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시간표 기가 막히게 짰더라?"
"닥쳐."
"싫어, 오늘 너 엿 먹이려고 만난거야."
"개새끼, 대학가더니 진짜 개 같아졌어."
"개 같아져서 그런지 보는 사람마다 잘생겼니, 귀엽니, 난리야."
"우리, 절교할까?"
"한 거 아니었어?"
"아, 됐어. 시간표고 뭐고, 잘 지내면 되지."
"그래, 나 같은 친구 있으면 잘 지내는 거지. 전정국도 너도, 사람이 감사할 줄 몰라."
"뭐? 누구?"
"뭘, 누구?"
"방금 전정국이라고 했잖아."
"어, 근데?"
"네가 걔를 왜 알아?"
"같은 대학이니까."
"뭐?"
"몰랐어? 나랑 걔랑 같은 대학이잖아."
"헐, 대박."
.
.
.
이 대화 이후로 끈덕지게 김태형에게 언급한 결과, 전정국의 귀에 내 이름이 들어갔고 얼결에 함께한 술자리에서 내가 전정국을 짝사랑 한걸 모조리 틀키자 전정국은 그 자리에서 바로 나에게 고백을 해왔다. 나랑, 사귀자. 그 때는 앞뒤 상황을 볼 정신도 없었다. 나는 그저 고백에 좋아 벙쪄 있었고, 사실 술에 취해 전정국이 다가오는 것도 몰랐다. 그래 몰랐어서 그랬다. 고백 이후 전정국은 내게 바로 입을 맞춰왔고, 손잡기, 포옹, 뽀뽀를 모두 다이렉트로 건너뛴 나는 쉼없이 몰아붙여지는 입맞춤에 그냥 그렇게, 사귄다는 증표라도 찍듯이 손 쓸새도 없이, 당해버렸다.
그래봤자 지금은 이 모양 이 꼴이긴 하지만. 남들이 본다면 눈물겨운 사랑일 것이다. 밖으로 나도는 남자를 쓴소리 하나 안하고 붙잡고 있는 여자에, 그 여자는 심지어 그 남자를 많이 좋아하기까지 하니, 멍청한 거쯤 나도 잘 알고 있다. 이게 잘못됐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고. 그렇지만 아직은, 아직은 내가 좋아하니까. 걔도 내가 싫은 것 같진 않으니까, 이런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미련하대도 혹시나 나중에라도 전정국이 날 좋아하게 된다면 정말, 보란듯이 누리고 산다고 마음만은 먹고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일단,
"배고파"
*
"역시 우울할 땐 매운거지."
내가 단순한건진 몰라도 편의점 가는 길이 들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뭐라든 먹는 건 신이 나니까. 대충 반팔티에 후드집업만 끼고 나왔더니 비가 쏟아지고 있길래 다시 우산을 가져나와야 했다. 비오는 줄도 몰랐네. 갑자기 궂어진 날씨 때문인지 밖에는 사람들이 적었다. 그래도 이렇게 사람이 없나? 하고 핸드폰을 봤을 땐 벌써 시간은 열두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잡생각에 이렇게 오래 빠지기는 처음이라 시간을 보고 놀라서 소리내어 놀란 소릴 내자 뒤에서 내 놀란 소릴 따라해오는 음성이 들렸다.
"아이쿠, 놀래라."
"어, 뭐야."
"뭘 그렇게 핸드폰에 코가 빠져있어."
"시간 봤거든? 지금 되게 늦은 시간이네."
"알면서 돌아다녀?"
"몰라서 돌아다녔거든?"
"그럼 빨리 기어들어가. 담력 쎈 거 자랑하지말고."
"담력보다 더 한게 식욕인 거 몰라?"
"너만 아는 거 강요하지마."
김태형과 쓸데없는 걸로 투닥거리니 편의점을 지나칠 뻔해 급하게 갔던 길을 되돌아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편의점에 들어가서도 이게 맛있니, 저게 맛있니 하며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맥주 두 캔에 핫바 두 개로 합의를 봤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김태형의 우산을 쓰고 걸어가다 조금 걷고 나서야 놔두고온 우산이 생각나 길거리에 우뚝 멈춰섰다.
"야, 나 우산 놓고 왔어."
"아, 맞다. 너 우산 들고 왔지."
"너나 나나 어떻게 둘 다 몰라?"
"난 몰라도 이상할 거 없지만 넌 모르면 그건 좀,"
"나 우산 갖고 온다!"
"야, 같이 가!"
"아, 됐어! 비도 별로 안 와!"
"야, 야!"
김태형이 외치는 소리를 뒤로하고 비가 오는 거리를 급하게 뛰어갔다. 비가 별로 오지 않았지만 빗방울이 굵어서 그냥 같이 올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잠깐 들었지만 맞은 김에 그냥 얼른 갔다오잔 마음이 더 컸었다. 조금 달리자 금세 보이는 편의점에 뛰던 발걸음이 저 앞에 편의점에 맞은편, 정확히 말하면 호프집에서 꽤나 진한 스킨쉽릏 하고 있는 남녀로 인해 달리던 발걸음이 서서히 속도를 줄여갔다. 차마 확인해 볼 용기는 없었지만, 확인 하지 않을 이유도 없어서 내리는 비를 간과한 채로 느려진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르 좁힐 수록 남녀의 형체가 뚜렷하게 보였고, 누가 봐도 전정국으로 보이는 옆태에 나아가던 발걸음이 망설여졌다.
내가 지금 아는 척을 하면? 아는 척 하면 어쩔건데? 여자랑 술 마셨다고 핀잔이라도 줄 수 있나? 아니, 과 회식이었으면 어떡해. 망설임이 곧 확인해야 할 두려움으로 번지자 굳이 저 장면을 꼬치꼬치 캐내 물어서 확인사살을 받고 싶은 마음은 사라졌다. 어차피 이번에도 못 버틸 쪽은 내가 될테니까.
그리고 돌아서려던 발걸음을 붙잡게 한 건 여자에게 먼저 입을 맞추던 전정국에 모습이 빗 속에서 아주 선명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
[예찬, 꾹, 소진, 오전정국, 정연아, 뚜비두, 근육돼지, 꾸쮸뿌쮸, 룰루랄라, 나의별, 콩콩, 0103, 나만볼래, 난 정국이 있는데, 무밍, 아이닌, 늘품, 1204, 정쿠키, 피그렛, 블라블라왕, 겁남이] 님! 암호닉 하튜, 독자님 하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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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 = 걍 신혼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