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이별계약!
거의 반강제로 극본 김여주의 짝남 역할을 맡게 된 김태형은 예상외로 어째 신났다? 카페에서 회사로 돌아가는 내내 그래서 본인은 무슨 행동을 하면 되는거냐고 물어오는 김태형을 떼어내느라 꽤 애먹었다. 이제부터 우리 부서의 슈퍼 을은 나라고 외치는 김태형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전정국에게 거짓말을 친 것부터가 괜한 일을 만든 기분이 들었고 이 사실을 김태형에게 말한것도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든 기분이 들었다. 이미 입 밖으로 내뱉은 말 취소만 가능하다면 쿨하게 취소버튼 누르고 그냥 자존심 한 번 죽일 수 있을텐데. 우리 부서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찰나 김태형이 내게 어깨동무를 해 왔다.
" 뭐 해? "
" 내가 니 짝남이니까 이런 다정한 모습을 보여줘야지. "
헤엑? 김태형은 뭘 잘못 이해해도 단단히 잘못 이해했다. 저기요.. 내가 너의 짝녀가 아니라 니가 나의 짝남이라고요!!! 병신같은 김태형.. 이미 열린 문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대로 김태형과 사무실로 들어갔다. 난 김태형을 좋아하니까 김태형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을 땐 웃어야한다. 고로 난 올라가지도 않는 입꼬리를 최대한 끌어 당겨 호선을 만들어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저거저거 인상 더러운거 봐. 나에게 머물던 전정국의 시선이 먼저 떨어졌고 나도 내 자리로 가 앉았다. 와 뭔데 내 자리에 처리해야 될 자료가 한가득 있는걸까. 김대리님에게 다가가 ' 김대리님 이거 제가 다 할 일이에요? ' 라고 물으니 ' 아 팀장님이 거기 놓으라고 해서. 무슨 문제 있어요? '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냥 뭐 집에 늦게 간다 정도의 문제뿐이겠죠. 애꿎은 김대리님한테 따져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듯 해 전정국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전정국 책상 앞에 서니 전정국은 서류를 넘기던 손을 멈추고 날 올려다 보았다.
" 팀장님. 이거 다 저보고 하라고 주신거 맞아요? "
" 네. 왜요? "
왜요라니 이자식아. 저 쌓여있는 서류뭉치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니.
" 언제까지 해야 되는건데요? "
" 오늘까지. "
" 아 오늘까지요? "
" 김태형씨랑 노닥거리는 시간만 줄여도 가능할거같은데? "
누가보면 자기는 일만 하는 사람인줄 알겠다. 전정국 책상위에 떡하니 자리 잡고있는 커피잔이 너도 노닥거리고 왔단걸 증명해주는데 뻔뻔하기 그지없다. 다시 내 책상으로 돌아가는 날 붙잡아 세워 서류 한 뭉치를 더 얹어주는 인심 좋은 전정국이었다. 제 시간에 퇴근은 무리고 조금이라도 집에 빨리 가는걸 노려야겠다. 내가 이렇게 미친듯이 일을 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정말 하얗게 불태웠다. 점심시간이 되어도 난 망부석처럼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김태형은 그럼 편의점에서 도시락 사서 같이 먹자고 도시락을 사러갔다. 점심시간에 하나같이 다들 빠져나가 사무실은 한적해졌다. 오전내내 고개 한 번 들지않고 일 하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고개를 한 번 든 나는 빈 전정국의 책상을 째려보았다. 김태형은 언제 오나. 때마침 열리는 사무실 문소리가 도시락 왔다 라는 소리로 들려 행복하게 돌아봤다. 근데 왜 또 전정국이냐.
" 밥 안 먹어? "
" 응 덕분에. "
전정국의 태연하게 물어오는 질문에 한껏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전정국을 쳐다봤다. 갑자기 밀려 오는 분함에 인상이 확 찡그러졌다.
