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들어와서 기분좋게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잠들까 했더니 잠결이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걱정이되기 시작했다. 내일 백현이 얼굴은 어떻게 보지.
창가를 흘러들어온 빛에 방안은 안개로 가득찬듯 뿌옇게 보였다.
그렇게 천장만 바라보며 고민하고 있다가 곧 잠에 빠져들었다.
시끄러운 알람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났고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교실로 들어섰다.
백현이가 나를 올려다 보더니 다시 책으로 시선을 옮긴다. 아무렇지 않은척. 너는 지금 이 상황에서마저.
"야, 도경수! 어제 잘 잤어?"
"어? 어.. 너도 잘 들어갔어?"
"응. 나는 잘 들어갔지. 내꿈꿨어? 내 꿈꾸라고했잖아."
"어? 미안. 어제 꿈 안꿨어."
"뭐야. 치, 됐어."
"뭐야. 삐졌어?"
"아니야."
"오늘 꿀께."
"알겠어."
멀리 있었지만 어색해하고 있던 나를 발경한 박찬열이 나에게 오더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친근한척을 한다.
티가 날것 같아 조마조마한데 이 자식은 아무렇지 않게도 연기를 참 잘한다. 왜 내 주위엔 이런 애들밖에 없어.
슬쩍 쳐다보니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는 무표정한 얼굴을 살짝 굳혔다.
언제나 봐왔던 얼굴표정이기에 아주 작은변화로도 지금 기분이 어떤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 아무리 변백현이라도 지금은 기분 나쁘겠지. 자기것으로만 알았는데 다른 사람이 나의 곁에 있으니까.
너도 좀 느껴봐. 내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얼마나 신경쓰이고 지옥 속에 있는것 같았는지.
점심 시간이 되었고 급식을 받으려 줄을 서있는데 이미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셋이 보였다.
변백현, 김종인, 김준면.
뭐야 이젠 아주 대놓고네 대놓고 들켰다 이거지?
"야, 옆에 자리 비었다. 우리도 저기서 먹자."
"뭐? 왜? 싫어 먹다 체할것 같아."
"멀리 있으면 안 신경쓰여. 옆에서 신경쓰이게 자꾸 자극을 해줘야지. 얼른 가자. 빨리와."
하여튼 막무가내. 그래도 틀린말도 아니고 다른 곳엔 자리도 없고 먼저 앞서간 박찬열을 따라 백현이의 맞은편 옆에 앉았다.
백현이가 잘 보이는 곳. 박찬열이 앉는 것을 보고는 내가 올 것을 알았는지 시선을 피하고 밥만 먹는다.
내가 쳐다보아도 한 번 눈길 조차 주지 않는다. 이건 또 뭐야. 완전 무시하는 거잖아.
밥만 입에 간신히 넣고 씹었다. 까슬까슬. 모래알 같다.
내 눈이 멍하니 초점을 잃고 밥으로 떨어졌다. 뭐지 이 기분. 이제 난 신경 쓸 무엇도 아니라는 건가.
내가 이정도로 알아달라고 발악을 했으면 좀 뿌리치고 다가와줘야 하는거 아닌가. 하늘이 내려준 운명이라면서.
"아-"
".....어..어?"
"왜 밥만 씹고 있어. 니가 좋아하는 고기. 아-"
"내가.. 먹을께."
"빨리 먹어. 내 손 무안하다."
"아.. 응."
갑작스럽게 눈에 물체가 잡혀 올려다보니 박찬열이 고기를 내 앞으로 가져왔다.
살짝 백현이를 보니 아까와 똑같은 무표정으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젠 아무렇지도 않구나. 너도 친구들 있다 이거지 지금.
니 그 못난 자존심 정말 대단하다.
급식실에서 나와 애들이 잘 오지 않는 무용실 옥상 위로 올라와 앉았다. 혼자 있고 싶은데 꼭 따라올라와.
"나 혼자 있고 싶다. 교실로 먼저 가."
"알겠어 간다 가. 이거 마셔."
"아.. 땡큐."
내 손에 따뜻한 코코아를 손에 쥐어주더니 교실로 돌아가는 찬열이의 뒷모습을 보니 괜히 죄책감이 느꼈졌다.
뭔가 이러면 안되는데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번 주말에는 밥이라도 사줘야겠다.
자리에 앉아서도 신발 끝만 쳐다봤다. 나는 발이 작은 편이어서 여성용으로 나온 디자인이었고 백현이는 남성용 디자인이었다.
