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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가 지금 하려는 얘기가 무척이나 진부한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들어주렴, 아가.

 

 

그냥 그런 생각이 들더구나. 네가 살아온 날들, 살아갈 날들이 단 하루로 인해 어떠했는지 어떠하게 될 건지 결정된다는 사실이 너무 모질다고.

가장 예쁠 나이지. 그래, 너는 너무 예쁠 나이지. 입 꼬리에서 웃음이 내려오질 않고 그 만큼의 슬픔과 눈물이 눈에서 떨어지는 날이 많은 나이.

젊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누가 알았겠어. 안 그래? 분명 너는 어제까지 갓 첫 걸음을 뗀 아이였고, 유치원에 입학해 세상물정 모르고 흙장난을 하며 놀았는데 지금은 교복을 입고 학교 정문을 매일 지나쳐. 하지만 그것 또한 네가 흘려보낸 네 어린 시절만큼 빠르게 지나가버려. 11월의 어느 날, 그 모든 것이 너의 연필 끝에서 녹아내린다. 그리고 그런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내 눈에서는 눈물이 자꾸만 나네.

 

밤새워 공부하던 너를 곁에 두고 나는 늘 뜨개질을 했었다. 차마 잘 수가 없었어. 중학교를 다닐 때, 시험공부를 늦게까지 하면서도 넌지시 큰 방 문을 내다보며 ‘엄마, 자?’ 하던 너인데 내가 어떻게 잘 수가 있겠어. 유독 다른 아이들보다 손발이 차서 우리 딸, 무릎덮개라도 만들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낮 동안 생선을 다듬느라 거칠어진 내 손은 몇 번이고 바늘을 쥐어라 폈다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무릎덮개를 너는 고등학교 삼학년 겨울 내내 들고 다녔지. 그걸 보는 내 마음이 뿌듯했다. 손끝이 아리고 손가락이 뻐근해도 견딜 수 있었어.

 

그런데 지금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손 끝 하나 움직일 수가 없구나. 아, 네 아버지가 내 어깨에 담요를 덮어준다. 네 아버지도 많이 늙었어. 너 하나 키우느라 많이도 고생했지. 우리가 배운 게 없어서 너 만은 실컷 배우게 하고 원하는 걸 하게 해주자고 이 악물고 벌었다. 젊었을 적에는 주름 하나 없던 네 아버지가 이제는 일터에서 가장 주름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고 나에게 넌지시 건네던 말을, 공부하던 네가 엿듣고는 밤새 울던 걸 나는 안단다. 너를 탓하는 것이 아니야. 아가, 너를 탓하는 게 아니란다.

너를 어떻게 탓하겠니. 너는 처음부터, 이제까지, 앞으로도 우리의 소중한 딸인데.

 

딸아, 내 하나뿐인 딸아, 울지 마라. 네가 흘린 눈물의 수십 배를 나는 지난 세월동안 더 많이 흘렸었다. 초등학생 때 예쁜 파마가 하고 싶다고, 내가 잘라주는 단발은 질린다고 하면서 떼쓰다가 이내 울다 지쳐 잠든 네 머리맡에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중학교 때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고 내게 고백하고 ‘엄마, 미안해’ 하던 너를 앞에 두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수능 공부를 하면서 잠을 못 이겨 책상에 엎드려 손에 쥐고 있던 연필을 놓지도 못하고 잠든 모습을 보고 네가 깨지 않도록 화장실에 들어가 숨죽여 울던 나는 너에게 한 없이 미안하다. 네가 힘든 걸 알면서도, 가영아 일어나야지, 하면서 너를 흔들어 깨우던 내 두 손을 잘라버리고 싶었어. 나는 그만큼 너에게 미안하다. 못해준 게 너무 많아서, 그걸 스스로 채우기 위해 혼자 공부하고 길을 개척해온 너는 나에게는 너무 과분한 딸이야. 그렇게 힘든 길을 홀로 걸어온 너는 이 세상 모든 이에게 축복받아도 모자르구나.

 

시간은 어느덧 네 시 삼십분. 다리가 아파온다. 네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있었네. 그리고는 조용히 말한다. ‘이제, 곧 나올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잘라준 단발을 바람에 맡기고 너는 어떤 표정으로 나올까.

