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아리는 03
-쵸코-
"있잖아, 그거 알아?"
"뭐?"
"우리 학교에 안 쓰는 교실 한 개 있잖아."
"응."
"거기가 예전에 동아리실이었데."
"아 그래? 처음 알았네."
"근데 그 동아리가..."
[우리 동아리는 03]
김남준의 말을 끝으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이끌고 의자에 앉아서 허공을 바라봤다.
"너 꼴이 왜 그러냐고."
"......"
아까부터 연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박지민이 나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내 꼴이 왜이러더라.
순간 아까 있었던 일이 모두 생각났다.
그 촉감, 그 느낌.
모든 것이.
"무슨 일 있었어?"
박지민이 내 어깨를 건드리려고 할 때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만지지 마."
"어?"
"만지지 마 제발, 만지지 말라고!"
내가 미친 듯이 소리치며 울자 박지민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 허공에 손을 멈추었다.
큰일 났다.
박지민이, 그리고 이곳에 있는 애들이 아까 나를 만지던 아저씨와 겹쳐 보였다.
내가 계속 울면서 몸을 떨고 있는데 한 남자애가 내 앞에 쭈그려 앉더니 나를 올곧게 바라봤다.
"뭐가 그렇게 무서워."
"...만지지 마."
"여긴 안전해. 널 만지는 사람 아무도 없어."
"제발..."
"진정하고 숨을 들이 쉰 다음에 천천히 나 좀 봐봐. 내가 아직도 네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랑 겹쳐 보여?"
남자애의 말대로 심호흡한 뒤 눈물을 닦고 앞을 봤다.
그러자 눈앞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박지민과 처음 보는 남자애가 보였다.
"...아니."
내 대답에 남자애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녕, 난 정호석이야."
"......"
"우리 동아리에 들어온 이상, 너한테 아무 일도 없을 거야."
"......"
"우리가 널 지켜줄게."
웃음이 정말 이쁜 아이다. 정호석이라는 애는.
왠지 구원받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만큼 빛이 났다. 이 애한테서.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정호석의 한쪽 손을 잡았다.
제발, 내 소원을 들어주라는 듯이. 간절하게.
"지켜주지 않아도 돼. 그냥 빨리 죽고 싶어."
나지막하게 말을 하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정호석이 내 손을 단단하게 맞잡아주었다.
때마침 수업 종이 울렸지만, 그 누구도 동아리실을 나가지 않았다.
.
.
.
"야, 괜찮아?"
"...응."
울면서 난리 치느라 진이 다 빠져서 책상에 엎드려 있는데 전정국이 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다가왔다.
얘가 이런 성격이었나. 어울리지 않게 내 눈치를 보는 꼴이 웃겼다.
"......"
"...뭐."
"어?"
"할 말 있으면 말해. 내 얼굴 뚫리겠네."
내 말에 전정국이 헛기침을 연신 해댔다.
그리고 내게 따뜻한 핫초코를 내밀며 말했다.
"미안."
"...뭐?"
"미안하다고."
"......"
...도대체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내가 엎드렸던 상체를 들어 전정국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자 전정국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ㅇ,아니. 그때 있잖아. 그곳에서 내가 너한테 한 말."
"아."
설마.
키스하기 전에 했던 말을 말하는 건가? 깊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뭐 그런 말?
"내가 잘 못 말했어. 그랬으면 안됐는데."
"......"
"너가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거야."
"......"
"미안해."
그 말을 마치고 전정국이 황급히 동아리실을 나갔다.
"......"
아니, 네 탓 아니야.
모든게 내 잘못인 걸. 내가 약해 빠졌기 때문에 후유증이 생긴거야.
전정국이 준 핫초코를 손에 쥔 체 가만히 쳐다봤다.
따뜻했다.
내 마음과는 정반대로.
"정국이 귀엽네. 원래 저런 애가 아닌데."
"......"
김석진이 웃으며 내게 말했다.
나도 전정국을 본 지 얼마 안됐지만 저런 애가 아닌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사과할 때 겁나 당황스러웠다고!
"진정은 됐고?"
"응. 괜찮아졌어."
"다행이네. 이제 우리 동아리에 관해서 설명해줄게. 아니면 나중에 설명해줄까?"
