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ㅇㅇㅇ에서 오징어로 이름 바꿨어요!
박찬열, 날 기억해주다니 영광으로 여겨야 할지.
“찬열이랑 징어가 서로 아는 사이니? 그럼 징어 자리는…”
나를 아는 사람이 나타나니, 아무래도 이 선생님께서 나와 박찬열을 같은 자리로 붙여주실 생각인 것 같았지만 새 출발의 첫 시작을 박찬열과 맞이하기는 너무나도 싫었다. 그리고 앞으로 쏠리게 될 아이들의 관심을 괜히 처음부터 잔뜩 받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의 소맷자락을 살며시 끌어당겨 다른 아이와 앉게 해달라고 속삭였다. 약간 의아한 듯한 눈치였지만 격하게 환영해주던 바보 같은 모습과는 달리 영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내 옆자리에 앉게 될 사람은…
도경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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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종대야. 일어나봐! 그 전학생 오늘 온다던 전학생 말이야!”
“아, 시끄러워 새끼야. 전학생 안 궁금해. 자는 데 깨우고 지랄이야.”
“헐, 너 안 들으면 후회할 걸?”
“안 들어.”
“헐… 백현이 상처…”
“아 존나 소름 돋게. 꺼져 그냥.”
“전학생 오징어래. 그 돼지 오징어.”
“오징어? 작년에 우리 반이었던?”
“그래. 근데 대박인 게. 그냥 보면 아무도 못 알아봐. 나도 처음에 보고 저게 진짜 오징어가 맞나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니까.”
못 알아본다니 무슨 소리야. 성형수술을 한 게 아닌 이상 얼굴은 그대로 일텐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오징어가 바뀌었다는 소리를 하는 백현의 말을 종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얼굴이 어딜 간다고.
“야, 못 믿겠으면 니가 직접가서 봐봐.”
“몇 반이야.”
“우리 옆반.”
두 개의 옆반 중 어느 반인지 백현은 말하지 않았지만, 반을 나서자마자 종대는 쉽게 어느 반을 말했던 것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이미 징어 반 복도는 새로운 전학생이 궁금한 학생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앞문과 뒷문 모두 학생들에 가로 막혀 들어갈 수 없던 종대는 앞문을 막아서고 있던 한 남학생의 다리를 발로 차 문에서 비켜서게 했다.
“악! 뭐야!”
“비켜.”
징어의 반 복도는 그 어떤 전학생이 왔던 때보다 구경 온 학생들로 가득 차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전학 갔었던 뚱뚱했던 징어가 같은 반이었던 학생들조차 못 알아볼 정도로 환골탈태해서 돌아왔다는 소문이 온 학교에 퍼지자 징어를 한 번도 본적 없는 신입생들부터 삼학년들까지 궁금해져서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었다.
그냥 살만 빼고 돌아왔어도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의 주목을 한껏 받았을 징어였지만, 살을 빼고 난 뒤의 변화가 더욱더 소문을 널리 퍼뜨리고 아이들에게 궁금증을 심어주었다.
이전에는 살에 파묻혀서 낮게만 보였던 코가 볼살이 빠지면서 그 높이를 드러내었고, 턱을 에워싸고 있던 살로 인해 사각턱으로 보였던 징어의 얼굴은 그야말로 브이라인이라 불리는 갸냘픈 턱선을 갖게 되었다. 또한 살이 빠지면서 쌍커풀 또한 자연스레 자리잡아 눈은 배로 커지게 되었다. 더 이상 예전 얼굴을 지금의 얼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길을 가다 마주치는 그 누가 봐도, 예뻐서 넋을 놓고 바라볼 그런 얼굴이었다. 볼살이 사라진 징어를 보고 수정이는 더 이상 만질 볼살이 없다며 아쉬워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운동만 하느라 학교와 헬스장만을 오가던 징어가 아직 사람들을 많이 마주하지 못해 자신의 상태에 대해 확실히 깨닫지 못했지만 징어 역시 자신이 많이 변했다는 사실만은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작년의 이 학교에서는 가질 수 없었던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다.
사실 살 빼기 이전에도 징어의 얼굴은 살찐 사람 치고는 그렇게 못생긴 편은 아니었다. 자세히 뜯어 보면 현재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교 친구들과 사람들은 징어의 외부적인 요소만을 보고 판단하기에 급급했고, 징어에게 크나큰 상처만을 안겨주었다. 징어의 부모님은 살 빼기 전 징어에게 살이 쪄도 예쁘다며 온갖 칭찬을 해주셨지만, 이미 학교와 사회로부터의 편견이 마음 속에 박혀버린 징어에겐 통하지 않았었다.
징어의 반에 들어선 종대는 백현의 말대로 한눈에 징어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징어의 옆에서 재잘재잘 떠들고 있는 박찬열을 발견하자 옆에 있는 상대가 징어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정말 그야말로 종대의 입이 딱 벌어지게 하는 변화였다.
옆에서 귀가 따가울 정도로 떠들고 있는 박찬열이 징어는 귀찮았고 짜증나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무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내가 살쪘을 때는 바퀴벌레 쳐다보듯 피하기 급급하고 어떻게 괴롭힐 지 궁리하던 애가 지금 옆에서 관심을 끌어보겠다고 이러고 있는 꼴이 정말 같잖고 우스웠다. 그래서 한마디도 대꾸해주지 않았다. 니가 예전에 그렇게 깔봤던 애가 지금은 너한테 그대로 해주는 걸 보니까 기분이 어떨까?
“징어야, 내 말 듣고 있어? 말 좀 해봐. 무안하잖아.”
무안하다며 말을 해보라고 재촉하는 박찬열을 무시한 채 갑자기 밀려든 인파에 눈만 크게 뜨고 가만히 앉아 있던 도경수에게 말을 걸었다.
“경수야, 너 일학년 때 몇 반이었어?”
“8반.”
사실 알고 있었다. 도경수 역시 김종대의 친구였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박찬열과는 달리 나를 괴롭히지 않았달까. 딱히 괴롭히지도 그렇다고 잘해주지도 않았다. 그저 방관자일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도경수는 방관자에 머물러 있다. 나를 알고 있음이 틀림 없음에도 내가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이후로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쩌면 나를 모르는 게 아닐까. 그 당시에도 내게 관심이 없어서 나를 몰랐던 게 아닐까.
옆에서 말을 걸고 있는 박찬열을 계속해서 무시한 채 도경수에게 말을 거는 징어를 본 종대는 여전히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학생들을 밀치며 징어의 앞으로 다가갔다.
“오징어, 너 달라졌다고 살판 났다? 박찬열 존나 무시하고?”
김종대다.
안녕 종대야? 언제 나타나나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