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권순영] 신경외과 VS 소아과_17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9/13/1/07da61e912201e88e3c7168a265ffeb4.gif)
신경외과 VS 소아과 :: 17
By.아리아
꽤나 길었던 컨퍼런스 덕에 밖은 노을로 번져있었다. 하늘을 예쁘게 수놓은 노을과 제 옆에 서서 꿀이 뚝뚝 흘러내릴 듯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그와의 조화는 아름다운 선율을 그려냈다. 바람이라도 쐬고 들어가자며 제 손을 잡아 이끈 그의 발걸음은 우리가 처음 다퉜던 그 가로등 아래였다.
"여긴 왜,"
"잠깐만 기다려요."
제가 울며 떠난 후 자신이 앉아있던 벤치에 저를 앉혀놓곤 병원 건물 안으로 급히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제 입꼬리는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 점점 어둑어둑해지는 노을, 간간히 들려오는 환자들의 웃음소리. 그냥 그 공간의 모든 것이 저를 미소짓게 만들었다. 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를 기다렸다.
저 멀리서 뭔가를 가지고 뛰어오는 그의 모습에 제 미소는 더욱 만연했다. 아무래도 아까 전 콧노래의 원인은 그와의 화해가 아닌가 싶다.
"뭘 그렇게 뛰어와요. 그러다 넘어지면 어떡하려고."
"신발 벗어봐요."
"네?"
다짜고짜 제 앞에 프러포즈 하듯 무릎을 굽혀 앉으며 가져온 물건들을 바닥에 놓는 그였다. 파스, 붕대, 저건 왜? 멀뚱멀뚱 그를 바라보자 제 발목을 조심스레 잡아 크룩스를 벗겨내는 그의 행동에 놀라 발목 부근을 내려보자 팅팅 부어오른 발목이 저를 맞이했다.
"의사라는 사람이 다쳤으면 치료를 해야지 이렇게 냅두면 어떡합니까."
"아니, 그게 워낙 바빠서.."
변명을 시작하려 하니 고개를 들어 어디 해볼테면 해 봐라는 식으로 저를 바라보는 그에 입을 앙하고 다물었다. 푸스스 웃으며 파스를 뿌리고 붕대를 감아오는 그의 손길이 꽤 섬세해 입술을 샐쭉 내밀며 이야기했다.
"이런 거 많이 해봤나봐요?"
"그럼 의산데 당연히 많이 해봤죠."
"아니, 여자한테요. 아까 신발 벗기는 것도 손놀림이 예사롭지가 않았어."
날카로운 인상과는 달리 동그란 그의 정수리를 노려보며 이야기하다 고개를 확 들어버리는 그에 꽤나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얼굴이 마주했다. 가까이 있는 게 한두번도 아닌데 오늘따라 제 가슴은 왜이리 콩닥콩닥 뛰는지. 서로의 숨소리만 들릴 때 쯤 더는 눈을 마주하지 못할 것 같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 괜한 쪽팔림에 눈을 뜨려 하자 제 뒷목을 살며시 잡아 입 맞추는 그에 눈꺼풀은 살포시 내려앉았다.
까슬까슬한 입술의 감촉임에도 제 심박수는 점점 더 올라 최고조를 뛰었다. 잠깐의 입맞춤 후 입술을 떼자 가까이서 보이는 그의 얼굴에 제 볼은 점점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내가 얼마나 서운했는지 알아요?"
"나도 얼마나 속상했는지 압니까?"
"뭐가 그렇게 속상하셨는데요."
"우는데 달래주진 못 하겠지, 발목이랑 볼은 또 어디서 다쳐와서 치료도 제대로 안 하고 다니는지. 진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어요. 알아?"
"아니 그러면 되게 나만 잘못한 것 같잖아요."
"잘못한 거 있긴 하잖아요."
"참나, 그러는 권교수는,"
"오빠."
