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좋은 글 주고 싶었는데,
오늘은 기분이 좀 안좋아.
그치만 어쩌면 어쩌면 누군가 기다릴 지도 모르니까
나는 한사람이라도 내 글을 읽고 기분이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니까
글을 쓸게 이거 사실 접고 싶은데 어떻게 접는지도 몰라..
아, 글을 접는다는 게 아니라.. 이 단락을 접어서 숨겼다 펼쳤다 하고 싶은데..
아무튼. 번외쯤이라고 생각하고 읽어줘.)
안녕. 나 또 왔어.
아, 오늘은 어쩐지 기운이 안난다.
기운이 안난다고 쓰니까 그날이 생각나네?
내가 제일 기운이 없었던 날.
사실 우리 부모님은 나보다 오빠를 더 아끼셔.
어린아이 투정같을 수도 있겠지만,
오빠는 오대독자 (믿기지 않지..?) 이기도 하고
키도 크고 솔직히 잘생겼고 자기가 할일 똑부러지게 하고 (이것도 안믿기지..?)
대학도 자기 딴에는 엄청 잘가고 크고 작은 공모전에 공모하면 상도 타오고.
그러니까, 부모님한테는 자랑이지.
맞아. 나도 인정해.
오빠는 잘하는 게 많고 매력도 많고
무엇보다 똑바로 자기 길이 있다는 게 멋있어.
그리고 그에 비하면 나는
모든게 어중간한 학생이었어
외모도 평범한 편이고, 키도 작고 살집도 있어
성적도 좋은 편은 아니고 뭐하나 잘하는 건 없고
오히려 손재주가 없어서 여자애가 맞나 싶을 정도였지
여름방학이 지나고 주말이었어
학교에선 부모님이 오시기 바로 전날
성적표를 보냈고 나는 믿기지 않은 성적을 보고
1차 멘붕을, 그리고 내일 온다고 통화를 하다
성적얘기가 나왔을 때 2차 멘붕을 받았어
방학이라 좀 탱자탱자 놀고 있었지만
(사실 우리오빠랑 경수.. 좋은 학교 다니고 있어
미대, 음대가 유명한..)
부모님이 오시는 것도 있고, 성적이 멘붕인 것도 있고
나는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일찍 일어나서 책상 앞에 앉았지
-우리 왔다
부모님이 오시는 소리에 밖으로 나가니까
엄마는 오빠 방부터 들어가서 자고 있는 오빠를 껴안아
-찬열아!
-…엄마, 왔어?
오빠는 부스럭거리며 일어나서 엄마에게 안겨 있어
나는 아빠에게 인사를 하는데 아빠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내 성적표부터 찾아
그래, 물론 고등학교 2학년, 중요한 시기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었어
그치만..
나는 성적표를 내밀었어
곧 엄마와 아빠가 말없이 내 성적표를 보았고
나는 또 잔소리를 듣기 시작해야 했어
그런데 듣다보니까 조금씩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이 몰려오는 거야
물론 나도 내가 부족하고 모자란 걸 알고 있어
그치만 어린 마음에 괜히 오빠랑 비교당하는 것 같고 오빠만 편애하는 것 같고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렸어
-뭘 잘했다고 울어?
엄마, 그만 해. 오빠가 잠이 완전히 다 깼는지 방에서 나오며 말했어.
그리고 내 곁에 섰어
오빠가 가만히 내 손을 잡는데.
너네 그 말 알아?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
물론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있는데 그때는 마음이 많이 삐뚤어져있었으니까
아 나 정말 삐뚤어질거야! 하는 마음에 그냥 오빠손 뿌리치고 집에서 달려 나왔어
오빠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도 들려도
나는 급하게 꿰어신은 슬리퍼만 신고 추리닝바지에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울음을 터뜨리며 골목길로 빠져나왔지
골목을 돌고 돌다가 눈물을 닦다가
그래도 서러워서 움찔거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까 길한복판에 서서 울고 있는 나를 모두 힐끔거려
아 오빠 밉다 엄마도 밉다 아빠도 밉다
근데 내가 제일 밉다
이런 생각만 드는데 이상하게 도경수 얼굴이 떠올랐어
추하고 배고프고 눈은 부었고
완전 거지꼴인데 도경수가 보고 싶은게 이상했지만
도경수가 보고 싶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도경수 집앞으로 옮겼어
차마 들어갈 용기는 안나고 도경수 집 대문 앞에 쭈그리고 앉는데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에 당장이라도 녹아 내릴 것 같았어
-…그걸 왜 인제 말해!
