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로 그대 감사합니다.
[인피니트/다각]제 8의 피해자 01
W. 여우
시계는 아무리 구박해도 제 맡은 일을 톡톡히 해내었다. 성규는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했고, 시계가 얄미웠다. 이미 시각은 열한시를 넘기었다. 이 일, 저 일에 치여 하루종일 편두통에 시달려 온 자신이 한심해지는 순간이었다. 성규는 서재를 나와 부엌으로 향했다. 진통제를 탈탈 털어 두 알을 꺼내었다. 졸졸- 따라내는 정수기가 컵에 담겨졌다. 성규는 이내 약을 마셨다. 차가운 물이 성규의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타박타박-. 차가운 날씨 탓인지 차게 식은 마룻바닥이 성규의 발바닥을 얼게 했다. 앗- 추워라……. 성규가 안방 문을 열고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꾸물꾸물 몸을 움직이니, 그 움직임에 우현이 걸리었다. 우현은 잠에 취해 팔을 뻗었다. 성규가 들어올 수 있게 공간을 만들어 준 것이었다. 성규는 따스하게 데워 진 우현의 품으로 자꾸만 파고들었다. 우현은 성규의 시린 손을 잡아 자신의 배에 대어주었다. 뜨끈한 온기가 성규의 몸 속 사이로 스며들어갔다. 천천히 눈을 감는 성규의 표정이 온화했다. 우현은 그런 성규를 곰인형마냥 예쁘게 껴안고는 등어리를 토닥여주었다. 만약 꿈이라면 절대 깨고 싶지 않을 동화같은 그림-. 성규는 진한 우현의 향에서 곤한 잠이 들었다. 허나, 곧 시기하듯 협탁 위에 올려 놓은 휴대폰의 액정이 반짝거렸다. 하루종일 두려울 정도로 느껴지던 진동은 이제 협탁과의 동맹으로 징징- 시끄럽게 울려대었다. 성규는 손을 뻗어 쌀쌀한 이불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큼지막하게 뜨는 이름. '강력계 이성열.' 성규가 고개를 내저으며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이내 전화를 받아들었다.
"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 제 1부 검사 김성규입니다."
잠에 취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반대편에서도 아직 잠에서 덜 깬 목소리가 건네져왔다. 아직, 성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성규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어, 그에게 대답했다. 잠시 만날 수 있냐는 질문에 성규가 당황했다. 머리맡에 놓인 시계를 확인하자, 시간은 한참 자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성열이 미친 것인지, 혹은 그만큼 중요한 일인지……. 성규는 모른 척, 내일로 넘겨버릴까 생각하다 애잔함이 느껴지는 성열의 목소리에 결국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전화가 끊기고, 성규는 이불 속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이불 밖은 춥고, 건조했다. 거짓하나 없이 정말 나가기가 싫었다. 성규는 인상을 찌푸렸다. 우현이 손을 꺼내어 성규의 미간을 꾹- 눌렀다. '자, 일어나자. 우리 성규-.' 우현은 토닥토닥 성규를 달래었다. 그리고는 이내 누워있는 성규에게 하나씩 옷도 입혀주었다. 바지 하나, 티 하나-. 추울지도 모르니까 두터운 티도 하나 더 겹쳐입혔다. 성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가기 싫다는 의미였다.
"너가 가겠다고 했잖아, 바보야."
"……그래도 가기 싫어-. 자고 싶어. 나 어제도 꼴딱 샜단 말이야. 지금 가도 아마 무슨 소리 인 지 못 알아 들을 거야……."
"으이구, 누가 밤 새 일하라고 치성 드리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해, 쉬엄쉬엄 해, 멍청아."
우현의 '멍청아' 라는 말에 성규가 발끈했다. '태워다 줘.' 성규는 틱틱 쏘는 말투로 우현을 공격했다. 하지만, 우현은 별로 공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인지 실실 웃기만 했다. 사실, 그도 그럴것이 삐진 척 걸어가는 그 모습이 잠에 취해 춤을 추는 건지, 걸어가는 건지 구분 할 수 없을 정도의 몸부림이었다. 결국 우현이 나서 손을 꼭 잡아주었다. 데려다 줄 터이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의사였다. 그제서야 성규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우현은 이내 준비를 해 나왔다. 그 순간, 우현에게도 전화가 걸려왔다. 휴대폰 액정에 뜬 이름은 '법치의학실 이호원' 이었다. 성규가 그 이름을 확인하고는 크게 깔깔대었다. 아무래도 자신 혼자 일하러 사라지는 것 보다야, 같이 일하는 것은 좋았으니까-. 그리고 성규의 웃음소리에 맞추어 우현의 얼굴도 굳어졌다. 성규의 예감이 맞은 것이었다. 우현은 급작스럽게 사체를 부검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는지 투덜대었다. 성규는 우현의 볼을 주욱- 늘리며 입을 맞추어주었다.
