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찬열이 볼펜을 딸깍이다 말고 백현을 쳐다보았다.백현은 이제 수업시간이든 아니든 꼭 안경을 착용한 채 열심히 공부에 몰두하고 있었다.진짜,범생이같다.찬열은 생각했다.그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든 생각에 백현의 볼가에 손가락을 대고 백현아-하고 작게 불러보았다.백현이 돌아봄과 동시에 손가락에 폭 닿는 볼이 말랑해서 찬열은 웃음이 실실 터져나왔다.백현이 귀찮은듯,아니면 유치하다는 듯 인상을 조금 찡그렸다.
"뭐야.."
백현의 공부에 장애물은 아마 찬열인 듯 했다.쉬는 시간이건 점심시간이건 왜 저렇게까지 하지-싶을 정도로 열심인 백현을 보자 찬열은 따라 공부하기는 커녕,백현이 공부에 몰두하자 심심할 따름일 뿐이었다.나랑 말 좀 하자고-찬열은 오히려 백현이 야속했다.손으로 볼을 매만지다가 찬열을 힐금 보며 하지마!하고 제딴에는 단호하게 말하고는 다시 펜을 움켜쥐는데 방해하고 싶은 마음에 찬열은 백현아-백현아 여러 번도 그를 불러댔다.
백현아,백현아- 계속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찬열에 백현은 조금씩 짜증이 났다.입을 꾹 다무는데,그것을 보고는 또 찬열이 미안,삐졌어?하고 빈정거렸다-백현이 느끼기에-.아니거든….백현이 짜증난 투로 말했다.그런 백현을 보고 있자니 찬열은 그 반응이 귀여워 얼굴 가득 웃음기를 담은 채 펜을 꼭 잡은 채 또박또박 글씨를 써내려가는 그를 한없이 쳐다봤다.백현이 괴롭히는 거 너무 재밌다.찬열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웃었다.
"우리 내기할래?"
찬열이 열중하고 있는 백현에게 말 한 마디를 툭 던지자,이번엔 제법 흥미가 생겼는지 백현이 내기?하고 찬열을 돌아봤다.
"시험 더 잘 본 사람한테,뭐 해주는거 어때"
"..그 뭐가 뭔데?"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봐야지"
백현은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그저 툭 뱉은 말인데 꽤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에 조금 당황스러운 찬열이었다.백현은 그렇게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난 너한테 뭐 바라는 거 없는데…하고 말했다.아,그래도.. 찬열이 떼를 쓰듯 덧붙였다.다시 고민하는 듯 보이던 백현이 결국 그래-하고 승낙의 의미를 보였다.얼떨결에 내기를 받아들인 백현은 관심 없는 듯 다시 공부에 눈을 돌리면서도 찬열이가 왜 저런 말을 하지-곰곰히 생각해보았다.나한테 뭐 바라는 게 있나?백현은 궁금해졌다.
"진짜지?"
"응-"
찬열은 사실 딱히 생각해둔 것이 없었다.찬열은 공부를 시작하지도 않아 백현이 시험을 잘 볼 가능성이 더 높았지만 그러든 말든 백현에게 뭘 해달라고 할까 고민한는 것에 즐거워했다.찬열은,사실 자신이 백현을 좋아한다는 것을 안 뒤로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그저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조금 더 신경 쓰이고 귀엽게 느껴질 뿐이었다.또 찬열은 백현이 왜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요즘 들어 변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화 한 번 내는 것에도 스스로가 놀라던 그가 언제부터인가 투정을 부리며,또 저에게 불평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좋았다.백현은 모를 것이라 생각했겠지만,반년 이상 지내오며 백현은 항상 무언가 벽을 쳐둔 느낌을 찬열은 분명 조금이나마 느꼈기 때문이었다.찬열은 꼭 길고양이를 길들인 것 같은 기분에 뿌듯함을 느꼈다.백현아-하며,찬열은 하마터면 백현의 머리를 쓰담을 뻔 했다.
세훈은 요즘 찬열의 반을 들리는 횟수가 잦아졌다.백현은 언제부터인가 하니 자신과 찬열,그리고 세훈이 셋이서 찬열의 집으로 놀러 갔을 때 이후인 것 같았다.사실 실상은 이러했다.찬열과 세훈은 같은 고등학교가 된 후 서로 기뻐하며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붙어다닐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지만,그런 생각을 깨버린 것이 바로 백현이었다.찬열은 백현과 짝이 된 후 같이 밥을 먹고 또 시간이 맞으면 같이 하교도 했다.