투정부리듯 이야기하는 제 모습에 고개를 내저으며 호칭을 고쳐주다 크룩스를 다시 신겨주는 그였다. 분명 응급처치는 끝난 것 같은데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인상을 찌푸리는 그에 왜요?하며 물었다. 제 말에 대답대신 가운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조그마한 물티슈를 꺼내 신발에 튀긴 핏자국을 닦아내는 그였다. 잘 지워지지 않는지 점점 강한 손길로 닦아내는 그가 귀여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김교수님?"
"..권교수님?"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제 손길과 제 신발을 닦아내던 그의 손길이 동시에 멈추었다. 어색한 미소를 띄우며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리자, 어디서 단체로 저녁이라도 먹고 왔는지 대학 동료들에 후배들까지 싹 다 모여 경악에 찬 눈빛으로 저희를 바라보고 있는 그들이었다.
"..하하, 저녁 드시고 오셨나봐요."
"...방금 먹었는데 얹히게 생겼어요."
정말 벙찐 채로 이야기하는 찬이의 옆을 보니 다른 사람들이 표정 또한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지금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달달한 커플이 과연 그 두 사람이 맞을까 싶은 마음이 그들의 교집합이 아닐까싶다.
"그러게 조심 좀 하지, 병원 벤치에서 그러고 있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혀를 내두르는 지훈이었다. 옆의 석민이도 마찬가지였고. 그 말 한마디에 그 무리의 수군거림은 더욱 심해졌다. 뭐야, 너네 알고 있었어? 왜 말 안 해줬어! 하는 등 당사자보다 저 둘에게 더욱 심한 질타가 전해졌다.
"에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응급실에서 소리지르고 싸우시던 분들인데, 아니죠? 아니지, ㅇㅇ야?"
삭막한 병원 내에서 아빠 노릇을 톡톡히 해내던 승철이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승철을 비롯한 무리와 우리 사이에 적막이 맴돌았다. 뭐라도 좀 해보라며 다른 쪽 발로 그의 다리를 툭툭 차자 마지막이었던 핏자국 까지 닦아내곤 제 손을 잡아 함께 일어나는 그에 어버버거리며 따라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사귄지 꽤 됐습니다. 제가 먼저 들이대고 했으니 볼 일 다 보셨으면 가시죠. 다들 당직이신 걸로 아는데."
처음 권교수를 보았던 날,그 싸가지 없는 말투가 그들을 맞았다. 그 싸가지 없는 말 한마디가 열댓명은 되는 사람들을 모두 K.O패 시켜버리고 말았다. 권교수 얼굴 한번, 제 얼굴 한번, 이젠 깍지까지 껴있는 손 한번. 모두의 시선이 그렇게 움직이다 종착지는 병원이었다. 발빠르게 병원 건물로 발을 옮기는 그들의 뒷모습을 넋을 놓은 채 바라보았다.
병원 깊숙히 들어가 점으로 보일 때 쯤 이를 꽉 깨물곤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거기서 그렇게 말을 하면 어떡해요!"
"아, 아, 진짜 아파. 아, 그럼 거기서 안 사귄다고 말해야 됩니까?"
"아니,그 말이 아니라."
"저 사람들이 우리 뽀뽀한 거 부터 다 봤을 수 도 있는데 뭐하러 숨겨요. 아, 김교수님은 연인 아니어도 막 뽀뽀하고 그러시나 봅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요!"
"그럼 된거죠, 뭐. 이왕 들킨 거 이제 맘 편히 연애할 수 있겠네."
"지금, 그게, 할 소리에요? 네?"
그의 팔뚝을 때리며 말을 했다. 씩씩 거리며 병원으로 향하자 여기저기 제게 맞은 곳이 꽤 아팠을텐데 뭐가 그리도 좋은지 실실 웃으며 제 뒤를 졸졸 쫓아오는 그였다. 아씨, 망했어 진짜.
***
"승찬아, 잠깐만 일어나보자-"
"네에."
혈압 체크를 하려 아이의 침대헤드를 올렸다. 오늘따라 밥투정도 안 부리고 얌전히 검사를 받는 아이의 모습에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차트에 기록을 해나갔다.
"선생님."
"응?"
