아무때나 노닥거리고 좋네. "
그래. 전정국은 팀장이다. 내 직장상사이고. 빌어먹을 계급사회를 저주해도 뭐 어쩌겠나 능력 좋은 사람이 높은 계급인건 당연했다. 전정국에게 고개를 살짝 고개를 내렸다 들며 ' 죄송합니다. 할 얘기가 있어서요. 금방 올라가겠습니다. ' 라는 뭣같은 사죄의 말을 전했다. 전정국은 여전히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뭐 임마. 인상 쓰면 어쩔건데. 속으로 백번천번 전정국과 맞짱을 떠도 겉으론 아무런 도리가 없었다.
" 난 우리 꽤 친했다고 생각했는데. "
친하기만 했냐 사귀기도 했지. 차마 내뱉지못한 말을 삼키며 돌아섰다. 뒤에서 들리는 전정국의 ' 뭐 마실래요? '라는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김태형에게로 갔다. 쟁반을 소리나게 탁 내려놓으니 김태형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 김여주 팀장 봤어? "
" 응. 아침부터 까임. "
" 커피 사준다길래 너가 벌써 사줬다니까 되게 기분 나빠보였는데. "
" 그러냐. "
" 바보야. 사회생활은 그렇게 하는게 아니야. 이런 말을 들으면 딱 커피를 사서 팀장한테 딱 전해줘야지. "
" 남에것도 척척 사주는 사람 커피를 내가 왜 사. "
받아 온 커피를 식히지도 않고 벌컥 마셔 느껴지는 열기에 에퉤퉤하며 커피를 뱉었다. 쟁반 위 휴지를 들어 턱을 닦으며 '진짜 되는게 없네' 라고 중얼거렸다.
" 으 뜨겁겠다. 괜찮아? "
" 별로 안 뜨거워 는 무슨. 입 천장 다 데였어. "
" 그건 금방 나아. 근데 뭐가 그렇게 되는 일이 없는데? "
지금이 타이밍이다. 김태형이 내 짝사랑남이 된 사연을 공개하기엔 이런 타이밍도 없다.
" 김태형. 화 내거나 분노하거나 소리 지르지 말고 들어. "
" 넌 이제부터 내 짝사랑남이야. 줄여서 짝남이라고 들어봤지? "
말을 하고 김태형의 반응을 살폈지만 김태형은 커피만 마실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뭐야.. 괜히 긴장했네.
" 김여주. 나 잘 이해가 안 됐는데 다시 설명해 봐. "
김태형의 이해가 안 됐다는 말에 밀려 나오는 한숨을 들이 마시고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팀장과 사실 동창인데 어제 야근하며 얘기를 나누다보니 팀장이 김태형과 날 사귀는 사이로 오해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부정을 해냈지만 팀장이 잘 해볼 여자가 있다는 말에 괜한 자존심을 부려 나도 널 좋아해 잘 해볼거라는 헛소리를 내뱉었다는것을 전달했다. 아까 김태형은 정말 이해를 못해 화를 내지 않은것이고 지금 이해가 끝난 김태형은 역시나 소리를 질렀다.
" 뭐?! "
" 아니 친구야. 소리는 지르지 말고. "
" 도대체 왜? 팀장이 잘 되는 여자가 있는거랑 니 자존심이랑 무슨 상관?! "
" ....그러게? "
그러게는 무슨! 이게 다 되도 않는 이별계약때문이지!! 왜 둘중 한명이라도 애인이 생기면 무효냐고요.. 남은 한 명 서럽게시리. 김태형에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되려 넌 그냥 내 짝남이야!!라고 땡깡을 부렸다.
" 김태형 너! 이 커피도 마시고 내가 얼마나 잘 해주는데 그거 하나 못해줘? 진짜 사귀자는것도 아니고? "
" 이건 진짜 사귀는것보다 더 하지. "
" 왜 그러는데에."