그렇게 백현의 등장으로 자연스레 세훈과 조금 거릴 둔 찬열은 얼마 가지 않아 자신의 반에 오지 말라는 말까지 했었다.세훈은 그 뜻을 알 턱이 없어 어리둥절했지만 찬열은 이유조차 말해주지 않았다.사실 세훈은 그 반년이 넘는 동안 찬열이 백현과 다니는 줄도 몰랐으니….세훈은 찬열과 같이 하교하는 백현을 보고 놀랐을 때가 생각났다.갑자기 무언가 괘씸한 감정이 들었다.박찬열 이 새끼 뭐야?변백현한테 나 완전 밀린건가.자신을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비꼬는 모습이 떠올라 순간 어이가 없어져 조용히 공부하는 찬열의 뒷통수를 한 번 철썩 때려주었다.
아 씨..세훈을 매섭게 노려보며 욕설을 내뱉으려다,동시에 향하는 백현의 시선에 깨갱하는 찬열이었다.뒤진다- 찬열이 입모양으로,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세훈은 그 상황이 조금,아니 많이 웃겨서 찬열을 깔보듯 웃어보였다.존나 어이없어…나 변백현때문에 불알친구한테 까인거야?세훈은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그랬다,세훈과 백현이 친해진 뒤 어느정도 후 찬열의 반으로 놀러를 갔었다.자신의 반으로 놀러 온 것을 보고 백현이 놀람 반 반가움 반으로 세훈을 맞이해주었는데,그 모습에 찬열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세훈은 비로소 알아차렸다.박찬열 이 새끼..다 변백현때문이었던거야.세훈은 분노했다.
"빨리 끝내"
"이거,답 뭔지 모르겠어 기다려봐"
찬열은 답지 않게 열심이었다.항상 그럭저럭 성적은 유지하던 찬열이었지만 저렇게 열심히 하는 것 같진 않았는데.세훈은 왠지 못마땅했다.팔짱을 낀 채 책상 위에 걸터앉아 찬열과 백현이 나란히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하니 퍽 우스웠다.찬열을 미간을 찌푸린 채 책을 뚫어져라 보는 듯 하더니 곧 책을 덮었다.가자.찬열이 그렇게 말하고는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백현이는?"
"아,백현이는 배연지랑 갈걸."
"...."
배연지?왠지 익숙한 그 이름에 세훈은 머리를 굴리다가 기억 하나를 끄집어냈다.너무 희미해서 기억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아무튼 중학교시절 종인이 자신에게 배연지라는 이름을 꺼낸 것 같긴 했다.그 배연지가 백현이랑도 친했었나,아 그랬나?세훈은 그렇구나-단정짓고는 백현을 쳐다보았다.
"애인?"
"..응?"
"아니거든"
백현을 바라보며 물었는데 찬열이 비꼬는 어조로 답했다.너한테 안물었는데,개새끼야 뻐큐.세훈은 중지손가락을 쭉 뻗어올렸다.
"여자친구도 아닌데 왜 같이 하교하는데?"
"..."
"그럴 수도 있지,"
"같이 하교 안해."
백현의 그 말에 찬열이 놀란 표정으로 백현을 돌아보았다.정말 아무것도 모르네.백현은 생각했다.그 일 이후 연지와는 완전히 서먹해져버렸다.먼저 다가가보려고도 해봤지만 오히려 연지가 꺼리는 상황같아 금세 주눅이 들어 그마저도 포기했었다.사실,따져보면 찬열때문이지만….그 일에 대해선 별로 묻고 싶은 마음이 없어 묻어뒀었다.찬열이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에 조금 씁쓸한 백현이었다.
"그럼,같이 갈래?"
"아,괜찮아"
세훈은 그런 찬열을 보고 또 답지 않은 친절,이라고 생각했다.이렇게 찬열을 보고 있자니 저 놈이 내가 아는 놈이 맞는건지 아닌건지 세훈은 분간이 가질 않았다.그럼 우리 먼저 간다?세훈이 그렇게 말하고는 일어섰다.찬열도 가방을 매고 백현에게 인사했다.백현은 오늘 야자를 할 모양이었다.야 가자.세훈이 찬열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는 그렇게 말했다.
"빨리 가자,3시간도 채 못할지 모름"
"뭘?"
"뭐라니?"
"뭔 소리야"
"니가 오늘 피시방 가자매?"
내가 언제?찬열의 깨끗하게 펴진 의아한 얼굴에 세훈은 뭐?하고 인상을 종이마냥 구겼다.세훈은 헛웃음이 나왔다.제 아무리 기억력이 나쁘다지만 어제 한 약속을 까먹을까.어제 니가 카톡으로 그랬잖아!세훈이 급기야 찬열의 의아한 얼굴에 대고 큰 소리를 냈다.
"그랬었나?어쩐지 네가 당연하단 듯이 우리 반 들어오더라"
"그랬었다 개새끼야"
"안가"
"뭐야?"
"시험 얼마 남았다고,공부해야 돼.너도 공부 좀 해라 골빈 새끼야"
어제까지 카톡으로 자신에게 피시방 가자고 한 인물은 누구던가,갑작스레 욕을 얻어먹은 세훈은 그 모순에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변백현 없으니까 바로 입 험해지는 것 봐라 이거.세훈은 더욱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찬열은 정말 작정을 한 것인지 걸으면서도 교과서를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와-진짜 어이가 없네!세훈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답답함과 근질거림에 분통이 터졌다.박찬열을,도대체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답은 한 사람이었다.
