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를 정리할 틈도 없이 쇼파에 뻗어버렸다.
마트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길, 이태일은 정말 쉴틈없이 말했다. 고 작은 입에서 뭐가 그렇게 자꾸 나오는지.
나이먹은 내가 따라가기엔 벅찰정도로 말을 많이해서 진이 다 빠져버렸다.
"아저씨 아저씨, 아까 얼룩냥냥이 봤어여?"
"..얼룩송아지도 아니고 얼룩냥냥이는 또 뭐야"
"아까 담 위에서 자던 고양이여!! 그그 ,검정색이랑 주황색이랑 흰색 섞여있던 고양이!!"
그러고보니 그런 고양이를 본 것같기도하고
"완-전 귀엽지 않아여? 우리도 나중에 고양이 키우면 안되요?"
글쎄, 생각해보고.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이다. 점심은 대충 아무꺼나 사먹였지만..저녁은 뭘로하지?
박경한테 전화해야겠다.
'얼어붙은 날 녹여 지나치-'
[여보세요-쟈기 왱? 왱? 왱?]
"장난치지말고. 나 물어볼거있는데"
[어, 뭔데?]
"5살짜리 어린애한테 뭐 먹여야되냐?"
[헐. 그것도 모름? 이거 완전 멍청이네 우죠]
"다물고"
[그냥 니가 먹는 음식 똑같이 만들어서 주면되는데. 인스턴트 식품 몸에 안 좋으니까 많이 먹이지말고, 컵라면도 안되고.
자극적인 음식 먹기 힘들어하니까 좀 순한 음식들로. 일단 일반 가정식이 제일 좋지.]
"어, 땡큐. 끊음"
일반 가정식은 안먹은지 오래되서..일단 간단하게 오므라이스나 하나 해줘야겠다.
마트 봉지에서 양파와 당근을 꺼내 씻었다. 둘을 물에 담가두고 밥솥에서 밥을 몇주걱 퍼서 꺼내둔 뒤 몇번 휘저어 식혔다.
양파와 당근을 잘게 채썬다음 팬에 볶고 밥을 넣고 또 볶다가 간하고. 찬장에서 안쓰던 큰 접시 둘을 꺼내 물에 헹군다음 밥을 조심스레 원형으로 담고 달걀지단을 부쳤다.
맛있는 냄새 덕에 절로 배가 고파졌다.
하, 역시 내 요리솜시는 죽지않았구만.
꼬맹이도 배가고픈건지 양손으로 배를 부여잡고 내 옆으로 왔다. 계란지단 하나를 다 부치고 두개째 부쳐갈때쯤 팔이 묵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 뭐야"
"아저씨 나 아~"
내 후드집업을 꽉 잡고 입을 벌리는 꼬맹이에게 지단 끝부분을 조금 잘라서 먹여줬다.
꼬맹이 입맛에도 먹을만한건지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선 오물오물 잘도 먹는 모습에 약간 흐뭇해졌다.
"맛있냐?"
"웅! 완젼 맛있다. 헤헤, 아저씨 요리사같아!"
"화장실가서 깨끗하게 손씻고 식탁에 앉아있어. 곧 다 되니까"
"넵-"
바로 뒤돌아 거실을 뽀르르 나가는 꼬맹이를 바라보다, 갑작스러운 타는냄새에 고개를 돌렸다. 지단 끝부분이 타고있길래 뒤집개로 지단을 들어올렸다.
탄건 그냥 내가 먹어야지 라는 마음으로 지단을 볶음밥위에 대강 올리고 접시를 식탁으로 옮겼다.
숫가락을 올려놓고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고있자니 언제온건지, 꼬맹이가 숫가락을 쥐고 '밥,밥,밥'거리며 식탁을 콩콩 두드리고있었다.
"..밥이 그렇게 좋아?"
"으응. 밥먹는거 기분좋으니까! 아, 근데 밥만 좋은건 아니구우-아져씨도 짱짱 죠아!!"
말이 끝나자마자 허겁지겁 밥을 먹는 꼬맹이의 모습에 피실피실 웃음이 나왔다. 그제서야 나도 숫가락을 들고 밥을 먹으려는데 대뜸 꼬맹이가 켁켁거리며 제 목을 부여잡았다.
꼬맹이의 얼굴이 파리해지기에 급하게 컵에 물을따라 꼬맹이에게 직접 물을 먹여줬다.
" ..파하-..쥬글뻔했다..으앙,쥬금.."
"니 밥 아무도 안뺏어먹어. 그니까 제발 천천히먹자,우리"
"그래도 맛있는걸? 맛있는 음식을 앞에두고 조신하게 먹는건 음식에대한 예의가 아니라했어!"
"..그런건 누구한테 배운거야..?"
"헤헿.안가르쳐줄꺼얌 헿"
그래라 뭐. 꼬맹이의 말에 가볍게 대답하고선 다시 밥을 먹었다.
조금 타버린 지단이 먹기 거슬렸지만 '음식에 대한 예의'를 논하는 눈 앞 꼬맹이를 보며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그렇게 한참을 먹던 중 문득 수저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하나뿐이란것이 의아해져 꼬맹이를 바라봤다.
벌써 밥을 다 먹은건지 숟가락을 쭉쭉 빨며 내 밥을 뚫어져라 바라보고있었다.
...내 밥접시를 꼬맹이 앞에 슬쩍 밀어주며 물었다.
"...더 먹을래?"
"따..딱히 배고픈건 아니거든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접시에 손을 뻗는 꼬맹이가 괘씸해 일부러 꼬맹이를 조금 골리기로했다.
"아-그래? 난 지금 배불러서 이 밥 다 못먹겠는데..버려야겠네"
"..어,아어?!"
"아-..참 큰일이네~? 버리기엔 아깝고, 먹을 사람은 없고"
밥접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큰눈으로 눈동자만 도르륵 도르륵 굴려대는 꼬맹이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걸 어째 진짜"
"..나..내가 머글래.."
"어?뭐라고?잘 안들리는데?"
내가 먹고싶어-!!
빼액 소리를 지르는 꼬맹이에 파하하 웃으며 접시를 내려놓았다. 접시를 내려놓기 무섭게 밥을 흡입하듯 먹는 꼬맹이가 마냥 귀여워보였다.
"그래그래. 매일 이렇게 밥 해줄테니까 많-이 먹어라.많이"
"..앙그애도 그어꺼야아..(안그래도 그럴꺼야..)"
꼬맹이의 입주변에 붙은 밥풀을 때주며 꼬맹이를 바라봤다.
꼬맹이가 이 집에 들어온지 하루째.
나뿐이던 집에 활기가 돌기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