지금 듣고 싶었다.
나는 하루 빨리 죽고 싶었으니까. 지금 죽지 않으면 하루하루를 불안 속에서 살아갈 것 같았다.
마담이 나를 찾을 것이다. 분명 학교부터 오겠지?
"지금 설명해줘."
"좋아. 일단 자살 일부터 말해줄게."
"그래."
나한테 제일 중요한 내용이었다.
일주일 뒤려나. 아니면 내일?
무튼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김석진의 말을 기다리며 점점 축축해지는 손바닥을 교복 치마에 문질렀다.
곧 김석진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학교 졸업식 날이야."
"...뭐? 학교 졸업식?"
"응. 학교 졸업식."
"......"
뒷통수를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졸업식이라니...? 당장 내일이 아니라?
비장한 표정이길래 바로 내일인 줄 알았던 내 생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표정이 왜 그래? 마음에 안 들어?"
"응. 너무 늦어."
그 날 죽으면 너무 늦는다. 마담이 나를 찾고도 남을 날짜라고.
내 말에 김남준이 차분하게 김석진의 말을 이어받았다.
"우리도 정리할게 있고해서 그렇게 정한 거야."
"...정리?"
"그래. 너도 조급해만 하지 말고 잘 생각해봐. 정리할게 분명 있을 거야."
"정리할 게 뭐가 있어? 어차피 죽으면 끝인데!"
"글쎄, 과연 그럴까."
"......"
"그리고 경고하는데 우리 동아리에 든 이상, 너만 생각하지 마."
"......"
"그게 이 동아리에 딱 하나 있는 규칙이야."
김남준의 말이 내 심장에 날카롭게 박혔다.
...나만 생각하지 말라니. 도대체 어떤 부분이 나만 생각한 걸까?
자살을 계획하고 있는 애들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빨리 죽는 게 더 좋은 것 아닌가?
"김남준. 말 좀 날카롭게 하지 마."
김석진이 김남준의 어깨를 세게 퍽하고 치며 말했다.
"아, 내가 뭘? 난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어휴, 탄소야 아무래도 동아리 설명은 나중에 해야겠다. 너 생각 좀 정리하고 해줄게."
"......"
"빨리 죽고 싶어 하는 건 알겠는데. 몇몇 애들이 아직 정리하지 못한 게 있어서 졸업식으로 날짜를 정한 거야."
"......"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너가 이해 좀 해줘. 부탁할게."
"...알겠어."
"옳지. 착하네."
김석진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아무래도 아까 내가 발작을 일으킨 것 때문에 그런가 보다.
김석진을 가만히 쳐다보자 김석진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졸업식 날이라. 그래, 그때 동안 발을 딛고 살아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럼 부탁이 있어."
"뭔데?"
"나 좀 마담에게서 숨겨줘."
.
.
.
마담에게서 숨겨준다고 집까지 구해다 준 건 좋은데 그게 왜 하필 민윤기네 집인 건데!!!
그렇다. 내 말이 끝나자 갑자기 애들끼리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모이더니 자기들끼리 뭐라고 쑥덕거렸다.
그래 봤자 다 들렸다.
"김석진 너희 집 되냐?"
"안 되는 거 너희도 다 알지 않냐?"
"그치. 다 알지..."
"곤란하면 여기서 자도,"
다들 곤란한 표정이길래 여기서 자도 상관없다고 말하니 모두 눈에 불을 켜며 소리를 질렀다.
아, 자고 있는 민윤기 빼고.
"미쳤어?! 절대 안 돼!"
...아니, 저기요들.
왜 안 되는 건데...
그것보다 김남준은 나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왜 안 되는데? 그냥 이불만 주면 돼..."
"여자애가 겁도 없이 이런 곳에서 혼자 자려고 그래?"
"맞아 탄소야. 그리고 여기서 자면 너 추워서 입 돌아간다?"
"그래, 여기서 자는 건 나도 비추야."
"그건 나도 반대야. 학교가 얼마나 위험한데."
"그럼 그럼. 안되지 안돼."
김석진을 선두로 박지민, 김남준, 정호석, 김태형 순으로 나에게 한마디를 했다.
