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일곱 명의 무한지구대 이야기
<응답하라112>
- 미스터몽룡
2012.09.04
*
하루 온종일 굵직한 빗줄기가 하늘에서 떨어진다.
"이순경!!!!!!!!"
지구대 유리문을 활짝 열어젖히면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는 동우였다. 연락을 받자마자 재빨리 마트에서 빠져나와 어찌나 열심히 뛰었던지…. 심장은 쿵쾅쿵쾅 요동치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 이거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죽을 맛이었다. 격하게 달려와서 지쳐버렸는지 허리를 숙인 채 헐떡이고 있는 동우의 뒤로, 그가 좀 전에 열고 들어왔던 문이 서서히 닫히면서 바깥의 빗소리가 점차 사그라들었다. 유리문 하나로, 비가 내리는 세상에서 완벽히 분리된 무한지구대 내에는 동우의 거친 숨소리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한승호 순경이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갔다.
"저…, 장경장님…. 휴가신데 무슨 일로 나오셨-"
"이순경 어디 있어요?"
네? 이순경이요? 중간에 말을 끊어버릴 정도로 다급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의아해하며 되묻는 한승호 순경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평소의 장경장은 상대방의 말을 먼저 끊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순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한순경의 시야에 비치는 이 사람은 장경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 같다는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어떤 이순경 말씀하시는 건데요?"
때마침 김경위의 책상 밑에서 불쑥 일어나는 김의경 때문에 깜짝 놀란 동우는 주춤거리며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고 난 뒤 왜 거기서 튀어나오는 거냐고 묻자, 김의경은 뒷머리를 무심하게 긁적이면서 대답했다. 핸드폰 충전기 꽂으려고요….
아, 어…. 그래요….
"그나저나 어떤 이순경 찾으세요? 이쪽 이순경?"
그러고는 여유로운 듯이 고갯짓으로 이성열 순경의 자리를 가리켜본다. 아니면 저쪽 이순경? 이번에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꺾어 이호원 순경의 자리를 가리킨다. 그것도 아니면 다른 이순경? 그러면서 자신의 어깨 뒤에 있는 뒷문을 향해 엄지손가락으로 쿡쿡 가리킨다. 동우가 이성열 순경을 찾는다고 답하자 돌아오는 대답은,
"한 시간 전쯤, 자살 사건 때문에 인피니트팰리스로 출동하셨어요."
그 말을 들은 동우는 새하얗게 질린 채, 등에 매고 있던 비에 젖은 가방을 의자에다가 아무렇게나 내던지고는 뒤를 돌아 지구대문을 활짝 열었다. 의자 위로 정확히 던지지 못했는지 등 뒤에서 가방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런 건 지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동우는 먹구름이 잔뜩 낀 잿빛 하늘을 말없이 한 번 올려다보더니, 이내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우산도 없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우의라도 입고 나가라는 김의경의 걱정스러운 외침이 빗소리에 가려져 작게 들려왔지만, 동우는 가볍게 무시하고 인피니트팰리스로 뛰기 시작했다.
*
그 시각 인피니트팰리스.
반원 모양으로 둥글게 모인 채 웅성웅성이는 아파트 주민들, 그들 앞에 자세를 잡고 하얀 우의를 입은 채 비를 맞으며 서있는 무표정한 경찰들, 그런 그들의 등 뒤에 기다랗게 쳐져있는 샛노란 폴리스 라인….
그리고 그 안에서 우두커니 서있는 김경위와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키 큰 남자.
"비 한 번 거창하게 오네."
"그러게…."
경찰청에서 지급된 검은색 장우산을 살짝 들어 올려 바라본 하늘은 우울한 회색빛이 감돌고 있었다. 빗물을 잔뜩 머금은 먹구름은, 인간이 살고 있는 이 땅 위로 굵직굵직한 빗방울을 하염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김경위는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어, 가만히 비의 감촉을 느꼈다. 하필 이런 궂은 날씨에 삶의 끈을 놓아버리다니…. 8월의 장마처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세상을 등질 정도로, 하루하루를 버틸 수 없을 만큼 그 정도로, 죽은 자에게 이 세상은 지옥 같았던 것일까. 죽은 자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고 애쓰지만 그래도 이런 결말은 비극적이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야, 청승맞게 왜 이러냐? 징그럽게 시리…."