" 야 전정국. 유치하게 왜 그래? "
" 뭐가? "
" 뭐가 불만인데. "
" 불만 없는데? "
" 그럼 이 쌓인 서류뭉치는 어떻게 설명할래. "
" 나 오늘 야근 할 건데. "
" 어쩌라고? "
" 혼자하면 심심하잖아. "
내가 무슨 개그맨도 아니고 나랑 야근하면 재미있을거 같냐고 따지려는 순간 듣기 싫은 하이톤의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백민지가 우리 사무실로 걸어 들어와 한 걸음 한 걸음 땔 때마다 향수냄새가 진동을 했다. 도대체 뭘 얼마나 뿌리면 이런 냄새가 나는지.
" 여주씨도 있었네요? 동창끼리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요? "
백민지는 날 위아래로 훑었다. 독한 향수 냄새에 인상을 쓰고 나도 백민지를 쳐다봤고 백민지는 ' 동창 ' 이라는 말에 세기를 주어가며 무슨 말을 했냐고 물었다. 으 불편해 뒤지겠다. 잘 되어간다는 남녀사이에 낀 기분이란 참 더럽다. 내가 빠져줘야 될 것 같고 그런 느낌. 내가 방해꾼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타이밍을 봐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타이밍을 노리고 있을 때 한껏 방방 뜬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 김여주 도시락 먹자!! 어? 팀장님도 있었네? "
와.. 김태형이 내 짝남이라고 밝히고 삼자대면은 처음이다. 김태형만 입조심하면 안 들킬 수 있다. 김태형이 오자마자 일단 얼굴에 웃음을 피었다. 원래 좋아하는 사람은 보기만해도 웃음이 나온다고 하지 않는가.
" 김태형 나가서 먹자. 둘이 있으라하고. "
" 아 백민지씨도 있었네? 어쩐지 낯선 향수냄새가 나더라. "
" 태형씨도 오랜만이네요. "
" 나가자. 향수냄새때문에 여기선 밥 못먹겠다. "
도시락을 들고 앞서 나가는 김태형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김태형은 앞장 서 가던 발을 멈추고 뒤 돌아 나와 눈을 마주쳐왔다.
" 잘 했지. "
" 뭐가? 도시락 사온거 아니면 백민지 쪽 준거? "
" 둘 다. "
흐흐흐 웃는 김태형은 정말 못말린다. 바보다 바보야. 몇 번을 말해도 이해를 못한다. 니가 날 좋아하는 설정이 아니라 내가 널 좋아하는 설정이라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다.
" 김태형 솔직히 너 이해 못했지. "
" 아니, 근데 여자가 남자 좋아하는데 모르는척한다는게 좀 그렇다니까? "
" 아니 그건 중요하지가 않다니까? "
" 그런 식이면 협조 안 한다. "
눼눼. 바로 꼬리를 내린 내 모습에 김태형은 박장대소를 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날 이겨먹냐고 무척이나 좋아한다. 한참 웃던 김태형이 갑자기 표정을 싹 바꾸고 섰다.
" 너 팀장 좋아해? "
" 아니?! 절대 그런거 아닌데?! "
뜬금 없는 김태형의 말에 격하게 부정했다. 김태형 입에서 나온 얘기는 실로 충격이었다. 내가 전정국을 좋아해? 지금 이 상황에?
" 너 아까 표정 엄청 구렸는데. 백민지랑 팀장이랑 셋이 있을 때. "
" 향수 냄새때문에. "
" 뭐 자세한 얘긴 너가 하기 싫어하는거 같으니까 안 물어볼건데. "
" ... "
" 생각 잘 해봐 김여주. "
아침에 카페에서 김태형에겐 전정국과 동창이라는 얘기는 생략했다.그냥 김태형에게 전정국과 관계를 털어 놔야겠다고 마음 먹고 김태형에게 모든 얘기를 해줬다. 전정국과 고등학교때 절친이었다는 얘기와 사겼던 얘기까지 하나만 빼고 몽땅. 전정국과 나 사이의 이별계약은 8월31일이 되고나면 말 해주겠다는 다짐을 했다.