지난 일 년 동안 이 날을 수도 없이 상상해왔다. 울면서 나오는 네 모습, 웃으면서 나오는 네 모습, 허탈한 네 모습, 기쁜 네 모습. 너는 웃으면서 나오고 싶겠지, 누구보다도 밝게 ‘엄마!’ 를 외치며 수험장을 빠져나오고 싶겠지.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네가 웃지 않건, 기뻐하지 않건, 내 이름을 부르지 않건, 나는 네가 온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뻐할 거야.

 

시간이 또다시 흘렀네. 네 아버지가 내 어깨를 감싸고 서서히 발을 옮긴다. 나도 조금씩 움직여본다. 닫혀있던 교문이 열리네. 많은 수험생들이 제각기 다른 얼굴로 빠져나온다. 나는 그 속에서 너를 찾아본다. 조금 침침한 내 눈이 네 얼굴을 찾아본다.

아, 저기, 내가 떠준 가디건을 입고 네가 나오네. 더 두껍게 입고 가라 해도 이거면 된다 하면서 밝게 웃으며 들어가던 너. 아무래도 억지로 다른 걸 더 입혀 들여보낼 걸 그랬다. 다른 아이들은 다 한 겹 두 겹씩 입고 나오는데, 시험 치는 동안 춥지는 않았을지, 그로 인해 집중력이 흐려지지는 않았을지 걱정이 된다.

네가 나와 네 아버지를 발견하고 다가온다. 나는 차마 네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숙인다. 죄 많은 어미라서, 차마 딸자식을 마주할 수가 없구나. 네가 왜 그러냐면 깜짝 놀라네. 엄마, 어디 아파요? 그러게 집에 가있으라니까 왜…. 말하는 네 목소리에 점점 울음기가 섞인다. 네 아버지가 너를 꽉, 안아주네. 내 어개를 감쌌던 팔로 너를 안아주네.

 

너는 네 아버지의 품에 얼굴을 묻는다. 나는 힘겹게 든 고개를 버티며 너를 바라본다. 네가 와락, 안겨온다. 따뜻한 내 딸. 손발이 유독 찬 내 딸. 나는 아무 말 없이 내게 걸쳐져 있던 담요를 너에게 둘러준다. 네가 배시시 웃는 게 보지 않아도 느껴져. 나는 네 손을 잡아 내 코트주머니에 넣는다. 따뜻해? 내가 묻자 네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아버지가 나와 너를 안아준다. 우리는 한참을 그러고 있는다.

 

후회 없어? 응. 조심조심 물어본 내 말에 네가 대답한다. 나는 내 손으로 네 머리를 감싼다. 가영아. 응?

괜찮아, 잘했어.

 

 

내 말에 네가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터트린다. 네 아버지가 네 등을 토닥여준다.

 

어딜 내놓아도 모자를 것 없는 내 딸. 내 눈에는 너무 완벽한 내 딸.

 

네가 있어서 엄마는 기쁘다. 나는 너에게 전부를 다 내어주었어. 더 이상 줄게 없어서 미안하구나.

그래도 나를 떠나지 않고 내 곁에 있는 내 딸아, 내 아가,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너를.

 

 

 

 

 

 

 

 

 

 

+)

 

 

수능 보신 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도 어제 중학교 마지막 시험을 끝냈어요. 서로 느끼는 감정은 비록 다르겠지만, 최대한 그 입장에 서서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수능 보시는 분들만큼 대단한 분들은 그 뒤에서 뒷바라지 해주시는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꼭 부모님 뿐만아니라 다른 분들, 선생님, 친구, 친척 등.

글을 쓰다가 눈물이 난 적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너무 먹먹해져서, 힘들었네요 ㅎㅎ

 

모든 분들.

괜찮아요, 잘했어요. 우리는 앞으로가 더 많으니까, 주저앉지 마세요.

그대들의 뒤에는 늘 내가, 우리가, 그들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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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ㅠㅠㅠㅠㅠㅠㅠㅠ
수험생분들 수고하셨어요ㅠ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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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슬퍼용~~ㅜㅜ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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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글 정말 예쁘게 쓰시는 것 같아요... !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 ㅜㅜ. .
수능끝나고 나왔던 저도 수능이 이제 막 끝났는데 밖에서 기다리던 어머니 아버지가 이런기분 이셨을까요?ㅜㅜ
글 정말 잘봤습니다ㅜㅜ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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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글 정말 너무 예쁘게쓰시네요ㅠㅠㅠㅠㅠ정말 좋아요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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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
사랑해요 진짜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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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7
눈물이 아래로 뚝뚝 떨어지면서 울어본게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늘 좋은 글 고맙습니다
12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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