" 여자가 좋아하는거 뻔히 알면서 모르는척하는 사나이가 어딨어. "
" 마음에 안 들면 그럴수도 있어. 그럼 그럴 수 있지. 해 줄거지? "
" 너 하는거 봐서. "
아 회사에 신줏단지가 하나 늘었다. 앞으로 내가 모시는 분은 김태형이다...
이별계약
하루종일 전정국의 농락에 시달리는 날이었다. 사귄 후 첫 데이트의 설렘 두근거림따윈 개나 줘버리라고 해라. 속고 속이고 끝 없는 눈치게임 속 지친 내 두뇌와 전정국이 들떠 코끼리나 기린을 보러가는것에 끌려 다닌탓에 지친 내 육체는 덤이다. 코끼리 코를 해서 코끼리 앞에 세워 사진을 찍질 않나 양손을 호랑이가 사람 위협하듯 잔뜩 세워 호랑이랑 사진을 찍질 않나 여러모로 고생 많았다. 나 자신. 어린이대공원역에 도착 해 개찰구 앞에 서 음료수를 뽑으러 간 전정국을 기다렸다. 지친 내 육신은 전정국을 따라 자판기까지 갈 자신이 없었다. 자꾸 놓치려는 정신줄을 기어이 잡고 풀릴려는 다리에 힘을 주고 있었다. 뒤에서 내 어깨를 툭툭 치는행동에 '전정국 빨리 가자' 라며 돌아봤지만 전정국이 아니었다.
" 누구....세요..? "
" 아니.. 저.. "
당차게 내 어깨를 치던 손과는 달리 말도 내뱉지못하고 눈만 굴려대는걸 보고있자니 내가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 음 혹시 길 물어보시는거면 저도 놀러온거라 잘 몰라요. "
이 정도면 예의바르고 정중하게 거절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칭찬하고있을때 뭔가 결심한듯 입을 떼는 남자였다.
" 그게 아니라 번호 좀 주세요. "
말을 내뱉고 망개떡마냥 웃는 남자의 얼굴을 보고 처음으로 초딩이상의 남자에게 귀엽다는 감정을 느낀것같다. 전정국이랑 놀러다니면 옆에 있는 나는 안 보이는지 전정국의 번호를 따려는 여자를 세기엔 열 손가락도 부족했지만 나에게 번호를 따는 남자는 한 손도 필요없다 이거에요! 근데 왜 하필 전정국이랑 사귀는 이 와중에야 드디어 번호를 따이는지 운명도 참 기구하다. 그리고 이 남자 재수도 더럽게 없다. 이렇게 용기내서 번호 달라고 얘기하기도 힘든데 어찌 정중히 거절할지 머리를 굴렸다. 죄송합니다만 애인이있습니다! 저기 음료수 뽑으러 간 전정국이요!는 무슨 그냥 남자친구있다고 대답하지 뭐.
" 교복 입은거 보니까 학생? 혹시 막 중학생이거나 그런건 아니죠? 나 철컹철컹? "
" 아니요. 19살인데요? "
미친. 뭔데 친절하게 질문에 대답이나하고 있냐. 친절하게 나이까지 밝혀주고 대단하다. 세상에 나같은 사람만 있으면 세상 살기 편할텐데. 이 낯선 남자와 취조도 아닌게 짧막한 질문에 난 대답만했다. 한참 대답을 하고있을때 양손에 음료수를 쥔 전정국이 왔다. 아무렇지 않게 내 옆에 선 전정국을 보고 이 낯선남자는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친구에게 묻듯 나에게 질문을 한다.
" 누구에요? "
" 아 얘는 제.. "
" 남자친구요. 그러는 그 쪽은? "
전정국은 나보다 빨랐다. 낯선남자의 눈빛이 살짝 흔들린것같았다. 그러게 누가 자꾸 그렇게 질문하래요!는 무슨 다 내 잘못이오. 대역죄인일세..