" 너 혹시 학교 다닐 때 팀장 괴롭혔어? "
" 아니? 그 반댄데? "
" 그럴리가. 순전히 니 생각 아니야? "
김태형에게 털어 놔 봤자이런 실 없는 얘기만 했다. 내가 전정국을 괴롭혀 지금 나를 괴롭히는거라느니 전정국은 날 친구로 생각한적 없는데 나만 전정국을 친구로 생각하는 거라느니 이상한 얘기만 했다. 김태형과 노닥거릴 시간이 없는 나는 도시락을 후딱 먹고 다시 사무실로 컴백했다.
이별계약
전정국과 다툼같지도 않은 다툼을 하고 풀고 다사다난했던 현장학습이 끝나고 나니 이제 노는건 끝이었다. 왜 시험은 항상 눈 감았다 뜨면 보고 또 눈 감았다 뜨면 또 보고 하는지 모르겠다. 시험을 일주일 남긴 이 시점에서 고3인 나는 극도로 피곤했다. 저녁시간엔 그렇게 되지도 않는 공부가 새벽만 되면 너무 잘 된다. 새벽을 불태우고 나면 학교에 가 있는 낮 시간은 반수면 상태로 보낸다. 반수면 상태도 점심시간일때나 반수면이지 수업시간엔 그냥 수면상태다. 수면상태
" 또 자? "
" 응.. 또 자.. "
눈도 뜨지 못하고 전정국의 말에 대꾸했다. 처음 전정국은 내가 잘 때 미친듯이 흔들고 치대고 소리를 질러 깨웠다. 그런데 이제는 내 몰골이 심각하단걸 몸소 느끼는지 가만히 담요만 덮어주고 앉아있는다. 으 만약에 또 치댄다면 죽빵을 날렸을지도 모른다. 거의 자러 학교를 가니 학교는 순식간에 끝났다. 학교가 끝남과 동시에 내 정신은 멀쩡해졌다. 오후가 되서야 나는 아침을 맞은 격이다. 전정국과 독서실을 같이 다니기때문에 같이 독서실을 향해 갔다. 전정국은 오늘 필기한거라고 노트를 내밀었다. 노트를 받아들어 펴 보니 삐뚤한 글씨로 필기를 빽빽히도 해놨다. 전정국의 필기를 다 옮겨적고 녀석과 바람이라도 쐴 겸 독서실 밖으로 나갔다.
" 무슨 잠을 그렇게 자? "
" 나 새벽에 공부 해서. "
" 너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알아? "
" 지금 나 무시하냐? "
" 잠 자는 숲 속의 공주는 키스해야지 일어나는데. 넌? "
전정국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독서실로 들어가려 했지만 전정국 손에 금방 잡혔다. 사실 전정국과의 입맞춤후 처음 전정국을 마주했을때부터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근데 전정국은 이런식으로 자꾸 장난을 쳐 왔다. 그냥 평소처럼 같이 맞받아치면 되는데 그게 안 된다. 전정국의 손에 의해 다시 돌려 세워져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 놀리지 마. "
" 부끄러워? "
" 아니. 전혀. "
말은 아니 전혀라고 했지만 얼굴이 빨개진게 느껴질 정도로 얼굴이 빨개진것 같았다. 손에 얼굴을 파묻으니 전정국은 얼굴 왜 가리냐며 내 손을 떼어내려고 용을 썼다.
" 아 하지말라고. "
" 자꾸 그런 반응 보이면 더 하고싶잖아. "
" ... "
" 재밌다. 인생의 낙이야 낙. 너 없으면 심심해 죽을지도 몰라. "
엄마가 공부하라고 보내 준 독서실에서 공부는 안 하고 희희낙낙 이러고 있는걸 보면 뒤로 자빠질것이다. 전정국의 예고도 없는 훅은 맞아도 맞아도 당황스럽다. 진짜 맨날 전정국과 비등비등하게 이겨먹다가도 전정국 한 마디면 K.O패다 완전. 전정국덕분에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렇게 어느 새 시험 당일이 되었고 시험은 폭풍같이 지나갔다. 나에게 똥같은 점수만 안겨주고. 가채점을 할 때마다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멘탈 붙잡고 애써 정시도 있으니까..라며 나를 달랬다. 멘탈이 나간 날 보고 전정국은 점수에 대한 얘기는 하지않았다. 뭐 보나마나 잘 봤겠지만! 시험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대학진학을 위해 담임은 한 명씩 상담을 진행했다. 하루에 세명 정도씩 남아 상담이 진행됐다. 전정국은 나보다 먼저 상담을 했고 전정국의 말로는 별거 없다 그랬다. 그냥 희망대학, 과 말 하고 될 것 같다 아니다 그 정도라고. 그리고 어느 새 내 차례가 왔고 불안한 마음을 안고 선생님 앞에 앉았다.
