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태형이는 정국이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한창 반항기가 넘치면서 공부를 하기 싫어할 나이에는 정국이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부끄럼 없는, 능력있는 남편이 되어야 한다며 정국이를 보지 않을 때는 공부에 집중을 하고, 정국이와 있을 때는 정국이밖에 없다는 것처럼 다정한 형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라 불리는 곳에 태형이가 수석으로 입학했으면 좋겠다. 뉴스에도 나올 정도로 똑똑하고 연예인급의 외모 덕에 입학 전부터 예쁘다 하는 여자애들의 고백이 이어졌고, 입학 후에도 변함이 없었지만 태형이는 정국이밖에 모르는 바보였으면 좋겠다. 어릴 때부터 태형이의 부모님과 정국이의 부모님이 서로 친해서 아는 사이였는데, 한창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는 정국이에게 과외를 해 준다는 태형이의 말에 태형이의 부모님은 뿌듯해하시고, 정국이의 부모님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둘이 붙어있을수록 좋아하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정국이는 남은 고등학교 2년 간을 태형이와 보냈고, 원래 나쁜 성적이 아니었던 정국이는 태형이의 푸쉬로 태형이와 같은 과는 아니어도 같은 학교에 입학했으면 좋겠다. 물론 정국이는 그렇게 공부를 잘한다고 소문이 나지는 않았지만, 꽤나 귀여운 페이스로 이름을 알렸으면 좋겠다. 그러나 태형이의 쉴드로 고백 같은 걸 받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둘은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학창시절 동안 참아왔던 표현을 나눴으면 좋겠다. 태형이는 예전보다 더 달달해진 눈빛과 아낌없는 애정표현을 보여 주었고, 정국이는 그에 답하듯 귀여운 웃음과 형, 형거리며 애교 아닌 애교를 보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조금은 더 대담해진 태형이의 표현과 어릴 때부터 자신을 좋아해 준 태형이에게 마음을 연 정국이는 자연스럽게 썸을 타다가 태형이의 고백에 사귀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사귀게 되고 얼마 있지 않아서 태형이가 군대에 가게 되었으면 좋겠다. 미루려면 미룰 수 있고, 동반 입대를 하려면 가능했던 가능했지만 태형이는 이 나이에 가는 게 나은 거라고, 정국이 네가 나를 따라서 입대하기엔 너무 어리다고, 기다려 달라고 했으면 좋겠다. 그에 울먹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그렇게 태형이가 입대를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새학기가 시작됐으면 좋겠다. 원래라면 태형이와 전공 수업이 아닌 교양 수업은 맞춰서 들었을 텐데, 태형이가 없는 터라 혼자서 스스로 모든 걸 해야 됐으면 좋겠다. 그래도 다행인 게, 정국이와 태형이는 유명인사였고, 태형이 때문에 다가가지 못한 정국이와 친해지고 싶어 하던 친구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형이 보고 싶어서 울적이던 날들이 지나고 조금씩 다가오는 친구들 덕에 기분이 나아지고 그렇게 태형이를 조금은 잊고 평범한 대학생처럼 생활했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나중에 친해진 후 술자리에서 태형이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야, 정국아. 너 태형 선배랑 친하냐?
으, 응?
왜, 있잖아. 너랑 맨날 붙어 다니고 잘생겼고, 인기 많은.
으응, 친해.
언제부터 그렇게 친한 거냐? 입학했을 때부터 둘이 붙어 다니던데.
어릴 때부터 옆집 살아서 거의 십몇 년 동안 같이 다녔는데…….
미친, 존나 오래됐네?
정국아, 그럼 그 선배 여자친구 있어?
맞아, 그거 궁금하더라. 이상형은 뭐래?
어……. 그게…….
술이 들어가서 머리도 잘 안 돌아가는데 꽤 오랫동안 친했다는 말을 듣고 정국이와 민수의 이야기에 집중했던 주위 동기들이 정국이에게 태형이에 관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으면 좋겠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에, 진짜? 옆에서 여자 얘기도 안 했다고?
으응.
뭐냐, 그 선배 되게 특이하네.
맞아. 나 어릴 땐 옆집 누나 좋아해서 존나게 쫓아다녔는데.
야, 태형 선배 정도면 옆집 누나가 쫓아다니지.
그렇게 친구들이 깔깔대면서 태형이의 이야기를 하자 정국이의 기분이 이상해졌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평소에도 막말을 하던 친구가 재미삼아 한 마디를 툭 던졌으면 좋겠다.
야, 알고 보니까 그 선배 게이 아니야?
지랄하지 마라, 김혜미.
맞아, 그건 아니다.
