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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XX] 전지적 이홍빈 시점 7년 후 빅스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f/8/3/f83f3d219c772199544a66aa4a0d8567.jpg)
"홍빈아, 여기봐!!" "미친놈. 진짜, 떳다고 인사도 안하네." "홍빈아 어제 보낸건 잘 봤어?" 유독 나에게는 팬이라는 이름의 안티가 많이 붙었다. 처음 데뷔를 했을 때 나는 우리를 보러와주는 팬들이 정말 고마웠다. 팬들은 늘 나에게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했고, 너가 있어서 행복하다는 그런 달콤한 말을 해주었다. 편지 한 장, 한 장에도 고마운 말들 뿐이었다. 사랑한다, 멋있다, 자랑스럽다, 늘 너희가 최고다. 그런 팬들이 있었기에 든든했고, 늘 감사했다. 근데, 언젠가부터 팬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집착을 행했다. 음악방송 대기실에서 받은 편지를 뜯으니 그 안에 난도질 된 나의 사진과 부셔진 면도칼이 들어있었다. 그 자리에서 받은 편지를 떨어트렸고 떨어진 소리에 놀라서 다가온 택운이형은 아무말없이 그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분명 내게 편지를 준 사람은 팬들 뿐이었는데 언제 이런게 섞여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편지가 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어느 안티의 소행이겠거니 했다. 그 일이 있고 몇일 뒤, 멤버들 모두 휴가를 떠났고 나는 조금 늦게 출발하던 날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검은 봉지가 있었다. 나가려다가 다시 들어와 검은 봉지를 열어보니 죽은 쥐 시체 3마리가 들어있었다. 바로 화장실에 달려가 오바이트를 했다. 택운이 형이 떠난지 고작 10분도 채되지않았기 때문에 숙소 밖의 팬들은 모두 나 혼자 여기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무서웠다. 그 아이들의 소행임이 분명했기에 화장실에서 울음을 참으며 택운이형에게 연락을 했다. 택운이형은 가던길을 돌려서 급하게 뛰며 우리 숙소로 들어왔다. 변기통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나를 택운이형은 토닥여주었다. 그리고는 검은 봉지를 밖으로 가지고 나갔다.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나를 택운이형이 일으켜 세웠고 내 귀에 이어폰을 꽂게 하고 노래를 튼 다음 내 짐을 가지고 주차장으로 데리고 가 자신의 차에 태웠다. 주차장에는 여전히 팬들이 있었다. 내 얼빠진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웃고 있었다. 택운이형이 내 어깨를 좀 더 꽉 잡았다. "미친, 또 정택운 불렀다. 홍빈아, 선물 잘 받았어?" "야, 쟤 자기 혼자 아무것도 못 하잖아. 다음번에는 비둘기 잡아다줄까 홍빈아?" 이어폰에서 흐르는 노래 사이로 문뜩 들리는 단어들에 소름이 끼쳤다. 차 안에 타서도 의도적으로 그 쪽은 쳐다보지 않았다. 무섭다, 몸이 덜덜 떨린다. "형, 나 고소할래." 데뷔 3년이 갓 넘고, 우리가 대상을 막 받았을 때였다. 아무리 팬이라지만 점점 도가 지나쳐갔다. 이제 그 아이들은 더이상 팬이 아니었다. 단지 나에게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끌어보려고 별 짓을 다하는 악마일 뿐이었다. 택운이형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신고해서 처벌받았으면 진작에 했지. 쟤네 경찰서 갔다오면 널 고소 할 애들이야. 내가 매니저형한테 말해서 경비 좀 더 삼엄하게 해달라고 할게." "어떻게 이렇게 살아? 나한테만 저래, 쟤네들. 면도칼, 죽은 쥐, 이제 또 뭐가 나올지 모르겠어서 불안해. 하, 진짜 나 무서워서 잠이 안와." "알아. 그래도 안되. 고소해봤자 쟤네 금방 훈방조치되고 지금보다 더 심해질꺼야. 조금만 참자, 조금만." 나를 달래는 택운이형의 목소리에 얼굴에 마른세수를 했다. 나는 항상 약자였고 그들은 늘 강자였다. 그 후로 나는 더 이상 팬들에게 잘해주지 않았고 웃어주지 않았다. 어딘가를 나갈때면 늘 소리를 최대한으로 킨 이어폰을 꼈고 데뷔 5년이 넘어갔을 무렵에는 이제 생리대나, 속옷, 난도질 되어있는 내 사진을 보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런 익숙함이 미치도록 싫었다.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다. 밤에는 여전히 잠이 오지 않는다. 눈을 감으면 여전히 몇년 전 봤던 쥐 3마리의 잔상이 떠올랐다.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약물치료를 병행했다. 자기 전에는 꼭 신경안정제를 먹었다. 그러나 멤버들 누구도 알지못했다. 철저하게 정신과 진료에 대해서 숨기려고 했던 나의 노력이었다. 나의 20대를 받쳤던 빅스의 해체는 곧 내가 그나마 의지할 수 있던 버팀목이 사라지는 꼴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빅스를 이어나가고 싶지 않았다.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 빅스라는 그룹에 들어오면서 기뻤던 일 보다 슬프고, 힘든 일이 더 많아졌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미련없이 빅스를 떠나기로 했다. 멤버들에게는 연기를 한다고 했지만 나는 외국에 가있을 예정이었고, 이미 회사와의 절차는 끝나있는 상태였다. 빅스가 재계약과 해체를 논할 때 쯤 나의 몸 상태는 최악에 이르렀고, 신경쇠약 증세는 악화 될 때로 악화 되있었다. 의사선생님이 소개시켜준 외국 병원에 멤버들과 팬들 모르게 떠날 생각이었고 나는 우리가 숙소를 나오던 그 날 바로 공항으로 향하였다. 호주는 깨끗했고, 나를 아는 사람도 없었고 살기 좋은 나라였다. 의사는 진료 중 병이 다 나았을 때 나의 소원을 물어봤고 우습게도 나는 언젠가 내가 팬들에게 다시 웃는 날이 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여전히, 나는 그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마, 평생을 이렇게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때나마 나를 진심으로 웃게했던 그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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