" 여주 시험점수가 2학년 2학기때보다 떨어졌더라? "
" 네.. "
" 3학년때 성적이 반영비율 높은 학교도 있어서 신경 써야 돼. 이런건 이제 말 안 해도 알지? 성적 신경 쓰고. "
" 네. "
이런 소리 들을걸 예상 못한건 아니었다만 직접 들으니 어안이 벙벙하다. 아무렇지도 않을거라 예상했던것과 달리 머리를 징으로 때린듯 댕 했다. 학교가 끝나고 상담을 진행했기때문에 전정국은 교문에서 날 기다리고있었다. 전정국을 보고 아무일도 없다는듯 환하게 웃어 보이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않았다. 눈치가 빠른 전정국은 알아서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나 외에 누구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더 답답했다. 중간고사를 보니 또 모의고사다. 첩첩산중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건가. 이 놈의 모의고사는 왜 또 달달이 보는지 교육청가서 불 지르고싶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게 아니기를. 모의고사 공부는 꾸준히 하기때문에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처럼 몰아서 빡세게 하지 않아 시간적여유가 있다. 모처럼 주말에 전정국과 영화약속을 했다. 영화예매를 내가 미리 하겠다고 박박 우겼다. 왜냐면 새로 나온 공포영화를 예매하기 위해. 연인사이에 공포영화를 보면 여자쪽에서 꺅꺅 거리며 엉겨 붙기때문에 자연스러운 스킨쉽이 가능할거다. 근데 전정국은 공포영화라면 질색팔색을한다. 고로 전정국은 공포영화를 못본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전정국에게 당한게 쌓이고 쌓여 내가 공포영화를 예매하게까지 만들었다. 역시사람이 죄를 짓고 살면 안 돼.. 이제 5월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겨울을 지났고 봄과 여름의 경계에 있다. 날이 날인만큼 옷차림은 얇아졌다. 조금 걸으니 더운 날씨였지만 영화관에 들어오니 더위는 싹 가셨다. 영화관에 들어 와 두리번거리니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고 있는 전정국을 발견했다. 영화관에서 만난 전정국을 보고 반갑게 뛰어갔다.
" 들어가자. "
" 무슨 영환데? "
전정국의 질문은 들리지도 않는다는듯이 전정국의 손을 이끌고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영화표를 꺼내 자리를 확인하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 무슨 영화냐니까? "
" ... "
" 뭔데. "
" 보면 알아."
애써 뿜어져 나오는 웃음을 밀어넣고 꾸역꾸역 대답을 마쳤다. 이제 조금 뒤면 겁에 질린 전정국을 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영화에 대한 생각은 모두 사라졌다. 그냥 저 영화는 전정국을 놀릴 도구였을뿐이고 아무런 기대도 되지 않는다. 스크린에 지루한 광고가 쭉 지나가고 드디어 시작이다. 역시나 시작부터 음산한 분위기에 역시 공포영화는 공포영화다라는 생각을 했다. 슬쩍 옆에 앉은 전정국을 바라보니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스크린을 응시하고있다. 벌써 얼어 붙은건가. 영화의 발단 전개 위기 절정이 있다면 아직은 발단이다. 벌써부터 겁먹기는 이르니 좀 더 지켜보도록 해야겠다. 전정국을 몰래 지켜보던 눈을 스크린쪽으로 돌리니 살벌한 장면이 나온다. 오우. 무서운데? 점점 손에 땀이 차는 이유는 내가 다한증은 아니니 쫄아서 땀이 나나보다. 점점 살벌해지는 장면에 쫄았다는 티도 못내고 실눈을 뜨고 스크린을 보고있었다. 이게 아닌데. 영화는 상상을 초월할만큼 무서웠다. 한참 쫄아있다 떠오른 전정국생각에 고개를 돌리니 눈 하나 깜박 안 한다.
