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마찬가지로 5년 전 어느 비가 오는 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 물론 그 소녀와 시기는 좀 다릅니다, 준비 되셨나요?
그럼...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제 갓 성인이 된 최승철입니다.
대학 등록금에 보태려 얼마 전부터 어느 여고 앞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쉽게 말해 편돌이가 된 거죠.
학교가 마치는 시간이 되면 여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와요.
처음엔 정신이 없어서 그 시간만 지나면 녹초가 되곤 했죠.
아 종종 점심 급식이 맛없으면 탈출하던 학생들도 있었고요.
근데 이상하게 그 많은 여학생 중 유독 한 명이 자꾸 눈에 들어왔어요.
노는 여학생처럼 치마가 짧지도 않고 머리에 형형색색 물을 들이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제일 눈에 들었던 점은 진짜 편의점에 오고 싶어서 오는 것 같았어요.
사실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제가 인기가 좀 있는 편이라 절 보려는 목적으로 오는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단정했고 예의도 바르고 또 먹을 것도 잘 먹고 친구들이랑도 잘 지내는 것 같았어요.
저도 모르게 학생을 자주 흘깃 쳐다보곤 했는데 학생은 그걸 모르는 것 같아요.
비가 오는 날엔 유독 편의점이 시끄러워졌어요.
미처 우산을 챙겨오지 못한 학생들이 허겁지겁 들어 오기도 하고 우산을 사러 들어 오기도 하고
또 비가 오면 라면이 생각난다며 라면은 먹으러 오는 사람들도 있구요.
그런데 이 학생은 비가 올 때마다 늘 젖은 모습으로 터덜터덜 안으로 들어와요.
저 때문에 바닥이 더러워지자 내게 죄송하다며 사과하는 모습도
제가 일부러 학생이 자주 앉는 테이블에 놔둔 휴지로 대충 물기를 훔치는 모습도
계속 계속 생각이 났어요.
오늘도 어김없이 소나기가 내리네요.
사실 전 언제부터인가 비가 오면 그 학생을 걱정해요.
그러다 감기가 걸려도 전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데...
오늘은 정말 많이도 내리네요 비가.
아씨... 저 그냥 오늘 하루 이상한 사람 할래요.
제가 무슨 생각으로 지금 이런 행동을 하고 있을까요?
이 상황을 어색해하는 학생을 보자니 제가 정말 미워지는 순간이었어요.
이 기회에 친해지고 싶어 그동안 제가 궁금했던 걸 물었어요.
아, 학생은 원래 그런 거에 취미가 없다네요.
... 아 최승철, 너 원래 이렇게 소심한 사람 아니잖아.
학생이 그런 내가 웃긴지 소리 내서 웃네요, 쪽팔린데 그래도 좀 가까워진 것 같아서 좋아요.
저는 학생이 오늘 저를 알기 전부터 훨씬 전부터 학생을 알고 있었는데
학생은 이제야 절 자신의 기억 속에 넣는다니 조금은 아주 조금은 속상했어요.
아무렴 어때요 이렇게 천천히 학생에게 다가가면 되니까요.
그렇게 봉이랑 조금씩 서로에 대해 알아갔어요.
이제 막 고등학생인 학생이랑 뭐하는 짓인가 싶어 피해 볼까 생각도 했는데 전 봉이를 안 볼 자신이 없어요.
어 밖에 비온다, 저 이제 꼬마 데리러 가야하는데 잠시만 기다리세요.
으, 축축하다.
잘 데려다주고 왔냐구요? 그럼요, 제가 누군데요.
오늘도 역시나 우산은 안 챙겨 왔더라구요, 제가 감기 걸린다고 그렇게 챙기라고 했는데...
제가 걱정되는 마음에 혼내려고 했더니글쎄 제가 오는데 필요하냐며 웃는 거 있죠?
그 모습이 또 사랑스러워서 그냥 같이 우산을 쓰고 걸어갔어요.
근데 너무 우산이 작아서 봉이 비 다 맞을까 봐 좀 가깝게 걸으려고 어깨를 감쌌는데
벌써 젖어서 축축한 거예요, 속으로 엄청 절 욕했죠.
그리고 제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쓰고 나가서 우산을 쓴 학생을 바라보며 뒤로 걸었어요.
하늘색 우산을 쓴 봉이는 되게 예뻐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넓고 푸르른 초원과 맑은 하늘 아래 서있는
소녀를 보는 느낌이에요.
절 걱정하는 모습도 퍽 예뻐요, 이래서 제가 비 오는 날을 기다리나 봅니다.
큰일 났어요, 제가 친구가 하도 사정을 해서 비밀로 나간 소개팅을 우리 꼬마가 알아버렸어요.
말하면 꼬마가 속상해할까 봐 숨긴 건데... 일이 더 안 좋은 쪽으로 꼬였네요.
꼬마는 많이 상처받은 듯 울며 소리쳤어요, 저더러 헤어지자고 하는데 순간 심장이 덜컥했어요.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2년을 예쁘게 사귀었는데 한순간에 헤어져요?
제가 말했잖아요, 꼬마 안 볼 자신 없다고.
그래서 엄청 붙잡았어요, 난생처음 누군가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그런데 결과는 이렇네요.
저는...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 아르바이트를 그만 해도 되는데 혹시나 꼬마가 올까봐 혹시 마주칠까봐
억지로 억지로 이 편의점에 붙어 있어요.
점장님은 제가 성실하다며 참 좋아 하시는데 죄송하지만 전 이곳에 있는 내내 우리 꼬마만 생각한답니다.