"너,내가 전부터 물어봤던거지만 말야"
"뭐"
"백현이한테 뭐 죄 졌냐?"
세훈의 예상대로,찬열은 세훈의 말을 우스갯소리로 보는 듯 대답조차 않고 넘겨버렸다.세훈의 입장에서 봤을 때 평소 제 앞의 찬열과 백현과 함께 있을 때의 찬열을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정말 찬열이 백현의 쫄따구같았다.변백현이 박찬열에게 무슨 약이라도 먹인걸까.세훈은 말도 안되는 상상을 꽤 진지하게 했다.찬열이 저렇게 백현에게 설설 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세훈은 머리를 쥐어짜내며 생각을 해보았지만 백현과 찬열이 같이 다니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인데,그마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아니면?
"너 걔 좋아함?"
찬열의 발걸음이 잠시 삐끗,하다가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찬열은 별 미친 소리를 다 듣겠다는 표정으로 세훈을 쳐다보았다.당연히 장난으로 하는 말일 것이라 생각한 찬열이었지만 세훈의 표정은 별로 그래보이지가 않았다.세훈은 중학교시절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여자 아이가 생긴 후 맘 편히 친구들과 욕도 쓰지 못하고 눈치만 보며 또 몇 번 말이라도 걸 기회가 생기면 성심성의껏 친절을 다 해주었던 그 때가 떠올라 무언가 겹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세훈은 뭔가 큰 걸 깨달은 것인양 찬열을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았다.
"...진짜?"
"미쳤냐?"
"헐 씨발...."
찬열이 당황함을 숨기고는 그렇게 말했지만 세훈은 이미 찬열이 백현을 좋아한다-라는 그 생각만이 머릿속에 박힌 듯 얼이 빠진 채 그렇게 중얼거렸다.헐...씨발..미친..헐.. 찬열은 그런 세훈을 보고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뭐라 말하려는 찰나 진짜야?하고 다시 눈을 댕그랗게 뜨고는 되묻는 세훈에 되려 당황해 어버버거렸다.아 씨발?찬열이 속으로 욕설을 삼켜냈다.
세훈은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아무리 겹쳐보여도 그렇지,변백현은 남자잖아.
"아니지?"
"..당연하지 씨발..미친놈아 정도가 있지.."
"순간 옛날 생각나서.."
찬열이 긴 숨을 내뱉었다.세훈은 자신이 너무 깊게 들어간 것이라 생각하고는 곧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다.세훈은 찬열을 힐끔 보았다.제가 한 말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찬열도 조금 얼 빠져보였다.한참을 찬열과 아무 말도 없이 걷다가 세훈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입을 열었다.
"맞다,전학온대 김종인"
"김종인?"
"예전에 다른 지역으로 멀리 갔었잖아,근데 다시 이쪽 근처로 이사 온다더라.학교는 당연히 우리학교일 것 같고,이 근처엔 여기밖에 없으니까"
"..."
"이 시기에 전학 오는 건 또 뭔 지랄인지 쯔쯔,방학 시작하고 반 배정되면 애들한테 묻혀서 자연스럽게 올 건가봐"
"나 걔랑 별로 안친하잖아"
근데,백현이는 김종인이랑 친하잖아.세훈이 하는 말에 찬열은 조금 뜨끔했다.찬열은 중학교시절 몇 번 보았던 종인의 얼굴을 선명하게 떠올리려 애써보았다.별로 말이 많지도 않고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모습이 흔한 녀석이라 별로 친해지고 싶지도 않았고,그럴 수도 없어보였다.세훈은 어떻게 종인과 친해진지 알 수 없지만.찬열은 백현과 종인이 얼마나 친한지 가늠할 수 없었다.몇 번 보긴 했지만,백현같은 얼굴은 그의 친구들이라고 하는 무리들중 본 적도 없는 것 같고.세훈과 종인이 같이 다녔지만 세훈도 기억을 자세히 못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친한 사이는 또 아닌 것 같았다.중학교 2학년때 전학갔다고 했었지,가까운 곳은 아니었을테고.찬열은 자연스레 궁금해짐에 세훈에게 한 마디 물었다.
"근데,왜 다시 온대 걔는?"
"...음..이런 거 말해도 되나?"
"뭐?"
"부모님 이혼했다던데?"
그래서 다시 오는거래.원래 살던 곳으로.세훈이 조심스레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자신도 말하고는 조금 그랬던지 헛기침을 몇 번 해보인다.찬열은 그 말을 듣고 할 말이 없어졌다.
* *
거의 일주일만에 글 쓰네요..ㅠㅠㅠㅜㅠ죄송..사실 학업문제때문에..
이제 꾸준하게 올리겠습니다..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셀린느 박보검 뷔 수지 얼빡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