우산을 같이 쓰느라 옆에서 가만히 들고 있던 구경위가 검지로 그의 옆머리를 꾹 밀었다. 김경위는 자세를 바로 잡으며 아무 의미 없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야, 너 지금 형사라고 지구대장 무시 하냐? 같은 경위 계급 주제에?"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이 으르렁 거리는 어투로 주먹을 들어 올려 보이자, 개구쟁이처럼 씩 웃더니 우산을 들고 있는 반대편 손을 활짝 펴서 반쯤 들어 올리는 구경위였다. 익살맞은 그 모습에 김경위도 씩 웃고는 가볍게 샌드백을 치는 것 마냥 주먹으로 그의 손바닥을 툭, 하고 쳤다. 그러자 구경위가 재빨리 손을 오므려 그의 주먹을 꽉 움켜잡고는 상하좌우로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덕분에 김경위의 팔은 매가리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손을 놓아주며 구경위가 말했다.
"둘 다 경찰이 되서 처음으로 마주한다는 게, 이런 일로 사건현장에서 만나게 되니 유감이다."
씁쓸해하는 그의 말에 동의하는지 김경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멋있게 제복 걸친 채 술집에서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말이야."
경찰대 졸업식 이후, 서로 연락할 겨를이 없어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동기였다. 김경위의 엄마가 계급장을 달아줄 때, 옆에서 아버지가 계급장을 달아주던 그 친구. 긴장 빼라며 틈만 나면 어깨를 두들겨주던 바로 그 친구였다. 형사를 지원해서 서에 들어갔단 소식은 다리 건너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울림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원 요청을 하기 위해 서에 연락을 취했을 때 보내준다던 형사가 이놈이라니…. 그래도 마음만큼은 얼싸안을 정도로 엄청 반가웠으나 이렇게 안 좋은 일로 보게 되니 동글동글 엉킨 실타래 마냥 기분이 복잡했다.
"그나저나 사망자 가족들은 왜 안 오는거지?"
구경위가 재킷 안쪽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며 물었다.
"보호자 둘 다 출장 때문에 이틀 전부터 국내에 없었어."
이것 좀 들고 있어봐. 구경위가 우산을 넘겨주자 김경위가 군 말없이 받아 들었다. 가죽 수첩 앞표지에 꽂아놓은 볼펜을 쑥 빼더니 엄지로 뒤꽁무니를 눌렀다. 딸칵, 하면서 볼펜심이 튀어나왔다. 그러고는 손을 놀려 방금 전 김경위가 했던 말을 옮겨 적기 시작했다.
"최초 목격자는?"
"인피니트팰리스 중앙 경비실에서 근무하는 경비원 이중엽씨. 경비 돌고 있는데, 갑자기 비명 소리가 나더니 바로 ‘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래. 그래서 급히 뛰어왔는데 사람이 이 자리에 이렇게 쓰러져 있었대."
그러면서 팔을 아래로 뻗어 손끝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김경위가 가리킨 화단 앞 보도에는 부러진 나뭇가지들과 함께 발견 당시 사망자의 자세대로 표시가 되어있었다. 그 주변부는 흥건했던 붉은 피가 빗물에 어느 정도 씻겨 내려간 모습이었다.
"자살이라 이거지?"
볼펜 뒤끝으로 메모해 놓은 부분을 툭툭 두들기며 석연치 않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구경위였다. 그가 두들기고 있는 수첩 내용을 건너다보며 김경위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지?'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을 받아든 김경위는 할 말이 없어서 두 눈을 꿈뻑였다. 이건 마치 교과서 한 켠에 쓰여 있는 해당 페이지나 날짜대로 출석번호를 부른 뒤, 칠판 앞으로 나와서 문제를 풀어보라고 시키는 못된 수학선생님 같았다.
어서 말해보라며 구경위가 부추기자,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낱 지구대를 지키고 있는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구형사님이 잘 아실 테죠.'라며 대답해 본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임마, 어물쩡 넘어갈 생각하지 마. 분명 왜 그렇게 생각 하냐고 물었다."
끙…. 앞니로 안쪽 입술을 꾹 깨물어보는 김경위였다. 내가 무슨 이유로 자살이라 생각하고 있었더라? 잔뜩 미간을 좁힌 채 시간을 찬찬히 되짚어가며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 기억들의 조각을 이리저리 들춰본다.