뭐 물론 별로 차이가 없어서 애들이 둘이 사귀냐고 신발까지 맞춰신냐고 놀림은 좀 받았지만. 마음에 들었는데.
그렇게 매일 신고다니며 이런저런 때가 묻어있었다. 빨아야하는데.
아무런 생각도 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마치 바람따라 흘러가는 구름처럼.
생각을 정리할 올라온건데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이제 나는 백현이에게 너무 질려버린건가. 나의 옆에 아무도 없었기에 조금은 돌아올 마음이 있었던 건가.
그랬는데 나를 챙겨줄 사람이 생겨버리니까 돌아오지 못하는 걸까.
옳은 길을 걷다가 모험심에 모르는 길로 들어온것 같다. 어딘지도 모르고 걸어온 길은 뒤도 알아볼 수 없고 앞은 더더욱 알 수 없었다.
백현아, 너는 이제 어쩔 생각이니. 너는 이제 정말 내가 싫어진걸까.
나보다 김종인이 너의 마음에 가득 차고 있는 걸까. 그래서 이젠 내가 필요가 없어졌니.
아무리 찬열이와 같이 있어도 너의 곁이 더 든든해서 내가 질투나지 않는거니.
나는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너를 포기해야할까. 우린 도대체 뭐야. 지금 이 상황은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하.. 짜증나."
하늘을 향해 내뱉었다. 그만 좀 하세요. 진짜 짜증나서 못해먹겠네.
왜 이렇게 나만 복잡하고 힘들어야해요. 쟤는 지 옆에 있는 새끼랑 좋아서 죽을라고 하는데.
이거 너무 불공평한거 아니에요? 나랑 같이 좋아했는데.
그렇게 몇 일이 지났을까. 길고 길었던 평일이 지나고 주말이 왔다.
길고 힘든 겨울같은 평일이었다. 나는 매일 박찬열과 함께했고 그만큼 많이 친해졌다.
우리 둘의 대화의 대부분은 백현이었고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을 잘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친구가 되었다.
내가 혼자이지 않게 홀로 나를 지켜주는 친구.
"야, 어디야?"
"...웅.. 나.. 집.."
"뭐야, 너 아직까지 자냐? 곰탱이. 밥사줄께."
"웅..? 밥... 뭐 사줄껀데.."
"뭐 먹고 싶은데?"
"나 치킨... 치킨 먹고싶다.."
"잠이나 깨고 얘기해. 그럼 저녁 때까지 우리집에 와. 우리집에서 시켜먹자."
"우리집으로 오면 안돼..? 아.. 귀찮아.."
"그럼 먹지 말던가."
"아냐! 가! 간다고!"
"악! 소리를 질러! 빨리 준비하고 오기나해!"
"예압!"
기차화통을 삶아 먹은겨 튀겨 먹은겨 왜이렇게 목청이 좋아. 귀 떨어지는 줄 알았네. 아이고 놀래라.
카톡-
홀드를 열어보니 백현이에게 온 카톡이다. 한 번 연락도 먼저 안하더니.
갑자기 시간이 있냐며 물어온다. 드디어 그 날이 온걸까.
그 말을 끝으로 난 핸드폰을 침대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정말 나랑 끝내고 싶은건가.
잠시만 시간을 줘. 이렇게 너혼자 멀리 도망가 버리지 말란말이야. 김종인이 나보다 좋은걸까.
정말 그래서 넌 나를 홀로 내버려두고 나를 혼자두고 나를 외롭게 했니.
차라리 나랑 더 빨리 헤어지던가. 이렇게 흐지부지 돌아올 것처럼 시간은 끌어놓고 이게 뭐야.
띵동- 띵동-
"박.. 찬열?"
"어! 나야 나! 치킨은 내가 오면서 시키고 옴!"
"어.. 들어와. 잘했어."
"실례합니다. 응? 너 얼굴이 왜그래?"
"어? 내 얼굴이.. 왜?"
"아니. 기분이 별로다..?"
"아니야. 아무것도."
띵동-
"어 아저씨 오셨나보다! 오예- 치킨 치킨. 여기 돈이요. 감사합니다."
"저기에 올려놔. 컵 가져올께."
"응! 먹자."
"응.."
고개를 저었다. 티내지말자. 치킨 먹자고 불러놓고 분위기 깨면 안돼. 그러지말자.
"고개는 왜 저어? 맛없어?"
"어? 아니. 맛있어. 나 신경쓰지말고 먹어."
"신경이 안쓰여야 안쓰이지. 팍팍 먹어. 맛있는데."