다시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내가 한마디를 할 때마다 따라붙는 다섯 마디에 그냥 말하기를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내 얘기를 들어 줄 생각조차 안 하는 것 같아.
"김태형네 집은 어때?"
"탄소라면 환영."
쟤는 내가 싫은데. 나를 보며 능글맞게 웃는 김태형의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그래... 내가 지금 찬물 뜨거운 물 가릴 때가 아니지. 집만 준다면야...
"쟨 못 미더워서 안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치. 내가 뭐 어때서!"
뜻밖에 김남준이 먼저 반대를 했고 김남준의 말에 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봐주지는 않았지만 나도 뒤에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 쟤한테 아무 짓도 안 할 자신 있어?"
...? 저기요?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건데...?
더 이상한 건 김태형이 아무 말도 안 하고 계속 나를 쳐다보며 웃는거다.
웃지 말고 말을 해, 이 미친놈아!!!
"그건 좀..."
"봐봐. 얜 안돼."
"힝, 태태 삐져써!"
되도 안되는 귀여운 척을 하던 김태형이 결국 김석진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쌤통이다. 밥맛없는 자식.
"정호석네 집은 어때? 제일 믿을만하잖아."
"...안돼. 탄소를 그런 곳에서 재우고 싶지 않아."
"너희 집이 어때서!"
"맞아. 너희 집이 어때서 그래?"
"그냥 내가 싫어. 안돼."
정색을 하며 단호하게 말하는 정호석에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아까 내게 한 줄기의 빛처럼 보였던 정호석이 한순간에 어두워지니 내 기분이 언짢아졌다.
"호석이 사정도 이해해주자."
"미안 탄소야. 도움이 못 돼 줘서."
"ㅇ,아냐! 내가 더 미안하지. 괜한 소리를 해서 모두에게 피해나 입히고."
아, 그냥 애들한테 말하지말고 찜질방에서 잘 걸 그랬나.
아직 여분의 돈이 많이 남았는데.
"지민이도 안될 테고... 그치?"
"...응."
"정국이도 마찬가지고."
"다 안되네."
"얘들아. 나 그냥 찜질방에서 잘게. 여분의 돈도 있고 찜질방이라,"
"다 안되긴. 아직 한 명 남았잖아."
김남준의 말에 모두 의아하게 김남준을 쳐다봤다.
"누구?"
박지민의 물음에 김남준이 조용히 손가락을 뻗어 한 곳을 가리켰다.
그리고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모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나와 애들의 안색이 교차되어 표정으로 나타났다.
"민윤기."
불길한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는다는 걸 증명했다.
"맞아. 민윤기가 있었지? 쟤 집도 넓잖아."
"그 여자가 찾을 수도 없겠네. 찾아도 어떻게 못할 테고."
안돼!!!
내가 안된다고!!!
"아냐 얘들아. 나 너희한테 피해 끼치고 싶지 않아. 그냥 찜질방에서 잘게."
"뭐가 피해야. 이제 우리 동아리 일원인데 이정도는 괜찮아."
내가 안괜찮다고...
이럴 순 없다.
이러다간 빼도 박도 못하게 민윤기네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될 것이다.
김석진은 너무 완강해서 설득이 안되고, 김남준도 왜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설득이 안되고, 김태형은 그냥 내가 싫으니까 안되고,
남은건...
내가 간절한 눈빛으로 마음이 약한 정호석과 박지민을 번갈아가면서 쳐다봤다.
"제발 얘들아. 나 정말 괜찮으니까 찜질방에서 자게 해줘. 응?"
"...그니까 탄소야..."
"...어 그게..."
내 눈빛에 정호석과 박지민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거세게 흔들렸다.
좋아, 조금만 더 설득하면 넘어올 것 같아!
"...무슨 소란이야."
젠장.
시끄러웠는지 민윤기가 인상을 찌푸리며 책상에서 일어났다.
망했어. 정말 망했다고!
"탄소가 지낼 곳이 없다고 그 여자한테서 숨겨 달래. 근데 애들 집이 다 안돼. 딱 한사람 빼고."
이때다 싶었는지 김석진이 민윤기에게 지금 상황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정호석과 박지민은 뒤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사람이 누군데."
"그야 당연히 너지!"