너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아니, 왜 그런 말 있잖아. 잘생긴 사람이 솔로면 유부남이나 게이라는 거.
입 닥치세요. 우리 태형 선배는 그런 사람 아니야.
으, 그런데 알고 보니 게이였다면 좀 그렇겠다.
야, 조금만 그렇겠냐? 나 같으면 학교 대숲에 올릴 거다. 게이는 싫어.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흐르자 정국이는 표정이 잔뜩 굳고 혼자 술잔만 만지면서 조용하게 태형이를 욕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기분이 이상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은 땅으로 깊게 파고들었으면 좋겠다. 이윽고 '나 때문에 태형이 형한테 피해가 가면 어떡하지?', '매장당하는 거 한순간일 텐데.' 이런 식으로 생각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결국에는 항상 같이 있었던 태형이의 휴가에도 집에 틀어박혀 전화도 받지 않고 잠수를 탔으면 좋겠다. 태형이는 정국이가 왜 이러는지 이해도 안 갔지만, 학교 시험 기간이라 피곤한 건가, 바쁜 건가 하는 생각만 하면서 연락하는 걸 그만뒀으면 좋겠다. 그렇게 제대를 하고 태형이는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옆집 정국이 네로 갔으면 좋겠다. 정국이네 어머니는 오랜만이라며 방에 있다고 들여보내 주시고 태형이는 곧바로 정국이의 방 앞에서 노크를 했으면 좋겠다. 정국이는 오늘이 제대날인 걸 알면서도 어린 마음에 찾아가지도 않고 방 안에서 베개에 얼굴을 묻고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으면 좋겠다. 정국이의 대답이 없어서 한숨을 쉬고 문고리를 살짝 돌려 방 안을 쳐다보니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면 좋겠다. 태형이는 자신이 제대 후 처음 보는 얼굴이 정국이가 자신을 보면서 웃는 얼굴이 아니라는 것에 살짝 실망을 했지만, 잘 때 순수한 얼굴로 자고 있는 정국이의 얼굴도 좋아하는 모습 중에 하나라 군모를 벗어서 바닥에 내려놓고 꽤나 기른 머리를 한 번 만지고 바닥에 앉아 정국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자신도 침대에 얼굴을 기댄 채오 정국이를 바라보다가 잠들었으면 좋겠다.
형, 형.
……으.
일어나요.
어어, 정국이 깼냐.
네.
일어나서 정신이 없는 태형이는 쌀쌀맞아진 정국이가 어색해서 머리만 매만졌으면 좋겠다. 평소라면 혀엉, 하면서 안아 준다든가 보고 싶다는 말이 나와야 할 정국이에 입에서 딱딱한 말만 나오니까 이제서야 태형이는 슬슬 눈치채기 시작했으면 좋겠다, 정국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태형이는 상체만 일으킨 정국이의 얼굴에 손을 뻗어서 뺨을 엄지손가락으로 문질러 줬으면 좋겠다.
무슨 일 있어?
아니요.
정국이는 대답을 하고 조심스럽게 태형이의 팔을 밀어냈으면 좋겠다. 그리고는 태형이는 정국이의 변화를 깨달았으면 좋겠다. '나랑 만나는 걸 피하는구나.' 정국이를 몇 년을 본 태형이는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없는 동안 어떤 생각을 하게 됐는지 깨달았으면 좋겠다. 길을 가면서 자신을 보고 이상하다며 말하는 친구들 덕에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정국이랑 함께라면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국이가 자신을 피하는 걸 보고 깨달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이겠구나, 하고. 결국 태형이는 인사도 하지 않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제대 기념 술이나 마시자고 했으면 좋겠다. 당연히 태형이를 반기는 친구들이 와서 서로가 술을 따라주겠다며 오래도록 술을 마셨으면 좋겠다. 술에 센 태형이도 조금은 정신을 놓을 정도로. 그리고 술자리가 파할 즈음에 조심스럽게 나와서 술도 깰 겸 바람을 맞다가 정국이에게 전화를 했으면 좋겠다. 얼마 안 가 정국이가 전화를 받고 아무런 말도 없었으면 좋겠다.
-…….
정국아.
-……네.
정국아, 전정국.
-네.
보고 싶었다, 형은.
-…….
정국이는.
-…….
아닌가 보네.
-…….
너희 집 갈 테니까, 10분 이따 나와.