" 안 무서워? "
" 또 향수 뿌렸지. "
" 아니? 아니 안 무섭냐고."
전정국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목소리로 안 무섭냐고 물으니 동문서답을 하는 전정국이었다. 안 무서운게 확실하다. 지금 상태가 너무 멀쩡하네 멀쩡해. 근데 왜 공포영화를 보자고 하면 질색팔색하는지 모르겠다.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네. 전정국은 재차 안 무섭냐고 물어오는 나의 말에 잠시 정면을 응시하다 이내 다시 날 바라봐 웃음지었다.
" 무섭다. "
전정국은 그대로 내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스크린이 안 보이게 고개를 푹 묻고 전정국은 내 손을 잡았다. 전정국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 마쉬고 내 귀에 속삭였다. 전정국이 왜 그렇게 자꾸 귀가 예민하다고 하는지 알것같다. 말 할때마다 불어오는 입바람과 들려오는 숨소리는 사람 미치게 만든다.
" 향수보다 니 냄새 좋다. "
" ... "
" 근데 김여주 너 무섭지. "
" 아니? "
" 손 축축해. "
전정국은 내 어깨에 묻었던 고개를 들곤 ' 아니긴 무슨. '이라는 말과 함께 내 머리를 본인 어깨에 기대게 만들었다. 그리고 큰 손으로 내 눈을 가렸다. 참 깜깜하고 아무것도 안 보이고 좋네. 근데 아예 가릴정도로 무서운건 아닌데 이게 무슨짓이란 말인가. 전정국의 손을 치워내고 그정돈 아니라고 고개를 들려고하니 전정국은 다시 내 고개를 눌러 어깨에 기대게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마주잡은 손때문인지 기대고 있는 머리덕분인지 아까보다 영화가 덜 무서웠다. 전정국을 놀려주려는 계획은 완벽히 무산됐지만.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목 결림을 얻었지만 좋았다. 그 후 알게된 사실이지만 전정국은 공포영화를 무서워하는게 아니라 그냥 취향에 맞지 않는것이라고 한다. 굳이 본인 취향을 따지자면 캡틴아메리카와 같은 류의 히어로물이라고 한다. 큰 장르로는 액션이라고. 오늘도 또 망했지만 그냥 이런 하루하루가 참 좋았다.
이별계약
와 오늘도 야근이다. 신나서 미쳐버리겠네 아주. 야근하는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왜 다들 6시 정각에 칼퇴근을 하냐고요. 이게 다 빌어먹을 전정국때문이다. 회사사람들 다 가면 얘기 좀 해야겠다. 전정국이 계속 이런식으로 나오면 난 정각 퇴근은 꿈도 못 꾸게 생겼다. 김태형은 오늘도 화이팅을 외치고 쌩 하니 가 버렸다. 정시 퇴근하면 즐겁겠지. 그래. 애써 문 밖으로 돌아가는 눈을 서류뭉치로 고정시켜가며 일의 속도를 높였다. 또 사무실에 딸랑 전정국과 나 둘 밖에 남지않았다. 할 얘기는 이따 해도 충분하지만 이 일을 끝내지 못하면 집에 가지 못한다. 모든 신경을 집중해 일을 처리하고있을때 책상 위로 커피컵이 올라왔다. 고개를 들어 커피를 올려 놓은 사람을 확인하니 김태형이었다.
" 안 갔어? "
" 야근은 잘 돼? 이건 아침에 커피 얻어 먹은거 갚는거. "
감겨오는 눈에 카페인이라니 순간 김태형이 하늘에서 내려 온 천사같았다. 역시 입사동기 하나는 잘 뒀다. 김태형은 날 한 번 바라보고 웃더니 전정국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태형은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전정국에게 말을 건냈다.