쓸데없이 해맑아 보이는 김석진의 외침이 끝나자 민윤기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 또 떨고 있니. 그 날의 일 때문에 민윤기는 매우 꺼림칙하다.
무섭다고!! 하,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
분명 민윤기는 쌍욕을 하면서 거절할게 뻔 해. 그렇지? 저 눈빛이 말해주잖아.
"......"
"......"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던 민윤기가 동아리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래, 그럼 그렇지! 이제 난 애들에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하고 찜질방에서 자야겠다.
민윤기네 집에 갈 바에는 이게 훨배 났다. 곧 돈이 부족해지겠지만 어쩔 수 없지.
"얘들아 어쩔 수 없다. 쟤도 안되나 봐. 나 그냥 찜질방에ㅅ,"
"찜질방은 뭔 찜질방이야. 찜질방에 꿀이라도 발라놨냐."
"......"
"빨리 따라와. 집 가게."
단언컨대 민윤기는 자지 않고 우리들의 얘기를 듣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지금 민윤기네 집에 가고 있다.
미쳐버리겠네.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또 민윤기의 포스에 눌렸달까.
찍소리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애들이 잘됐다며 내 등을 떠밀었다.
어쩔 수 없었어... 정말이라고.
"...저기."
"나 지금 걸어가기 귀찮으니까 택시타고가."
합, 네네. 알아서 하세요. 저는 무시하세요. 저 방금 아무 소리도 안했어요.
침묵을 견디기가 힘들어 민윤기를 부르려고 했을까 민윤기가 무심하게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말을 했다.
아니, 집이 얼마나 먼거야. 택시까지 타고.
곧 민윤기가 부른 콜택시가 왔고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체 택시에 올라탔다.
"......"
"......"
"뭐."
"...어?!"
계속되는 침묵이 이제 익숙해질 때쯤 민윤기가 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덕분에 너무 당황해서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매우 쪽팔렸다.
"아까 나 불렀잖아."
"...아....어..."
"뭔데."
"...그니까 별거 아닌데?"
"말해."
"우리 아직 학교도 안 끝났는데 집에 가도 돼?"
내 말에 다시금 침묵이 흘렀다. 그러게 내가 별말 아니라고 했잖아...
민윤기는 흡사 뭐래 이 미친년이 하는 눈빛을 내게 보내고 있었다.
그 눈빛을 계속 받기 버거워서 조용히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쳐다봤다.
"어차피 그 시간에 교실 들어가면 난 몰라도 넌 눈총 받을 게 뻔한데 안 들어가는 게 났지."
"......"
"그리고 너 지금 피곤하잖아."
"......"
그렇게 나쁘고 무서운 애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나 좀 웃어도 될까.
민윤기의 말이 끝나고 정확히 3분 뒤에 택시가 멈췄다.
아니 이 정도 거리면 충분히 걸어갈 만한데 비싼 돈까지 내며 택시를 타다니.
이게 바로 돈 지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앞서서 걸어가는 민윤기의 뒤통수를 노려보다가 길을 잃을 것 같아서 서둘러 민윤기를 따라갔다.
근데 길 잃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또 별로 안 가서 민윤기가 멈췄거든.
민윤기를 따라 멈춘 나는 눈앞으로 보이는 집에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집이 왜 이렇게 좋아?!
심플하게 지어진 2층 주택에 크기도 컸다.
"...대박."
이런 집에서 살면 충분히 돈 지랄을 해도 상관은...
"뭐해 거기서. 빨리 들어와."
"......"
상관은 없겠지.
괜스레 민윤기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방은 잠겨있는 방 빼고 아무 곳이나 써."
"...아, 고마워."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든가."
"......"
그렇게 귀찮음이 가득 담긴 표정을 짓고 말하면 너한테 말 할 수 있겠니.
고개를 끄덕이고 집을 둘러보았다. 뭔 놈의 집이 이렇게 깨끗해?
가전제품과 소파, 그리고 냉장고 안에 음식들,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집이었지만 사람 사는 집 같아 보이지 않았다.
2층으로 올라가 방을 살폈고 창문이 탁 트인 방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침대의 폭신함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 기분도 잠시뿐이었다. 눈을 감자 그곳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아직도 내 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기분이었다. 손으로 미친듯이 몸을 털어버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내 목에다가 가져갔다. 졸업식까지 어떻게 버텨. 이대로 죽으면 더이상의 고통도 없을 거야.