"응. 알겠으니까. 너나 먹어."
"풉 뭐냐. 후라이드 치킨 먹으면서도 묻히고 먹냐. 부스러기 붙었다."
자연스럽게 박찬열의 손이 나에게로 왔다. 그리고 나의 볼에 묻은 부스러기를 떼줬다.
그래 넌 참 자연스럽지 모든게. 물 흘러가듯 바람 불어오듯 아무렇지 않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나를 대해줬지.
그런데 그게 나에게 다른 부담이야. 아무리 친구 도와주는 일이라도 너를 이용하는 느낌이야.
"아- 배부르다."
"대박 무슨 치킨을.. 흡입했냐?"
"이정도야 뭘. 남자면 이정도는 해주야-"
"지랄."
"알음."
"참나-"
"참나-"
"...."
".... 우리 왜 정적이냐. 아, 너 표정 왜그러냐고 무슨 일있지? 변백현이 뭐라고 해?"
"아니.. 뭘 뭐라고해.. 그냥. 카톡왔어. 시간있냐고."
"그래서 넌 뭐라고 했는데?"
"너 온다고 나중에 하자고 했어."
"흠... 너 피한거지?"
"뭐?"
"변백현이 헤어지자고 할까봐 피한거잖아. 두려워서."
"아니야. 진짜 너 와야할 시간이라.."
"거짓말. 아직도 그게 두려워? 각오 하고 있던거 아니야? 어차피 둘 중에 하나였잖아. 이대로 깔끔하게 헤어지거나 아니면 다시 합치거나."
"그건 그런데 아무튼 피한거 아니야."
"그럼 헤어져."
"뭐라고?"
"그럼 헤어지라고"
"왜? 너 우리 도와주기로 한거 아니야?"
".... 이젠 못 보겠다. 너 병신짓 그만하면 안돼냐?"
"뭐? 병신짓? 이 새끼가. 너 왜그러는데?"
"어차피 변백현 돌아올 마음 없는것 같은데 그만 하면 안되냐고 이렇게 질질 안끌고 니가 먼저 헤어지자고 하면 안되냐고"
"...내가 알아서 할께."
"니가 알아서 못하고 있으니까 말하는거야. 내가 말해줄까? 이것도 도와줘?"
"몰라. 지금 아무것도 모르겠어. 니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도 모르겠고 변백현이 왜 갑자기 연락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내가 왜이러는지 알려줘?"
"뭐? 왜그러는데?"
"내가 너 좋아니까."
"뭐..뭐라고?"
"내가 너 좋아한다고 일부러 도와주는척 니 옆에 있었다. 이게 기회다 싶었고 그래서 그 자리 꾀찼어.
니가 변백현 때문에 그만 아팠으면 좋겠고 내가 너 다시 매일 웃게 해주고 싶어. 니 좋은 친구 박찬열이 아니라 니 좋은 애인이 되고 싶다고"
"하.. 너까지 왜그래.. 나 지금.. 어떤지 알잖아.."
"알아. 그런데 니가 너무 모르는것 같아서. 그런 새끼랑 헤어지고 나한테 오면 안돼냐?"
"나도 잘 모르겠어.."
"경수야.."
Rrrrrrrrr
찬열이가 무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렸다.
"잠시만.. 나 전화 좀."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왔다. 이불 속을 뒤적여 핸드폰을 찾았다.
지금 찾을 수 있는 정답이 핸드폰이 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휘적휘적 손에 걸리면 쉽게 잡히는 정답같았으면 좋으련만.
도와주겠다던 박찬열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한다. 누구지.
"변백현이지."
박찬열은 어느새 열려진 방 문 앞에 서있었다.
지금의 우리 사이도 이렇겠지. 나와 백현이 너는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고 박찬열은 열려진 내 방문앞에 서있으면서 들어와도 되냐 물어보고
너는 어떤 말을 꺼낼지 모르지만 나에게 영원히 멀어지거나 아니면 다시 나를 찾는거겠지.
백현아, 너의 방황은 어떻게 끝이 나는거니.
으아아아! 대대적인 사건 발생!
으아~ 카톡대화 만들어주고 전화 걸어준 내 친구 ㅇㄹ아 ㅋㅋㅋㅋ 고맙댜 ㅋㅋㅋㅋㅋ
앞으로 연재 할때마가 너에게 귀찮게 해줄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밖에 없다그 ㅠㅠㅠㅠㅠㅠㅠㅠ
아무튼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소감은 댓글로 남겨주시면 ㅠㅠ 힘이 나여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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