" 팀장님도 계신 줄 알았으면 한 잔 더 사오는건데 몰랐네요. "
멍청한 김태형. 나 보고 사회생활 못한다고 운운할게 아니라 너부터 잘 해라 좀. 싸해지는 분위기에 커피를 들고 김태형을 끌고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김태형은 왜 그러냐는 표정을 잔뜩 띄우고는 날 바라보고 섰다.
" 진짜 몰라서 그런 표정 지어? "
" 왜? "
" 찍히고 싶어서 환장을 했지. 그냥 조용히 나가면 될 걸 또 거기서 덧붙이긴 뭘 또 덧붙이고 앉았어 바보야. "
" 다 천재 김태형님의 선견지명이니 그냥 가만히 받으세요. 김여주씨 "
" 또 병 도졌네, 도졌어. "
김태형을 돌려 보내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내 자리에 앉아있는 저 형체는 전정국이다. 내 책상으로 터벅터벌 걸어가 책상 앞에 섰다. 내 노트북을 내려다 보던 전정국은 시선을 올려 날 쳐다보고 입을 뗏다.
" 데이트 잘 하고 왔어? "
꽈배기라도 쳐 먹었나. 베베 꽈 대는 꼬라지 하고는. 전정국의 한껏 비꼬는 말에 내 대답이 좋게 나갈리는? 전혀 없다.
" 그래, 아주 달달해서 꿀 떨어지는 시간 보내고 왔다. "
전정국과 다를 거 없이 한껏 비꼬아 대답하는걸 전정국이 모를리 없다. 전정국의 인상은 살짝 찡그러졌다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전정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문을 반쯤 열고 멈춰 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나가자. 할 얘기 있어. "
본인 할 말만 하고 쏙 나가버리는 전정국이다. 전정국의 뒤를 쫓아 사무실 문을 여니 바로 문 앞에 서 있는 전정국이었다. 전정국은 ' 나 커피 마시게 카페 가자. ' 라는 말을 끝으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건 뭐 이제 지 커피 마시는것까지 따라 다니라는 건가. 먼저 가 버린 전정국의 뒤에서 시부렁거려봤자 들리지 않는 외침일 뿐이었다. 카페에 도착 해 전정국은 커피를 시키고 날 바라봤다. 난 고개를 저으며 ' 방금 먹어서 괜찮아. ' 라고 말하니 전정국은 다시 고개를 돌려 조각케이크를 시켰다. 전정국과 난카페 창가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았고 우리 사이엔 정적만이 맴돌았다. 그 정적을 깬건 진동벨이었고 자연스레 진동벨에 손을 뻗었지만 전정국이 더 빨랐다. 전정국은 커피와 조각케이크가 올려진 쟁반을 가져 와 앉아 조각케이크를 내 앞에 놓아줬다. 전정국은 커피에 손 댈 생각을 안 했고 난 포크로 조각케이크를 퍼먹었다.
" 먹을래? "
카페에 와 처음 꺼낸 말이 먹을래? 라니. 전정국은 내 말에 입만 동그랗게 벌릴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슨 어미새한테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새도 아니고 얼척이없다. 전정국의 입에 케이크를 던지듯이 넣어 주고 다시 케이크를 먹으며 전정국에게 물었다.
" 할 말 있다면서. "
전정국은 나의 말에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창 밖을 바라봤다. 그러고 나서도 전정국은 한참을 뜸을 들이다 입을 뗏다.
" 김태형씨도 너 좋아하는거 같던데 "
전정국의 말에 잘 먹던 케이크가 걸려 사레가 들렸다. 전정국은 내게 다 식은 커피를 건냈고 그 커피를 낼름 받아 마셨다. 사레가 진정되고 생각을 정리했다. 김태형 이 미친놈이 원하던 대로 내가 김태형의 짝녀처럼 보였나 보다. 그래. 그냥 날 좋아하는 남자만 있어도 계약이 끝나기 전 전정국이 여친이 생기든 어쩌든 체면은 차릴수 있을거다.
