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빨랫줄엔 성용이 양말들이 띄엄띄엄 걸려있다. 양말 장사 해도 되겠다- 조금 많다 싶은 빨래들 사이에서 성용이 양말만 거두었다.
탁탁- 소리 나게 털어 먼지를 날리고 종이백을 꺼내와 그간 빨아뒀던 양말들 까지 차곡차곡 종이백에 담았다.
운동 기구도, 자전거도 이제 다 가져가라고 해야지. 우리 집에 니 물건이 하나도 없도록.. 이제 니가 잊혀지기 쉬워지도록.
친구로만 지낼 수 있게 내가 노력할게. 그냥 너는 언제나 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 내가 멀어질게.
"야 넌 청소 좀 하고 살아라- 맨날 우리 집 와서 노는 이유가 다 있었어"
초인종을 누르자 윗도리는 어디다가 둔건지 바지만 입은 성용이가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털며 나왔다. 뭐 상체노출 쯤이야 어려서 부터 봐왔던 거니까.. 근데 멋있어..
쇼파와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빨래감들, 테이블 위에 쌓여있는 과자 봉지, 라면 봉지, 쓰레기들, 개수대에 꽉 차 있는 설거지거리까지.
한심하다 싶을 정도로 청소도, 빨래도 안하고 산다. 니 여자친구가 이런걸 봐야하는데, 내가 청소까지 잘하면 너무 불공평하잖아-, 얼씨구 말은 잘하지?
하품을 하며 기지개나 펴고 있는 성용이 가슴팍에 종이백을 떡- 하니 던지듯 주고는 빨래감을 찾아 빨래통에 넣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뭐긴 뭐야- 니가 우리 집에다가 놓고간 니 양말들이지"
머쓱했는지 테이블 위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쓰레기를 쓰레기 통에 담는 성용이. 어설프게 청소랍시고 하는게 귀여워서 푸하하 하고 웃어버렸다.
내가 왜 웃는지 알았는지 아 안해!! 라며 하던 청소를 때려치우고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하여튼 성격하고는-
빨래감을 모조리 찾아 세탁기에 넣고 세탁기를 작동 시켰다. 웅웅대며 잘 돌아가는 세탁기를 확인하고 성용이가 하다만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쓰레기를 모아다가 버리고 청소기를 돌렸다. 물걸레로 구석구석을 닦았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내다보지도 않는 성용이가 얄미워졌다.
그대로 주방으로 가 설거지를 하려다가 뭐라고 해줄 심정으로 안방 문을 열려는데 통화소리가 들린다.
"좋다고 했잖아. 다시 시작해보자고. 니가 그랬잖아"
"내가 그렇게 아니야? .............. 그래. 니 말대로 그만 하자. 맨날 사소일로 싸우는거, 나도 이제 지겨워"
결국 성용이의 언성이 높아지더니 상황은 좋지 않은 쪽으로 돌아갔다. 처음에 성용이가 여자친구랑 헤어졌다고 할 때와는 달리 나는 꽤나 담담했다.
그리고 벌컥- 하고 방 문이 열리고 내 시야에 성용이 가슴팍이 보였을 때 나는 또 깜짝 놀라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나도 참 특이하지. 내가 안본다고 상대방도 내가 안보이나.. 머리에 콩- 하고 아프지 않은 꿀밤을 때린 성용이는 다 들었냐고 묻는다.
"바보야 넌 그게 중요해? 다시 잘 되는가 싶더니 또 왜 삐걱거려?"
"아 몰라. 내가 싫대"
"이상한 여자네"
"뭐가?"
"니가 싫다니까 하는 말이지. 잘생겼어, 키 커, 잘나가는 축구 선수에 돈도 잘 벌어. 거기다가 성격도 좋...니? 좋다 치자"
"야! 내 성격이 뭐 어때서!!!"
"아니 누가 뭐래? 좋다고-"
하려던 설거지를 마저 하려 주방에 들어가자 성용이가 졸졸 따라온다. 개수대에 물을 한가득 받을 동안 서로 아무말 없이 흐르는 물 소리만 듣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생각에 잠기고, 성용이는 성용이 대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저번 처럼 나쁜 마음이 든다기 보다는 성용이가 걱정되는 마음.
정말 좋아하는것 같던데 또 얼마나 상처를 받을까 하는 그런 마음. 내 마음 아픈건 걱정도 안하고 성용이 아픈것만 걱정하는 난, 내가 봐도 미쳤지.. 어휴.