" 아 남자친구.. 있을것 같았는데 진짜 있네. "
남자는 생각보다 상황파악이 빨랐고 포기가 빨랐다. 나에게 재밌었어요라는 말과 본인 이름이 박지민이라는것을 알리고 사라졌다. 미안하지만 당신은 내 기억속에 망개떡으로 저장될거같습니다. 망개떡이 사라지고 전정국은 날 쳐다봤다. 뭔가 딱히 불륜을 저지르거나 한것도 아닌데 눈 마주치기가 힘드네 하하.
" 내 눈 똑바로 봐 김여주. "
전정국의 말에 찍소리도 못하고 전정국의 눈을 봤다. 이제라도 빌까. 뭘 빌지.. 망개떡과 만담을 나눈것? 망개떡을 단칼에 내치지않은것?
" 뭐야 저 남자. "
" 아니 처음엔 길 물어보는줄 알았는데 갑자기 번호를 달라그러더니 막 질문을 퍼붓길래 대답해줬지. "
" 남자친구 있다고 왜 말을 안 해. "
" 타이밍을 놓쳐서.. "
전정국은 화가났다. 그것도 많이. 아무 말도 없이 전철을 타러가는 전정국의 뒤를 쫓아갔다. 죄인은 말이 없다고 졸졸 따라갔다. 빈자리가 없는 전철에 서서 갔다. 점점 아파오는 다리며 밀려오는 잠은 신경 쓸 새가 없었다. 내 머릿속은 오직 전정국 어쩌지. 이거 하나뿐이었다. 전정국은 빈자리가 생긴 자리에 아무 말 없이 날 끌어다 앉히고 그 앞에 섰다. 아무 말도 없이. 바로 앞에 있는 전정국을 보지도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그렇게 숨 막히는 전철을 타고 드디어 우리동네에 도착했다. 그때까지 전정국은 아무말이 없었다. 지하철역 앞에서 헤어지려고 전정국에게 ' 갈게. 연락할게. ' 라는 말을 건냈지만 또 이번엔 ' 늦었어 ' 라는 말만 내뱉은 전정국은 우리집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 말 없이 걷기를 몇분이 지났을까 집 앞에 도착했다. 전정국은 ' 들어가 ' 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섰다. 이대로 전정국을 보내면 안 될거 같은 기분에 다급하게 전정국을 불렀다.
" 전정국! "
그 자리에 멈춰선 전정국이었지만 여전히 등을 보이고 있었다. 전정국의 앞으로 달려가 섰다. 어둠이 내려앉은 세상에 가로등이 겨우 밝히는 거리에 전정국과 마주보고섰다.
" 정국아 나랑 지금 말 하기 싫은거 알겠는데 이 말만 듣고 가. "
" ... "
" 그 남자한테 진짜 뭐 번호를 주거나 잘 해 볼 생각은 진짜 한 톨도 없었어. "
" ... "
" 근데 그냥 막 착하게 생겨서 그냥 몇마디 주고 받다가 보내려고 했는데.. "
왠지 모를 울컥함에 눈에 눈물이 고이는걸 참아냈다. ##깁여주 뭘 잘했다고 울어.
" ...나 진짜 너 많이 좋아해 정국아. 이것만 알고 가라고. "
겨우 말을 끝마치고 ' 잘 쉬고 연락할게 ' 라는 말을하고 걸었다. 지금 전정국은 내가 꼴도 보기 싫을거니까. 한 걸음 두 걸음 걷는데 차오르는 눈물에 하늘을 바라봤지만 별 하나 없는 하늘만이 날 반겼다.
" 누가 너랑 말하기 싫데. "
갑자기 내 팔목을 잡아 날 돌려세운 전정국에 의해 내 몸은 돌아갔다. 전정국은 우리 외엔 아무것도 없다는듯이 지긋히 나만 쳐다봤고 나는 그 눈빛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전정국은 그대로 날 끌어 안았고 난 전정국 품에 갇혔다. 일정하게 뛰는 심장소리가 들렸다. 전정국 품이 따뜻해서인지 갑자기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기 위해 입을 꾹 다물었다.