일방적으로 얘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태형이는 정국이에게 좋은 말을 들을 수는 없다고 깨달았으면. 자신이 좋아하던 웃는 모습을 본 지가 까마득하다는 걸 깨닫고 태형이는 까만 하늘에서 빛나는 달을 바라보며 정국이의 집으로 향했으면 좋겠다. 한참을 걸으니 술도 깨고 술 기운에 붉어진 탓 반과 찬 바람에도 얇은 자켓 하나만 입은 탓에 귀와 코, 볼이 빨개졌으면 좋겠다. 잔뜩 얼굴 근육이 굳었을 법한데도, 정국이가 나와 있는 걸 보고 태형이는 씨익 웃었으면 좋겠다.
나왔냐.
네.
정국아.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잘만 하면서도 이름을 부르자 정국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태형이는 이미 정국이가 어떤 마음으로 나왔을지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알면서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웃으면서 태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으면 좋겠다.
정국아.
…….
좋아해.
…….
![[뷔국] 어린 정국이를 놓아주는 태형이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11622/77a34addc0b6f6ee12cf606554a52c3b.gif)
좋아한다, 정국아, 정말로.
![[뷔국] 어린 정국이를 놓아주는 태형이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1/02/12/755874eac01f6ee41578539e8ffabbbb.gif)
…….
태형이가 자신을 부르는 걸 듣고도 아무런 말이 없던 정국이는 태형이의 마음 고백을 듣고 결국 눈물을 흘렸으면 좋겠다. 그리고는 다짐했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면서 말을 꺼내려고 하자 진정이라도 하라는 듯 태형이가 정국이를 꼭 안아 주면서 등을 쓸어줬으면 좋겠다.
울지 마.
그 말을 듣고 더욱 서럽게 울던 정국이를 끝까지 토닥여 주면서 태형이가 기다려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정국이가 말했으면 좋겠다.
ㅡ
형…….
…….
우리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잖아요.
정국아…….
저는 무서워요, 형.
…….
모든 걸 잃으면서까지, 형을. 형을 만나긴 힘들 것 같아요. 그리고 형한테도…….
…….
……미안해요.
아니야, 됐다.
…….
이해해.
……미.
됐다니까.
…….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러니까 더는 말 안 해도 돼.
……예.
마지막으로 웃는 얼굴 한 번만 보여 주면 안 되겠냐.
그렇게 밀어내던 나를, 끝까지 받아준, 끝까지 이해해 준 태형이 형이었다. 나는 태형이 형을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울음을 참으려 일그러진 얼굴로 웃어 주었다. 그때의 태형이 형의 표정은 잊을 수 없다. 형은 한참을 어색하게 웃고 있던 나를 바라보면서 예쁜 미소를 보여 줬고, 그렇게, 그렇게 나를 떠나갔다.
![[뷔국] 어린 정국이를 놓아주는 태형이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2/01/1/82b2a2a161ba79cfcbac5b47808b07cc.gif)
…….
![[뷔국] 어린 정국이를 놓아주는 태형이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11620/f34f2e6c4054449f522e6035d33276f9.gif)
예쁘네.
…….
넌 웃는 게 예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네 모습이기도 하고.
…….
내가 네 곁에 있어서, 네가 웃음을 잃게 된다면 이 관계는 나에게 부질없는 짓이랑 다를 게 없다.
…….
나 갈게, 정국아.
형…….
마지막으로 이름 붙여서 인사 한 번만 해 줘.
왜 마지막이에요? 떠날 것처럼. 나 형 안 보려는 거 아니에요. 그냥, 그냥 예전처럼 돌…….
얼른.
……태형이 형.
…….
잘 가요.
그래.
그 말을 끝으로 태형이 형은 몸을 돌리고 그대로 내 시야에서 벗어났고, 어렴풋이 기억나는, 마지막으로 본 태형이 형의 얼굴에는 형을 만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눈물이 내 눈에 담겨졌다.
그날 이후로 학교에서도, 형이 자주 가던 곳들에서도 형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고, 심지어 태형이 형의 부모님께 물어도 알려 줄 수 없다는 대답만 내 곁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형은, 내 곁에서 잠적을 감추었다.
ㅡ
사실은 태형이에게는 정국이가 삶의 전부였으면 좋겠다. 학교도, 꿈도 모두 정국에게 맞춰져서 돌아가던 세상이, 중심이 흘트러진 순간 태형이의 세상도 무너졌으면 좋겠다. 아직은 어린, 그런 정국이를 이해하는 태형이었지만, 사람이라 이기적인 건 어쩔 수 없었으면 좋겠다. 당연히 정국이도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 함께라면 뭐가 어떻든 다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국이는 조그만 것도 무서워하고 사람들의 눈길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파서 결국 뒤를 돌아서 집으로 가는 동안 소리없이 울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태형이의 세상은 무너지고, 남들과 다르지 않게, 정국이의 곁에서 멀어진 채로 그렇게 살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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