"너가 가겠다고 한 거잖아-. 자, 그럼 어디 가보실까나."
"……죽는다, 김성규-. 놀리지 마, 짜증난단 말이야."
* * * * *
연구원에 도착 한 후, 우현의 표정은 더욱이 돌처럼 굳었다. 하루종일 사체와 씨름하는 직업이라지만, 이렇게 자다말고 와서 하는 부검은 꺼림칙했다. 부검의라는 직업은 정말 역겨운 직업중에 하나였다. 그래도 자신은 이렇게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인정받는 곳에서 일을 하니, 아무래도 다행인 편이었다. 우현은 곧, 입구에 서 있는 호원을 만날 수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는 게 아무래도 숙직실에서 자다 나온 폼이었다. 우현은 성규에게 곧장 회의실로 가라 이르고는 호원을 따라갔다. 혼자 남은 성규는 멍하니 서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하마터면 연구원 입구에 서서 졸 뻔 했다. 성규는 또 바로 회의실로 발을 옮겼다. 이윽고, 도착한 회의실에는 성열과 처음 보는 사람 한 명이 앉아있었다. 끼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유리문이 당겨졌다. 성규는 사무적으로 웃어주며 두 사람 앞에 섰다. 생긋 웃는 성규의 모습에 은근히 졸고 있던 두 남정네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에 취해 휘청거리는 모습들이 참으로 웃겼다.
"김검사님, 오셨어요?"
"아, 네-. 이경사님. 아, 옆에 계신 분은 누구……?"
"아,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경사로 진급하면서 강력계로 넘어 온 장동우라고 합니다. 편하게 장경사라고 불러주세요. 살인사건은 둘째치고, 아예 강력계가 처음이라서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유, 아닙니다. 저야 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성열경사님과 함께 6년동안 살인관련사건을 처리해 온 서울지검 형사 제 1부 김성규검사라고 합니다."
사사로운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성규는 밝게 이야기 하는 듯 하면서도 은근히 동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성열과 자신이 잘 호흡을 맞춰왔는데 새로운 팀원은 방해가 될 뿐이었다. 게다가 처음 일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더더욱이 그랬다. 사체를 보고 토악질을 할 것은 물론, 무얼 좀 하려고 하면 힘들다고 중얼댈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필요없는 인력이라면 빨리 빼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성규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이에 성열이 이리저리 눈치를 보다 슬쩍 파일을 내밀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자료들이었다. '아, 고마워요-.' 성규는 성열이 건넨 파일을 들어올렸다. 한 장을 넘기자, 현장증거들이 찍힌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차마 눈뜨고 보기에도 참혹한 현장-. 성규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덮어버렸다. 그리고는 슬쩍 성열에게 다시 초점을 맞추었다.
"지금까지의 피해자는 총 4명이에요. 다들 30대 초의 여성이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를 가지고 있어요. 사망 사인부터 사망 시각, 장소까지 다 제각각이에요."
"별 다른 특징 같은 건 없어요?"
"있긴 해요-. 다들 7살짜리 아들을 둔 미혼모에요. 그리고 하나가 더 있긴 한데……, 이건 좀 끔찍할 정도로 미친 놈 같아요. 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런 짓을 한 건지 정말 물어보고 싶을 정도에요."
"……뭔데요?"
"……피해자들 모두 양쪽 가슴이 잘려 있었어요. 세 번째 피해자까지는 남부검의가 말하기를 죽은 이후에 잘렸다고 했어요. 사진 보시면 아시다시피 그냥 지방만 잘라낸 게 아니라 갈비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심각하게 잘려있어요, 전체적으로. 근데 이 놈 수법을 또 보니까 전문적으로 칼을 다룰 줄 아는 것 같더라구요. 여성의 신체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음, 우선 가슴부분이 깔끔하게 잘려나갔는데, 사람 근육이 워낙 튼튼해서 한 번에 자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거든요. 게다가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인데 단 한치의 각도차도 없이 깔끔하게 썰어내려면 아무래도 칼을 잘 다루는 직업이지 않을까 싶어요."
성규가 인상을 찌푸렸다. 우현이 요사이 한달간 열심히 부검했다는 그 연쇄살인이 이 사건인 것 같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전개되는 이야기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직 잠이 덜 깬 것이 분명했다. 성규는 다시 성열이 건넨 파일들을 넘겨보았다. 첫번째 피해자의 사인은 쇼크사였다. 그 밑에 쓰여있는 부가설명을 보아하니 젊은 여인이었지만 심한 당뇨병을 앓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었다. 두 번째 피해자는 급소인 명치에 칼을 찔린 것으로 적혀있었다. 세 번째 피해자는 목에 졸린 흔적-. 성규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아무래도 우현에게 물어볼 것이 많았다. 성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몇 장 더 읽어보다가 다시 성열을 바라보았다. 우선은 집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였다.