성용이 처럼 아무렇지 않은척 설거지를 하고 있어도 내 마음 한구석은 성용이 걱정으로 편치 않다.
설거지를 끝내고 저번에 빌렸지만 보지 못한 말할 수 없는 비밀 DVD를 다시 빌려왔다.
항상 우리집에서 편하게 보다가 성용이네 집에서 보려니 낯선 느낌이다. 날씨가 쌀쌀하다며 티셔츠 하나를 입은 성용이가 익숙하게 DVD를 재생시키고 내 옆에 앉았다.
어두운 방 안, 쇼파에 나란히 앉은 우리. 오늘 따라 가까운것 같아 또 미친듯이 심장이 뛴다.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까봐 숨이 가만가만 쉬어본다.
내 앉은 쪽 쇼파 등받이에 팔을 떡- 하니 올려놓고 내 쪽으로 다리를 꼰 성용이는 언뜻 날 가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까웠다.
차분하지만 조금은 거친 성용이의 숨이 내 목께에 닿을 때 마다 심장이 쿵쾅쿵쾅 두근두근 세근세근 자꾸만 방망이질을 한다.
TV 스크린에서는 그 유명한 피아노 배틀 장면 중에서도 bbb라는 백건 연주가 되고 있었고 나는 간질거리는 느낌에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을 꼼지락댔다.
"아 하지마-"
여전히 TV 스크린을 보던 성용이가 내 두 손을 꽉 잡고는 놔 주지 않는다. 쿵쾅거리던 심장은 더 빨리 더 빨리 뛰었다.
TV 스크린에서 긴장감이 고조되면 고조될 수록 내 심장은 더 빠르게 더 빠르게 뛰었고 백건 연주가 끝났을 때 성용이는 내 손을 놓아줬다.
"아 진짜 대박이다. 어떻게 피아노를 저렇게 치지? 짱이지?"
날 내려다 보며 말하는 성용이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난 멍하니 TV 스크린만 바라봤다. 이대로 눈이 마주쳤다가는 얼굴이 빨개져 버릴것만 같았다.
아무말 없는 내가 이상했는지 별로였어? 라며 다시 내 손을 잡아온다.
"아..아냐!! 완전 멋있는데?!! 하하하하"
누가 봐도 어색한 연기를 하며 오바를 하자 성용이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내 두 손을 잡은 손을 고쳐 잡았다.
"야... 손 좀 놔봐"
"싫어 니가 자꾸 꼼지락대니까 영화에 집중이 안돼"
"안 꼼지락댈게"
"그냥 이러고 있자"
왜? 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 말은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 말에 대한 성용이의 대답을 들을 자신이 없으니까.
영화는 어느새 슬픈 클라이막스를 달리고 있었다.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넘어 1시를 향해가고 있었고 나는 처음 부터 쭉- 같은 자세로 2시간 동안 얼어 있었다.
이제야 조금 적응이 되서 편하게 영화를 볼까 했더니 왼쪽 귀에 나지막한 성용이의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온다.
"너 샴푸 어떤거 써?"
"ㅇ..오...왜?"
"향기 좋아서-"
성용이가 흘러내린 머리를 왼쪽 귀 뒤로 넘겨준다. 이상한 기분에 애꿎은 앞머리만 두어번 쓸어 내렸다. 싱긋 웃은 성용이는 다시 TV 스크린을 봤다.
고등학교 다닐 때 였나 엄마가 새로 사다둔 샴푸로 머리를 감고 학교에 갔는데 성용이가 향기가 좋다고해서 그 때 부터 같은 샴푸만 쓰고 있다.
그 때도 내 왼쪽에 서서 귀 뒤로 머리를 넘겨줬었다. 축구한다고 땀이 흠뻑 젖어서는..
영화가 끝나면서 영화 보다도 더 긴장감이 넘치는 시간이 끝나고 나서야 가슴을 좀 쓸어내리나 했더니 이 자식 등받이에 기대서 잔다.
어쩐지 조용하다 했다 왠일로... 내 손을 꼭 잡고 자는 바람에 움직일 수도 없고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생각을 넘고 나도 등받이에 기대어 봤다.
오랜 친구지만 이렇게 가까이 보는건 처음이다. 이런걸 보고 기성용 별자리라고 하는구나 하며 성용이 얼굴에 있는 점도 세어보고 진짜 잘생겼다고 감탄하고 있는데...
