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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XX] 전지적 이재환 시점 7년 후 빅스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0/4/7/047903b18455406053cd66d8302b70bc.gif)
데뷔 후 7년이 지났다. 그리고 나는 폭행 사건에 휘말린 아이돌이 되있었다. 일반인 친구들과의 가벼운 술자리, 내게는 이것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20살 초반의 남자가 내게 반말을 뱉는다. 친구들이 발끈했지만 그런 친구들을 진정시키며 애써 무시했다. "야, 너가 연예인이냐? 어? 연예인이냐고? 참나, 연예인이면 다야? 연예인이면 이렇게 사람 무시해도되?" 술 취한 대학생이라고 치부하고 얼른 자리를 정리했다. 계산하는 곳 까지 따라나온 그 남자는 내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이와중에도 내일 있을 화보를 걱정하는 나를 보면서 참, 나도 나구나라고 생각했다. 일방적인 폭행에 손을 들어 그의 팔을 막았다. 그 후 나는 술집에서 일반인에게 싸움을 건 가해자가 되있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숙소로 돌아오자 택운이형이 걱정스레 날 쳐다본다. 얼굴을 마주한건 몇일만인 것 같다. "형." "괜찮아, 다 잘 될거야." 무슨 일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날 꽉 안아주는 형에게 안겨 한참을 울었다. 기자들과 팬들의 문자,전화로 핸드폰은 이미 북새통이었다. 택운이형은 내 핸드폰 배터리를 분리시키고는 들어가서 한 숨 자고 오라고 했다. 그냥 형이 그렇게 말하니까 잠이 왔다. 그리고 눈을 뜨니 내 옆에는 울고계신 엄마가 있었다. 괜찮은거니, 어디 다친 곳은 없니, 내 아가 왜 울어. 엄마는 날 쓰다듬으며 한참을 우셨다. 그리고 나 역시도 엄마 품에서 아이처럼 울었다. 그 남자는 전치 8주짜리 진단서를 끊어와서 나에게 합의금을 요구했다. 더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합의금을 줬고 내가 생각해도 참 내가 병신같다고 느껴졌다. 폭행 사건 이후 내가 맡고있던 프로와 학연이형과 함께하던 DJ에서 자진하차를 했다. 그 후로는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아니, 도저히 나갈 용기가 없었다. 상혁이는 게임을 하겠다는 명분으로 내 노트북을 가져갔다. 하지만, 인터넷을 도배하고있는 내 욕 때문임은 말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이돌 빅스의 멤버라는 자리는 내게 너무나 큰 부담이다. 자의든 타의든 사고에 휘말린 나 때문에 멤버들은 광고에 대한 위약금을 물어야했다. 나만 없었더라면 여전히 승승장구 할 형들과 동생들이 나 때문에 주저 앉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빅스로서가 아닌 개개인으로도 충분히 잘 할 멤버들이기에 나는 내가 섞인 빅스라는 족쇄를 풀어주고 싶었다. 일부러 학연이형에게 가서 재계약 이야기를 꺼냈고 몇개의 회사에서 컨텍이 들어왔음을 얘기했다. 학연이형은 오랜만에 자신의 방에 들어와 하는 얘기가 재계약 얘기니 잠시 표정을 굳혔지만 금새 어느 회사가 좋겠다라며 내게 조언을 해주었다. 그렇게 회사와 재계약을 하지 않고 나온 나의 옆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일단은 집에 갔고 부모님과 밥을 먹었고 짐을 풀렀다. 그렇게 몇일이 지나고 빅스의 해체 기자회견이 대서특필 되었고 나는 그제서야 우리가 끝났구나라고 생각했다. 소주를 한 병 사서 방으로 들어왔다. 티비에선 우리의 데뷔 초 모습부터 최근 앨범까지 우리의 무대영상등을 틀면서 우리의 해체를 안타까워했다. 앨범을 하나씩 꺼내서 보고, 하나씩 나눠가진 1등 트로피를 쓸어도보고, 3주년 기념으로 바다에 가서 찍은 단체사진도 보고나니 금새 술 한 병이 사라져있었다. 나는 다시 풀어놓은 짐을 챙겼다. 그리고 캐나다로 향하는 편도 티켓을 예매했다. 가족에게는 잠시 머리를 식힌다고 하고 지체하지 않고 공항을 향해 갔다. 늘 멤버들과 함께 걷던 공항을 나 혼자 걷고있자니 쓸쓸했다. 과거에도, 지금도, 그 어느 날에도 언제나 내 꿈일 빅스를 나는 캐나다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내 손으로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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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애슐리 가자는데 좀 정떨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