"어….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처음에 신고 받았을 때 자살 신고로 받았거든."
구경위가 원하는 대답인지 아닌지 확실치가 않아서 꽤나 난감했는지 옆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김경위였다. 그런 그의 말에 수긍하듯이 고개를 끄덕인 구경위는, 소리 나게 검은색 가죽 수첩을 덮었다. 그러고 나서 앞표지에 볼펜을 꽂으려다가 말고는 그 끝으로 김경위를 가리켰다.
"그래서,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거.야."
*
타닥타닥, 후라이팬에서 기름이 튀어대는 소리처럼 벽돌로 이루어진 바닥을 세차게 때려대는 빗소리, 그리고 단지 바깥에서는 쏴아아아, 커다란 물보라를 한껏 일으키며 달리는 버스의 엔진 소리가 들려온다. 그 외에 들려오는 다른 한 소리는, 거친 숨소리.
동우는 달리는 속도를 유지한 채 한쪽 팔을 들어,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어깨 부근으로 훔쳐냈다. 하지만 닦자마자 곧바로 얼굴 윤곽을 타고 빗물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이놈의 비…. 오늘따라 참 거세기도 하다. 동우의 머리맡으로 떨어진 빗줄기는 그렇게 한 줄기 두 줄기 흘러내리다가, 결국은 동우의 오른쪽 눈을 덮으면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인데 보란 듯이 시야를 방해하는 빗물 때문에, 가던 길을 잠시 멈춰 몇 번 더 닦아내본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닦는 걸 포기하고는 오른쪽 눈을 감은 채 뛰기 시작했다.
점점 숨이 차오른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보도를 따라 왼쪽으로 꺾자, 음침한 배경으로 우산을 쓴 채 쑥덕거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다 싶어 달리는 것을 멈춘 동우는, 허리를 숙이고는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 쥔 채 숨고르기를 시작했다. 쿵쾅쿵쾅대는 심장 소리가 고스란히 귓가에 들려왔다. 뇌는 숨을 쉬는 것 마냥 벌렁벌렁 거리는 것 같았다. 아…. 심장이고 뭐고 몸속의 장기들이 계속 팽창하고 팽창하여 터져버릴 지경에 이른 것 같은 기분이다. 그의 그런 상태를 알 리가 없는 빗물은, 머리맡에서 시작하여 이마와 콧대를 타고 흘러내리다가 코끝에서 방울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코끝에서 떨어지지 않고 살아남은 빗물들은 턱 끝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동우는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는지, 두 눈을 꾹 감아버렸다. 투둑투둑 거리며 바닥에 따갑게 내리꽂히는 빗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입으로 크게 숨을 들이마시자, 숨이 '턱' 막혔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동우는 주먹을 쥐어 다급하게 가슴을 두들겼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막힌 숨이 풀렸다.
"동우야!!!!!!!!!!!"
누군가 다급하게 부르더니 한걸음에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흐르는 빗물 때문에 살짝 실눈을 떠서 바라보니, 어느새 호원이 다가와 있었다. 누가 이호원 아니랄까봐…. 참 빠르기도 하지…. 호원은 자세를 낮춰 애타는 눈빛으로 동우를 쳐다보았다. 괜찮아? 어디 아파? 그 말에 괜찮다며 끄덕이는데, 숨이 또 일시적으로 막혔다.
"도…동우야…. 장동우!!!!!!!"
동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자, 눈이 커다랗게 변한 호원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두들겨줬다. 서너 번 두들겨주자 숨이 쉬어지는지, 동우는 호원의 손을 감싸 잡았다.
"그렇게 큰소리로 내 이름 부르면 어떡해…. '장경장님'이라고 불러야지…."
그 말을 들은 호원의 표정이 눈에 띄게 복잡해졌다. 원망하는 눈빛과 함께 파르르 떨리는 입술, 그리고 턱….
"지금 네가 숨넘어가게 생겼는데, 남들 눈 의식해서 '장경장님'으로 부르라고?"
감정이 차올라 코끝이 찡한지, 코를 들이키는 호원이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시선을 내리깔자 흠뻑 젖은 동우의 빨간 운동화가 보였다. 그것을 보며 잊고 있던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입고 있던 우의를 벗어서 동우에게 입혀주기 시작했다. 괜찮다며 동우가 입지 않으려고 하자,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라면서 억지로 입힌다.
