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함께 학교근처 치킨집으로 향했다. 치킨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 도중 학교 얘기가 나왔다.
“아 그런데 그 보건실 뒤에 교사 휴게실 있잖아.”
“어 거기 왜?”
“거기 들어가 본 적 있어?”
“아니 거기 잠겨있던데? 우리학교 리모델링 하면서 거기 없앴잖아.”
“그지...아니 사실 거기 들어가는 오빠 한명 봤거든. 열쇠로 따고 들어가던데?”
“진짜?”
“열쇠가 따로 있어?”
“사실 내가 몇일전에 주웠거든.”
“진짜? 야 학교에 아무도 없는데 먹고 가보자!”
“안돼.”
나도 모르게 안된다고 말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조용해진 탓에 말없이 치킨무나 씹어댔다.
“왜?”
“어..? 어 거기 일진들 담배피는 곳이야...!”
“뭐 진짜?”
“어... 우리 거기 잘못 들어가면 돈 다 털리고 나온다.?”
"그게 뭐야..ㅋㅋ"
우리가 지금 거길 가면 안될 것 같았다. 지금 가면...거기 있잖아...민윤기...
친구들을 보내고 집에 돌아가려던 차에 학교에 다시 방문했다. 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을 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열쇠를 주웠다는 친구에게 억지로 말을 짜내 열쇠를 받아냈다.
자꾸 캐묻는 바람에 아빠가 이사장인 걸 말할 뻔 했었지만 다행히 잘 넘어갔다.
열쇠를 보고 기뻐할 그를 상상해본다. 아마 너무 고마워서 뛰어다니지는 않으려나
조심조심 계단을 올라간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학교가 조금 으스스했다.
저멀리서 환하게 문이 열린 화실이 보인다.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화실의 빛이 어서 들어오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점점 가까워 질 수록 어떤 소음이 들린다. 화실과 가까워 질 수록 그 어떤소리가 소음이 아니었음을 짐작했다.
분명 여러사람의 목소리였다.
"......"
아까보다 조금 더 숨을 죽인다.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대화에 집중을 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 할 수 있도록 힘써볼게. 윤기도 힘좀 내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번에 잘 하면 독일로 보내 줄 수도 있어. 너하기 나름인거고."
"윤기야 신중하게 생각해. 한국에 있는것도 나쁘진 않지만 독일로 가면 분명 더 좋은 경험일거니까..."
"그래. 윤기야. 네 인생에 대학이 다가 아니잖아?"
얼핏 들어도 또래들과의 대화가 아닌 것 같았다.
대화를 엿듣는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들킬 수도 있구나 싶어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대화가 이어질 동안 졸다가 듣다가를 반복한다.
"그럼 미국 가기 전에 뵙겠습니다 선생님."
"다음주에 다시 올거니까.., 꼭 공항까지 안와도 돼."
"네. 안녕히 가세요."
화실에 찾아온 손님이 외투를 챙기고 있었다. 보건실 문 뒤에 숨어있던 나는 방향을 틀어 화실 문 뒤로 숨었다.
얼마동안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2분정도 지났을까. 완전히 그 목소리들이 들리지 않는다.
고개만 빼꼼이 내밀어 화실 안을 쳐다보니 그가 혼자남아 터덜터덜 화실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지금 들어가야 하나? 아직인가? 열쇠만 주고 나올까?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화실 문이 닫혔다.
"끼익."
"아..아!"
"....."
"..아..."
문에 기대 있던 나는 그대로 무게중심을 잃고 쓰러졌고 그런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
"....."
이런식으로 다시 대면을 하니 몇시간 전 가깝게 만들어놓은 사이가 또 벌어진 느낌이다. 아니 아예 원점으로 돌아간 느낌.
당연히 내가 없어야 할 곳에 있으니 당황했나 보다.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나를 쳐다보는 얼굴을 보니 조금 미안해졌다.
열쇠는 얼마든지 다시 줄 수 있는건데. 굳이 지금 당장. 아무도 없고 혼자 있는걸 아는 오늘 저녁에 갖다줄 작정으로 학교에 온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떤 기대를 했었는 지. 머릿속에 자꾸 되새겨져 얼굴이 빨개진다.이제 무슨 낯으로 그를 만나야 할까? 적어도 2년은 함께 학교를 다니면서 강당이라던지 급식실에서 자주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이 많을텐데 말이다.
"들어와."
"감사합니다.."
일단 들어오라는 그의 말에 쥐어짜듯이 작게 고마움을 표시한 후 따라 들어간다. 어지럽게 뜯겨져 있는 과자 봉지와 알로에 주스 박스가 눈에 들어온다.
주섬주섬 책상 위를 치우고 의자를 갖다놓더니 손을 까딱거린다. 앉으라는 그의 손짓에 다가가 착석한다.
그는 나에게 알로에 주스 하나를 권했지만 괜찮다며 거절했다. 화실 근처에 숨어있다가 음료수까지 먹어버리면 너무 염치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내 나름대로 정중하게 거절한 알로에 주스를 따서 그가 마신다. 천천히 한모금씩 마시다 반쯤 남겨두고 책상에 내려놓는다.
"김여주...? 맞나?"
"네..."
이름을 물어보고는 또 주스병을 집어든다. 벌컥벌컥 목마른 사람처럼 마시다 또 내려놓는다. 얼마 남지 않은 주스병을 흔들다가 날 바라본다.
"언제부터 있었어.."
"잘 모르겠어요...애들 가고 나서 한시간 정도 뒤부터.."
".....그랬구나.."
묵묵히 내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 보면 내가 화실에 불쑥 나타나 도둑처럼 보여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의외로 침착했다.