" 그래 보여? "
" 하긴 너 눈치는 더럽게 없으니까. "
" 무슨 소리야. 뻥 좀 치지마. "
" 그럼 됐네. "
" 뭐가? "
" 사겨, 둘이. "
갑작스러운 전정국의 말에 당황스러웠다. 사귀긴 무슨 이게 다 연극인데. 아무 말도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는새 전정국이 먼저 입을 뗏다.
" 내가 너 도와줬으니까 너도 나 도와줘. 공평하게. "
" 니가 뭘 도와줬는데? "
" 김태형씨가 너 좋아하는거 알려줬잖아. 나 아니면 평생 모르고 짝사랑만 했을텐데? "
"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뭘 도와 달라는건데. "
" 백민지씨랑 나 잘 되게 도와줘. "
망했다. 내가 파놓은 덫에 내가 걸렸다. 난 뭐 아무런 이득되는것도 없이 남 연애사업이나 돕게 생겼다. 전정국의 입에서 나오는 백민지라는 단어가 참 싫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빴고 그냥 싫었다. 뭔데 이 기분은. 아 시발, 몰라! 그냥 쿨 하게 알겠다고 하니 전정국은 의외라는 눈치다. 지금 나 또 잘못한거 맞지.. 전정국 앞에 놓인 커피도 바닥을 보였고 내 앞에 놓인 케이크도 다 먹었다. 이제 슬슬 일어날 준비를 하는데 전정국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아 맞다. 김여주. "
" 왜? "
" 너 나한테 선 긋지마. "
" ... "
" 그리고 무슨 안 친하다느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도 하지 말고. "
" ... "
" 너랑 나 직장동료이기 이전에 ... "
" 됐다. "
지 할 말만 하고 또 쏙 올라간다. 그래 전정국 니가 먼저 직장동료의 선을 넘은거다. 그럼 나도 그냥 그 선 박박 문질러 지우고 넘어간다. 뭐 나중에 팀장 대우를 해달라느니 그딴 소리하면 죽어 진짜. 전정국과 다과를 즐기고 사무실에 올라가 또 한참을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와 끙끙 대고 나서야 회사에서 탈출을 할 수 있었다. 전정국과 나란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전정국에게 다음부터 또 이렇게 둘이 야근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고 하니 전정국은 나 싫어? 라고 대답을 했다. 아니 야근이 싫은데. 라고 대답을 하니 때마침 도착하는 엘리베이터였다. 전정국은 또 본인차를 타고 가라고 했지만 난 거절하고 다시 또 막차를 향해 뛰었다. 본인도 야근으로 지쳤을텐데 기사노릇까지 시킬만큼 야박하지 않았다 내가. 오늘 뭔가 폭풍처럼 지나간거 같은데. 앞으로는 더 폭풍처럼 몰아칠거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안 좋은 예감은 빗겨나가지 않는다는데 빗겨 나가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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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오오옹. 독방에 이별계약 서치해서 추천해주신 글 보고 넘나 감격했습니다ㅠㅠㅠㅠㅠㅠ♡ 제가 추천 누르고 튀었어염ㅎ.ㅎ... 더 열심히 쓸게요! 근데 다 좋은데 비킷트...ㅂㄷㅂㄷ... 또 절 화나게 만듭니다... 나와라... 한 판뜨자. 임뫄... 여러분도 다 같이 맞짱뜨러 갑시다...후 음 과거얘기는 아마 3편? 정도 더 섞어 나오고 안 나올듯 합니다. 그 안에 이별계약이 완벽하게 밝혀진다는 뜻이죠! 근데 또 몰라요. 두 편 안에 끝날지 네 편, 다섯 편까지 갈지는...헿.. 오늘도 재밌게 읽고 가 주세염! |
| 암호닉분들 사랑해요~!~! 제가 이러는거 질리시겠지만 애정하고 사랑하고 세상 좋은거 다 가져요!!♡ 암호닉은 최신화 기준 업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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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생리대, 고급이라 비싸? 아예 무상공급 검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