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느낌에 슬쩍 눈을 떴다. 커튼을 걷은건지 햇빛이 너무 강해서 눈을 바로 뜰수가 없었다.
다시 눈을 감고 몸을 뒤척이며 자는척을 하니, 어제 데려온 꼬마애가 침대 위에서 방방 뛰며 내 꿀잠을 방해했다.
"일어나 아저씨!! 오늘 내 옷 사러가기로 했잖아-!!"
"...어제는 아빠 해달라며. 근데 왜 지금은 아저씨냐.."
"그야 아저씨는 나보다 늙었잖아!!그러니깐 아저씨야!"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생긴건 귀엽게 생겼으면서 성격은 왜 저런지..
이제 겨우 고2가 되어가는 날 아저씨라고 부르는걸보니 참, 주름에 민감한 박경이 들으면 요절이라도 하겠다. 이번 겨울방학 끝나기 전에 박경 한번 집에 초대해야겠네.
기지개를 펴며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선 찬찬히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얜 내가 깨기 전까지 씻지도 않은것같은데...부엌 말고는 다 돌아다녀도 된다니까 왜 안씻은거야.
"넌 여기 세면대에서 씻어. 난 욕실에서 샤워하고 나올테니까, 다 씻으면 얼굴 꼼꼼하게 닦고 식탁에 앉아있어라. 요리기구 건들이려면 죽을각오도 같이하고"
"헐..아저씨 살벌하다 진짜. 나 이제겨우 다섯살인데?"
"다섯살이 다섯살다워야 다섯살이지"
"뿌우~ 태이리 5쨜이에여"
"죽는다 진짜"
"죄송합니다"
하여튼, 어려서 그런가 속이없네.
욕실로 들어가자마자 옷을 벗었다. 뜻뜨미지근한 물로 적당히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세수도 하고 면도까지 마치니 거울속 내가 조금이나마 잘생겨보였다. 뭐, 나야 원래 잘생겨서 학교의 인기인이지만.
거울을보며 저렴한 멘트를 몇번 중얼거린뒤, 욕실 찬장에 늘 마련되있는 검은색 반팔티와 5부바지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머리의 물기가 덜 말라서 수건으로 탈탈털며 밖으로 나오니 꼬맹이는 아직도 안씻고 가만히 세면대를 노려보고있다.
"너 왜 아직 안씼었냐"
"..와..진짜..세면대가 안닿아여.."
키가 내 허리만큼도 안오는 애인만큼, 씻는게 힘든가보다. 뭔가 괜히 데려온것같기도하고..어쩔수없지,뭐.
이태일을 한손으로 안아들고 내 머리를 닦던 수건을 구석에 던졌다. 눈 앞 찬장에서 새 수건을 하나 꺼내 미온수에 수건을 적셨다. 그리고 그대로 얘 얼굴로 직행.
"으앗!뭐하는거야-!!"
"니 그 고사리같은 손으로 언제 다씻을래? 너 오늘 사야되는거 엄청 많거든. 이렇게 해주는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라"
물범벅인 수건으로 애 얼굴을 몇번 문지르고 눈꼽까지 떼준 다음에야 젖지않은 부분으로 얼굴을 꼼꼼히 닦아줬다.
한손에 애를 든 자세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가, 어제 저녁에 박경에게 사정사정 빌려온 어린애 옷을 이태일에게 입혔다.
빨간색 스냅백에 컬러프린팅 반팔티, 가죽자켓에 핏이 딱 맞아 떨어지는 긴바지. 신발은 뭐, 얘가 신고다니던 흰색 하이탑이면 되겠지.
이태일을 거실 쇼파에 내려놓고 캐릭터 양말까지 신겨준 뒤에야 겨우 집 밖으로 나올수있었다.
.
.
.
"아저씨,아저씨!!나 죠기 아이스크림 사주세여!!"
애 옷도 왠만큼 다 샀고..대형마트에서 먹을것좀 사려하니 이젠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난리다. 지갑에서 5000원짜리 한장을 꺼내서 손에 쥐어준 다음 한쪽 벽에 기대서 폰을 만지작거렸다.
다음주면 크리스마슨데...쟤 선물을 사줘야하나.
어떻게하는게 좋을까 고민하며 이태일을 바라보니 양손 가득 아이스크림을 쥐고선 이쪽으로 도도도 달려오고 있었다. 내 앞에 서자마자 아이스크림을 하나 내밀길래 이게 뭐냐는듯 바라보니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다.
복어같아.
"일부러 아저씨 생각해서 내가 사온건데, 안머글꺼에여?"
아이스크림을 하나 받아들며 폰을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그래봤자 내 돈으로 산건데 뭐"
"그래도 나 잘했죠? 솔직히 아저씨도 먹고싶자나여!! 맞죠?"
그래그래.
헝클어진 이태일의 머리를 대충 슬슬쓸어 정리해준뒤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고작 머리하나 정리해주는게 좋은지, 제 손 한짝을 머리에 얹고선 헤헤거리며 웃는다.
"아 맞다."
"..왜여?"
"앞으론 마트에서 뛰어다니지마라. 안그래도 사람많은데 다치면 어쩔려고.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게 그렇게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니면 위험해요,예?"
요즘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조심해야지. 이태일의 머리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이태일의 손을 잡고 계산을 한 뒤에 마트를 빠져나왔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아이스크림 먹는것도 잊고선 자꾸 헤실헤실 웃고있다.
평소에도 이렇게 웃고다니면 얼마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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