손에 힘을 주려는 순간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민윤기와 눈이 마주쳤다.
"......"
"......"
"내려와."
"......"
다시 문을 닫고 나가는 민윤기에 방문을 말없이 쳐다보다가 손을 내리고 따라 나갔다.
1층으로 내려가니 소파에 눈을 감고 앉아 있는 민윤기가 보였다.
그리고 부엌에는 밥이 차려져 있었다. 먹으라는 건가.
딱히 입맛이 없어서 나도 소파에 앉았다. 물론 민윤기와 멀리 떨어져서.
쇼파가 아주 좋네. 길고 말이야.
침묵이 어색해서 다시 방으로 올라갈까 했지만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뭐, 민윤기랑 있으면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사람 형태라도 있으니까.
"...그렇게 죽고 싶냐."
"어?"
깜짝이야. 혼자 민윤기를 궁시렁거리며 씹고 있었을까.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 민윤기를 쳐다봤다.
언제부터 눈을 뜨고 있었는지 민윤기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죽고 싶냐고."
"......"
"......"
얘는 왜 당연한 걸 나한테 묻는 걸까.
"응."
다시 침묵이 계속 됐고 민윤기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덕분에 내 등에서는 점점 식은땀이 흘렀다. 오늘 여러 번 내 얼굴 뚫리겠네.
결국 끈질긴 시선을 못 참고 내가 왜 자꾸 쳐다보냐고 말을 하려고 할 때 민윤기가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애다. 민윤기는.
소파에 혼자 앉아 있는데 맛있는 냄새를 계속 맡으니 배가 고파졌다.
사람이란 정말 웃기다. 이런 상황에서도 배가 고프다니.
어이없음에 살짝 웃고 부엌으로 가려는데 다시 방문이 열렸다.
"앉아."
"어?"
"앉으라고 다시."
"......"
...그래 앉을게.
내가 소파에 앉아마자 민윤기가 나에게 하얀 상자를 건네주더니 자신도 다시 소파에 앉았다.
뭐야 이게. 상자를 열어보니 각종 치료도구가 있었다.
"치료해. 나중에 흉진다."
"......"
순간 마음에 따뜻한 감정이 일렁거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이건.
눈에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떨리는 손으로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눈물 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혼자 치료도 못하냐. 내놔."
"......"
옆에서 답답했는지 민윤기가 한숨을 쉬며 내 손에 있던 소독약을 가져갔다.
그리고 치료를 하려다가 멈칫하고 나를쳐다봤다.
"나 너 안 건드려. 이거 손이 아니고 솜이야."
"...응."
"아씨, 진짜."
민윤기가 손으로 솜을 잡고 치료를 하려는데 뭐가 마음에 안든건지 상자를 뒤적거렸다.
한참을 뒤적이던 민윤기가 드디어 원하는 걸 발견한 듯 표정이 잠시 밝아졌다.
곧 핀셋으로 솜을 집고 조심스럽게 내 상처를 치료하는 민윤기를 보고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자신의 손이 내 몸에 닿지 않게 치료를 해주는 민윤기의 배려에. 그 따뜻함에.
"...아파."
"참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 민윤기의 손길은 더 조심스러워졌다.
"...있잖아."
"......"
"...나 아파서 우는거다."
"......"
"진짜 아파서 우는 거야 나. 알겠어?"
"......"
"...정말이야."
민윤기는 말없이 내 상처를 치료해줬다.
"교복 불편하니까 내 옷 빌려줄게. 이거 입어."
"응."
"그리고 밥 차려놨으니까 먹던지."
치료가 끝나고 내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민윤기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진정이 되자 민윤기는 자신의 옷을 나에게 건네주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 민윤기를 내가 황급히 붙잡았지만.
민윤기가 뭐하는 짓이냐는 듯이 나를 내려다봤다.
"...같이 먹자."
"뭐?"
"밥."
"나 밥 안 먹어."
"......"
"...하."
들어갈 것처럼 성질 내더니 결국 민윤기가 식탁에 앉았다.
""왜 밥 안 먹어?"
"먹기 싫으니까."
"그래도 먹어야 해."