" 진짜 김여주 어디 가둬놓던가 해야지. "
" 김여주 예쁜건 나만 알았는데 안 되겠네 이제. "
전정국의 말에 다시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말수가 터졌다. 전정국의 얼굴은 내 어깨에 묻어져 있었고 난 전정국의 가슴팍에 갇혀있어 막힌 소리가 났지만 아랑곳 하지않았다.
" 전정국 너는 무슨 밥 먹는것보다 자주 번호 따이면서. "
" 나는 걔네랑 말 두마디이상 안 해. "
응 인정. 이라고 대답할뻔한 입을 겨우 틀어막아냈다. 전정국과 나는 한참을 껴안은채로 서서 가만히 있었다. 슬슬 산소가 부족해져 전정국에게 나 숨 좀 쉬게 팔 좀 치워달라고 말해 봤지만 전정국은 미동도 없었다. 이러다 질식사로 사망할지도..
" 김여주 "
" 왜 이제 풀어주게? "
" 아직도 향수냄새 나. "
" 오래가네? "
" 이게 다 너 향수냄새 때문이다. "
내 향수냄새에 책임을 전가한 전정국은 그대로 날 제품에서 떼어 냈고 그대로 내 얼굴을 잡아 입을 맞췄다. 전정국은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왔고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던 내 팔은 전정국의 허리에 안착했다. 늘 눈으로만 보던 전정국의 붉은입술이 내 입에 닿아있는 느낌은 요상하리만큼 신기했다. 아빠이외에 내가 또렷히 기억나는 남자와의 입맞춤은 처음이었다. 전정국과의 키스에 홀리듯이 빠져들었고 나도 전정국에게 완전히 빠져든것같았다. 이 마법같은 시간이 영원했으면 싶었다. 전정국 이 위험한 남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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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에에에엥 독방 추천으로 오신 분들이 있다는게 넘나 신기하네요ㅠㅠㅠㅠ 추천 하신분들 추천 받고 오신분들 다 애정합니다. 다른분들도 다!! 과거 소풍얘기를 한꺼번에 끝내려다보니 좀 기네요.. 좀 읽다 밥도 먹고 물도 마시면서 보세요.. 앞으로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이별계약 뜻을 잘 모르시는게 당연합니다. 구체적인 언급은 아직 없었으니..ㅎㅅㅎ... 근데 뭐 아실분덜은 다 알아차리셨겠지만!! 하핳 그리도 답댓글을 다음편이 나와도 달아 드리는게 나을까요.... 괜히 쓸데없는 알람 울리게 하는건 아닌지... 혹시 이 더보기를 보신다면 답 좀주세야!! 더보기는 원래 스킵하는거지만요헤헿 이걸 보시는 럭키가이가 있다면 그리고! 귀여운 팍취미니ㅠㅠㅠㅠㅠㅠㅠㅠ사랑해!! 여주말고 내 번호를 따가!! |
| 암호닉분덜 제 사랑 거부는 거부햇!♥ 암호닉은 최신화 기준으로 업뎃할게요!! |
정전국님! 김다정오빠님! 소진님! 블루블루망토님! 톰톰님! 초코아이스크림님! 0103님! 근돼님! 비림님! 아망떼님! 규수님! 1230님! 태퇘퉤태님! 솔트말고슈가님! 와장창님! 청퍼더님! 기베기님! 블라블라왕님! 안돼님! 코코몽님! 루이비님! 생크림짱님! ㅈㅈㄱ님! 정꾸꾸님! 베네님! 복숭아님! 다들 많이 애정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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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생리대, 고급이라 비싸? 아예 무상공급 검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