"그럼 너 비 맞잖아…."
힘에 못 이겨 그가 입혀주는대로 우의에 팔을 끼워 넣으면서 동우가 걱정스러워하자, '나는 순찰차에 타면 돼.'라며 안심시켰다. 우의를 다 입히자 그를 부축하며 일으켰다.
"김성규 경위, 저 앞에 형사랑 같이 있어."
갈 거지? 그 말에 동우가 끄덕이자, 손을 덥석 잡더니 사람들이 몰려있는 쪽으로 이끄는 호원이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사람들에게 스치지 않도록 동우를 안전하게 보호하며 혼란스러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
그리고,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의아해하는 이성열 순경이었다. 때마침 무전 소리가 순찰차 안을 요란하게 메웠다. 이순경은 인파 속으로 들어가는 이호원 순경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순찰 제 2팀. 사건 구역 이상 무."
*
"서울시 울림경찰서 형사 반장 구만회씨. 이제 그만해."
이 자식이 진짜…! 바짝 오른 약을, 진심 가득 담아 김경위의 뒤통수를 때리는 걸로 해소하는 구경위였다. 나란히 한 우산을 쓴 채 몇 분째 티격태격 거리고 있다.
"이렇게 추리 능력이 후달리니, 네 놈이 형사를 못한 거 아니겠어."
"너야말로 그 빌어먹을 성질머리 때문에 사무직 못하고, 죽어라 발로 뛰는 거 아니겠어."
현재는 지구대장과 형사가 되어있는 그들이지만, 사실 경찰대 시절에는 이런 진로를 원하지 않았다. 성규는 수컷 냄새 풀풀 풍기는 형사가 되고 싶었고, 만회는 비교적 업무가 안정적인 지구대장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동물적 감각이 떨어지는 성규와 사무직에 알맞지 않은 성격을 지닌 만회는 눈물을 머금은 채 지금의 진로를 택하게 된 것이었다.
신랄하게 서로를 비평한 둘은, 마주본 채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 거렸다.
"김경위님!"
소리 나는 곳으로 돌아보니 이호원 순경과 장동우 경장이 서있었다. 들이라는 신호를 보내자, 폴리스라인을 지키고 서있던 경찰들이 한쪽으로 비켜줬다. 사건 현장으로 들어온 장경장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빨간 운동화 옆에 나뭇가지와 함께 살점 같은 덩어리를 발견하고는 주춤거리며 뒤로 한발자국 물러났다. 이게 다 뭐란 말인가….
구경위는 폴리스라인 안으로 들어온 장경장을 보며,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김경위가 장경장을 지목하며 말했다.
"이 사람이야."
*
흐르지 않을 것 같았던 시간은 정해진 제 몫을 다하기 위해 계속 흐르고 흘렀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푸르스름한 저녁이 되었다. 불이 다 꺼진 집안에는 적막함이 맴돌았다.
"동우야, 자?"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묻자, 호원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동우가 이불을 부스럭거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호원은 짧게 한숨을 쉬더니, 그의 품안에 있는 동우를 힘주어 꼬옥 안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오늘따라 위태로워 보이는 동우가 어디론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마치, 한 줌 가득 움켜쥐어 보지만 이내 손틈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가 버리고야 마는 모래처럼 말이다. 이런 불안한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사라지지 않겠다고 대답하는 것 마냥 동우가 그의 허리를 꽉 안았다. 호원은 동우의 머리카락 사이에 다섯 손가락을 찔러 넣어 매만졌다.
아직도 울고 있는 건지, 티셔츠의 가슴팍 부근이 축축한 게 느껴진다. 우리 동우는 참 눈물도 많지…. 혼자 속으로 생각하며 동우의 머리에 가만히 뺨을 댔다. 차라리 속 시원하게 엉엉 울지…. 소리 없이 숨죽여 우는 동우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지면서 쥐어뜯기는 것만 같다. 울보 동우….
오늘 하루는 참 유난히 길었던 것 같다.
"동우야, 잘 자."
호원은 동우의 등을 따스하게 토닥토닥 거려주며, 그의 머리에 뺨을 기댄 그 모습 그대로 두 눈을 스르륵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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