그렇게 제가 군대를 갈 시간이 왔네요.
아, 보고 싶다.
제가 더 멋진 남자가 돼서 온다면 우리 꼬마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제대하고 제가 안정적인 일을 찾고 저는 늘 그 편의점을 가요.
항상 손에 이 하늘색 우산을 들고 말이죠.
날마다 꼬마를 만났을 때 뭐라고 할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실실 웃어요.
그냥 꼬마 볼 생각을 하면 자꾸 웃음이 나는 걸 어떡해요.
덕분에 전 의도치 않게 편의점 단골이 됐어요.
비가 오면 혼자 앉아 라면도 먹어보고 눈이 오면 창밖을 가만히 지켜보기도 해요.
점장님은 아직도 절 너무 좋아하시네요.
늘 꼬마가 우리 편의점에 오던 시간이 있어요, 전 그 시간에 맞춰서 시간 날 때마다 찾아가는데
오늘은 일이 좀 늦어져서 2시간이나 늦었지 뭐예요.
사실 오늘 좀 기대했어요, 오늘은 꼬마랑 친해진 그날과 엄청 비슷했거든요.
축 처진 발걸음을 돌려 가려는데 편의점 문이 딸랑 하고 열렸어요.
뒤돌아 봤는데... 제 눈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면 저건 분명 꼬마에요.
더 예뻐지고 어느덧 맥주를 살 수 있는 나이가 됐네요, 우리가 그만큼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네요.
잠시만요, 저 오늘은 꼭 우리 꼬마 봐야 하거든요.
꼬마는 여전히 우산을 안 챙기나 봐요.
손에는 편의점 봉지만 들려있고 우산이라곤 보이지 않았어요.
조심스럽게 천천히 다가갔어요.
하늘을 올려다 보며 꿍얼대는 모습도 귀여워요, 왜 나이가 먹었는데도 더귀여워요?
차마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을 순 없을 것 같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어요.
그리고 손에 우산을 쥐여주고 돌아섰어요.
" ... 오빠! "
" ... "
" ... 같이, 써요. "
꼬마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어요, 저더러 같이 쓰자네요.
꼬마랑 친해진 그날이 떠올랐어요.
꼬마가 저보고 감기 걸린다며 같이 쓰자고 그랬었는데 그때 제가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시죠?
약간은 씁쓸했어요, 그날과 비슷한 듯 다르게 흘러가는 분위기가.
눈물인지 빗물인지 무언가를 눈에 담고 있는 꼬마를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저 사실 꼬마를 만나면 꼭 이 말해주고 싶었거든요?
그 말이 뭐냐면요.
" 늘 여기서 기다렸어, 늘 보고 싶었어.
다른 여자가 앞에 있어도 내 전부는 늘 우리 꼬마, 봉이 너였어.
... 꼭, 말해주고 싶었어.
그리고 여전히, 내 전부는 너야.
... 늘 가까이에서 기다릴게, 너무 늦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서두르진 말고
나한테 와주세요. "
왜 그 말을 못했는지 지금 생각하니 너무 후회 돼요.
왜 못 말했을까요.
다시 헤어질까봐 그게 두려워서 그랬을까요? 나참, 어이가 없네요.
저는 무척 바보인가 봅니다.
와 벌써 1년이 흘렀네요.
이크 이러다 거래처에 늦겠다, 근데 오늘 비가 내리네요.
오늘 우리 꼬마가 제 우산을 쓰고 있을까요?
바삐 걸음을 옮기며 태블릿에 시선을 고정시키다 보니 누군가와 부딪혔어요.
저야 튼튼해서 괜찮은데 꽤 세게 부딪힌거라 상대방이 걱정됐죠.
" 저기... 괜찮으세요? "
" 아, 아파... "
그런데 목소리가 너무... 익숙해요, 심지어 우산마저도.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저도 모르게 상대방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하늘색 우산을 걷어냈어요.
놀란 듯한 두 눈이 보였어요.
여전히 예쁜 입술도 보였어요.
그리고 제가 제일 보고 싶었던...
" ... 꼬마. "
" ... 오빠? "
너무 신기해서 그리고 너무 감격스러워서 저도 모르게 길 한복판에서 꼬마를 안았어요.
그날 안아주지 못한 만큼 더 꽉.
푸르디푸른 하늘색 우산을 든 어느 여자와 따스한 햇살을 담은 노란색 우산을 든 어느 남자가
드디어, 다시 만났네요.
여러분 어떠셨어요? 저희 이야기 재밌으셨나요?
아 이런, 우리 승관이가 우네요...
저는 이만 예쁜 우리 꼬마 봉이랑 더 어린 꼬마를 지키러 가봐야겠어요.
저희 이야기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사랑하세요.
인생의 꽃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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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안녕하세요, 접니다....
진짜 생각보다 많은 봉들이 사랑해주시고 지금 정말 행복합니다 ㅠㅠㅠㅠㅠㅠ
여러분 잘하면 편의점 글이 하나 더 올라올 수도 있겠어요, 제가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아 포인트가 되게 아까우실 것 같아요, 이미 본 글이실 텐데 ㅠㅠㅠㅠ
이제 수정을 하러 가야겠네요, 으하하.
여러분, 최승철 하세요.
암호닉은 늘 환영합니다! 신청 받고 수정해서 올릴게요! 사랑합니다 ♥
+ 제가 뒤늦게 제목이 비슷한 글을 발견하여 급하게 제목을 수정합니다!! 저 진짜 깜짝 놀랐어요...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골목 안, 그 편의점 입니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