"선생님 쩌어기 눈 이렇게 된 선생님이랑 딴따단 해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눈을 잡아당겨 날카로운 눈매를 만들어내는 아이였다. 제 주변에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은 딱 한 사람, 딴따단은..미친, 결혼? 그제야 아이의 말이 파악 돼 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깨끗하던 차트는 어느새 혼란스러운 제 머릿속처럼 엉망이 되어 있었다.
"응? 아니야 아니야. 누가 그런 얘기해?"
"쩌 선생님이요! 제가 나중에 크면 선생님이랑 딴따단 한다니까 막 안된다고 자기랑 할거라고 그래써요.."
"나쁜 선생님이네-"
아이의 짜리몽땅한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병실 문에 삐딱하게 기대어 팔짱을 끼고 있는 그가 있었다. 세상 무섭게 생긴 표정에 고개를 돌려 다시 차트에 회진 기록을 써내려갔다.
그 병실에 있던 환자들의 회진을 다 끝내고 나오니 제 팔을 붙잡는 그였다.
"지금 바쁜 거 안 보이세요? 얘들아, 수고했어. 가서 일 봐."
가기 싫다는 눈빛을 마구 발사하고 있는 인턴과 레지던트들을 다 각자 자기 자리로 보내버리곤 괜한 차트만 뒤적거리며 의국 로비로 향했다. 카운터에 서서 차트를 정리해 나가자 카운터에 몸을 기대며 빤히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저희를 보며 엄마미소를 날리시는 간호사 쌤들의 시선까지 더불어서.
"김교수님."
"..."
"김ㅇㅇ."
"..."
"ㅇㅇ야."
"..."
"자기야."
"미쳤어요?!"
자기야라니. 아직 우리 사이에서도 익숙치 않은 단어를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내뱉은 그였다. 저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지르자 실실 웃으며 저를 바라보고 있는 그에 한숨을 내쉬며 탁 소리가 나도록 차트를 덮어버리곤 몸을 틀어 그를 마주했다.
"왜 아침부터 소아과 의국까지 와서 이러세요."
"보고싶어서요."
"..진짜 미쳤어요?"
"연락도 안 받지 이젠 하다하다 애기한테 청혼까지 받지."
"애가 그러는 건 장난이죠."
"승찬이 장난이었어? 와, 이 선생님 남자 진심을 막 무시해버리네? 나쁘지-"
아까 그 아이가 제 뒤를 따라왔는지 제게 다가오는 듯 하다, 뒤쪽에 있던 조그마한 아이를 안아 올리는 그였다. 꽤 자연스러운 폼에 미소가 번지려다 아이의 눈에 맺혀있는 눈물에 입꼬리는 축 쳐지고 말았다.
"승찬아, 아니야. 선생님이 승찬이 얼마나 좋아하는데. 알지?"
"흐어어엉- 장난, 아닌데. 막, 허헝."
"승찬이 뚝! 사탕 줄까요?"
아이를 달래려 가까이 다가갔다. 쪽, 제 볼에서 짧게 느껴지는 입술의 감촉에 의국은 정적이 흘렀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져갔고.
"야! 권순영!"
엉엉 우는 아이를 옆에 있던 승관쌤께 넘겨버리곤 열심히 울리는 콜을 흔들며 신경외과 의국 쪽으로 뛰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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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헿 들켰대요 능글능글 거리는 거 넘나 제 취향...신발 닦아주고 발목 치료해주는 저 부분 제가 여기까지 오기 전까지 구상해놨던 부분인데 이제야 들어가네용꺄아 권교수 쏘 스윗...마치 제 이상형이랄까...
아까 낮에 올렸던 고민글 너무나 많은 분들이 같이 고민해주시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해주셔서 너무 감동이였어요 정말로!
독자님들 말씀 깊게 새겨 듣고 살아갈게요! 좋은 말씀 너무 감사드려요 정말로ㅎㅎ 아직 답글 못 달아드린 댓글들은 제대로 읽지 못해서 답글을 못 달아드렸어요. 신중하게 읽고 답글 달아드릴게요!! 그저 현타온 고3의 넋두리라고 넘기실 수 도 있는데 함께 고민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저는 정말 독자님들 없으면 어떻게 살까 싶어요..ㅠㅠㅠㅠ사랑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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