어.. 이 목소리는.
-그러니까 니가 잘 좀 말씀 드리지 그랬어!
지금 이렇게 짜증내고 있는 목소리는.
-어느쪽으로 뛰어갔는데. …아 됐어. 도움안되는 새끼 끊어.
처음으로 욕을 쓰는 이런 목소리는.
문이 다급하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어. 누군가가 급하게 뛰어나가는 모습에 나는
쭈구리고 있던 다리를 펴고 일어났어.
일어날때 햇빛을 너무 받아서 그런가 더위를 먹어서 그런가 잠깐 휘청하고는
다시 뒷모습을 바라봤어 구겨진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입고 뛰어가는 저 반듯한 등은 분명..
-도경수.
-….
경수가 멈춰섰어. 잘못들은 거라고 생각한건지, 아니면 헷갈리는 건지 앞과 옆을 두리번 거려.
-…경수야.
내가 다시 한번 부르니까 경수가 나를 돌아보았어.
잠깐동안 우리는 그렇게 마주선 채로 서 있었어.
경수는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내 앞으로 달려 왔어.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그게.
-왔으면 들어왔어야지, 너 바보야?
아니 창피해서 그러지…. 나는 그 말도 못하고 경수까지 나한테 화를 내고 있다는게
서러워서 엉엉 울어버렸어
경수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나에 당황한 듯 싶다가
이내 내 어깨에 손을 얹었어.
-OOO.
-….
-내가 잘못했어. 울지마.
-….
-이리와.
경수가 나를 끌더니 자기 품에 안았어
그리고는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어
-너 왜 나한테 화내….
-….
-다들 못났다, 못났다 하니까 너도 내가 만만해? 그래서 나한테 화내?
-…나는 니가 말도 없이 나갔다길래,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걱정해서 그랬어.
이상하게 경수가 그 말을 하는데 기분이 이상해졌어
누가 나를 걱정해줬구나, 싶은게
아니 그렇게 보고 싶던 도경수가, 나를 찾았다는게
조금.. 아니 많이 기쁜 것도 같았어
경수는 울음이 잦아진 나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빨갛게 익은 내 얼굴을 보고 한숨을 쉬면서
숟가락을 냉동실에 넣고 아이스크림을 꺼내 주었어
-밥 안먹었지?
-…응.
-기다려.
내가 좋아하는 메론맛 아이스크림을 빨며 티비를 보니까
나는 곧 기분이 좋아졌어 코미디 프로그램이 너무 웃기기도 해서
조금씩 웃으니까 밥을 하던 경수가 그런 나를 보고 어이가 없었는지
-너 아까 세상 떠나가라 울었던 애 맞냐?
하고 물었어 나는 그냥 대답없이 웃어보였어
그러니까 경수도 결국에 웃더라
밥을 먹고 있는데 앞에 앉아있던 경수가 갑자기 말을 꺼냈어
-야.
-응?
-너 안못났어.
-뭐?
-…너 안못났다고.
내가 고개를 들고 경수를 바라보니까 경수는 고개를 돌리면서 손을 휘휘 젓더라
-됐다. 밥이나 먹어라.
-…응.
경수가 한 밥은 너무 맛있어서 나는 두그릇이나 먹었어
그리고 다 언 숟가락을 눈 위에 얹고 가만히 있었지
경수는 옆에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주었어
곧 데리러 온 오빠는 경수에게 고맙다고 하고
나를 껴안으며 우는 시늉을 했어.
-OO아, 내가 너를 잃어버린 줄 알고 얼마나….
-상황극 거절.
나는 짧게 말하고는 경수에게 간다, 하고 말했어
경수는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우리 오빠한테 가라, 하고 인사를 했어
집에 오니까 부모님이 미안했는지 고기를 구워놓고 계시더라고..
그래서 나 또 밥먹었어..헿..
아, 맞다 깜빡할 뻔 했는데
그날 새벽에 도경수한테 문자 왔다?
[우리집 번호키로 바꾼다. 번호는 나중에 알려줄게.]
-
미안.
재미 없지..?ㅠㅠㅠㅠ
미안해..........
정말 미안해........
정말 정말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부족한 글 관심가져주고 예뻐해줘서!
정말 사랑해.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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