"야 내가 그렇게 잘생겼냐?"
"으아!!!! 야!!!! 놀랬잖아!!!!"
눈을 번쩍 뜨는 성용이 덕에 뒤로 나자빠질뻔 한걸 성용이가 잡고 있던 손 때문에 살았다.
자는 성용이 얼굴을 훔쳐봤다는게 부끄럽다. 얼굴이 화륵- 하고 달아올르는게 느껴졌다.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내 얼굴을 빨개져 있을거다.
"나 저번 부터 자꾸 눈에 니가 밟혀"
".............."
"은지랑 한번 깨지고 나니까 니가 자꾸 눈에 밟힌다고"
".............."
"몇 년 동안 내 옆에 있었는데 왜 이제야 그러는지 모르겠어"
너.... 지금 뭐라는거야. 눈에 밟혀? 내가? 눈에 밟힌다는 말은... 무슨 말이야? 너 지금 무슨 말 하는거야? 성용이의 말에 머리가 아득해져온다.
".............."
".............."
멍하니 성용이의 눈을 바라보고 있기를 몇 초. 성용이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내 내게 키스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곧 때어질것 같았던 성용이의 입술은 집요하게 내게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몸이 굳어져 움직여지지 않는 내게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내 손을 잡고 있던 성용이가 좀 더 부드럽게 내 손을 고쳐 잡았을 때가 되서야 나는 입을 열었다. 촉촉하고 말캉한 성용이의 혀가 들어온다.
아랫입술을 물고는 혀로 내 치아를 훑는다. 아찔해져오는 탓에 앉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쓰러질것 같았다.
내 손을 잡고 있던 성용이의 손이 내 허리를 둘렀고 나는 살며시 성용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뜨거운 숨이 내숴지는 탓에 우리의 체온은 점점 올라가는듯 했다. 더워진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건지 멈춰야 되는건지 생각할 겨를도 없다.
그냥 이 순간을 지속하고 싶다.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성용이와의 시간을 그 어떤걸로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우리 사귀자"
땀으로 촉촉해진 내 앞머리를 살며시 옆으로 넘기며, 성용이가 말했다, 사귀자고, 나에게.
다시 부닥쳐오는 성용이의 입술에 놀라 성용이를 밀쳐냈지만 꿈쩍도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성용이는 더 짙은 키스를 퍼부었다.
그리고 내가 다시 성용이를 살짝 밀치자 그제서야 입술을 땠다. 조금 멍한가 싶더니 이내 경직된 얼굴로 내 눈을 마주한다.
당황한 내가 물끄러미 성용이를 쳐다보자 괴상한 소리를 내며 제 머리를 쥐어뜯는다.
"나 죄 짓는것 같아"
"그런 말이 어딨어.."
쇼파에서 일어나 성용이 앞에 서자 성용이는 날 올려다봤다. 아까 처럼 경직된 표정으로.
"니가 날 좋아하는게 맞는지, 내가 널 좋아하는게 맞는지 몰랐어. 근데 이제는... 다 알게됐어. 니가 날 좋아하는것도, 내가 널 좋아하는것도"
"그럼 된거야 성용아"
헝클어진 성용이의 머리를 정리해주자 내 허리를 껴안고 얼굴을 묻는다. 어떻게 할지몰라 망설이다가 성용이의 어깨를 감쌌다.
"미안.. 미안해. 그리고 널 좋아해.."
After story가 또 있는데 그건 이따가 저녁에 원래 올리던 시간에 올릴게요!
눈치를 봐서는 아마 여러분이 좋아하는 해피 엔딩으로 끝날것 같죠?ㅋㅋㅋ
사람은 해피 해피 하게 살아야합니다... 아, 그리고 텍파 할까요 말까요... 데려가실 분은 있을지 몰라...ㅠㅠㅠㅠ
텍파 여부와 다음 망상 축대 선수 추천도 부탁드려요~
+) 아 맞다 맞다 After story는 불마크라는건 비밀!!
Thanks to.
버물리님, 기성용하투뿅님, 투게더님, 종우찡님, 깡통님
쫑이님, 드마님, 엘레마님, 빼빼로님, 목캔디님, 현수님
피클로님, 앉으나서나님, 갸루샹님, 에이삐씨님, 차애플님, 연두님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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