"내 마음이야."
"......"
그냥 조용히 하고 먹어야겠다.
숟가락을 들어 국과 밥을 떠먹었다.
"야."
"응?"
"반찬도 먹던지. 왜 국만 처먹어."
"......"
...처먹는다니.
기분이 나빴지만 아직 민윤기가 무서우니까 잔말 안 하고 반찬도 같이 먹었다.
"야."
"...응?"
"나 이런 거 잘못해."
"뭘?"
"누구 기다려주는 거 못한다고. 이런 건 정호석이나 박지민 그런 애들이 잘하니까 앞으로 걔네들 부르던지."
민윤기가 음료수를 가져와 마시면서 내게 말했다.
"너도 잘하는 것 같은데."
"......"
"기다리는거."
"......"
내가 민윤기를 바라보면서 말하자 민윤기가 음료수 마시던 걸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순간 민윤기의 눈빛에 주눅이 들어 다시 밥을 먹었다.
"아님 말고..."
"야."
"...어?"
"너 내가 무섭냐."
쿨럭, 민윤기의 말에 사레가 들려버렸다.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줄이야. 내가 계속 기침을 해대자 민윤기가 서둘러 물을 따라 내게 건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너 나만 보면 눈 피하고 무서워하잖아."
"...그건!"
그러네...
항상 민윤기가 나를 쳐다보면 애써 외면하거나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건,
"왜."
"......"
"나를 무서워할까."
"......"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까와는 다른 차가운 분위기가 내 숨통을 조여왔다.
그에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풀려 숟가락을 놓치고 말았다.
챙그랑-
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져서 듣기 싫은 소음을 냈다.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온 몸이 굳어졌다.
"그날,"
"......"
숨을.
"나 봤지. 너."
쉴 수가 없었다.
+에필로그+
탄소와 윤기가 나가고 남준이 허공을 보며 허하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게 남준은 처음 보는 윤기의 모습이 신기한 것이었다.
"나 민윤기가 정말로 허락할지 몰랐어."
자신이 저질러놓고도 아직 믿기지가 않았다.
사실 아까 남준은 윤기한테 어마어마한 쌍욕을 먹을 줄 알고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했었다. 민윤기까지 안되면 김탄소는 어떡하지.
언뜻 보기에 남준이 탄소를 싫어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거짓이다.
사실은 누구보다 탄소를 생각하고 있었다.
모진 말을 하긴 했지만 그건 다 탄소가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었지 싫어서 한 말이 절대 아니었다.
쨋든 윤기가 안된다고 하면 자기가 어떻게 해서든 탄소를 책임지려고 했다.
쌍욕을 먹든 주먹이 날아오든 윤기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일이 풀릴 줄이야.
"나도. 근데 나는 민윤기가 거절해도 딱히 상관없었어."
"왜?"
"그거 너희 집도 되잖아."
"하긴."
맞다.
그 집은 윤기의 것만이 아니라 남준의 것이기도 했다.
더 깊게 들어서고 정확히 말하자면 남준과 윤기의 것이 아니기도 했다.
석진의 말에 남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애들이 다 이상해."
"너도 그렇게 생각해?"
석진과 남준은 동아리실에 남아있는 애들을 훑어보았다.
아까부터 연신 넋을 놓고 휴대폰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지민과 뭐가 그렇게 좋은지 계속 웃고 있는 태형이가 자신들의 눈에는 매우 이상하게 보였다.
호석은 아르바이트에 갈 시간이라며 탄소와 윤기가 가고 얼마 안 돼서 동아리실을 빠져나갔다.
"쟤들도 이상한데 전정국도 만만치 않았어."
"그러게. 사과 할 줄이야. 그 전정국이."
"아, 혹시 민윤기 걸어갔냐?"
"응."
"걔 맨날 놈들 불러서 차 타고 가잖아. 걸어가기 귀찮다고."
"......"
"민윤기도 이상해."
"...인정."
둘은 한숨을 내쉬고 자기가 제일 정상적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야 근데 아까 걔 울 때 깜짝 놀랐어."
"나도, 눈물은 절대 안 흘릴 것 같이 굴어선,"
"몸에 난 상처들 봤어?"
"눈이 달렸으니까 당연히 봤지."