한참을 바닥만 쳐다보다가 씩 웃는다. 그리고 다시 말을 건다.
"싸인해 줄까."
"네?"
"너 내 사생팬이잖아."
"네?? 제가 왜요..."
"농담이지. 이젠 여기서 하도 많이 봐서 뭐 별 당황스럽지도 않네."
"....죄송해요."
"구경시켜줄까?"
어쩐지 그의 행동은 탈무드를 연상시키게 한다. 한가지 사건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랍비같았다.
화를 내고 나를 윽박질러도 내가 할 말 없는 상황에서 의연하게 대처해 나의 잘못을 눈감아줌으로써 다시는 오지말아야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것 같았다. 정말 오늘 이후로는 다시는 여기에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이지만 오늘 일로 많은 걸 깨닫게 된다. 음..가령 예를 들면
'오늘의 할 일은 내일로 미뤄도 된다.' 정도...?
세상엔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될 일이 많다.
"싫어? 너 여기 되게 궁금해 하잖아."
"아...아니요. 좋아요!"
내 대답을 듣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도 같이 일어섰다.
"오늘은 내가 일일 도슨트야."
라고 말하며 나를 데리고 수많은 캔버스들을 누비고 있었다. 구석에 차곡차곡 쌓인 캔버스들을 뒤지더니, 가장 밑에 있던 그림을 꺼내든다
"이건 내가 여기 처음 와서 그린 그림이야. 그림 제목은 불시착."
"불시착?"
"어. 이 학교 올 줄 몰랐거든."
"아..."
"이건 바다의 눈물이야. 거꾸로 하면 눈물바다. 슬플 때 그려서 좀 어두워."
"조금 밝은 건 없어요?"
"있어. 생일 케이크 그린거. 일부러 색감을 진하게 입혀서 실제 케이크를 보는 것 보다 더 우악스럽게 그렸어. 정물화 인데 더 오버된 정물화랄까."
"기쁠 때 그려서 주체를 못했나봐요?"
"뭐.. 많이 기뻤던 걸 물감으로 표현한거지. 여기 물감자국 일부러 냈어. 너무 기쁜 나머지 실수한 것처럼 보이라고."
"원래 기분대로 그림 그리신 게 많네요."
"맞아. 일종의 표시지. 이날 이런 감정이었구나 하는. 그리고 그리다보면 감출 수 없는 부분들도 있고."
생각보다 더 미술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만에 미술관이 잡혀있달까.
"이제 그림은 그만 보고."
한참 그림들을 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책상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다름아닌 엽서 두 장 이었다.
[atlier for artist]
[roy min]
자랑스럽다는 듯이 엽서 두 장을 보여준다. 엽서에 적혀져 있는 문구는 물감으로 썼는지 여기저기 꾸덕하게 물감이 뭉쳐져 있었다.
"방금 가신 선생님께서 써주신 거야."
"아..."
"너 한장 가져."
"네? 제가 가져요?"
"너가 첫손님이니까."
"에이 거짓말...저 말고도 온 것 같은데? 선배 친구들이나.."
"아니. 제대로 소개시켜 준 적은 없었는데."
[roy min]이라고 적혀져 있는 엽서 한 장을 나에게 건낸다.
사실 마음은 뛸 듯이 기뻤지만 너무 큰 의미인 것 같아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선뜻 건네주는 그의 손이 무안하지 않게 받아들었다.
그러자 살짝 웃으며 내 머리를 가볍게 톡 친다.
"이제 끝이야. 허무하지?"
"...."
"이제 집에가. 나도 갈거니까."
"감사합니다."
"팬서비스 차원에서 준 거지."
"아...진짜 그만놀려요. 저 갈게요."
"그래. 이제는 좀 오면 예고라고 해줄래?"
"...하...알겠어요. 갈게요~"
화실 문을 나서는 것을 본 그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 남은 알로에 한모금을 입에 털어넣었다.
집에 가는 동안 뜨거워진 가슴을 찬바람에 식히며 걸어간다.
그와 함께 있는 동안 떠 있던 달을 올려다 본다.
이게 꿈인가 싶어 얼얼한 마음으로 손을 쳐다보니 꼭 잡고 있는 엽서 한 장이 꿈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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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바오 입니다. ㅎㅎ
어제보다 눈이 훨씬 많이 나아져서 조금이라도 써볼까 하는 마음에 오랜만에 키보드를 잡았어요.
쓰다가 눈이 자꾸 뻑뻑해져서 힘들었다는...8ㅅ8....
내일은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모레는 꼭 올게요!
아 벌써 물감놀이가 10화네요...! 오오 1편 올린게 엊그제 같은데ㅋㅋㅋㅋ
이때까지 봐주신 분들 너무 감사하구요. 암호닉 신청해주셨던 [융융]님 [옥수수수염차]님, 그리고 비회원이신 [그냥]님 모두 감사해요!ㅋㅋ
아 그리고 아직 조금 더 연재해야 할 듯 싶지만 완결이 나면 작품배경까지 해서 메일링을 해드릴까 해요. 물론 원하시는 분 한해서!
그래서 열심히 제가 썼던 연습장 뒤져가면서 텍본작업 중입니다..뭐 그렇다구요...ㅎ 개인적으로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라 갠소하고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진행중이었어요.
중간에 눈수술로 인해 쉬게 됐지만...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ㅋㅋ 혹, 원하시는 분 계시면 암호닉을 신청해 주세요. 그런 이유가 있으니까요..ㅋㅋ
오늘도 재밌게 보셨나요.. 저는 이만 자러 갑니다. 다음화에서 만나요 ㅎㅎ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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