"……이경사님, 우선은 집으로 돌아갑시다. 우리가 이러고 있는다고 범인이 스스로 여기까지 들어올 것도 아니잖아요. 자료는 제가 우현이, 아니 부검의에게 따로 질문해서 따로 파일을 만들어 보내드릴게요."
"그래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 * * * *
성규는 성열과 동우를 보내고는 다시 연구원 안으로 들어왔다. 눈이 시려웠다.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그런 것 같았다. 성규는 바삐 발을 움직여 우현에게로 향했다. 투명한 유리창 안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우현의 모습이 보였다. 성규는 살금살금 걸어가나 싶다가, 왁- 하고 유리문을 열어제꼈다. 부검실안에서 조리있게 사체의 몸을 열어보던 우현이 흠칫 놀랐다. 성규는 그런 우현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낄낄 거리며 부검실 안으로 들어왔다. 우현이 얼굴을 구겼다. 아무래도 성규가 사체를 보는 것이 싫었다. 우현은 수술용 칼을 이용해 빠르게 사체의 속을 열고 있었다. 뻘겋게 굳어버린 내장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성규는 한창 집중하고 있는 우현을 보며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무엇을 빠른 속도로 적어내려가는 호원의 곁에 와 섰다. 이것저것 물어 볼 것이 많았다.
"호원씨, 첫 번째 피해자가 당뇨병환자라는 걸 어떻게 아신거에요? 죽음으로 까지 이어질 수 있는 쇼크라면 누구든지 올 수 있잖아요."
"……음, 우현이 형이 콩팥이 좀 이상하다고 하길래 바로 조직검사했죠. 광학현미경소견 보시면 아실테지만 사구체에 다수 결절이 형성되어 있거든요. 또 기저막이 균일하게 두꺼워져 있구요. 이게 심각한 당뇨병 환자 인 걸 알려주거든요. 그런데 쇼크가 왔으니, 당연히 합병증인 고혈압이 영향을 미쳤겠죠."
"……아, 그렇구나-. 그럼 두 번째 환자는 그냥 급소에 칼을 맞은 게 죽은 사인이에요?"
"아, 그건 우현이 형이 알고 있을 거에요. 아무래도 부검쪽은 형이 더 잘 알거든요."
"우현아, 맞아?"
"……급소에 칼이 박힌다고 해서 무조건 죽는 건 아니야. 그런데 그 피해자의 자상(刺傷; 칼 따위의 날카로운 것에 찔려서 입은 상처.)을 보면 근육 조직이 시계반대방향으로 뒤틀린 게 보여. 이건 범인이 왼손잡이라는 걸 말해. 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경우이거나. 어찌되었든 자세히 보면 미세하지만 긁히면서 올라 간 것이 눈에 들어 와. 내장의 기운이 다 모이는 곳을 다 헤집에 놨는데 당연히 죽겠지."
성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자신과는 맞지 않는 분야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과와는 관계가 멀었다. 우현은 이내 네 번째 피해자의 장기를 이리저리 살피었다. 호원은 멀뚱히 생각하고 있는 성규를 바라보다 다시 우현의 곁으로 가 더 빠른 속도로 글을 적어내려갔다. 과연 이들은 왜 죽음을 당했을까……. 성규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범인은 잡을 수 있는 걸까……. 왼손잡이의 범인-. 성규가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생각하기조차 귀찮은 시각으로 점점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성규는 부검실 한 켠에 놓인 의자에 앉아버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팔을 베고 고개를 파묻었다. 아무래도 잠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곧 이어, 성규는 잘 자고 있다는 것을 표출하려는지 드르렁- 대는 콧소리를 내었다. 우현은 슬쩍 곁눈질로 성규를 바라보다가 푸흐- 하고 웃어버렸다. 호원 또한 웃음을 참으려고 애쓰는 듯 싶었으나 결국 쿡쿡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김성규 저거 진짜……, 으-. 부검실에서 잠이 오나 몰라. 그냥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 남편이 버젓이 부검을 하고 있는데……."
"욕하실 자격도 없으세요, 형은-. 그러면서도 좋다고 헤헤거리시잖아요."
"헤헤거리지는 않았어, 임마-. 실실이면 또 모를까. 성규 감기 걸릴라, 날도 추운데……. 저기 가서 내 겉옷 좀 성규 위에 덮어줘라."
"분부대로 행해야죠, 뭐-. 부검이나 제대로 해줘요."
* * * * *
*여우 사담*
안녕하세요, 여우입니다. 아잌아잌 오늘 1화가 올라왔어요.
고심 끝에 등장인물은 안 올리기로 결정햇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읽기 시름 말아여.. 는 무슨 죄송해여 읽어줘여
댓글 달아줘여 안 달아쥬면 내 안구에 습기가 쥬륵쥬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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