"...왜 그런걸까."
"알아봐야지. 알아봐서 못 건들이게 해야지."
"......"
"......"
"...근데 걔 은근 귀여운 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해."
"...인정."
다른 사람이 보기엔 저 둘도 그들과 다를 바가 없는데 말이다.
한편, 지민은 탄소에게 휴대폰을 어떻게 전해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전해주려고 하면 맨날 사건이 터지니, 그나저나 아까 탄소가 내 손을 피했어!
내심 상처를 받은 지민이었다. 호석이 손은 덥석 잡더니만.
시무룩하던 지민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다음에는 내가 의지가 되어주면 되지. 좋아 좋아.
곧 탄소의 폰으로 긴 진동이 울렸다. 지민은 누구인지 확인을 하고 표정을 굳혔다.
정말 끈질긴 여자였다. 그리고 용서할 수도 없는 여자.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탄소가 저럴까. 온 몸에 상처를 달고 있었다.
아, 걱정되네. 치료는 했으려나.
졸업식 날까지 탄소를 위해주겠다고 다짐한 지민이었다.
옆에서 태형은 지민의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을 웃으면서 구경했다.
"재밌네."
하루, 이틀, 이제 고작 이틀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탄소의 존재가 동아리실 전체를 뒤흔들었다.
지루한 걸 싫어하는 태형은 이런 상황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관심이 갔다. 나를 경계하는 눈빛 하며, 그냥 김탄소라는 존재 자체가.
태형은 나지막하게 웃고 뒤로 벌러덩 누웠다.
"흥미로워. 아주."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마냥 눈을 반짝이며.
밖에서는 정국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내가 왜 그랬지?! 미안해?? 내가?!"
아까 자신이 탄소에게 한 행동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왜 그랬냐고 아오! 발로 벽을 여러 번 찬 정국이 이내 학교 안에 설치 된 벤치에 숨을 고르며 앉았다.
두 번 다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키스도, 사과도.
왠지 모르게 탄소의 앞에서는 내 자신이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 만난 그 날부터.
하하하, 이제 안 그러면 되지. 정국은 허공을 바라보며 연신 웃었다.
때마침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호석이 정국의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멀쩡하게 생겨선 쟤 은근 모자라다니깐.
"미쳤냐."
"악! 뭐야,놀랐잖아!"
"난 네 모습에 더 놀랐어. 무서워서."
"큼, 어디 가는데?"
"당연히 알바지."
"그것 좀 그만하면 안 되냐? 도대체 얼마나 많이 뛰는 거야. 너 그러다가 몸 상한다."
"너도 알잖아. 못 그만두는 거."
"......"
"그럼 난 간다."
"...조심해서 해라. 다치지 말고."
"오냐."
호석은 오늘 기분이 좋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평소보다 더 기분이 좋다.
아까 탄소가 자신을 잡은 손을 펴보던 호석이 실실 웃으며 힘차게 아르바이트를 하러 걸어갔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모두의 마음에는 각자 다른 감정들이 하나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니면 같은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게 무엇인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작가 주저리]
워, 정말 많이 쓴 것 같은 기분.
아닌가요? 호호.
아무튼 다시 이렇게 쓰라고 한다면 못쓸 것 같은....쿨럭.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아! 이야기가 끝나면 가끔가다가 위와 같이 에필로그 형식으로 보너스 글을 쓸겁니다.
그게 맨날이 될지도 모르지만 기대는 하지 마세요!
또 브금을 정말 장난 안치고 삼일동안 골라봤는데 다 별로여서 그냥 올리지 않았습니다.
브금이 몰입도에 방해가 되면 안되잖아요 데헷!
아님 추천해주세여!!!!
또 00화는 삭제했습니다.
제가...후...
첫단추를 잘못 낀 것 같은 기분이....하....(마른세수)
하지만 저는....!!!!!
마이웨이로 글을 쓸겁니다...쥬륵.
질릴때까지!!!!!!!!!!!!!!!!!!
아직까지 암호닉은 받지 않습니다. 저는 제 글에 너무 자신이 없기 때문이죠.
그럼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이만 주저리를 마치겠습니다.
똥 글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얘들아 제발 연하남 만나 연하남..ㅋㅋㅋ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